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 창립을 위하여
콜롬비아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사례
박 정 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차 례>
서문-콜롬비아 몸의 학교 실험을 주목하는 이유 1. 몸의 학교 연혁 2. 몸의 학교 설립 배경 3. 몸의 학교 사례 분석 4. 몸의 학교 실험의 교훈 5. 사회문화정책 제안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 창립을 위하여
<부록> 몸의 학교 공동교장 인터뷰 |
<서문> 콜롬비아 ‘몸의 학교’ 실험을 주목하는 이유
전 세계적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예술교육 실험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빈민 가정의 아이들을 세계적 음악가로 성장시키고 빈민가를 문화예술의 요람으로 변화시켜온 베네수엘라의 국가오케스트라 제도에 이어 내전과 불평등의 나라 콜롬비아 아이들을 세계적인 무용수로 성장시키고 빈민 지역을 참신한 예술기반교육의 발흥지로 바꾸고 있는 콜롬비아 몸의 학교 실험이 새로운 주목 대상이 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의 예술교육 실험이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이유는 공교육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도 그 유례가 드문 혁신적인 예술기반교육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콜롬비아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 현실에 뿌리를 둔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으로 기존 공교육 및 예술교육과 대비되는 파격적인 실험을 선보이고 있다. 몸의 학교는 예술을 교육의 중추로 삼아 인류가 축적해온 학문과 신체기술을 통합하여 교육하는 야심만만한 교육 목표를 현실화하고 있다.
사실상 공교육의 몰락을 목도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기존 공교육을 혁신할 새로운 모델을 갈구하고 있다. 전사회적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문화예술의 교육적 힘에 대한 인식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술이 교육의 중추로 거듭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연대를 위해 투쟁해온 예술노동자들은 탈신자유주의 시대를 예비할 새로운 운동의 모델을 설계하고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 시민과 연대하여 이를 실천해야 할 시대적 요구 앞에 놓여 있다.
필자는 한국의 전통 공교육을 혁신하면서 현재까지의 한국 대안학교 실험의 한계도 극복할 신개념의 대안학교로서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를 제안한다. 이 학교는 콜롬비아의 ‘몸의 학교’의 탄생과 성장 과정에서 교훈을 얻어 이를 창조적으로 수용할 것이며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예술교육 실험 사례들을 참고할 것이다.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는 세계가 공유하는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한국 현실에 착근하는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구상할 것이다. 이 학교는 한국의 사교육에서 배제되고 공교육마저 방치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가장 취약한 청소년 계층을 예술가 시민과 예술적 시민들로 양성할 것이다. 이 학교가 둥지를 틀게 될 수도권과 지방의 가장 낙후한 지역을 혁신적인 예술교육의 요람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1. 몸의 학교 연혁
콜롬비아 몸의 학교(el Colegio del Cuerpo)는 국제적인 명성을 획득한 대안예술학교이다. 참신한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제시하여 전통적인 공교육과 예술교육을 혁신하고 있는 이 학교는 콜롬비아 최초이자 유일의 대안예술학교로 탄생하여 내전과 불평등, 빈곤과 차별 속에 방치된 가난한 콜롬비아 아이들을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시켰다.
몸의 학교가 배출한 학생들로 구성된 몸의 학교 무용단(La Companí́a)은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현대무용단으로 발돋움하였고 미주와 유럽 대륙을 넘어 아시아 대륙에서도 초청을 받아 순회공연을 펼치고 있다.
몸의 학교 무용단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다. 8월에는 부산의 인문학서점 인디고서원이 주최한 국제도서전에 참가하였고 10월에는 서울세계무용축제와 안산예술의 전당 주최의 라틴아메리카 연극제 무대에 올랐다. 현재 몸의 학교는 1200명의 빈민 아동들을 대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계발시키는 대규모 문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콜롬비아의 사회 문제를 풀어가는 교육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을 제시한 몸의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혁신적인 교육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창립
몸의 학교는 1997년 9월 콜롬비아 항구 도시 까르따헤나 데 인디아스(Cartagena de Indias)에서 문을 열었다. 이 학교는 콜롬비아 여러 지식인들이 참여하고, 유럽 지식인들이 협력하여 탄생하였다. 창립을 주도하고 공동교장을 맡은 이들은 무용수와 안무가이자 교육자인 마리 프랑스 드리유방(Marie France Delieuvin, 프랑스)과 알바로 레스뜨레뽀(Álvaro Restrepo, 콜롬비아)였다.
창립자들은 “까르따헤나의 청소년들과 일반시민들이 현대무용 언어를 통해 인간 몸이 보유하고 있는 예술 표현력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설립 목표를 내걸었다. 레스뜨레뽀 교장은 ‘통합신체교육(Educación Corporal Integral)’이라 명명한 몸의 학교의 교육철학을 기초하였고 이를 “인간의 몸을 다루는 새로운 윤리”라고 부른다.
창설자들의 말에 따르면 “통합신체교육은 전쟁과 불평등, 차별, 빈곤 등 콜롬비아의 사회, 정치, 경제 현상들이 인간의 몸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물질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는 데 기여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미학적 탐구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새롭게 복권시키려는 노력”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통합신체교육이란 몸의 학교가 제시하는 ‘혁신적 예술기반교육’의 구체적 사례로서 콜롬비아의 현실에 맞게 조정된 통합교과과정을 잘 보여준다.
몸의 학교 무용단의 탄생
1997년 창립 초기에 입학한 아이들을 ‘실험파일럿그룹(Grupo Piloto Experimental)’이라 명명하였다. 통합신체교육이라는 새롭고 낯선 교육철학에 따라 교육 받은 첫 세대이자 몸의 학교의 간판 세대로서 레스뜨레뽀 교장은 그들과 함께 한 10년 이상의 시절을 “시행착오의 실험기”라고 부른다.
대다수가 일반 학교 출신으로 구성되었던 실험파일럿그룹 아이들은 1997년부터 2002년까지 몸의 학교가 개설한 6년의 ‘중급과정(Bachillerato Artístico)’를 이수했고 2004년부터는 3년의 ‘고급과정(Nivel Superior de Estudios)’에 진학해 전문적인 예술훈련을 받았다.
2006년에 실험파일럿 그룹의 청소년들은 콜롬비아 안띠오끼아 대학교 예술학부의 무용교육 학사 과정에 입학했다. 안띠오끼아 대학은 물론이고 콜롬비아 연방 문화부와 볼리바르 공과 대학교의 협력으로 이룬 성과였다. 이 학생들이 정규대학 예술학부에 입학하게 된 것은 몸의 학교의 예술교육활동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현재 이들은 몸의 학교 무용단을 구성하고 있다. 무용단은 콜롬비아 내외의 공공기관, 예술을 후원하는 민간기업의 협력으로 지속적인 예술 훈련을 수행하고 있다. 무용단은 라틴아메리카는 물론이고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해외 공연을 활발하게 펼치며 국제적인 단체로 발전하고 있다.
몸의 학교 무용단의 주요 공연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스위스-콜롬비아 통상조약체결 10주년 문화행사(스위스, 리히텐슈타인) 2008
일본-콜롬비아 수교 100주년 문화 행사 (일본) 2008
서울세계무용축제 (한국) 2008
안산라틴아메리카연극제(한국) 2008
카르미엘 축제 (이스라엘) 2008
네그로아마로 축제 (이탈리아) 2008
인디고서원 국제도서축제(한국) 2008
리마 국제 단사 누에바 축제 (페루) 2008
남미 순회 공연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페루) 2007
파나마 소브레살또스 국제축제 (파나마) (2007)
‘몸의 학교’ 시즌: 10년 수확기 (콜롬비아 보고타) 2007
제56회 그라나다 국제 음악 무용 축제(스페인) 2007
제2회 까스띠야 이 레온 국제예술축제 (스페인) 2007
미국 순회 공연 (워싱턴, 뉴욕) (2007)
산또 도밍고 도서박람회 (도미니카 공화국) 2007
세르반테스 국제축제 (멕시코) 2006
함부르크 라오쿤 축제 (독일), 2005
유럽 순회 (스페인, 벨기에, 영국, 프랑스) 2005
키토 무용 축제 (에콰도르) 2005
리마 무용 연극 축제 (페루) 2002
리용 무용 비엔날레 (프랑스) 2002
론드리나 국제 무용 축제 (브라질) 2000
몸의 학교의 사회적 확장
실험파일럿그룹의 성장과 발맞추어 체계를 잡아가던 몸의 학교 교육과정은 2001년 ‘예비과정(Semillero de Talentos)’을 개설하면서 예비과정(1년)-중급과정(6년)-고급과정(3년)으로 체계화되었다. 예비과정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을 위한 과정으로 2001년 까르따헤나 남동부 지역 일반 학교 아동 110명을 대상으로 감수성계발교육을 벌이면서 도입되었다.
2001년 몸의 학교는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내 몸, 내 집(Mi cuerpo, Mi casa)’이라는 사회문화사업을 벌였다. 빈민 중의 빈민이라 불리는 전쟁 난민 가정 200명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일 년 동안 진행된 사업은 몸의 학교가 사회적 소명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추진한 예술기반교육 사업이었다.
그들 가운데 30명의 아동들이 ‘몸의 학교’에 입학해 6년의 중급과정을 이수했고 현재 고급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이들이 바로 실험파일럿그룹의 뒤를 이어 몸의 학교의 간판 예술가들로 성정해갈 ‘코파일럿 그룹(Grupo Co-piloto)’이다.
2008년 몸의 학교는 까르따헤나 전 지역의 빈민 아동 1200명을 대상으로 감수성 계발 교육을 펼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은행을 통해 일본 정부의 후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간(間): 내 몸, 내 집(Proyecto Ma: Mi Cuerpo, Mi Casa)’ 사업은 2001년의 ‘내 몸, 내 집’ 사업의 확장버전으로 까르따헤나 빈민 지역에 7개의 교육공간을 마련하여 진행되고 있다. 일반 학교를 빌려 마련한 7개의 교육공간은 일종의 몸의 학교 분교라 할 수 있다. 이 대규모 프로젝트의 교사들은 모두 몸의 학교의 과거 학생들로서 몸의 학교 무용단원들이다.
사회적 인정
2003년 콜롬비아 연방교육부는 몸의 학교를 유네스코 평화교육상 후보로 추천하였다. 같은 해 말 연방문화부는 몸의 학교에 제1회 최우수문화기관 상을 수여했다. 2004년 몸의 학교 교장 알바로 레스뜨레뽀 선생은 독일 함부르크 캄프나겔 극장이 개최하는 2005년, 2006년 라오쿤 축제 예술감독으로 임명되었다. 2004년에는 콜롬비아 경제일간지 포르따폴리오(Portafolio)가 주는 공동체 기여상(Aporte a la Comunidad)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2006년 ‘몸의 학교’는 까르따헤나 시 교육청이 인가한 대안교육기관(Educación No-formal)으로 등록하였다.
