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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5월 28일 목요일
[(녹) 연중 제8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 쓰이도록 하라며,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예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눈먼 바르티매오가 자비를 호소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치유해 주신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은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불러내신 하느님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 2,2-5.9-12
사랑하는 여러분,
2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4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5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9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여러분은 자비를 입지 못한 자들이었지만
이제는 자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영혼을 거슬러 싸움을 벌이는 육적인 욕망들을 멀리하십시오.
12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46ㄴ-52
그 무렵 4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많은 군중과 더불어 예리코를 떠나실 때에,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49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사람들이 그를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하고 말하였다.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51 예수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눈먼 이가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52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거지를 만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 사람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 큰 소리로 외칩니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사람들이 막아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저도 미국 신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서 강의를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어떻게든 혼자 해결해 보려 하였지만, 결국 교수님들과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부끄러웠지만, 그들은 오히려 솔직한 저를 좋아하였고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바르티매오처럼 용기를 내어 도움을 청하였을 때 생각하지 못한 은총이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의 간절함에 응답하십니다.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10,51). 예수님께서는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0,52)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곧 다시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신앙은 용기입니다. 나의 허물이 많고 죄에 걸려 몇 번씩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예수님께 끊임없이 다가가는 용기입니다. 죄와 허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을 숨기고 혼자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나약함을 아십니다. 그분 앞에 솔직하게 우리의 부족함을 드러낼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지금 바로 용기를 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그분께서 부르십니다.(권순호 알베르토 신부)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간절함!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나이를 살짝 먹다 보니 지난 시절을 종종 돌아보게 됩니다. 치명적인 실수나 흑역사가 떠올라 자책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좋았던 시절, 꽃 같던 아이들 얼굴도 떠올리며 흐뭇해하기도 합니다.
지난 시절을 성찰하던 중, 참 많이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음을 확인합니다. 진정성의 결여! 간절함의 상실! 적당주의! 뭐든 적당 적당, 대충대충 해치우려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치밀하게 계획도 세우고 최선을 다해보려고 노력하는 적극성이 부족했음을 인정합니다. ‘잘 되면 그만, 잘못 되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어물쩍 넘어가곤 했습니다. 틈만 나면 우스갯소리로 위기를 넘겼니다. 어떤 때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하는 말들로 사람들을 햇갈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반성하는 마음으로 매일 매 순간 좀 더 충실한 나날, 좀 더 계획적인 삶, 좀 더 진정성 있는 하루,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을 살고자 나름 발버둥칩니다.
이런 면에서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가 보여준 태도는 크게 칭찬받을 만합니다. 물론 그의 처지는 처절할 정도로 절박했습니다. 그냥 거지들도 먹고살기 힘든 시대였는데, 바르티매오는 눈까지 멀었습니다.
동업자들과의 경쟁에서 언제나 뒤로 밀렸습니다. 한 푼 얻어 볼까, 아무리 기다려 봐도 그에게 눈길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수입이 없다 보니 굶기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거지 사회에서도 그는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던 왕따였습니다.
이런 바르티매오 인생에 기적 같은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구원자이자 치유자이신 예수님께서 그가 구걸하고 있던 장소를 지나가십니다. 바르티매오는 마치 기적처럼 찾아온 그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간의 서러움, 그간의 깊은 상처, 그 간절함과 절박함을 목소리에 담아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7)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기회 앞에 바르티매오는 자신의 삶 전체를 바쳐 간절한 목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습니다. 사람들 눈치를 본다 던지 체면을 차릴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저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자신 안에 남아있는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서 외친 것입니다.
