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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살며 사랑하며... 원문보기 글쓴이: 시나브로
주제 ; 동쪽으로 간 동이문화
최 남석
가] 우랄 알타이 언어란 ?
관변사학에서의 알타이는 동북삼성 위쪽 러시아 영역에 있다.
그러나 최초의 알타이는 우랄산맥 쪽이다.
시원 역사의 진실상은 우랄 알타이와 감숙성 모래 속에 묻혀 있다.
먼저 언어의 뿌리를 궁구하여 시원 역사를 조명해 본다.
동이의 언어는 우랄 알타이어계에 속 한다.
우리말의 고어인 사투리가 왕족 크샤트리의 사트리 라는 설에 필자 역시 매우 동감 한다.
왜냐 하면 인도를 지금의 인도로 보지 않고
우랄 알타이를 산해경에 나오는 인도 <조선 天毒> 으로 보기 때문이다.
(# 천독은 텐뚜 신뚜 힌뚜라고 발음한다. )
따라서 산스크리트 문자는 오늘날 우리 한글과 다르되
발음은 우리말 사투리 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고대 우리말은
영문의 기원이 된 산스크리트와 차이나어의 기초가 된 한문으로 역사적 변천을 거쳤다.
몽골은 옛날의 조선이다.
몽골이 지나대륙을 지배한 몇 천년 동안 사투리는 지나 대륙의 표준말 이었다.
신해혁명 이후 북방왕권을 타도한 남방세력들에 의해 남방언어가 표준말이 되고
한자는 간체자로 변했고 문법도 지금의 백화문법으로 변천 되었지만
감숙성이나 우랄 알타이 지역의 오지에서는 아직도 사투리가 발견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명에서 트르판이 우리말 들판이라는 것
그리고 우르무치는 우리말 오르목재 라는 것 등이다.
이 외에 불교에서 서가무니의 사카는 우리말 (싹) 인데
이는 사카를 한문으로 의역 할 때 能仁이라고 번역 하는 것으로 보아 매우 타당한 말이다.
서세들에 의해 조종당한 우리 교육은 능인을 - 능히 어질다 - 로 배워 능
인이 발아가 가능 한 씨알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는데
이는 서세들이 뿌리 조선과 한반도를 영원히 격리 시키려는 음모 때문이였다.
능인에서 能은 본능 이라는 말로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 이다.
쓰임새에 있어서 能은 자기를 뜻하고 所는 상대방을 뜻 한다
(예; 능예는 예배를 올리는 사람이고 소예는 예배를 받는 불보살이다.)
仁은 어질 인이지만 씨알 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예; 산조인은 한약재 로 멧대추 씨이다.)
무니는 우리말 어무니 의 무니이다.
<비로소>라는 우리말은 처음 또는 시작이라는 뜻 인데
높고 큰 산의 비로봉이 이런 의미이다.
비로봉은 그 산이 만들어 질 때 다시 말해 솟구쳐 올라올 때
제일 먼저 솟아 오른 봉우리이다.
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은 법신불인데 법신이란 근본마음이란 의미이다.
법신에서 보신불과 화신불이 나오기에 (비로)라 하고
하나가 셋이 되므로 삼위일체라고 한다.
<즈므>는 하늘이고 <즈믄>은 숫자 千이다.
즈믄강(두만강=트믄강)은 수 없는 샛강(압록강)이고
대동강은 천개의 샛강이 하나로 합친 강을 의미하며
족보에서도 대동보 는 모든 파를 합친 족보를 말하는 것이다.
나] 우랄 알타이 의 조선(祖禪) 키타이(契丹)
[한단고기]의 삼성기에 등장하는 사백력은 시베리아이다.
흑수 백산으로 동남동녀 삼천명이 내려 와서
인간의 씨알이 되었는데 오색인종을 퍼트렸다고 쓰여 있다.
흑수는 지금의 흑해로 비정 할 수 있지만 백산은 어디를 말하는 것 일까?
흰백자 백산이므로 희말라야 일까?
눈 덮인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렇게 의문이 생기면 백산을 밝산으로 전환해야 한다.
밝산은 밝달이고 양달이다.
우리말 고어에 해를 (희)라고 했으니 해가 백색이기에 白日 또는 白晝라고 한 것이다.
이런 개념으로 백산을 이해하면 이곳에서 나타난 최초의 종교인 칠성교를 알 수 있다.
칠성교와 배화교의 본질은 불(火) 숭배이다.
칠성탱화의 주존은 [치성광여래]인데
치성광이란 치열하게 타는 불빛이며 여래란 애너미즘으로 자연을 신성시 한 말이다.