현재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 국내외 공공기관, 민간기관과의 긴밀한 정책적 재정적 협력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 몸의 학교는 까르따헤나 시청이 제공한 학교 건물 부지에 신축 교사를 짓고 있다.
2. ‘몸의 학교’ 설립 배경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몸의 학교 레스뜨레뽀 교장은 모국 콜롬비아의 현실을 개탄했다.
“콜롬비아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나라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눈 먼 나라’라 부릅니다. 자신의 힘, 자신의 잠재력,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나라.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나라. 그 파괴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라가 바로 콜롬비아입니다”
말하자면 레스뜨레뽀 교장 선생은 ‘눈 먼 나라’ 콜롬비아의 눈을 띄우게 하려는 문화적 교육적 사업으로 몸의 학교를 제안했다. 그는 세계은행이 직접 제작한 영상물에서 몸의 학교를 “콜롬비아가 앓고 있는 심각한 윤리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제안”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콜롬비아에서 벌어지는 내전, 불평등과 빈곤, 차별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위기가 ‘윤리적 위기’를 낳았고 이것은 몸의 위기를 통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한다.
“가치관의 피비린내 나는 위기 속에 허우적대고 있는 콜롬비아에서 인간의 몸은 그 신성한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매일 우리는 고문당하고 절단당하고 살해당하는 몸들을 보고 있다. 영혼을 가진 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는 몸의 물질적인 면만을 느끼고 있다. 그리하여 인간의 몸은 유효기간이 길지 않은 물건으로 전락했고 마침내 일회용으로 버려지고 제거될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콜롬비아 연방문화부 ‘통합신체교육 센터 몸의 학교’ )
알바로 레스뜨레뽀 교장이 집필한 이 글은 ‘몸의 위기’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으며 자신이 창립을 주도한 학교명이 왜 ‘몸의 학교’인지 설명하고 있다. 몸의 학교 교장은 내전, 불평등과 빈곤, 차별이라는 이름의 콜롬비아적 폭력이 인간의 몸을 일회용물건으로 전락시켰다고 탄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몸을 접근하는 새로운 윤리”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고 느낀다. 바로 여기서 “통합신체교육”이라는 몸의 학교의 교육철학이 등장하였다.
창립자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의 현실에 대한 한 예술가의 대응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몸의 학교의 창립배경을 깊이 파악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내전, 불평등과 빈곤, 차별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적해보고 이것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내전
콜롬비아는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정치적 군사적 대립, 불평등과 빈곤, 차별 등이 더욱 극단적인 형태로 벌어진다.
먼저 이 나라는 40년 넘게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이 지속되고 있다. 이 전쟁은 집권 보수 세력이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극단적인 탄압을 벌이면서 시작되었다. 밀림으로 쫓겨난 반대파는 빈농의 자식들을 규합해 게릴라 집단을 조직하여 저항하기 시작했다. 1964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게릴라 집단 콜롬비아 혁명군(FARC)이 탄생하였고, 1966년 민족해방군(ELN)이 창설되었다. 이에 맞서 지주들은 극우민병대를 조직하기 시작하였고 1997년에는 극우민병대 연합조직인 콜롬비아 민병대연합(AUC)이 구성되었다. 콜롬비아 정부군은 극우민병대들과 직간접적으로 공조관계를 맺고 게릴라 진압작전을 펼쳐 왔다. 정부의 공권력이 게릴라 진압에 집중하고 있는 형편이라서 치안력은 사실상 공백 상태가 되었고 이를 틈타 마약 조직과 납치조직 등 범죄 조직들이 우후죽순 등장해 활개 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콜롬비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기 전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나라로 불렸다.
국제사면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 의하면 최근 20년 동안 콜롬비아 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최소 7만 명에 달하고 최근 가장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2002년 한 해 동안 4천 명의 민간인이 내전으로 사망했다.
전쟁은 또한 수많은 난민을 양산했다. 최근 20년 동안 약 3백 50만 명의 콜롬비아 인들이 강제적으로 고향을 떠났고 피란민으로 전락했다. 난민수를 놓고 보면 아프리카 수단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2008년 상반기 동안만 27만 명이 거주지에서 쫓겨나 이주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전쟁은 정치적 이유 혹은 조직재정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납치 범죄를 낳았고 2007년 한 해 동안 최소 190명의 시민들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군사적 대립은 대인지뢰의 매설을 부추겼고 2007년 한 해 동안 884명의 시민들이 지뢰의 피해자가 되었고 193명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콜롬비아 내전이 쿠바 혁명에서 비롯된 중남미의 게릴라 전쟁과 유사할 것이라는 통념은 실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80년대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게릴라 운동은 방향전환을 이루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게릴라 조직은 정치세력으로 변신하였다. 하지만 콜롬비아의 게릴라들은 민간정치세력으로 변신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방향 전환의 시기와 방법을 찾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고수해온 이념과 수단 사이의 심각한 괴리에 직면하였다.
콜롬비아 게릴라들은 납치한 인질을 처형하고 코카 재배 활동을 넘어 직접 코카인을 제조하는 일에 나서기도 했다. 심지어는 전통적인 게릴라 전쟁의 방식과 달리 민간인이 드나드는 디스코텍을 폭파시키는 테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의 2007년 콜롬비아 인권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콜롬비아 혁명군은 2002년부터 납치감금해온 주 의회 의원 11명을 살해했으며 게릴라의 이념을 가르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여교사를 강간했으며 게릴라 군대에서 이탈하려는 여성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극우민병대의 인권 유린도 악명이 높다. 이들은 대지주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주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정부, 의회, 연방군과 결탁해 작전을 펼쳐 왔다. 극우민병대는 1989년에는 사법부 공무원 12명을 처형한 사건이 보여주듯이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은 공무원들은 살해하기도 한다. 이들은 게릴라 전쟁과 관계가 없는 노동조합지도자, 원주민 지도자, 농민들을 암살해왔다. 2007년 조직의 해체를 선언한 몇몇 극우 민병대 지도자들은 통제 지역에 1009개의 비밀 무덤을 만들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으며 이로써 암매장되었던 1196명의 시신이 수습되기도 했다.
정부군과 경찰 등 공권력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도 고문, 법외 처형, 마약조직과의 결탁, 성폭력 등의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내전이 만들어낸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콜롬비아의 아이들도 전혀 자유롭지 못하다. 좌익 게릴라도 우익 민병대도 소년 소녀들을 징집하여 전쟁에 나서게 만들었다. 국제사면위원회 보고서는 최소 8천 명의 소년 소녀 병사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때론 최전선에 배치해 총알받이로 희생시키는 경우도 있다. 콜롬비아 군경도 소년소녀들을 군사작전의 길라잡이 혹은 정보원으로 이용한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난민 가정의 자녀들이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난민 중에는 콜롬비아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가장 낮은 계층인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콜롬비아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들 가정의 아이들은 전쟁의 주역들이 매설해 놓은 대인지뢰의 피해자가 되거나 무차별 공격과 테러의 희생자가 되거나 성폭력의 대상이 된다.
불평등, 빈곤, 차별
콜롬비아 내전의 진정한 원인은 불평등과 빈곤, 차별의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반세기에 이르는 내전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의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오랜 내전의 현대사가 주는 선입견으로 인해 중요한 사실을 잊곤 하는 데 콜롬비아는 그리 가난한 나라는 아니라는 점이다.
2007년 국제통화기금의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 세계 순위 통계에 따르면 콜롬비아는 오스트리아, 그리스와 비슷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세계 34위를 기록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대륙으로만 한정하자면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는 뒤지지만 베네수엘라와는 4위를 다투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격차는 32배를 상회하고 있으며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재는 지니계수는 무려 0.586에 이르고 있다. 국제연합개발계획 보고서는 콜롬비아를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대륙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불평등한 세 나라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있다.
불평등은 빈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다. 신뢰도가 형편없이 낮은 콜롬비아 정부의 2007년 통계를 보더라도 국민의 45%가 빈곤선 이하의 삶의 조건에 처해 있으며 12%는 극빈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전체 국민 약 4천 5백만 명 중에 1천 6백 만 명은 아예 상수도 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해 마실 물조차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차별에 인종차별까지 가세하고 있다. 콜롬비아의 인종 구성을 보면 메스티소(원주민과 유럽인 혼혈) 58%, 백인 20%, 물라토(흑백 혼혈) 14%, 흑인 4%, 삼보(흑인과 원주민 혼혈) 3%, 원주민 1%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서 물라토, 흑인, 삼보는 모두 아프리카계로 분류하는 데 콜롬비아는 미국, 브라질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아프리카계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대부분의 중남미 나라에서 인종적 서열은 유럽인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백인을 정점으로 혼혈인, 흑인(원주민) 순으로 하향한다.
몸의 학교 교장 레스뜨레뽀 선생은 콜롬비아의 인종문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공연한 인종주의와 구분되는 ‘은폐된 인종주의’라 지적했다. 인종주의가 가시적으로 제도화되어 있지 않지만 사회문화적 차별관행은 여전한 현실을 염두에 둔 것이다.
불평등과 빈곤, 차별의 현실은 사회적 약자인 아이들의 삶 속에 직접적으로 투영되어 있다.
국제연합개발계획의 2004년 보고서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중등과정(중고등학교) 취학률은 54.3%에 불과하다. 취학연령의 45% 청소년들은 중등과정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이 청소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소년 소녀 병사가 되어 전장에 나서거나 아동노동에 혹사하며 생계를 돕는 일에 나서고 있다. 코카인의 세계적인 생산지 콜롬비아에서 코카인 같은 고급마약은 모두 미국으로 밀수출하고 주로 싸구려 마약만이 국내에 유통된다. 이 아이들이 소비할 확률이 높은 저질 마약들이다. 몸의 학교 창립자들은 이 콜롬비아 아이들을 “유년기를 잃어버린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까르따헤나
콜롬비아의 현실은 몸의 학교가 위치한 까르따헤나 데 인디아스 시에서 더욱 극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마치 프랙털 도형과도 같이 콜롬비아 전체 현실은 이 도시의 현실 속에서 더욱 생생하게 구체화된다.
‘콜롬비아의 보석’ 까르따헤나는 콜롬비아 대서양 연안의 유서 깊은 항구도시로 스페인 제국 시대 식민자들이 이곳을 통해 콜롬비아를 드나들었으며 이곳으로 흑인노예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고색창연한 구시가지는 1984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역사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카리브해의 열대해안선은 이름난 관광자원이다. 이같은 문화관광자원을 바탕으로 까르따헤나는 콜롬비아에서 아주 이름난 문화도시이자 관광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국제적인 회의가 자주 개최되는 컨벤션 도시로도 이름이 높다.