이런 바르티매오의 간절한 목소리를 어떻게 주님께서 외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절박함, 그 진정성과 강한 믿음은 곧 치유와 구원, 새 삶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당시 바르티매오 옆에는 수많은 다른 거지들과 환자들이 죽치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바르티매오 같은 간절함, 적극성, 진정성, 능동성이 없었습니다. 그저 흐리멍텅한 눈으로 강 건너 불 바라보듯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적극성과 절박함이 없는 그들은 일생일대 선물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 내면의 상태는 어떤지 점검해볼 일입니다. 바르티매오가 지니고 있었던 그 적극성이 있습니까? 단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고자 하는 강렬한 원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나를 치유시켜 주실 분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습니까?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순례의 여정에서 한 부부와 대화하였습니다. 눈빛만으로도 ‘성실’하게 삶을 살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순례를 마치면 부부는 아내의 ‘칠순’을 기념하여 로마, 아시시, 프라하를 다녀온다고 합니다. 로마에서는 교황님의 알현 미사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아시시에서는 프란치스코 성인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는 미사에 함께 한다고 합니다. 프라하에서는 아름다운 도시를 보며 ‘칠순’을 기념하고 싶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모든 일정을 계획한 남편의 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부는 3년 전에 ‘은퇴’하였다고 합니다. 작년에는 한국 ‘성지순례’를 78일 동안 다녀왔다고 합니다. 순례 중에 좋은 분을 많이 만났다고 합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사람이 함께하는 순례의 여정에는 좋은 사람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은퇴’할 나이가 훌쩍 지났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여정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두 분이 가는 길에 하느님의 사랑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 ‘바르티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말에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었더니 보따리 내놓아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를 ‘배은망덕’이라고 합니다. 은혜를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성서는 이런 배은망덕의 기억도 전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을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명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아담과 하와를 낙원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아합왕은 자기의 포도밭이 많이 있음에도 욕심 때문에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예수님을 은전 서른 닢에 팔아넘겼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는 너를 바위라고 부르겠다. 내가 그 바위 위에 나의 교회를 세우겠다.’라는 칭찬을 받았음에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습니다. 성서는 어쩌면 끝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그 하느님의 사랑을 잊어버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치유의 은사를 받은 바르티매오는 눈을 떴습니다.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겁니다. 파란 하늘도 보고 싶었고, 사랑하는 가족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라고 기억합니다. 성서는 이런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굶주렸을 때 사렙다의 과부는 아낌없이 엘리야에게 구운 빵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르단강에 몸을 담구었습니다. 그리고 나병이 치유되었습니다. 나아만은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의 흙을 가져갔습니다. 일곱 마귀가 치유된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첫 번째 증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치유의 은사를 받았던 베로니카는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얼굴에 흐르는 피와 땀을 수건으로 닦아 드렸습니다. 성서는 어쩌면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답하는 백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제에게도 이와 같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사제는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뜻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기도해야 합니다. 사제는 공동체의 의견을 존중해야 합니다. 경험과 연륜은 배려와 존중을 만나야 빛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는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제는 청렴해야 합니다. 세상에 보화를 쌓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하늘에 쌓을 보화는 나눔, 희생, 사랑입니다. 