'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힘차게 출발했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이 출범 6년 만에 파산 위기에 놓였다. 31조 원 규모의 개발 사업이 59억 원의 이자 비용을 막지 못해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개발 사업의 중심인 코레일이 15일 서울시와 코레일의 영향력을 대폭 강화하는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서울시도 이에 적극 화답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넘어야 할 난관은 한둘이 아니다. 당장은 이번 개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생활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 포함 여부를 두고 6년 동안 지난한 갈등에 시달렸다. 이 난관을 넘어서더라도 풀어야 할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개발이 가능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급랭하는 부동산 경기로 인해 코레일이 당초 그린 장밋빛 미래를 현실로 만들 수 없으리라는 지적이 여러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프레시안>은 무능으로 점철된 이번 개발 계획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서부이촌동을 찾아보고, 이 사업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되짚어본다. 이에 더해 전문가 진단을 통해, 용산 개발 사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해법을 모색한다. <편집자>
"지금 너무 늦었어요. 너무, 너무…. 이 동네(서부이촌동) 작살난 다음에 책임질 사람이 없잖아요. 누가 책임을 져요. 누가 책임을 지냐고. 책임지는 데가 있어요? 서울시가 어떻게 책임져요. 사람들 생활이 다 파탄 났는데 그걸 뭘로 책임져요. 소송을 한다고 해도 2년, 3년 더 지나면 여기 사람들, 더 작살나요."
서부이촌동(이촌2동) 주민 이봉규 씨(가명)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번쩍번쩍하는 초고층빌딩이 무려 19개, AAA등급 오피스, 6성급 호텔, 컨벤션시설, 최고급 레스토랑. 이 모든 것이 들어서며 '꿈의 허브'의 일부로 편입된다던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주식회사(드림허브)의 2대 주주인 롯데관광개발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그 꿈이 신기루로 변하고 있다. 서울시가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의 향방은 현재 '시계 제로' 상태다. 여기에 복잡한 개인 사정들이 얽히고설킨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반목과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휘말린 주민들은 부추겨진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고 있다.
▲ 용산국제업무지구 예상도 ⓒ드림허브
▲ 개발이 예정된 서부이촌동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2007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코레일 부지 개발 사업에 서부이촌동을 편입시켜 통합 개발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 사업'은 시작됐다. 이주 대책 기준일인 2007년 8월 30일부로 자신의 집을 팔 수도 없게 됐다. 현재까지 이 사업에 이미 들어간 돈만 4조 원으로 추정되는데, 주민들은 그 돈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6년 동안 재산권이 묶인 주민들의 심성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상황이다. 서부이촌동 주민대책협의회에 따르면 이곳 2200여 가구 중 65%가 평균 3억5000만 원의 은행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와중에 사업 시행사의 부도 사태를 목격한 주민들은 또다시 '개발'과 '개발 반대'로 이합집산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이 만난 개발 찬성 주민들과 반대 주민들은 상대편을 향해 "투기꾼", "깡패"와 같은 격한 단어까지 써가며 비난했다. 수년 전까지도 한동네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적'과 다름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개발 취소되면 용산참사보다 더 큰 참사 날 수도"
용산역에 내려서 1번 출구로 나와 한강 방향으로 걸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아직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낡은 판자집들이 얽히고설킨 골목을 빠져나가자 병풍처럼 서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눈에 띄었다. 한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들 아래 다닥다닥 붙은 낡은 상가 건물, '맨숀'이라고 적힌 연립 주택들이 보였다. 서부이촌동 풍경이다.
눈에 띄는 것은 서부이촌동을 개발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의 커다란 '아파트 벽보'였다. 오세훈 전 시장을 비난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이 씨가 입을 열었다.
"제가 봤을 때는 만약에 저거 되면(개발이 취소되면) 용산(참사 때 숨진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분이 자살을 하실 수도 있어요. 현재 장애인들 몇 분이 살고 계시는데, 장애연금도 안 나와요. 안 나오는 이유가 집값이 비싸져서, 재산이 많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부모랑 아이까지 장애인 집안인데, 돈을 벌 수가 없잖아요. 국가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다가 집값이 올라가서 해당 사안이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떡해. 방법이 없잖아. 대출을 받아서 난리 난 집들 있죠? 그 집도 그래요. 어차피 개발 금방 된다고 해서 자녀들이 설득해 대출을 받도록 한 거죠. 그렇게 계속 오다 보니 점점 더 힘만 드는 거예요. 여기 사는 사람들, 이해관계가 다 달라요. 주민투표를 하면 결론 날까요? 안 나요. 개발이 되든 안 되든 그런 분들(장애인 가족)은 어차피 끝난 거예요. 애초에 이런 일이 없었으면 모르는데, 너무 늦었어요."
"동네 분위기를 알려달라"는 요청에 이런 답을 내놓은 이 씨는 "나도 이제 쫒겨난다. 갈 데가 있냐고? 없다. 어떻게든 되지 않겠나. 그래도 난 정말 막다른 골목에 있는 사람보다는 나으니까"라고 말했다. 보상금만 바라보며 6년을 버틴 사람들의 일상은 처절했다.