하지만 까르따헤나의 인구 100만 가운데 70%가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몸의 학교 교장은 이 도시를 가리켜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에 빗대어 “에렌디라 도시”라고 부른다. 마르께스의 소설 속의 여주인공 에렌디라는 비정한 할머니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매춘을 하는데 까르따헤나의 아이들도 에렌디라처럼 자유를 박탈당한 채 혹사당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분석이다.
레스뜨레뽀 선생은 까르따헤나의 인종분리가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보다 더 사악하다고 말한다. 공인되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논의되었고 폐지된 남아공의 인종차별제도와 달리 까르따헤나의 인종차별은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논의되지도 않으며 제대로 폐지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또한 까르따헤나가 갖고 있는 경제적 기회를 찾아 도시 외곽에 전쟁난민이 계속 유입되면서 도시 주변은 거대한 빈곤의 띠가 형성되고 있다고 전한다.
10년 넘게 까르따헤나에 거주하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드리유방 교장 선생은 까르따헤나에는 두 개의 세상이 가까운 거리에 병존하고 있으며 그 지리적 심리적 인접성이 이 도시를 더욱 폭력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면서 그는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나타났다면 인구의 70%에 이르는 빈민들은 모두 반란에 합류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상을 전한다. 레스뜨레뽀 선생도 그녀의 불길한 예상에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이곳에 콜롬비아 최초이자 유일의 대안예술학교 ‘몸의 학교’가 문을 열었다.
3. 몸의 학교 사례 분석
이 장은 대안교육기관 몸의 학교의 비전(전망), 교육과정, 교육방법론, 학교 운영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 분석을 통해서 몸의 학교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몸의 학교의 비전
‘몸의 학교’ 교육철학인 통합신체교육은 “인간의 몸은 인간 조건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며 인간의 표현활동의 중추이며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결정적인 요소”라는 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기본 사상으로 한다.
이 교육철학에 바탕을 두고 몸의 학교는 현대무용언어, 다양한 예술 장르, 신체훈련기법 등 세 가지를 핵심적 교육내용으로 삼으면서 활동을 개시했다. 뒤에 몸의 학교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학문과 지식을 예술교육과 통합하는 본격적인 실험을 전개하였다.
몸의 학교가 보여주는 이런 이력은 특별하다. 몸의 학교가 창립 당시부터 교육, 연구, 창작, 감수성계발, 전파 등의 5대 활동분야를 제시하며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실험적, 혁신적, 탐구적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명확히 했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학교는 학교운영의 주요 지표가 되는 비전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콜롬비아 교육, 예술 분야의 개척자적 기관인 몸의 학교는 모든 사회경제적 계층의 청소년들이 예술교육, 연구 및 창작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1997년 창립 당시부터 몸의 학교는 탐구와 실험 과정을 거치면서 혁명적 교육 모델을 발전시켜왔다. 이 모델은 인간 몸을 통합적인 관심 대상으로 전환시켜왔으며 학생 개개인의 자유와 발전, 학업 수행, 사회생활, 평화 문화 정착 등의 영역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해왔다.
몸의 학교는 통합신체교육의 요람으로 콜롬비아에 혁신적인 교육모델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다. 이 교육 모델은 콜롬비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전통교육에 두루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몸의 학교는 미학적, 윤리적, 생물학적, 물리학적, 환경적 관점에서 몸을 파악하고 그 결과물이 다시 몸에 구현되는 것 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공헌할 철학과 방법론을 제공할 것이다.
현대 무용의 실험적 예술언어를 교육과정의 중추로 삼고 다양한 예술장르 교육과 신체훈련기법을 결합하여 몸의 학교는 막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며 까르따헤나, 콜롬비아, 세계에서 몸의 학교가 제공한 예술교육을 전파할 국제적인 수준의 예술가를 양성하고자 한다. 몸의 학교는 성원 상호간의 인간적인 신뢰와 다양한 재능에 대한 계발을 통해 유지되는 평화공존의 모델이다. (콜롬비아 연방문화부 ‘통합신체교육 센터 몸의 학교’ )
몸의 학교 비전은 장기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즉 몸의 학교가 지향하는 바가 간결하게 압축되어 있다.
첫째 몸의 학교는 혁신적 교육, 예술 활동을 통해 모든 계층의 청소년들의 통합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사회통합적 교육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둘째 몸의 학교의 통합신체교육을 “혁명적 교육 모델”로 의의를 부여하면서 학생개인의 자유와 발전, 학업수행, 사회생활, 평화문화 정착 등의 영역에서 이룬 사회적 성취를 언급하고 있다.
셋째 몸의 학교의 교육모델이 콜롬비아와 세계의 전통교육에 대해서 갖는 혁신적 성격을 강조하면서 그것은 인간의 몸에 대한 다차원적 관점을 통합적으로 제시하는 철학과 방법론에 기인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넷째 몸의 학교가 배출하는 예술가의 상을 “막대한 사회적 책임감을 느끼는 국제적인 수준의 교육자이자 예술가”라고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 공동체를 유기적인 공동체로 재탄생시키기 위해서 몸의 학교를 “성원 상호간의 신뢰와 다양한 재능계발로 유지되는 평화공존의 모델”로 정의하고 있다.
2) 몸의 학교 교육과정
몸의 학교 교육 과정은 콜롬비아 청소년과 일반 시민들에게 통합신체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창립목표에 따라 춤을 위한 교육과 춤을 통한 교육으로 크게 나누고 있다. 전자는 예술가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이며 후자는 예술적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몸의 학교의 성장 과정에서 초기에는 예술가 시민을 양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갈수록 예술적 시민 양성 과정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몸의 학교는 예술적 시민 양성 과정을 가리켜 “콜롬비아 교육에 대한 몸의 학교의 기여”라고 평가하며 몸의 학교의 고유한 사회적 역할로 이해하고 있다.
(1) 예술적 시민 양성 과정-춤을 통한 교육(Educación con la Danza)
‘통합신체교육’이란 몸의 학교 교육 철학은 특정한 예술 기법이나 사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 삶과 사회의 변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따라서 몸의 학교의 실험은 궁극적으로 일반 시민 다수의 삶과 사회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소수의 탁월한 예술가들을 배출하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바로 여기서 ‘춤을 통한 교육’의 문제의식이 출발한다.
춤을 통한 교육은 예술적 시민 양성 과정으로 까르따헤나의 극빈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감수성 계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과정이다.
2001년 난민 가정의 200명 아동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내 집, 내 몸 프로젝트”와 2008년 현재 까르따헤나의 교외 빈민가 전 지역에서 1200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행하고 있는 “間: 내 집, 내 몸 프로젝트”가 그 사례이다. 1년 교육기간 동안 진행되는 이 대규모 문화교육 사업은 몸의 학교의 혁신적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의 대중적인 적용 과정이다.
(2) 예술가 시민 양성 과정- 춤을 위한 교육(Educación para la Danza)
춤을 위한 교육은 예술가 시민을 본격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과정으로 예비-중급-고급과정으로 체계화된 몸의 학교의 교육과정에 의해 수행된다. 몸의 학교 무용단을 구성하고 있는 ‘실험파일럿 그룹’이 바로 이와 같은 체계적인 과정을 거쳤고 현재는 몸의 학교와 협정을 맺은 정규대학 예술학부에서 무용교육학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으며 ‘코파일럿 그룹’도 동일한 과정을 거쳐 현재 고급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각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 고급과정(Nivel Superior de Estudios)
2004년 실험파일럿 그룹을 전문적인 예술가로 양성하기 위해 3년 과정으로 개설되었다. 프랑스 앙제 국립현대무용학교와 콜롬비아 안띠오끼아 대학과의 협정으로 개설된 과정은 예술학부의 현대무용학사과정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이 과정은 학생들에게 레지던스 교류 등을 통해 국내외 저명한 안무가들과 훈련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한 이들은 무용수, 안무가, 교육가, 문화기획자, 예술기술자 등 공연예술분야의 다양한 영역에 종사할 수 있다. 현재 지원학생의 출신국적이 갈수록 다양화되고 있다. 콜롬비아 다른 지역의 학생들을 물론이고 카리브,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서서히 다양화하고 있다.
□ 중급과정(Bachillerato Artístico)
6학년~1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6년간 진행되는 과정으로 몸의 학교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추진하는 과정이다. 교육내용은 통합신체교육의 핵심축인 현대무용을 비롯한 무용장르, 다양한 예술장르, 신체훈련, 이론적 훈련 등으로 구성된다. 주 15시간의 수업시간이 배정되어 있는 이 과정은 정규학교의 방과후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까르따헤나 시교육부와 콜롬비아 연방 교육부의 정책적 재정적 후원으로 진행된다.
□ 예비과정(Semillero de Talentos)
5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1년간 진행되는 이 과정은 몸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예비과정이라 할 수 있다. 조기에 재능과 적성을 파악하기 위해 도입된 이 과정은 주 4.5시간의 수업시간이 배정되어 있으며 중급과정과 마찬가지로 정규학교의 방과후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이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재능, 흥미, 약속, 의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오디션을 통해서 중급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까르따헤나 시교육부의 재정지원과 참가의사가 있는 학교들과의 협정을 통해 이뤄진다.
몸의 학교의 교육 과정은 몸의 학교의 발전 속에서 서서히 체계를 갖추었다. 창설 초기 1997년 중급과정을 개설한 몸의 학교는 2001년에는 예비과정을, 2004년에는 고급과정을 개설하면서 교육과정의 틀을 완성했다. 교육과정의 체계화 과정은 몸의 학교가 방과후 학교로 출발해 독자적인 교육기관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초기에 몸의 학교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을 실험하는 방과후 학교로 인식되었고 실제 몸의 학교의 학생들도 일반학교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몸의 학교와 사립대학이 협정을 맺고 대안교육기관으로 정식으로 인가받는 등 몸의 학교의 교육 및 예술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몸의 학교는 명실상부한 독자적 교육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몸의 학교는 달라진 사회적 위상을 반영한 새로운 발전전략을 구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3) 몸의 학교 교육 방법론
몸의 학교는 통합신체교육이라는 교육 철학을 바탕으로 “혁신적 예술기반 교육”의 방법론을 꾸준히 실험해왔다. 2008년 까르따헤나 빈민지역 아동 1200명을 대상으로 수행되는 ‘間: 내 몸, 내 집 프로젝트’을 위해 몸의 학교는 세계은행에 <몸의 학교 ‘間: 내 몸, 내 집 사업’ 최종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여기에는 몸의 학교의 교육방법론이 소개되어 있다. 이 보고서에 실린 교육방법론은 지난 10년간 실험의 성과에 대한 종합적 평가를 거쳐 체계화한 것으로 몸의 학교 교육방법론의 최신판이라 볼 수 있다.
