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 어느때보다도 국민적 관심과 성원이 컸던 대회였다. '갈색 폭격기' 차범근이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대표팀을 선두 지휘하였다.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은 6승 1무 1패라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무난히 예선을 통과하였다.
한국은 벨기에,남미의 강호 멕시코, 그리고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와 함께 E 그룹에 속하게된다. 늘 그래왔었지만 어느한팀 얕잡아볼 팀이 없었다. 그리고 첫 경기는 남미의 강호 멕시코와의 일전이었다.
98년 6월 13일(토) 오후 5시 30분(현지시간) 장소는 프랑스 리용 제를랑 경기장 약 4만명의 관중이 운집된 가운데 사상 첫 16강 진출이라는 기대를 안고 98월드컵 한국의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골키퍼 김병지를 비롯해 월드스타 홍명보,서정원,유상철,하석주 등 노련미를 겸비한 역전 노장들이 주축이되어 차근 차근 경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멕시코도 남미의 강호답게 우리의 문전을 위협했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전반전 28분경 멕시코 문전 정면에서 20여미터 되는 지점에서 프리킥을 얻게 되었다. 킥커는 왼발의 달인 하석주. 직접 슛을 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하석주는 강하게 왼발로 직접 슛을 날리고 공은 수비수의 머리를 맞고 골대로 들어간다. 골인이었다. 월드컵 출전 사상 첫 선취득점이었다. 선수들을 비롯하여 국민들은 열광하였다.
그리고 16강에대한 희망은 더 이상 희망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2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시간. 멕시코 진영에서 공격을 하려던 공격수를 하석주 선수가 뒤에서 태클을 하였다. 이번대회부터 빽태클에 대해 엄한 처벌이 내려진다는 FIFA의 강한 결의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바로 레드 카드가 보여졌다.
선취골에 대한 기쁨이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한명의 선수가 퇴장당하고 10명의 선수로만 경기를 치뤄야했다. 선수들은 점점 움츠려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멕시코의 맹렬한 반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다행으로 선취골을 지킨채 전반전은 끝났다.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한국팀은 전열을 가다듬고 16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품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11명이 싸우는 축구 경기에서 10명이 그것도 강적을 상대로 경기한다는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그래도 한국 선수들은 맹렬한 멕시코 선수들의 공격을 투지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반 6분경 동점골을 내주고 만다.
이때부터 한국 선수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후반 29분,39분에 멕시코의 영웅 에르난데스에게 연속 골을 주고 만다. 결과는 1대 3. 결국 선취점을 지키지 못한체 1패를 하게된것이다.
멕시코 전에서의 패배를 거울삼아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네덜란드전에 임한 한국 선수들. 하지만 네덜란드는 세게적인 스타 베르캄프가 지키고 있는 강호중의 강호였다.
6월 20일(토) 오후 9시(현지시간) 프랑스 마르세이유 벨로드롬 경기장. 유럽의 난폭한 훌리건들과 약 5만 5천여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우리선수들은 더이상 물러설수 없다는 마음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전반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변변한 공격한번 해보지 못하고 전반 37분경 네덜란드의 코쿤에게 한점을 내주고 만다. 그리고 5분후 오베르마스에게 또 한점을 허용한다. 결국 전반전은 2대0으로끝나고 만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선수들도 간간히 슛팅을 날리면서 만회골의 기회를 노렸으나 오렌지 군단에겐 역부족이었다. 후반 26분. 베르캄프에게 한골을 허용해 3대0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후반 34분 오베르마스가 한국팀 진영 좌측에서 센터링한 공을 반후이동크가 골 에어리어 우측에서 헤딩 슛. 4대0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4분후 또 다시 한골을 내주면서 경기는 종료되었다. 5대0. 참패였다. 근래에 들어와서 가장 큰 점수차로 지고만것이다.
국민들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졌고 차범근 감독이 월드컵 도중 경질되고마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터지고 만다. 이미 16강 탈락이 확정된 상태. 하지만 이대로 주저 않을순 없었다. 월드컵 본선 1승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가슴에 품고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에 대비해 전력을 가다듬어야했다.
본선 마지막 경기인 벨기에전.네덜란드전의 참패로 국민들의 원성이 더 없이 높아졌고 이러한 원성은 1승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16강은 이미 탈락한 상태이지만 월드컵 첫 승리를 바라는 국민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국팀은 필승을 다짐했다. 98년 6월 25일(목) 오후 4시(현지 시간) 파리 파르크 드 프랭스 경기장. 더 이상 물러 설곳도 물러 설수도 없는 일전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전반전이 시작되고 한국팀이 채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인 전반 7분 수비맞고 흐른는 볼을 닐리스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로 슛을 날린것이 우리의 골 넷트를 갈랐다. 하지만 선취점을 내주고 급격히 무너져버렸던 이전과는 달리 한국 선수들은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간간히 득점기회도 있었으나 무산되면서 전반전이 끝나고 말았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우리에게도 더 많은 만회골의 기회가 왔으나 번번히 실패를 하던중 후반 26분경 하석주가 미드필드 왼쪽에서 왼발 프리킥을 찬것을 유상철 선수가 골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달려들며 오른발 땅볼 슛을 한것이 벨기에의 골 문을 갈라놓았다.
동점골이었다.선수들은 국민들의 성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했다는 마음에 기뻐했고 국민들 역시 열광했다. 동점골을 허용한 벨기에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고 이때부터 우리 선수들의 눈물겨운 투혼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임생 선수는 수비를 하던도중 눈위가 찢어져서 시야가 가리고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붕대로 머리를 감싸고 경기에 임했으며 발에 쥐가나는 선수들은 침으로 다리에서 피를 뽑아내가며 경기에 대한 투지를 불태웠다. 이런 투지로 벨기에의 파상적인 공격은 막아냈지만 우리도 더 이상의 추가 골은 나오지 않았다.
1대1. 무승부였다. 그리고 염원하던 1승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들과 외신들은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수들이 보여준 투혼에 경의를 표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축구의 저력이라고...
아트 사커가 선보였던 98 프랑스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1무 2패. 이것이 98 프랑스 월드컵의 우리 대표 성적이었다.그 어느 월드컵때 보다도 부진한 성적이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우리는 4강진출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내용출처 : http://user.chollian.net/~kerubin/total.htm
첫댓글 벨기에전 ㅠㅠ 이제 그런거 보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