한 가지 더 필요한 덕목이 있다면 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마음으로 병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오늘 바르티매메오는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인의 능력과 준비로는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의 사랑과 자비만이 눈을 뜨게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주시지 않으면 그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헛되다고 합니다. 눈앞에 주어진 일 때문에 정말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주어진 일에 충실하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또 다른 것들을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 이교인들 가운데에 살면서 바르게 처신하십시오. 그래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라고 여러분을 중상하는 그들도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지켜보고, 하느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그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믿는 이가 길을 나선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마르 10,52)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는
모질고 거친 소리들에 묻힌
숨죽인 울부짖음을
기꺼이 들으시는 분을
믿는 이가
숨죽인 울부짖음을
기꺼이 들으러
제 가고픈 길을 거두고
들으시는 분을 따라
길을 나선다
제 살길 찾기에 핏발이 선
차가운 눈길들이 비껴간
볼품없는 몰골을
기꺼이 보시는 분을
믿는 이가
볼품없는 몰골을
기꺼이 보러
제 가고픈 길을 거두고
보시는 분을 따라
길을 나선다
곁을 살필 따스함을 잃은
매정한 발걸음들 거슬러
보잘것없는 이에게
기꺼이 멈추시는 분을
믿는 이가
보잘것없는 이에게
기꺼이 멈추러
제 가고픈 길을 거두고
멈추시는 분을 따라
길을 나선다
혹여나 귀찮게 엮일까
모두가 스치듯 지나가는
짐스러운 이를
기꺼이 부르시는 분을
믿는 이가
짐스러운 이를
기꺼이 부르러
제 가고픈 길을 거두고
부르시는 분을 따라
길을 나선다
너와 나 애써 가르는
거친 틈바구니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이와
기꺼이 함께하시는 분을
믿는 이가
함께하지 못하는 이와
기꺼이 함께하러
제 가고픈 길을 거두고
함께하시는 분을 따라
길을 나선다
오늘의 성인
성 제르마노 (Germanus)
활동년도 : 496?-576년
신분 : 주교
지역 : 파리(Paris)
같은 이름 :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496년경 프랑스의 손에루아르(Saone-et-Loire)에 있는 오툉(Autun) 근처에서 엘레우테리우스(Eleutherius)와 에우세비아(Eusebia)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그는 신부인 사촌 스카필리온(Scapilion)의 도움으로 아발롱(Avalon)과 뤼지(Luzy)에서 공부하였다. 530년에 그는 오툉의 주교인 아그리피누스(Agrippinus)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 오툉 근처에 있는 생-생포리앵(Saint-Symphorie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555년 그가 파리에 들렀을 때 마침 에우세비우스 주교가 세상을 떠나 파리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불굴의 투지와 용맹을 보였다. 그는 파리에 유명한 생제르맹(Saint-Germain) 수도원을 세웠고, 576년 5월 28일 파리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인의 유해는 빈첸시오 성당 입구의 생-생포리앵 경당에 안치되었다가, 754년 성대한 예식과 함께 성당 안으로 옮겨졌다. 이때부터 이 성당은 생제르맹데프레(Saint Germain-des-Pre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성 베르나르도 (Bernard)
활동년도 : 923?-1008년?
신분 : 신부
지역 : 멘톤(Menthon)
같은 이름 : 버나드, 베르나르두스, 벨라도
사보이아(Savoia, 프랑스 남동부, 이탈리아와 접하는 옛 지방의 이름)의 멘톤(또는 몽주 Montjoux)에서 태어난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의 어린 시절에 관한 자료들은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아우구스티누스회의 수도 사제로 아오스타(Aosta) 교구의 총대리가 되었고, 40여 년 동안 알프스에서 선교 사업에 종사한 위대한 선교사였음은 확실하다. 그는 자신의 교구 내에 학교와 성당을 세웠지만, 가장 높이 칭송받은 일은 알프스 산을 넘는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헤맬 때 그들을 돕기 위하여 세운 알프스 산의 두 숙박소이다. 이곳은 그가 사망한 뒤에 ‘큰 베르나르두스’, ‘작은 베르나르두스’라고 이름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탈리아의 노바라(Novara)에서 선종한 그는 1681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11세(Innocent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1923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하여 등산가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성녀 마리아 안나 (Mary Anne)
활동년도 : 1618-1645년
신분 : 동정녀, 은수자
지역 : 키토(Quito)
같은 이름 : 낸시, 니나, 마리아나, 마리안나, 메리, 미리암, 애나, 애니, 앤
마리아 안나 (1618 - 1645)는 남미 에쿠아도르 키코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신앙을 위해 일본에 가서 순교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자기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살아 있는 순교를 하기로 결심하였디.
재속 3 회 착복을 하고 가난·정결·순명의 세가지 수도 서원을 하였다.
그 후 은수자처럼 집에서 살며 전례에 참례하거나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서만 집을 벗어났다.
그녀의 기도와 회개 생활에 대하여 하느님게서는 보상으로 많은 특별한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녀의 전구로 환자들이 치유되기도 하였으며 그녀는 예언과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사를 받기도 하였다.