이 교육방법론은 몸의 학교의 혁신적 예술기반 교육의 구체적 실례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몸의 학교 판 통합교과과정으로서 ‘3대 방법론적 축과 7대 주제별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7대 주제별 모듈은 몸의 학교가 선정한 고유한 교육 주제들(과목이라 할 수 있다)을 보여주고 있으며, 3대 방법론적 축은 7대 주제 전체에 적용하는 교육방식을 의미한다. 각 주제들은 3대 방법론적 축과 만나 주제별모듈을 구성한다. 각 주제별 모듈은 몸의 학교 교육철학인 ‘통합신체교육’이라는 하나의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몸의 학교 교육 방법론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7개의 교육 주제 전체는 콜롬비아 아이들이 일상생활에 쉽게 접하는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콜롬비아 아이들은 기존 공교육이 가르쳐온 전통적인 교과목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콜롬비아가 앓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 가운데 아이들 주변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배운다.
둘째 각 주제별 모듈은 인간의 몸을 접근하는 특정한 학문, 특정한 예술장르, 특정한 신체 훈련의 세 쌍의 모듬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가령 제2주제별 모듈 개인 몸/사회 몸 모듈은 이 과정을 통해 시민으로서 형성되는 과정을 배우게 되는 데 이 모듈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자기 몸과 타자 몸의 관계,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배우는 신체훈련, 문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를 이해하는 예술언어, 각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과 권리와 가치관을 자신과 타인의 몸에 대한 존중이라는 신체관리 훈련을 통해 배우게 된다. 즉 제2주제별 모듈은 문학, 개인과 사회의 관계 및 개인의 정체성과 권리 및 가치관(전통적으로 사회, 윤리, 철학 과목의 주제), 대안적 신체훈련 기법 등이 결합되어 있다. 즉 학문과 예술, 신체훈련이 인간의 몸과 관련되어 있는 하나의 주제로 긴밀하게 통합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7개의 주제별 모듈은 각 주제별로 신체관리(지식과 학문), 예술언어(예술), 신체훈련(다양한 신체기술)의 통합을 추구하고 있다. 이 교육방법론은 인간의 몸이라는 테마를 중심으로 인류가 쌓아온 지식(학문)과 예술을 통합하고 이를 신체훈련을 통해 습득하게 하고자 하는 통합신체교육의 야심찬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 교육방법론은 궁극적인 목표는 “학생들 스스로가 세상을 다르게 접근하고 삶을 다르게 살 수 있는 법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요컨대 몸의 학교의 교육방법론은 콜롬비아의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찾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몸의 학교 ‘間: 내 몸, 내 집 사업’ 최종 보고서>에 실린 교육방법론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間: 내 몸, 내 집 프로젝트”의 교육방법론은 ‘몸의 학교’가 그간 수행해온 교육과정의 성과를 토대로 작성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교육방법론은 7가지 주제별 모듈에 3가지 방법론적 축을 적용한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본격적인 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이뤄지는 ‘감수성 깨우치기(despertar)’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과정이며 본격적인 예술표현 전에 자신의 창의성을 계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 가지 방법론적 축은 신체 훈련, 신체 관리, 예술언어를 의미한다. ‘신체훈련’은 본격적인 춤 수업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거기서부터 춤, 현대무용이 탄생한다. 이 세 가지 축을 적용하게 될 7가지 주제별 모듈은 인간 몸을 교육의 중심으로 삼아 구성된 것으로 해부학과 생리학, 시민형성, 폭력, 섹슈얼리티, 영양, 중독, 환경 등 아이들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주제들이다.
1. 몸의 내부/외부 모듈(해부학)
신체훈련-몸을 통해 표현하기, 창조하기, 자기 자신 및 타자와 소통하기
예술언어-조각, 건축 장르를 통해 예술사가 보여주는 인간 몸에 대해 이해하기
신체관리-해부학 및 생리학을 통해 몸 내부 풍경과 기능, 몸 내외부의 관계 배우기
2. 개인 몸/사회 몸 모듈(시민형성)
신체훈련-사회를 하나의 몸으로 간주하여 자기 몸과 타자의 몸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신체와 공간의 상호관계 이해하기
예술언어-문학을 통해 자기에서 타자(궁극적으론 모두)로 어떻게 관계를 확장해가는 지 배우기
신체관리-각 개인의 정체성, 권리, 가치관에 대해 배우기
3. 가족 몸/ 평화 몸 모듈 (폭력)
신체훈련-신체조작 연습을 통해 몸이 폭력을 변화시켜 평화를 만드는 방법을 이해하기
예술언어-음악과 타악 훈련을 통해 세기, 의도와 표현, 침묵과 청취, 두드리기와 공명하기, 충격, 메아리, 리듬과 강세 등을 배우기
신체관리-폭력의 여러 형태를 파악하기, 가족이 평화 건설에 기여하는 방법을 배우기
4. 출발지 몸/ 목적지 몸 모듈(성정체성)
신체훈련-접촉을 타인과 만나는 ‘교량’으로 이해하는 훈련, 인간의 몸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기
예술언어-영화를 통해 타자와 관계가 또한 자기와의 관계라는 것을 이해하기
신체관리-섹슈얼리티와 삶과의 관계, 보호와 자유의 관계, 행위와 결과의 관계, 자신의 몸 내부와 타자 몸 내부의 관계를 이해하기
5. 균형의 몸/건강한 몸 모듈(영양)
신체훈련-균형을 물리학적 운동법칙의 관계로 이해하기: 자극, 부유, 정적, 에너지, 힘, 유동성
예술언어-회화를 통해 예술사 속의 인간 몸을 배우고 대표적인 미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인간 몸의 다양한 상태를 배우고 자기 자신의 몸을 직접 그리기
신체관리-영양과 건강 사이의 균형을 이해하기
6. 면역력 있는 몸/자유로운 몸 모듈 (중독)
신체훈련-리듬과 황홀의 특성을 통해 그것들이 몸 상태 및 몸무게와 맺는 관계 등을 배우기.
예술언어-연극을 통해 중독현상과 관계있는 상상적 상황에서 살게 될 가능성으로 이해를 확장하기
신체관리-자기 몸을 관리하고 중독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해야 하는 이유를 배우기, 스스로 만족하는 데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우기.
7. 거주지 몸 모듈 (환경)
신체훈련-호흡과 리듬을 훈련하면서 몸과 환경의 관계 배우기
예술언어-사진과 비디오를 통해서 인간의 몸과 자연 환경, 학교 환경, 가정환경, 마을환경의 관계를 담아 보기.
신체관리-생태학이 인류에게 중요한 이유를 배우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우리는 위의 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고유한 감수성을 계발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꿀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을 스스로 개선하고 자기 삶과 일상적 경험의 진정한 책임자가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세상에 귀를 여는 법을 배우고 새롭게 사는 법을 배우기 바란다. 이 교육 방법론은 아이들 스스로가 세상을 다르게 접근하고 삶을 다르게 사는 법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 [몸의 학교 ‘間: 내 몸, 내 집 사업’ 최종보고서] 중에서)
4) 몸의 학교 운영
1997년 창립 이래 다양한 교육실험을 전개해온 몸의 학교는 2003년 그간 진행된 다양한 몸의 학교 운영을 점검하고 평가하면서 몸의 학교의 중장기 계획인 ‘몸의 학교 전략계획’을 수립하였다.
‘전략 계획’의 핵심은 몸의 학교의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새로운 협력 모델”을 설계하여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의 학교가 일방적으로 협력 모델을 제시하는 것으론 부족하며 그간 몸의 학교를 지원해온 콜롬비아 내외의 다양한 공공기관과 민간기관들이 직접 협력 모델의 설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몸의 학교 측은 새로운 협력모델이 “몸의 학교가 안정적인 운영재정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 것이며 동시에 몸의 학교가 이룬 성취들, 교육적 성과들이 지원기관들의 발전에 기여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 밝히고 있다.
또한 몸의 학교는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활동을 위해 2006년 대안교육기관으로 인가를 받았으며 몸의 학교의 독자 신축 교사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까르따헤나 시청이 부지를 제공하기로 약속해 고무되었다.
학사운영의 측면에서 몸의 학교는 5국 체제로 운영되어 왔다. 교육국, 창작국, 전파 및 감수성계발 국, 연구 및 자료수집국, 사무 및 재정국으로 구성되어 있다. 몸의 학교 측은 “5국 체제는 상호의존적이며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한다. 5국 체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몸의 학교는 “실험적, 혁신적, 연구적 성격의 교육기관”으로 탄생하였고 지금도 그 같은 성격을 더욱 심화 발전시키고자 하고 있다.
또한 2004년 꼼빠르따모스 꼰 꼴롬비아(Compartamos con Colombia) 재단은 몸의 학교에 대한 심층 연구 및 자문 서비스를 제공했다. 몸의 학교는 이와 같은 외부 전문기관의 컨설팅 서비스를 바탕으로 기관 운영을 점검하고 체계를 개편하는 일을 수행해왔다.
레스뜨레뽀 교장과 드리유방 교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몸의 학교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고백했다. 까르따헤나 교외에 까르따헤나 시청이 제공한 부지에 교사를 신축하고 학교를 이전하는 물리적인 변화 요인도 있는데다가 몸의 학교가 펼쳐온 실험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미래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을 맞기도 했다는 의미다.
최근 몸의 학교는 예술직업학교(Escuela de Oficio)에 대한 구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문화기획, 프로덕션, 무대기술, 의상, 조명 등의 예술관련 종사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를 만들려는 것이다. 드리유방 교장은 “예술교육을 받은 이들이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직업을 찾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예술직업학교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한다.
4. 몸의 학교 실험 교훈
콜롬비아 대안예술학교 몸의 학교 실험은 교육과 예술의 고유한 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힘을 사회적으로 적절하게 활용할 때 어떤 성과를 얻을 수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준다.
몸의 학교는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 콜롬비아가 앓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윤리적 위기에 대한 교육적 대응책으로 탄생하였다. 몸의 학교의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은 전통적 공교육은 콜롬비아의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국가적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몸의 학교 창립자들은 콜롬비아의 공교육 제도 자체가 내전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는 불평등과 빈곤, 차별을 해결하기는커녕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과반수에 육박하는 콜롬비아 아이들이 공교육제도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며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공교육학교들은 형편없는 교육을 제공하는 반면에 귀족사립학교에서는 부자들의 자식들을 위한 별천지 세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콜롬비아의 불평등과 빈곤, 차별을 해결해나갈 새로운 주체들을 탄생시킬 교육은 어디에서 비롯될 것인가? 바로 거기에서 몸의 학교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첫째 몸의 학교는 교육의 고유한 역할이 바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콜롬비아의 빈민아이들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근본적으로 세상과 삶을 다르게 보고 학생들 스스로가 새로운 삶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을 몸의 학교는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공교육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은 그 유효성을 상실하고 만다. 콜롬비아 아이들의 삶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서 새로운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이 태어나야 한다. 거기서 ‘통합신체교육’이라는 교육철학과 ‘7개의 주제별 모듈과 세 가지 방법론적 축’이라는 통합교과과정이 탄생하였다.
