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발음하면 오해가 될 수 있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그 고사성어들을 우리가 아무리 잘못 발음한다고 해도, 우리 마음대로 합리화하여 해석한다고 해도, 그 고사성어의 뜻은 그대로 있습니다.
왜냐고요? "진실은 항상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 있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제가 한 농부와 한 어부의 이야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한 농부의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한나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마을의 연못에 예쁜 잉어가 한 마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메기 한 마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 연못에 침입하였습니다.
침입한 메기는 연못에서 잉어랑 같이 살면 좋으련만, 메기는 잉어를 보자마자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잉어는 메기를 피해 연못의 이곳저곳으로 피했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었습니다.
막바지에 몰린 잉어는 한순간 힘을 냈습니다.
그 힘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뭍에 튀어 오르게 되었고, 육지에 오른 잉어는 지느러미를 다리삼아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잉어는 메기가 못 쫓아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뛰어간 거리가 약 구리(九里)정도라고 합니다.
그때 잉어가 뛰는 걸 보기 시작한 한 농부는 잉어의 뒤를 뒤따라 갔습니다.
잉어가 힘에 부쳐 멈추었을 때 농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주구리(漁走九里)!"
그리고는 힘들어 지친 잉어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서 식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주구리(漁走九里)의 뜻은 '고기가 9리를 간다'는 말로, '능력도 안 되는 이가 센 척하거나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할 때' 주위의 사람들이 쓰는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보통의 어투로 "어주구리"를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약간 비꼬는 말투로 그것도 약간 톤을 높여 "어~쭈~구리!"라고 말하면 익숙한 말이라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주구리“라고 말을 들을 때와 "어~쭈~구리!"라고 말을 들을 때의 기분이 어떻습니까?
요즘 저는 어주구리(漁走九里) 하시는 분들 때문에, 더운 날씨와 비가 오려는 찌뿌둥한 하늘 때문에 더 짜증이 납니다.
한 어부의 이야기인 고사성어는 좀 조심스럽습니다.
중국 원나라 때의 일입니다. 어떤 마을에 한 어부가 살았습니다.
그 어부는 너무나도 착하고 어질어서 정말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 어부는 항상 마을사람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웠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에 아주 성격이 포악한 새로운 원님이 부임하였습니다.
원님은 그 마을에 한 착한 어부가 덕망이 높고 마을 사람들부터 신임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괴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 어부를 제거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원님은 한 묘안을 짜내었습니다.
어부의 집 앞에 귀한 물건을 몰래 가져다놓고, 어부가 그 물건을 가져가면 누명을 씌워 그 어부를 죽일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원님은 묘안의 첫 번째로, 어부의 집 앞에 쌀 한 가마니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하지만 어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쌀 가마니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원님은 두 번째 묘안으로, 최고급 비단을 어부의 집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몸이 달을 때로 달은 원님은 최후의 수단으로, 커다란 금송아지 한 마리를 집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어부에게는 금송아지마저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부가 손끝 하나 대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부의 행동에 화가 난 원님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탄식을 했습니다.
"선어부비취`(善漁夫非取): 착한 어부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구나!".
어부에게 감명을 받은 원님은 그 어부를 자신의 옆에 등용하여 덕으로써 마을을 다스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부임한 원님과 원님의 묘안을 보면 마치 저희 교회에 있었던 일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의 뜻은 '자신이 뜻한 대로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를 말합니다.
이 고사상어는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보다 영어권을 사용하는 나라에서 주로 익숙하게 사용되어 버렸습니다. "善漁夫非取(선어부비취)는 어느새 "son of bitch(개XX)"라는 영어의 발음대로 받아들여 욕이 되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첫댓글 그렇습니다. 교회에 대한 도전은 교회법으로.. 세속적 도전은 세속법으로.. 사랑으로 품을 일은 사랑으로..
오늘 미스바 기도회에서 목사님께서 해주신 말씀이[요3:22~30]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고대하며 참고 인내하며 기도하자.
너무 의인도 되지 말고, 너무 악인도 되지 말라.
진짜 영성은 나는 죽고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흥하시면 우리는 낮아져도 된다.
모든 상황 가운데 흔들리지 말고 더욱 힘쓸 때 모든 것이 헛되지 않는다[고전15:58]."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일들을 고대하며 묵묵히 기도하겠습니다.
당회에도 몇 분의 썩은 나무와 같은 장로님들이 문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