▲ 찬반 투표 실시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제발 보상 받고 떠났으면" VS "멀쩡한 아파트를 왜 부숴"
현재 11개구역연합대책위원회로 대표되는 용산 개발 참가 찬성 주민들은 이른바 '동의자 모임'으로 불린다. 연립·다세대 주택 소유자들의 상당수는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다. 서부이촌동에는 대림아파트, 북한강성원아파트, 동원베네스트, 중산 시범1차아파트, 시범아파트 등 5개의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이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단독·연립·다세대 주택 소유자들에 비해 개발 반대 의사가 강하다.
서부이촌동을 찾아보면, 단독 주택 세대민과 아파트 주거민의 견해가 이처럼 나뉘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철도청 부지와 다세대 주택지를 지나, 한강으로 가는 길에 고층 아파트들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유지민 씨(가명)는 개발에 찬성이다. 유 씨는 지난 6년을 되짚으며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파트 주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기네는 있어도(계속 살아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얘기는 하는데, 다 보상을 받고 나가길 원한다. 워낙 건물이 썩고 해서…. 사실 (2007년) 통합 개발을 한다고 하기 전에 일부는 재건축하기로 인가가 다 났다. 통합 개발만 아니면 우리는 벌써 재건축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억울하다. 6년 동안 진짜 힘들었다. 이게 뭐냐. 돈도 못 벌고 붙들고 앉아서…."
노후한 단독 주택 소유주들은 상대적으로 개발 소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서울시와 시행사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우리도 좋은 집에 살아보자'는 구호는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린다. 그러나 기대감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6년 동안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지겹게 겪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동네 장사'로 매출을 올리는 작은 상가들은 주민들이 하나둘 나가면서 수입원마저 잃었다. 장사는 장사대로 안되는데, 재건축까지 막혀 있고 보상도 불투명한 상황이 되니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제발 보상을 받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반면 서부이촌동에서 상대적으로 고급 아파트인 대림아파트와 북한강성원아파트의 경우 반대 의사가 특히 강하다. 2011년 서울시에서 조사한 결과, 대림아파트와 성원아파트 주민 중 개발에 찬성한 가구 비율은 각각 39.6%, 32.4%에 불과했다. 지역 주민 전체 동의율이 56.4%에 달했던 것과 온도 차이가 뚜렷하다. 반대 기류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더 강해지는 추세다. 지역 주민들은 현재 아파트 주거민의 70% 가까이가 서부이촌동 개발에 반대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대림·성원 등 대형 아파트는 한강 조망권을 확보하고 있다. 도시개발구역 지정이 해제돼 재산권 행사가 가능해지면 집의 가치는 다시금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 더구나 시범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는 건축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거주민이 2000년대 들어서 이곳에 터를 잡았다.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파트를 부수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한다는 서울시의 요구를 거주민이 따를 이유가 없다.
2002년부터 성원아파트에 거주했다는 임영재 씨는 "들어온 지 3-4년밖에 안 된 멀쩡한 아파트를, 그것도 집주인의 반대 의견도 묵살하고 부수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서울시가 주민 권리는 무시하고 마음대로 재산권 행사도 못하게 한다. 21세기에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 씨는 "회사로 깡패 같은 사람이 찾아와 재개발에 동의하라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며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우리 아파트에 많다"고 주장했다.
'아파트 사람들'의 이러한 주장에 개발 찬성 주민들은 "아파트 사는 사람들도 속내를 보면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50%는 넘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서로 "우리 편이 많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이제는 주민들조차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까지 왔다. 이웃들과 복마전을 이루는 기막힌 상황이다.
▲ 대림아파트 벽에 쓰인 개발 반대 문구 ⓒ프레시안(최형락)
▲ 한 아파트에서 한강을 바라본 전경 ⓒ프레시안(최형락)
"오세훈이 벌인 일"…박원순이 해결할 수 있을까?
앞으로 이 사업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서부이촌동을 6개 권역으로 나눈 후, 감정평가를 시행해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주민 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3년 집을 매입했다는 대림아파트 거주민 박희숙 씨는 "감정평가를 거친다는 게 결국 서부이촌동 개발을 위한 행정 절차를 밟겠다는 속셈 아니냐"며 "우선 주민 투표부터 실시하고, 그 후 개발에 찬성하는 지역에만 감정평가를 시행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반면 '동의자 모임'의 박종민 씨는 "서울시의 방안에 동의한다. 저 사람들(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헐값에 넘기게 될 것이라고 선동해 왔는데 진짜 헐값인지 감정평가를 제대로 받고, 그 다음에 주민 투표를 하자는 것이다. 만약 헐값으로 나오면 나부터 개발 반대로 돌아서겠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의견이 최우선"이라는 서울시의 방침 하나에 대해서도 주민들의 생각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셈이다.
김상철 진보신당 서울시당 사무처장은 "서울시가 무리하게 서부이촌동을 개발 대상에 포함시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며 "서부이촌동은 개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또 "용산 개발이 좌초하면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특히 상권이 무너진 이 지역 상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원안대로 코레일 부지만 용산 개발에 포함시키고, 서울시는 지역 상권 개발에 나서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역시 만만치 않은 일이다. 좌절한 주민들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모른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신중한 접근을 요구한다. 도시 계획 전문가인 김진애 전 민주통합당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어느 경우에나 주민들 피해가 더 이상 커지지 않게 해야 한다"며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라도 사업 구간이나 이런 부분을 조정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오세훈 전 시장이 벌인 일"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오 전 시장이 벌인 일, 박원순 시장이 해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