이를 통해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 아이들이 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를 확장해왔다. 그리하여 폭력조직의 일원이 되거나 그 피해자의 일원으로 존재하는 양자택일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는 데 기여하고 있다.
둘째 몸의 학교는 예술이 갖는 사회적, 교육적 힘에 주목했고 그 힘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통적인 공교육의 ‘악세사리’로 존재해온 예술교육의 지위를 전통교육을 혁신하는 핵심적인 동력으로 바꾸어냈다. “예술이 공동체 문제를 직접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공동체 성원 모두가 그 문제를 민감한 주제로 여기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몸의 학교의 신념은 왜 몸의 학교가 예술가 시민 양성 못지 않게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적 시민 양성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지 이해하게 한다.
몸의 학교는 그동안 예술을 중심으로 인류가 쌓아온 학문과 다양한 신체기술을 통합하여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레스뜨레뽀 씨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인간의 몸을 중심주제로 삼아 예술 장르, 인문과학은 물론이고 수학,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과 같은 전통적인 자연과학을 통합할 상상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몸의 학교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셋째 몸의 학교는 교육과 예술 활동이 궁극적으로 공동체 발전과 공동체의 구성원 사이의 통합과 연대에 기여해야 한다는 원칙을 환기시켜주었다.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 아이들의 실질적 다수를 이루고 있는 빈민아동들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의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자 한다. 또한 몸의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계층과 인종이 서로 다른 아이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공동체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5. <사회문화정책 제안>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를 위하여
현실
한국 사회의 주요 문제들은 한국 공교육 현장에 직접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 공교육 제도는 사회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전통적인 역할을 급속도로 잃어가고 있으며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빈곤, 차별을 재생산하고 있다. 어느새 공교육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은 학교 공교육의 파행을 불러오고 있으며 교육 기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통계청의 2007년 <사교육 실태 조사>는 중학생의 74.6%, 고등학생의 55.5%만이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교육참가율은 가구별 소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소득 하위 가구 다수 자녀들이 사교육에서 배제되어 결국 공교육 내의 경쟁에서도 도태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교육은커녕 공교육에서도 방치되고 배제되는 계층도 늘어나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 가정, 새터민 가정, 외국인 근로자 가정 자녀들은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원희목 의원실의 발표에 따르면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중학교 취학률은 39.7%, 고등학교 취학률 69.6%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게다가 한국의 중고등학교 과정의 정규 예술학교는 오래전부터 사교육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소수의 엘리트 코스로 변질되었고 일반 학교의 예술 교육은 입시교육이 요구하는 지식 주입식 교육으로 인해 ‘악세사리 교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한국에는 다양한 유형의 대안학교들이 등장해 혁신적인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실험해왔다. 현재 전일제 대안학교의 수는 130개를 넘어설 정도로 급성장했다. 정부도 대안학교 관련법을 제정하여 정부 인가를 통한 학력 인정과 재정 지원의 길을 열기는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정한 까다로운 기준에 맞춰 인가를 받은 대안학교는 현재까지는 한 곳에 불과한 형편이다.
하지만 대안학교의 한계도 명백하다. 정부 지원이 없는 비인가 대안학교에 입학할 때 내는 기부금, 예탁금은 평균 300~400만원에 이르고 수업료도 매달 30만원에 이른다. 사교육에서 배제된 저소득층 가구의 자녀들, 다문화가정과 새터민 가정과 같은 특수한 가정의 자녀들에겐 대안교육이 여전히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비전
한국 교육 현실에 적절한 구체적인 대안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콜롬비아와 한국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콜롬비아는 국가형성 이래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교육 제도가 제대로 정착된 적이 없으며 사회이동의 기제로 제대로 작동한 적도 없다. 그나마 구축되어 있는 공교육 제도는 현저한 사회적 불평등을 직접 반영하여 빈민학교(국공립학교)/귀족학교(주로 사립학교)로 분열되어 있는 형편이다.
반면 한국의 공교육 제도는 그간 많은 문제를 노정해왔지만 사회이동의 기제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공교육 제도는 사교육과 대안학교의 도전과 내부의 문제들로 인해 붕괴 위기에 처해 있다.
콜롬비아 몸의 학교는 과반수에 가까운 아이들이 공교육 제도에서 소외되어 있는 콜롬비아 현실에서 탄생했다.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의 역사적 경험이 부재한 콜롬비아에서 빈곤과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어왔고 이 경제적 불평등은 다시 교육 불평등을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콜롬비아 몸의 학교의 실험을 창조적으로 흡수하여 한국적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국적’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사교육에서 배제되고 공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대안학교마저 접근하기 힘든 청소년 계층에게 교육의 동등한 기회를 제공할 방법은 무엇일까? 한국 사회의 하층 청소년들에게 그들을 사교육으로 내몰고 있는 전통적인 공교육이 아닌 혁신적인 대안교육을 제공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장 열악한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문턱이 높은 한국 대안학교의 실험과 명백히 구분되는 새로운 유형의 대안학교 실험은 가능할까?
여기서 한국의 서민 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의 상상력이 태어났다.
첫째 이 학교는 전통적인 공교육을 혁신하고 기존 대안교육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입시위주의 지식교육의 한계를 뛰어 넘고 사회와 삶의 현실에서 유리된 대안교육의 한계도 뛰어넘고자 한다. 한국적 현실에서 출발하고 한국적 현실의 변화를 촉진할 혁신적인 교육철학을 정립할 것이다.
둘째 이 학교는 기존의 정규예술학교와 전통적인 예술교육을 혁신시킬 것이다. 예술의 교육적 사회적 힘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교육과정과 교육방법론을 설계할 것이다.
셋째 이 학교는 한국 사회의 최하층 청소년들을 교육과 예술의 진정한 주역으로 성장시켜갈 것이다. 교육과 예술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교육과 예술의 힘을 사회적 교육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적극적인 힘으로 바꾸어나갈 것이다.
넷째 이 학교는 수도권과 지방의 문화적으로 가장 낙후한 지역을 혁신적인 예술교육의 요람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한국형 대안예술학교가 양성할 예술가 시민과 예술적 시민들은 공동체의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후속 조치
2009년 초부터 사회공공연구소는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과 함께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의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고자 한다. 이 대안예술학교는 문화와 교육의 공공성의 구체적 모델이며 예술노동자들이 설립의 주체가 되어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들과 손을 잡는 새로운 노동자 연대운동의 사례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 청소년의 가장 취약한 계층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예술기반교육의 실례가 될 것이며 진보진영의 오랜 염원인 무상평등교육의 구체적인 상을 제공할 것이다.
(1)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의 공론화 1단계
첫째 사회공공연구소는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의 예술노동자들과 함께 가칭 “문화공공성 포럼”이라는 정책포럼을 개최하고자 한다. 국내외의 문화(복지) 정책의 사례를 분석하고 탈신자유주의 시대를 예비하는 진보적 문화정책을 논의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유럽(독일)과 라틴아메리카(브라질), 한국(김대중-노무현 정부/이명박정부)의 문화(복지)정책을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어갈 것이다.
둘째 사회공공연구소는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의 예술노동자들과 함께 문화공공성의 구체적인 모델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역사적인 일을 개시하고자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는 문화공공성을 구현할 하나의 구체적인 모델이다.
(2) ‘서민청소년을 위한 대안예술학교’의 공론화 2단계
첫째 서민 대안예술학교는 국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혁신적인 예술교육의 성과를 흡수하고자 한다. 하자센터와 같은 혁신적인 청소년 문화센터의 경험은 물론이고 다양한 예술 교육 활동의 경험을 흡수하여 혁신적인 교육철학과 교육방법론을 수립하는데 활용할 것이다.
둘째 서민 대안예술학교는 공공부문의 예술노동자들이 주도하여 예술노동자들의 연대, 예술노동자와 교육노동자들의 연대, 노동자와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건설할 것이다.
셋째 서민 대안예술학교는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소외된 청소년 계층과 사회문화적으로 가장 소외된 지방을 주목한다. 이들 계층과 지역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다양한 문화운동가들, 교육운동가들과 연대하여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학교를 만들어날 것이다.
<부록>
알바로 레스뜨레뽀, 마리 프랑스 드리유방
몸의 학교 공동교장 인터뷰
때: 2008년 10월 22일 6시~8시
곳: 안산 태평양 관광호텔
몸의 학교 무용단은 10월 18일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라는 작품으로 참가하여 서울 예술의 전당 무대에 올랐다. 안산 예술의 전당이 주최한 라틴아메리카 연극제에 [또 다른 사도]라는 작품으로 참가했고 24일 안산 시민들과 만났다. 10월 21일과 22일 이틀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안산 대안학교 ‘들꽃 피는 학교’ 중고등학생 30명과 워크샵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인터뷰는 워크샵 행사가 끝난 뒤 ‘몸의 학교’ 무용단이 머물고 있던 호텔 1층 카페에서 이뤄졌다.
질문: 안산 청소년들과 워크삽 행사는 어떠했는가?
알바로
시간적인 제약으로 이틀에 걸쳐 3시간씩 총 6시간에 불과했다.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드리유방
그 아이들이 예술이 뭔지 알겠는가. 춤이 뭔지 알겠는가. 그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아주 새로웠을 것이다.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의 시선 앞에 나서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그러다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반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면서 자신을 표현하지를 못하던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질문: 예술가로서 모국 콜롬비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알바로
콜롬비아라는 국가의 탄생 자체가 아주 복잡한 과정의 산물이었다. 아주 많은 고통이 담겨 있는 탄생이었다. 국가 형성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형성되었다.
이 나라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 엄청난 힘들의 충돌이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도 그런 특징이 있겠지만 콜롬비아는 그 같은 특징들이 얼키고 설켰다. 이 나라의 위치가 중미와 남미의 통로에 위치한다. ‘아메리카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복기를 거쳐 식민지 시대에 끄리오요(스페인 후손이지만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계층)층이 등장했다. 이들은 스페인 정복자들보다 더 사악한 집단이었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나쁜 면들은 모두 지니고 있으면서 그들보다 더욱 악랄하게 권력을 활용했다.
드리유방
콜롬비아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식민지 시대를 마감하고 독립된 나라들의 지배층은 과거 식민지 지배층을 모방하면서 똑같이 행세했다. 즉 탈식민지의 역사적 경험이 부재했다.