1950 년 비오 12 세가 시성하였다.(작은형제회홈에서)
성녀 마리아 안나 아 예수 데 파레데스(Maria Anna a Jesu de Paredes)는 당시 에콰도르의 수도였던 페루비안 마을에서 태어났고, 마리아 안나 데 파레데스 이 플로레스(Maria Anna de Paredes y Flores) 즉 ‘키토의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에스파냐 귀족의 딸로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뛰어나서 언니들과 더불어 로사리오와 십자가의 길의 기도 바치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12세 때에는 몇 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일본인들을 개종시키려다가, 키토 교외 산에서 은수자로 살려는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고해신부인 예수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당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독수자처럼 생활하였다.
또 그녀는 관을 하나 마련한 뒤 매 금요일마다 그 속에서 지내며 죽음을 묵상하기도 하였다.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고행자가 입는 말총 속옷을 입었으며, 가시관과 쇠못관을 만들어 고행하였다. 음식은 극히 소량만 먹었고, 물은 그리스도의 갈증을 느낄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입을 축이는 정도였다. 이와 동시에 예언과 기적도 일어났다. 1645년 키토 지방에 지진과 더불어 전염병이 번졌다. 사순 제 4주일의 강론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백성의 희생물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지진은 멈추었으나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1950년에 시성되었다. 그녀는 마리아나 데 파레데스(Mariana de Paredes)로도 불린다.
복녀 마르가리타 폴(Margaret Pole)
활동년도 : 1473-1541년
신분 : 과부, 순교자
지역 :
같은 이름 :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말가릿다
영국 왕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3세의 조카인 마르가리타 플란타제넷 폴(Margarita Plantagenet Pole)은 헨리 8세에 의해 리처드 폴(Richard Pole) 경과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즉위했을 때에는 마르가리타는 5명의 자녀를 둔 과부였다. 5명의 자녀를 데리고 사는 그녀는 영국에서 성녀로 불릴 만큼 덕이 출중하여 헨리 8세가 솔즈베리(Salisbury)의 백작으로 그녀를 임명하는 등 많은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나 헨리 8세가 앤 볼린(Ann Boleyn)과 결혼하자 그녀는 왕가와의 모든 인연을 끊어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와중에 그녀의 넷째 아들인 레지날드 폴(Reginald Pole)이 왕의 수장령에 반대하는 글을 썼다. 이 사건으로 온 집안 식구가 모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녀 역시 헨리 8세를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1541년 5월 28일에 참수형을 받고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녀는 1886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복자 란프랑코 (Lanfranc)
활동년도 : 1005-1089년
신분 : 주교
지역 : 캔터베리(Canterbury)
같은 이름 : 란프랑꼬, 란프랑크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 출신인 란프랑코는 고향에서 법률을 공부하여 한동안은 변호사로 지내다가 1035년경에 프랑스로 갔다. 그는 노르망디(Normandie)의 아브랑슈(Avranches)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또 가르치기도 하다가 1042년 베크(Bec)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불과 3년 뒤에 그곳 수도원의 원장 겸 수도원 학교의 교장이 되었고, 그의 성덕과 학문이 크게 알려졌다.
그는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와 성체성사에 관한 논쟁을 벌였고, 이 때문에 그는 교황 레오 9세(Leo IX)의 초청으로 로마 회의에 참석하여 베렌가리우스가 단죄를 받는데 큰 몫을 하였다. 1063년경에 그는 캉(Caen)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고, 1070년에는 영국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노르만 전례를 영국 교회에 이식했고, 사제 독신제를 강력히 시달한 1076년의 윈체스터(Winchester) 시노드에도 참석하였다. 그의 저서인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는 중세시대의 주요 저서로 널리 읽혀졌다. 캔터베리에서 선종한 그는 공적인 공경에 관한 그 어떤 내용도 찾아볼 수가 없지만 늘 복자라는 칭호와 함께 불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