치성광여래의 좌측(동)에 일광보살 우측(서)에 월광보살을 협시로 하고
이 세분의 배경으로 일곱 분의 성군을 그렸는데
일곱 분의 성군은 제일 양명 탐랑태 성군으로 쥐띠 사람들의 조상신이고,
제이 음정거문원 성군은 소띠 돼지띠의 조상신이고,
제삼 진인녹존정 성군은 범띠 개띠, 제사 현명문곡축 성군은 닭띠 토끼띠,
제오 단원염정강 성군은 잔나비 용띠,
제육 북극 무곡기 성군은 뱀띠 양띠, 제칠 천관 파군관 성군은 말띠들의 조상신이 된다.
이상의 일곱 성군이 한단고기에 등장하는 일곱의 환인인데
환인이란 환한 인간 곧 빛나는 사람이란 뜻이다.
환인의 因은 씨알이라는 뜻으로 조상님이라는 말이다.
因의 字意가 큰대 자가 감옥에 갇힌 것으로 씨알이 그렇기 때문이다.
칠성탱화는 구도 그 자체가 알타이 카일라스(수미산=천산)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월광보살의 월씨국을 기시로 하여 달 숭배의 민족들을 나타 낸 것이고
동쪽으로는 일광보살의 일종씨 서가족(키타이)을 나타낸 것이다.
한국의 불교에서는 지나 남방불교인 고타마 불교 때문에 칠성교가 사라지고 있지만,
알타이에서 발생한 칠성 교는 모든 종교의 뿌리가 된다.
그 이유는 종교라는 것이 조상님 제사에서 시작 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칠성으로 귀향하신 조상님을 추모하던 의식이 종교가 되었고
종교의 최소단위가 宗家이다.
칠성교나 배화교(조로아스터) 모두 불을 신성화한 종교로서
알타이에서 지금의 인도로 남하한 배화교(힌두교)나
알타이에서 동쪽으로 간 칠성교는 원래 같은 뿌리이다.
돈황이라는 글자가 불을 의미하고,
거란의 종족 지도자로서 주술 무술 역술에 통한 자를
솟대가 세워져 있는 신성구역에서 封禪 의식을 거행 한 후, 天君(텐군=단군)으로 봉하고
그의 존칭(선생님)을 부루라고 한 것이 불교에서의 불이다.
잠깐 동안에 모래 산을 만드는 감숙성의 모래 속에 묻힌 사찰과 인가들이 다시 드러나면
우리는 비로소 진실된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이 사막 때문에 불교는 지금의 인디아에서 동쪽으로 들어 온 것이 되었고,
티벳의 불교는 그곳이 불교 출생지 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벳에 불교를 전했다는
본말이 전도된 승자의 역사논리가 생긴 것이다.
다] 금인은 고향은 알타이
1> 지금의 인디아가 불교 출생지이다.
2> 티벳의 불교를 당나라 문성공주가 당번고도를 통해 전해 주었다.
위 설을 번복할 수 있는 문헌이 사마천의 사기열전 [곽거병]장이다.
이에 따르면 한나라와 전쟁하던 흉노(고조선)의 휴도왕이 제천 때문에 전쟁을 중지하고
사막으로 사라졌는데, 제천에서의 天이 흉노들에게는 金人이였다.
이 금인을 부테(부천님)라고 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후한 영평 10년 애제가 크기가 장육(60자)이나 되는 금인을 꿈에서 본 후
그러한 금인이 알타이에 실재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불교를 수입했다는 것이다.
당시 한나라의 유생들이 오랑캐의 종교를 섬길 수 없다며
애제에게 상소를 빗발치듯 올렸다 한다.
이 금인이 사마르칸트의 국립 박물관에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보았는데,
금으로 된 갑주에 우리네 무속인들 대감놀이에 나오는 鳥羽를 꽂은 조우관을 쓰고 있었다.
새의 깃털모자를 보면 그것이 한반도이든 북미이든 남미이든 그것은 스기타이이며,
그 신은 서가제바환인(석제님 제석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종족을 서가족(日種氏)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동양에서 천자족이다.
일종씨들이 서쪽으로도 갔는데 서쪽으로 간 일조씨들을 사카족이라 한다.
사카족 역시 스기타이 들의 후예 들이다.
훗날 그들이 석유를 이용하는 기관을 만들어 산업혁명을 이루고
그 힘을 가지고 동양으로 돌아와서 동양의 지배자들과 패권을 다툰 것이 서세동점이다.