알바로
콜롬비아는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나라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를 ‘눈 먼 국가’라 부르곤 한다. 자신의 힘, 자신의 잠재력,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나라. 그래서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나라. 그 파괴의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라. 나는 이 나라가 힘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콜롬비아는 카오스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자기파괴적 경향으로 인해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질문: 이런 현실에서 콜롬비아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알바로
바로 이런 콜롬비아를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나는 자식이 없다. 하지만 자식이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이 아이들이 이 나라의 온갖 문제를 연장시키거나 해결하거나 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드리유방
청소년기의 일반적인 특징이 있다. 그것은 전 세계 모든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다. 바로 거기에 콜롬비아의 내부 문제가 겹쳐 있다. 세계 곳곳에 폭력은 존재한다. 하지만 콜롬비아에서 폭력이 더욱 증폭되어 왔다. 콜롬비아 내부 위기가 폭력과 빈곤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고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알바로
삶의 성스러운 가치가 파괴되고 있다. 아이들 청소년에 대한 강도 높은 폭력이 행사되고 있다. 방치, 빈곤, 기회 부족, 질 낮은 교육, 무지로 인한 가족 내 폭력 등. 아이들은 자신의 권리를 모르고 자신의 존엄성에 대해 자각하지 못한다. 그 결과 제대로 성장하지도 제대로 삶을 영위하지도 제대로 발전하지도 못한다.
질문: 콜롬비아의 인종 차별 문제는 어떠한가?
드리유방
콜롬비아 도시들에는 노예제도의 유산이 여전히 살아 있다.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노예들이 이 나라에 도착했다. 아프리카계 콜롬비아 사람들은 오늘날 가장 가난한 계층을 이루고 있다. 인종주의는 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사회를 분열시킨다.
알바로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주는 태평양의 초꼬(Choco)주로 그곳은 ‘흑인들의 게토’에 다름 아니다. 콜롬비아는 문화적, 인종적,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지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한다. 이것은 아이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드리유방
자기 권리를 향유하지 못하고 자각하지도 못할 때 스스로의 인생에서 아무런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 삶의 발전, 집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들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타인의 삶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절실하고 이를 통해 각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알바로
콜롬비아 아이들은 성장기를 빼앗겼다. 이 아이들이 유아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권리가 필요하다. 아이들을 홀대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질문: 두 분 다 예술가들이다. 교육자의 길은 예술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드리유방
콜롬비아의 아이들은 버려진 아이들이다. 거리에 버려졌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가제도에 의해 버려졌다. ‘유년기를 갖지 못한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가 버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예술가로서 내 고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술가의 길을 버리고 예술교육자의 길로 나섰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 활동이 나의 예술 활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교육자가 되기 위해 예술 활동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나는 예술가가 되지 않은 채 예술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난 더 예술적인 생애를 살기 시작했다.
알바로
교육이 바로 하나의 예술이다. 예술가 양성이 바로 하나의 예술적 노동이다. 교육은 조각가의 노동과 유사하며 예술교육은 예술가를 조각하는 것이다. 예술가는 창조자들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창조자들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산파들이다. 예술가 산모들이 예술작품을 잘 낳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나는 늘 사회적 소명을 느끼곤 했다. 청년시절 거리의 아이들과 연극을 하면서 연극이 훌륭한 교육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의 역사와 고통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같은 경험이 현대무용으로 날 이끌었다.
현대무용가가 되어 외국에서 활동하다가 콜롬비아에 돌아와 현대무용가를 양성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때 이 프로젝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충분히 깨닫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무용을 콜롬비아에 뿌리내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부모의 고향 까르따헤나로 가겠다고 결정하면서 나는 그곳에서 나의 뿌리를 만나게 되었다. 많이 접촉하지 않았던 사회적 계층과 만났다. 나는 그들과 완전히 다른 가정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내가 까르따네하에서 만난 새로운 계층은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 계층을 발견하고 소외된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것(civilizar)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계층은 눈에 보이지 않은 이들이었고 무시당해온 아이들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것 자체는 하나의 정치적 행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프로젝트는 빈민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 전체를 향해 내 놓은 제안이다. 인종과 계층을 불문하고 모두 통합하여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콜롬비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인종과 계층의 아이들 모두의 몸의 감수성을 계발하는 것이 우리의 교육목표이다.
(콜롬비아의 교육제도내의 불평등은 심각하다. 계층과 인종에 따라 공교육의 분리가 알게 모르게 이뤄진다)
우리는 소유가 아니라 존재에 착목한 프로젝트이다. 소유가 부의 원천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유함의 진정한 원천이다.
질문: 알바로 선생님의 가정환경은 어떠했는가?
알바로
나는 까르따헤나 중상층의 가정에서 태어나 수도 보고따로 이주했다. 상류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으론 윤택했다. 아버지는 독학으로 공부했고 상업으로 자수성가했다. 예술적 감수성도 풍부한 사람이었다.
나는 전직 대통령의 자식, 전직 각료의 자식들이 공부하는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난 그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또한 콜롬비아의 또 다른 세상, 아주 커다란 현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질문: 드리유방 선생님이 콜롬비아 초대를 수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콜롬비아의 경험이 선생님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드리유방
알바로가 콜롬비아 현대무용을 발전시키고자 수도 보고타에 현대무용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협력을 요청했다. 프랑스 외교부 문화국은 프랑스 앙제 국립현대무용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던 나를 콜롬비아에 파견했다. 일종의 외교적인 목적의 공식적인 방문이었고 예술교육가로서 직업적인 관심의 방문이었다.
나는 그 전에 콜롬비아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보고타에 도착한 나는 유럽에서 이 나라를 본 것과 아주 다른 현실을 발견했다. 이 나라의 예술가들을 만났고 청년들과 함께 일하면서 이 나라엔 내가 모르던 전통이 살아 있고 예술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는 여전히 양국의 문화교류 및 문화협력을 통해 전문무용수를 양성한다는 목적에 충실했다.
알바로가 까르따헤나행의 포부를 밝혔을 즈음엔 이미 나는 콜롬비아의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알바로가 까르따헤나의 일과 관련해 자문을 요청했다. 나는 까르따헤나에서 알바로가 추진하고자 하는 일이 가져올 사회적 충격과 힘을 알게 되었다.
까르따헤나 아이들을 가르칠 계획을 세우면서 나는 근심거리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예술교육에 종사할 때 느낀 점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아주 더디고 더딘 과정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한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프랑스에서 5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한 일을 콜롬비아에서는 1년 만에 달성했다. 아이들의 발전 속도는 놀라웠다. 내 이 발언이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다. 콜롬비아 아이들은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다. 기회가 주어지자 아이들은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 노력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콜롬비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 삶의 변화는 분석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은 대체로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나름대로의 견해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회적 조건으로 인해 사회에 대해 완전히 잘못된 관점을 갖는 경우가 많다. 많은 예술가들이 세상의 바깥에, 사회 현실의 바깥에 거하고 있다.
나는 현실을 느닷없이 충격적인 방법으로 발견했다. 나는 사회 속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콜롬비아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가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살아가는 법도 바뀌기 시작했다.(콜롬비아와 프랑스를 오가면서 교육자로 일하고 있다)
교육에서 예술적 감수성 교육은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 모든 이들이 그렇다고 말하기는 한다. 하지만 대체로 실천하지 않거나 혹은 실천하더라도 잘못 실천하고 있다.
교육에서 여전히 예술은 첨가물로 간주되고 있다. 수학, 언어, 문법, 과학 등의 일반과목과 달리 예술의 하나의 사치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적 감수성 교육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질문: 드리유방 선생님을 초청한 이유는 무엇인가?
알바로
현대무용학교를 세우려 했을 때 난 교육자의 경험이 없었다. 예술교육과 관련한 여러 가지 경험들을 듣고자 했다.
나는 프랑스 현대무용에 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예술교육 경험이 풍부한 사람의 지원을 받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외국과의 문화적 대화에 늘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 프로젝트에 외부의 시각을 반영하고 싶었다. 내 경험으론 외부의 시각은 늘 나 자신을 새롭게 접근하는 데 유용했다. 한국인 무용가 조규현 씨를 통해 내 속의 동양적인 면을 발견한 경험이 있다.
따라서 나는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가 외부의 시선의 도움을 받는 국제적인 프로젝트, 보편적인 프로젝트이기를 바랐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프로젝트는 성공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프로젝트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문화 간의 국제적인 대화이다. 물론 아무하고 이런 일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콜롬비아 사람들과 문화를 존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드리유방은 처음에 ‘양국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드리유방
나는 알바로에게 자문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알바로
또한 드리유방은 앙제 현대무용학교 교장으로 콜롬비아 예술가들을 프랑스에 초대하기도 했다. 문화적 상호 기여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드리유방
‘좀 더 발전한 나라들(avanzados)’. 다른 표현은 없을까요? 그 나라들을 좀 더 문명화된 나라들(civilizados)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좀 더 조직된(organizados) 나라들’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하여튼 이 나라들은 콜롬비아를 도와야 한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자신들이 어떤 도움이 필요한 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 나라들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데 프랑스 예술가로서 내가 콜롬비아에 예술적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잠재력을 계발하면 유럽과 미국과 같은 나라들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프리카도 예술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 대륙의 사정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현재는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요컨대 내게도 라틴아메리카와의 만남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알바로와의 만남은 콜롬비아의 발전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우리를 살찌우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의 작업은 상호 교류이며 모든 교류가 그렇듯이 주고 받는 것이다. 모든 것을 주고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받고 있는 것이다.
질문: 몸의 학교의 요람 까르따헤나는 어떤 도시인가?
알바로
까르따헤나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항구도시로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도시의 현실은 아주 거대하고 복잡하다. 이 도시 인구의 70%는 빈곤선 이하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갈수록 가시적인 것이 되고 있다. 이 도시는 아주 복잡하고 잔인한 도시이다.
까르따헤나에는 마리 프랑스의 말처럼 ‘혹독한 유산’이 존재한다. 이곳은 콜롬비아의 제1항구로서 흑인노예들이 이곳을 통해 유입되었다. 이 도시가 인류가 저지른 가장 큰 죄악 가운데 하나인 흑인노예무역의 거점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책임 지려는 노력이 없다.
그래서 이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노예제도는 없지만 여전히 노예제도의 유산은 끈질기게 남아 있다. 흑인들은 여전히 이 나라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다. 흑인들은 이 나라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소외된 채 삶을 영위한다. 전쟁보다 포스트전쟁시대가 더 혹독하듯이 포스트노예제도 시대가 그들에겐 더욱 가혹하다.
까르따헤나의 인종 분리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보다 더 심각하다고 난 주장해왔다. 남아공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까르따헤나에는 은폐된 채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아공이 공인된 인종주의라면 까르따헤나는 은폐된 인종주의라 할 만하다) 인종문제가 있네 없네 시비가 붙지만 저쪽에 백인이 살고 이쪽엔 흑인만 거주한다. 흑인들의 거주지역이 따로 존재한다.
