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4(주일) 욥기 19:13~29 ‘나의 대속자 되신 하나님’
세상 모든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욥은 극심한 고난의 결과로 모든 공동체로부터 완전히 소외당하고 처절한 고독을 경험합니다.
1. 고독이라는 광야로 내몰린 욥(13~20절)
하나님이 욥을 치신 결과, 극심한 욥의 고난을 보고 그를 사랑하던 형제와 친척들이 그의 곁을 버리고 떠납니다(13,14절). 자신의 집에 있던 자와 여종들도 그를 낯선 자로 여깁니다(15절). 더 나아가 아내는 자신의 숨결조차 싫어 합니다(17절). 심지어는 비교적 때가 덜 묻은 어린아이들마저 어른을 따라 욥을 멸시할 정도로 욥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18절). 그 결과 욥은 공동체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처절한 고독을 경험하게 됩니다. 특히 빌닷을 포함한 친구들은 욥을 미워하며 원수처럼 그를 괴롭힙니다(19절). 욥은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외면을 받고 철저하게 망가져 회복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처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욥과 같이 우리도 고독의 광야로 내몰 때가 있습니다. 고독이라는 광야로 내몰려 아무도 내 곁에 없는 그 때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독이라는 광야를 통과해야만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게 되는 것을 아시기에 우리를 고독의 광야로 내모십니다.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상태를 넘어 자기 자신과의 만남, 세상과의 거리두기, 그리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의미하는 영적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광야가 인생의 방황과 고독을 상징하듯, 고독의 시간은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고 성장시키는 귀한 기회가 됩니다. 예수님도 광야 사십일을 겪으셨습니다. 광야에서 금식하고 기도하시면서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내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적용) 나는 지금 어떤 고독의 광야에 있습니까? 나를 이 고독의 광야로 보내신 이유를 알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고 있습니까?(13절)
2. 긍휼을 구하는 욥(21~22절)
욥은 극심한 고독 속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며 간청합니다. 21절에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자신의 고난은 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 자신을 향한 비난과 공격을 멈춰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의 요청은 인간적인 동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의 눈으로 봐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자신들이 마치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양 착각하고 욥을 박해합니다. 22절에 욥은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처럼 박해하느냐 내 살로도 부족하냐” 절규를 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시선으로 고난을 보지 않으면 고난 가운데 숨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긍휼은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속성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주십니다. “여호와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긍휼은 단순한 감정을 넘어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우리가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아름다운 덕목입니다. 적용) 나는 힘들어하는 지체를 불쌍히 여기기보다 오히려 그동안 들은 말씀을 지식적으로 적용하여 그를 괴롭게 하지는 않았습니까?(22절)
3.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심을 고백하는 욥(23~29절)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욥은 두가지 소망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무죄함을 영원히 기록하는 것이고(23,24절), 둘째는 이 땅에서 고난의 문제가 다 해결되지 않더라고 마침내 자신의 대속자가 땅 위에 서리라는 것입니다(25절).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 분이 땅 위에 서실 것을 선포합니다. ‘대속자’는 히브리어로 ‘고엘’인데, 이는 ‘기업무를 자’, ‘값을 치르고 회복시켜줄 법적인 책임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룻 2:20). 구약에서 ‘대속’은 타살당한 친척을 위해 대신 복수하거나, 가난하여 어려움에 처한 친족의 기업을 무르는 의무를 수행하는 것, 또는 친족이 자식 없이 죽었을 경우, 그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후사를 잇는 행위 등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살아계신 나의 대속자’(25절)로 고백하며 비록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무죄함이 증명되지 않더라도 영원히 살아 계시는 대속자 메시아가 자신의 구원자가 되실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게 고백하자 욥에게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26절)는 부활신앙이 생기게 됩니다. 적용) 나의 모든 억울함과 무죄함을 주님이 신원하시고 회복시켜주실 줄 믿습니까?
결론
고난 중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나의 대속자이심을 믿고 믿음을 잃지 않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