이들은 동양의 왕권을 붕괴 시키고자 민주주의를 외치고
동양의 왕권을 보호하고 있는 호국불교인 제석밀교를 없애기 위해 합리주의를 부르짖었다.
동양의 제왕과 제석밀교는 이들의 증기기관 과 기관총을 앞세운
민주주의와 합리주의에 의해 무너졌는데,
서세들이 동양왕권의 뿌리라고 생각한 것은 제석밀교였고
이들은 이뿌리를 완전히 썩게 만들고자 통일신라 때부터 발흥한
소승불교(비폭력 염세주의 불교)를 가공하여 가짜 불교를 만들어 내었다.
이 가짜불교(남한의 현대불교, 특별히는 동국대 불교학과)는
제석부천님을 지우고 부테(부처)를 佛陀로 음사하여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번역하여 카토릭의 천부(天父)를 하느님으로
동양에 인식케 하고 동양의 父天님은 (깨달은 사람)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를 비유로 정리하면 지차가 종가에 찾아와서
돈으로 하인과 이웃을 매수 한 후 사당으로 가서 신주를 들어
옛날에 청지기 하던 사람이라고 우기며 헛간에 갖다 버리고
자기들 조부 함자를 넣은 신위를 다시 만들어
사당에 모신 후 종가를 통째로 접수한 것 과 같다.
식민지 만드는 순서가 먼저 통상을 시작한다.
통상을 하다 보면 죽여야 할 반대편이 드러나게 된다.
반대편은 그때 제거하는 것이다. 이른바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그들의 神을 승자의 神으로 바꿔준다.
인간은 공포심 이후에 신을 믿으므로
전쟁이 아니고는 기존한 신을 바꿀 수 없다.
한국의 제석불교가
중국 남방불교(고타마)로 바뀐 것도 한국전쟁 이후이다.
1955년 한국정치에 민주주의가 생기고
불교계에도 태고종(제석불교)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조계종이 생겼다.
미군정이 동국대를 자기들이 가공한 고타마 불교를 포교할 승려들에게 넘겨 준 것이다
불(佛)을 지나 에서는 (밝)이라고 발음 한다.
그 밝을 한자로 쓰면 桓이고 人+天 이라고도 쓴다.
桓은 숲과 지평선에서 빛나는 태양이다.
환인님이 하늘 님이 되고 (ㄹ) 이 탈락하여 하느님이 된다.
라] 새거란의 이동
새거란(스기타이= 서가족)은 우랄 알타이에서 일직선으로 바이칼호 쪽을 향해 이동한다.
이동의 이유는 지각융기로 인한 사막화를 피하기 위함이다.
이들의 한 갈래는 베링해협을 건너 북미로 가고,
북미에서 다시 한 갈래가 남미까지 내려가 잉카가 된다.
바이칼에서 다시 한 무리가 남하하여 캄차카에 머물고
다시 일본열도와 한반도까지 내려와 정착 한다.
이 무리들 전체를 동이라고 하며,
우랄 알타이에서 서쪽으로 간 무리들을 서이라고 한다.
환국 12연방 중에 수밀국이 있었는데 이들이 서쪽으로 간 것이다.
이 서이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대원군은 이들을 양이라고 불렀다.
양이는 욕설이 아니다.
대원군은 자기 자신이 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양이라고 한 말은
서이들이 (싶)을 타고 바다를 통해 들어 왔다는 뜻이다.
서세들은 자기들 고향사람들이 후베이 성 한양(무한)까지 남하하여,
농노제로 남지나의 비옥한 농경지를 경작하며
왜인들로 하여금 어업에 종사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인도양을 항해하여 남지나해로 상륙한 것이다.
이씨조선의 북쪽으로 청나라가 있었는데 청나라 역시 조선과 같은 고향 출신들로
구성 된 나라이며 조선의 제후국이였다.
청은 금나라의 후신이지만 원/금/이조/청 모두 서가족이다.
이들은 모두 대장경을 호국부적으로 삼고 있는 나라인데,
이씨조선은 대장경 이외에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을 세조가 창작을 시작하여 세종까지 이어져 창작 했으며,
국립 간경도감을 두어 임금의 명으로 불경을 출판하였다.
석보상절 상권에는 서가세존을 “우리세존” 이라고 호칭하는데
자기 자신은 세종이고 태자는 세자이며 부천님은 세존이라 하였다.
간쑤 성 사막을 파헤치고 발굴한 선혜선인 벽화가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들었다.
일본이 한반도로 들어 올 때 가져 왔을 것이다.