요즘엔 문제가 한결 복잡해지고 있다. 수 십 년 내전으로 인한 난민 문제가 심각한데 관광도시 까르따헤나에서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도시 외곽에 빈곤의 띠를 이루고 빈민주거지역이 형성되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리 심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갈수록 가정폭력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 길거리에 까르따헤나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다. 과거에는 없던 일이었다.
드리유방
아동 학대(폭력)는 물론이고 가정 내 성폭력 문제도 대표적인 가정폭력의 사례이다. 3년 전부터 나는 꾸준히 까르따헤나 지역신문을 보고 있다. 남편이나 애인에 의해 여성들이 살해되었다는 뉴스가 지속적으로 실리고 있다. 알콜, 주먹(폭력), 무지 등이 가정폭력의 요인들이다. 이 도시에서 폭력은 일상화되어 있다.
알바로
폭력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 도시에서는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소위 ‘민주적 치안’이니 ‘평화로의 이행’이라 부르는 최근의 정치 과정에 대해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는 그 무엇도 평화로워지지 않았다. 그저 무장 국가, ‘무장 평화’가 있을 뿐이다. 무장한 평화는 평화가 아니다.
즉 정치권은 폭력, 빈곤, 사회 몰락의 근본 원인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하기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모두 ‘정치적 신기루’에 불과하다. ‘위장된 평화’이기 때문이다.
드리유방
까르따헤나는 ‘콜롬비아의 보석’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 도시에는 두 개의 세상이 존재한다. 빈자와 부자의 심각한 불평등은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아도 금세 느낄 수 있다. 그 차이는 너무나 가시적이다. 빈자와 부자는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 지리적, 심리적 인접성이 도시를 더욱 폭력적으로 만든다. 최상과 최악이 공존하면서 마주 보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사회적 균열 때문에 도시의 발전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보석, 돈, 권력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들에게 절대로 자신들이 가진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이 도시의 아이들에게 지식과 자유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자유는 권력과 충돌하게 된다. 우리 노력은 바로 그런 자유를 위한 것이다. 우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우리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 노력이 하나의 위험으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생각엔 도시 자체가 위험이기 때문이다.
75%의 빈민, 75만 명이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알바로
맞다.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드리유방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누구도 이와 같은 일의 발생 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알바로는 까르따헤나를 가르시아 마르께스 소설의 에렌디라와 같다고 썼다.
알바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소설 [순진한 에렌디라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La increible y triste historia de la Candida Erendira y su abuela desalmada) 이야기와 이 도시를 비교해보았다. 주인공 에렌디라는 할머니의 강요로 인해 몸을 팔아야 하는데 오늘날 까르따헤나도 마찬가지다. 까르따헤나는 자식들에게 매춘을 시키는 ‘에렌디라 도시’에 불과하다. 이건 비극이다.
콜롬비아와 세상의 부자들은 까르따헤나로 몰려들어 빈곤과 비참의 한복판에서 유흥의 시간을 보낸다. 명백한 대조의 도시인 것이다.
드리유방
그렇다. 빈곤의 한복판에서. 그 빈곤은 불과 10킬로도 떨어져 있지 않다. 빈곤의 한복판에 부유함이 있다.
(몸의 학교 매니저 알렉스는 콜롬비아의 가부장주의에 대해 말했다. 춤추는 남자들은 대체로 동성애자로 간주되는 콜롬비아의 문화 풍토에서 몸의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사회의 보수주의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질문: 레스뜨레뽀와 드리유방 씨는 공동교장으로 알고 있다. 학교 운영에 있어서 학생들의 참여는 이뤄지고 있는가?
알바로 레스뜨레뽀
아주 좋은 질문이다. 지금 우리가 그 단계에 이르렀다. 11년간 우리와 함께 훈련해 온 이들이 있다. 그들은 대학과정까지 마쳤고 적절한 나이가 되었으며 학교운영을 책임질 잠재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예술적, 교육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고 개개인 모두 학교운영의 책임자가 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몸의 학교’를 우리의 소유물로 생각한 적도 없고 우리의 유산으로 간주한 적도 없다. 이 학교는 바로 그들의 것이다. 이 학교는 하나의 공동체이며 이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바로 ‘몸의 학교’의 미래이며 그들이 바로 ‘몸의 학교’의 미래 책임자들이다.
(인터뷰를 하다보면 던진 질문과 핀트가 맞지 않는 답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런데 그 답이 월척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 대목이 바로 그랬다. 나는 일상적 학교 운영에 있어 학생 참여에 대해 질문했는데 알바로 교장은 학생들이 학교 운영의 실질적인 책임자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답을 주었다)
현재 ‘몸의 학교’는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다. 까르따헤나 시정부의 지원으로 교외에 4헥타르의 땅을 기증받았다.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세울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몸의 학교’가 새 건물로 이주하는 일은 새로운 교사(校舍)가 생겼다는 의미만을 갖는 게 아니다. ‘몸의 학교’가 새로운 조건에 맞는 새로운 운영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드리유방
현재의 조건은 학교 운영을 위한 새로운 팀을 요구하고 있다. 넓은 시야로 좀 더 능률적으로 일을 수행할 사람들을 요구하고 있다. 11년간 우리와 함께 해 온 이들은 그들의 개성과 각 자의 전망 속에서 우리와 함께 학교를 책임질 주역들이다. 그들의 경험이 충분하지는 않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이 학교운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드리유방
학생들이 학교운영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기를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그들과 대화하고 있다.
알바로
우리가 속하는 개척자 세대 즉 제1세대는 실험 세대였다. 모든 실험에 성공과 실패가 있듯이 우리의 경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했으며 미숙과 완숙 사이에서 시행착오를 겪어 왔다. 지금 우리는 학교운영의 방식을 쇄신하려고 하고 있다.
가령 학교 운영 초기 우리 태도는 가부장의 태도를 취한 게 아닌가 한다.
드리유방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
알바로
그렇다. 원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 교육의 몰락, 사회적 불의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모든 것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자족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생각한다. 가령 인도의 ‘아쉬람’과 같은 마을을 생각해보곤 한다. 그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은 봉사의 정신을 갖고 있다. 그곳에 속하기 위해서는...... .
질문자
공동체에 공헌해야 한다.?
알바로
그렇다. 그 공동체에 소속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며 그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두가 공동체를 가꾸어야 한다. 모두 일을 해야 한다. 그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즉 아이들은 공동체의 수혜자들이 아니라 아이들은........
드리유방
주인(actor)이여야 한다.
알바로
맞다. 바로 아이들은 학교라는 공동체의 주인들이다. 아이들 모두가 동일한 수준의 소속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몸의 학교’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학교가 그들의 것이 되기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질문: 몸의 학교 교육과정의 고유한 특징은 무엇인가?
드리유방
으음, 간단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알바로
춤은 나와 들뢰뱅이 맡아 전문적인 훈련을 해왔다. 들뢰뱅은 프랑스와 콜롬비아를 오가며 작업해왔다.
우리는 먼저 '조종사(piloto)' 그룹을 형성했다.(이들은 강도 높은 오디션 과정으로 선발된 소수의 영재들이 아니다. 1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예술적 훈련 과정을 이수하면서 예술가로 걸러진 이들이다)
이들은 강도 높은 예술적 감수성 훈련을 통해 선발되는 과정을 밟았다. 처음엔 480명이 출발했는데 서서히 훈련 강도를 높여 가며 90명, 30명, 22명, 18명, 10명(9명)으로 변하는 과정을 겪었다. 12년의 자연적인 선택 과정을 거치면서 소수정예그룹이 형성된 것이다.
이들 선배그룹 다음으로 ‘부조종사(copiloto)’ 그룹을 형성해 약 7년간 감수성 훈련을 진행해왔다. 현재 20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을 한국방송이 취재했다. 이 그룹은 까르따헤나에서 최악의 가정 및 사회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몸의 학교’가 본격적으로 사회적 소명을 갖고 추진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극빈층을 지원하는 국제 프로그램의 후원을 통해 훈련해왔다.
드리유방
그밖에 우리는 ‘예술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두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반 학교 두 곳과 협정을 맺어 진행한다. 약 70명의 아이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일반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술대안교육을 제공하는 프로젝트이다)
질문: 교직원 구성은 어떠한가?
알바로
몸의 학교는 16명의 직원들이 학사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드리유방
교원들 가운데는 조형예술, 연극, 요가, 영어, 문학 등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있다.
알바로
세계은행에 제출한 문서에는 몸의 학교 관련 통계가 두루 담겨 있다. 그간 ‘몸의 학교’는 콜롬비아 내외의 다양한 기관들의 후원을 받아왔다. 현재 우리는 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학교재정마련을 위해 외부와 더욱 긴밀한 관계를 갖고자 한다.
질문: 몸의 학교가 양성하고자 하는 예술가 상은 무엇인가?
드리유방
한 명의 예술가, 춤꾼은 ‘움직임’으로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가는 예술은 물론이고 철학, 문학 등 광범위한 인문학적 성과를 흡수하며 지적으로 성장한다. 춤 교육은 예술가 양성 교육의 한 분야에 불과한 것이다.
질문: 철학도 있는가?
드리유방
철학 선생도 필요하다. 현재는 알바로가 명상과 성찰의 시간을 진행하고 있다.
알바로
학생들에게 춤추는 법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삶과 자신의 환경을 성찰해야 한다. 예술가는 어떻게 자신의 삶을 개선하고 자신의 속한 가족과 사회에 기여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예술가에게 더 중요한 것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삶이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일상적인 삶이다. 예술가는 삶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무대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드리유방
무대 위도 무대 밖도 중요하다.
질문: 예술가도 한 명의 시민이라는 의미인가?
알바로
물론이다. 무대만이 아니라 삶 자체도 아주 중요하다. 이 양자 사이에 단절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술작품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니 예술 작품은 삶의 현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질문: 몸의 학교의 실험을 더욱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들었다.
알바로
현재 우리가 ‘몸의 학교’를 여러 장르를 포괄하는 복잡장르 학교로 확대 개편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고타에서 국립현대무용학교의 교장으로 일할 때 그 주변에는 다른 예술학교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영감을 얻었는데 ‘몸’을 예술교육의 중심으로 삼아 음악가, 미술가, 연극인, 무용수를 양성하는 통합교육과정에 기반한 다쟝르학교를 상상한 적이 있다. 예술의 시작이자 끝이고, 예술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인간의 몸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말이다. 이것은 좀 요원한 일이다.
현재 우리는 예술직업학교(Escuela de Oficio)를 만들 계획이다. 까르따헤나는 관광도시로 다채로운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그 문화행사들의 수준을 향상시켜갈 인력을 양성하려는 것이다. 문화기획, 프로덕션, 무대기술, 의상, 조명 등을 다룰 예술관련 종사자들을 양성하기 위한 학교이다.
