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 간다의 어원,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언어와 시대상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한다. 곧 그 시대에 유행하는 말을 분석해 보면 사회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한국전쟁 중인 1952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958년에 졸업했다. 그러니까 나의 소년시절은 한국전쟁 중이거나 휴전 직후였다.
그 시절 사람들이 자주 썼거나 유행한 말은 '공갈치다', '얌생이 몰다', '골로 간다' 등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자주 뱉었다. 대학 재학시절 조동탁(시인 조지훈 본명) 선생으로부터 그 말의 어원을 자세히 배운 적이 있었다.
조 선생은 한국전쟁 당시 종군작가단으로, 전란 현장에서 생생한 장면을 여러 편의 시에 담았다. <다부원에서> <도리원에서> <죽령전투> <서울에 돌아와서> 등으로, 선생은 강의시간이면 당신의 자작시들을 학생들에게 자주 낭독해주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겪은 한국전쟁 당시의 체험담과 그 시대 유행어의 유래도 들려주셨다.
나는 그제야 그 말들의 뜻과 실체를 적확히 알고는 그 시대가 야만과 공포의 시절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그때 사람들은 목구멍에 풀칠을 하거나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부도덕한 일들도 별 죄의식 없이 함부로 저지르기도 했다.
유행어 '공갈치다'의 공갈(恐喝)이라는 말은 "공포를 느끼도록 윽박지르며 을러댐"을 뜻했다. 한국전쟁 전후 그 시절은 군경이나 우익단체 회원들은 민간인에게 총구를 겨냥하면서 공갈치는 일들도 흔했기 때문에 그 말이 매우 유행했다. 그래서 그 말을 자주 쓰자 나중에는 그 어의가 평가절하로 거짓말하거나 과장한다는 말로 폭락했다.
'얌생이 몰다'는 말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부산 교외에 사는 어떤 사람의 염소가 어느 날 미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부대 보초에게 그 사실을 말한 뒤 허가를 받고는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기 염소를 몰고 나오면서 견물생심으로 그 참에 미군 보급품을 잔뜩 훔쳐 나왔다. 여기에 재미를 들인 그는 다음부터 일부러 염소를 미군 부대 안으로 들여보낸 뒤 그것을 찾으러 들어가는 핑계로 그런 짓을 거듭했다. 그래서 얌생이 몰다는 말은 '도둑질하다', '남의 물건을 훔치다'는 말이 된 것이다.
'골로 간다'는 말도 한국전쟁 전후로 매우 흔하게 썼다. 우리 악동들은 상대가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야, 너 골로 갈래?"라고 말했다. 우리 악동들은 '그저 혼내 준다'는 정도로만 알고 무심코 썼다. 그런데 그 말의 어원을 적확히 알고 나니까 참으로 무서웠다.
한국전쟁 전후로 군경의 좌익학살이나 인민군 또는 좌익들의 우익 학살은 매우 심했다. 서로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피장파장이었다. 그 무렵 군경이나 우익 청년단 회원들은 좌익은 물론, 그들 가족이나 친구까지도, 심지어 인민군이나 좌익 게릴라들에게 밥을 한 그릇 주거나 감자 한 자루 줬다는 이유로 촌부들을 산골짜기로 데려가서 총살한 뒤 그 자리에다 매장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당시 '골로 간다'는 말은 산골짜기로 데려가서 아무도 모르게 죽인 뒤 묻어버린다는 끔찍한 말이었다.
그동안 분단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 백성들은 산골짜기로, 우물로, 동굴로, 갱도로, 가지 않기 위해 총구 앞에서 그저 벌벌 떨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양심대로 정직하게 살았거나, 그렇게 사는 이가 가뭄에 콩 나듯 매우 적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