드리유방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 가운데 몇몇은 세계적인 춤꾼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예술적 감수성 훈련을 받았다. 현재까지 까르따헤나는 물론이고 콜롬비아에는 직업적 예술기획자 혹은 예술 기술자 등을 양성하는 기관이 없다.
우리가 예술직업학교를 구상하게 된 것은 예술교육을 받은 이들이 각기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직업을 찾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다.
까르따헤나에서는 국제회의와 축제가 자주 개최된다.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것이다.
예술적 감수성 훈련을 받은 이들이 예술관련 일에 종사하게 되면 문화 활동의 전반적인 수준도 향상될 것이다.
알바로
우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공연했다. 한국 정부가 정치적 의지를 갖고 추진한 국가적인 프로젝트로서 전통, 현대, 실험 예술가들을 두루 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주 흥미로웠다.
몸의 학교는 주요 사립대학교 중의 하나와 협정을 맺었다. 예술 학부를 가진 대학교와 협정을 맺어 우리 학교에서 초등 및 중등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그곳에서 더욱 전문적 훈련을 받기를 바란다. ‘몸의 학교’ 출신 학생들이 춤뿐만 아니라 연극 혹은 미술 등의 다른 예술 장르에 종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질문: 콜롬비아 교육제도는 몸의 학교 실험을 수용하고 있는가?
알바로
콜롬비아 교육법은 커리큘럼의 다양성을 보장한다.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드리유방
프랑스는 커리큘럼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못한다. 획일화된 공교육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알바로
반면 콜롬비아는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다. 농업, 어업, 산업 지역 등 학교 소재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는 교육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모든 학교가 가르쳐야 할 기본적인 내용만 반영한다면 나머지는 학교마다 특성 있게 교육할 수 있다.
가령 ‘몸의 학교’가 혁신적 예술 교육과정을 도입할 수 있다. 예술을 매개로 수학, 기하학, 물리학을 가르치는 혁신적인 교육을 진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머리는 지성의 원천이지만 몸은 직관과 예술, 스포츠의 원천이다. 즉 학문과 예술의 원천은 우리의 몸이고 우리의 몸에서 학문과 예술은 통합된다.
질문: 한국에도 공교육이 획일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공교육제도의 문제로 인해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등장하고 있다.
알바로
기존 학교의 실패로 인해 그런 학교들이 생기게 된다.
질문
아직 국가가 재정적으로 지원하지는 못하고 있다. 대체로 중산층 가정 자녀들이 다닌다.
알바로
‘들꽃 피는 학교’ 아이들도 중산층인가요?
질문자: 대체로 그럴 것이다.
드리유방
나는 사립학교 아이들이라고만 생각했다. 이런 학교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에 계속 등장하게 될 것이다.
질문: 교육철학에 대한 체계적인 글이 있는가?
알바로
몇몇 기명칼럼에 교육에 대한 견해를 밝히긴 했다. 세계은행에 제출한 교육모델에는 교육철학의 일부가 담겨 있다. 교육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질문: 예술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드리유방
현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바로
예술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야 없지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며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예술을 통해서도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문제들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예술은 그 문제들에 대해 사회가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도와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드리유방
예술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회 문제를 대응하는 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알바로
예술은 비상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예술 교육은 사람들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 감수성이 타인을 감동시키고 세상을 감동시키면서 사람들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 예술은 사람을 더욱 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다. 첨단 테크놀로지와 기계 속에 인간의 삶이 갇히지 않도록 도와준다.
드리유방
기계는 인간을 가둔다.
알바로
예술은 갇힌 것을 열어 젖힌다.
질문: 몸의 학교 모델을 콜롬비아 전역에 혹은 다른 대륙에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는가?
알바로
베네수엘라 오케스트라 양성제도(el Sistema Nacional de Orquestra)의 업적은 내게 훌륭한 참고사항이다. 구스따보 두다멜 등등의 사례를 생각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왔다. 이 국가제도는 베네수엘라 사회 안팎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 경험이 우리의 꿈에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다. ‘몸의 학교’는 고유한 교육철학과 방법론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우리 노력이 콜롬비아와 세계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란다.
춤은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힘은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춤은 인간의 몸에 대한 것이므로 단순히 예술장르가 아니다. 춤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곧 인간의 몸, 인간 존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몸은 감각의 원천이자 우리의 기원이다. 몸은 우리 자신이다. 몸은 거대한 변화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 몸은 하나의 악기이다. 춤이란 악기와 악기주자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춤이란 이토록 놀라운 것이다.
나는 ‘몸의 학교’가 하나의 학교에서 하나의 교육제도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예술가든 예술가가 아니든 모두가 누리는 제도가 되기를 바란다.
드리유방
춤이 음악과 같은 잠재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작품의 예술적 수준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거야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음악은 좀 더 대중적인 장르이다. 레파토리도 다양하다. 춤은 그렇지 못하다. 음악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
(드리유방은 춤을 얘기할 때 주로 현대무용을 염두해 두고 자신의 견해를 진술하고 있다. 반면 알바로는 춤 내부의 다양한 하위 장르를 두루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알바로
춤은 콜롬비아 민중에게 가장 뿌리 깊은 문화 전통이다. 이 나라 백성들은 춤추기를 매우 좋아한다. 모든 곳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춤이 더욱 번창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무용에만 한정한다면 좀 더 다양한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일반적으로 춤에 대해 말한다
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베네수엘라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로 성공을 거두었다. 춤이 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춤이 클래식음악에 비해 더 적은 비용으로 더 잘 접근할 수 있는 장르이다.
드리유방
국가 제도로서 ‘몸의 학교’라...... .으음, 나는 ‘몸의 학교’의 비전에 한정해서 말하고 싶다. ‘몸의 학교’가 새 학교 건물을 짓는 이 시점에서 ‘몸의 학교’의 미래를 그려보고자 한다. 물론 나는 ‘몸의 학교’ 모델을 다른 나라에 적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몸의 학교’는 무엇보다도 예술적 탐구센터, 교육과 예술에 대해 성찰하는 전위적인 요람이기를 바란다.
늘 새롭게 등장하는 신기술을 흡수하고 우리의 방법론을 더욱 발전시켜 늘 전위적인 활동을 벌이기를 바란다. 우리의 프로젝트, 우리의 예술교육방법론 등 모든 영역에서 전위적인 것이 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모두 과거의 경험이다. 멋진 과거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미래에도 여전히 쓸모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몸의 학교’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10년 경험으로 우리의 철학과 방법론을 정립했다 할 수는 없다. 세계은행에 제출한 몸의 학교 교육 모델은 과거의 우리 역사이다. 그것은 고정불변의 원칙이 아니다. 우리가 늘 고민해야 할 주제는 우리가 어떤 관점으로 대상에 접근할 것이냐이다. 누군가 말했다. 무용이냐 현대무용이냐는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라고 했다. 별이냐 달이냐 바로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다.
질문: 몸의 학교는 정식으로 인가를 받았는가?
알바로
몸의 학교는 비영리민간재단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 교육청이 대안교육기관으로 인가했다. 이 지위로 우리 학교는 다양한 대학과 협정을 맺고 있다. 지금 우리의 노력은 혁신적인 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최근 교육부와 문화부에서도 다양한 구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몸의 학교’의 성공적인 경험을 반영하여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질문: 콜롬비아에는 ‘몸의 학교’와 같은 다른 기관이 있는가?
알바로
없다. 같은 분야에서 우리와 같은 철학을 갖고 있는 교육 기관은 없다. 고전무용, 음악 등 다른 분야에서 이런 시도는 있었다. 예술교육과 전통교육의 ‘결혼’을 주선한 경우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유기적이고 통합적인 예술교육철학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질문: 사회공공연구소 이슈페이퍼가 생산되면 한 부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번 한국 방문 경험은 어떠했는가?
알바로
당신의 작업이 흥미롭다. 아주 먼 나라지만 일본 정부는 세계은행을 통해 우리를 지원하고 있다. 수 천 년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동양이 우리 제안을 이해했다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질문자
식민지 경험으로 인해 한국은 아직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 트라우마는 한국이 주변의 강대국들이 아닌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보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일본이 해외에서 활발하게 문화교류를 펼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알바로
콜롬비아와 한국의 문화 교류에 깊은 관심이 있다. 나는 이곳에 와서 한국의 전통, 음악, 춤에 대해 크게 감명 받았다. 한국은 놀라운 나라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연한 것도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일요일 공연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시인 황지우 씨를 만났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한국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기술도 수단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우리가 왜 춤을 추고 있는지 기억하게 하고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양국간의 교류가 놀라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이번 공연에서 이미 문화교류가 시작되었다. 서울 공연의 [몸의 종말을 위한 사중주]에는 7명, 안산 공연의 [또 다른 사도]에는 4명의 한국인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들 모두 훌륭한 기량을 갖고 있고 작업도 아주 흥미로웠다.
드리유방 아무 보상도 없이 그 예술가들은 우리 작품에 참여했다. 멋진 경험이었다.
알바로
[몸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 대한 인상을 내가 묻고 싶다.
드리유방
나라마다 관객마다 모두 반응이 다르다.
질문자
[몸의 종말을 위한 4중주]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서양적인 것들이다. 그로 인해 한국 관객들이 이해하는 데 일정한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작품에 끝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이름도 정체성도 없는 포로들이 온기를 가진 살을 드러낼 때였다.
드리유방
당신이 말한 것이 바로 우리 작품의 주제였다. 비인간화에서 벗어난 작품의 끝에서야 드디어 마음껏 숨 쉴 수 있게 된다. 얼굴도 없이, 스타킹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보면서 50분을 지켜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도 유쾌한 일도 아니다.
질문자
내 동료 가운데 한 사회학자는 사람을 쌓는 장면을 학살에 대한 묘사로 여겼다. 한국의 80년 학살을 떠올렸을 것이다. 80년대의 폭력 시위는 학살에 대한 울분의 표현이었다.
알바로
우리 작품에 대한 당신 논평도 흥미롭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드리유방
우리 작품이 제안하고 있는 것은 르완다, 콜롬비아,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대한 것을 다루는 것이기도 하다.
질문자
콤파스가 총으로 변하기도 하고 결국 시계로 변하고.
알바로
새의 날개가 되기도 하고, 곤충이 되기도 하고.
에필로그
(인터뷰 말미에 몸의 학교 신축 교사를 설계한 콜롬비아 건축가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알바로 선생은 그 분을 ‘우리의 모험에 참가한 동료’라고 소개했다.)
드리유방
‘몸의 학교’는 일종의 ‘모험’이다.
알바로 레스뜨레뽀
그렇다. 우리는 그 모험의 길에 나선 사람들이다.
질문자
한국에 ‘몸의 학교’의 자매학교가 생겼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모험에 참여할 국제적인 동지들이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