석보상절 상권에서 말하기를 선혜선인은 서가무니의 전생인데
진흙땅에 머리카락을 풀어 연등불(가섭)께서 밝고 가시게 하였고,
그보다 더 전생에는 광치라는 이름의 도자기 장인으로 있을 때
그 당시 부천님 서가무니께서 등이 아프시자
아란존자가 광치에게 기름을 보시해달라고 찾아 왔다.
아란에게 부천님 서가무니가 등이 아프다는 말을 들은 광치가 직접 찾아가
서가무니 등에 기름을 발라 드렸다.
이 자리에서 서가무니가 광치의 소원을 묻자 광치는 서가무니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씀 드리자 서가무니불 께서 “광치가 후생에 서가무니가 된 다” 라고 예언수기 하셨는데
그 광치가 세조와 세종의 조상이고 이씨조선 의 서가무니 전생사 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혜선인이나 광치도사는 모두 새거란 서가무니의 전생이라는 말이다.
석보상절의 이 말대로 라면 우리가 배운 서가여래 일대기는
광치도사 당시(과거 성수劫 시기)의 서가무니 일대기이지
새거란 서가무니의 일대기가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새거란 서가무니의 일생은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다는 뜻이다.
선혜선인의 이러한 행적을 담은 그림은
간쑤성의 모래 속에 묻힌 여러 사찰의 벽화마다 그려져 있었다 한다.
간쑤성의 이 얘기는 서쪽으로 가서 기독교의 [기름 부은 자]가 되고
예언 수기는 말씀으로 이루는 창조주의 [로고스]가 된다.
북방불교의 교리는 삼매의 수행법으로 호흡으로 하는 호흡선이다.
이는 태우의 천왕의 조식수련법인데 感/息/觸 을 수행 한다.
이 수행을 통해 일체유심조를 통달하여 소원을 이루는 능력을 얻는다.
훗날 나타난 소승불교가 이를 벤치마킹 하여 감/식/촉을
근/경/식으로 바꾸어 열반을 성취하는 교리로 만들었다.
이러한 소승열반을 비판 하는 북방의 불교학을 화엄종이라 한다.
필자가 조선을 祖禪이라고 한 이유는
일곱 분의 칠성환인님인 혁거세 환인님(신라) 단인 하느님(웅족=단국) 등 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분은 새거란(서가족)의 서가제바환인이고
새거란의 문화는 솟대문화라는 것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이다.
禪은 솟대가 하나만 서있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기 때문이다.
보일 示는 木을 변형시켜 만든 글자이다.
示 는 베어 버린 나무로서 장대로 쓰는 나무이다.
장대는 바로 솟대인데, 이것을 세우는 이유는 성스러운 구역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禪을 터닦을 선이라 하는 이유는 龍山을 선택하여 수행도량을 잡을 때 솟대를 세우고
제일 먼저 천수경을 읽기 때문이다.
고요할 선이라 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단전호흡을 하기 때문이고
선양이라고 할 때는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올린 후
天君(텐군=단군)의 지위를 물려주었기 때문이며
福 이라는 글자에 보일시가 들어간 이유는 솟대가 있는 곳에서
장남에게 부동산 상속을 선언하고 공시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이 서쪽으로 가면서 디아스포라(神市)를 가지듯
새거란도 동쪽으로 이주하면서 신시를 만드는데
신시 한 가운데 위치한 제석샤만의 거처에 솟대를 세운다.
서쪽의 신시집단을 브라트야라고 하며 샤만을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제석샤만(사만=살만)은 동쪽 브라트야의 제사장이다.
동방의 브라트야 (새거란)들은 선발대 후발대 형식으로 계속하여 동진 한다.
선발대가 정착한 곳의 지명은 후발대가 찾아오기 쉽도록 같은 지명을 사용 한다.
이 때문에 지명은 사람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다.
바이칼 호수 의 부리아트들은 자기 들을 구리라고 하는데,
이는 아홉 동이족이라는 말이고,
고구려의 조직구성이 아홉 개의 동이족이기에
고구려라고 한 것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서가무니불의 아내 야수다라도 구리 족이였다.)
알타이(금산)가 중앙아시아에 지금도 있는데 동북삼성 위쪽을 관변 사학에서
알타이로 보는 것도 원 알타이 사람들이 그쪽으로 왔기 때문이다.
동쪽을 택한 브라트야들도 서쪽으로 간 브라트야 처럼
유목집단이며 동시에 신앙집단이며 단전호흡을 하는 수행자 집단 이였다.
이들은 자신의 안락과 접신을 위해 일곱가지 호흡법을 실행하였다 한다.
(인도의 선 중국의 선 ;아베쵸이츠. 저/최현각 옮김/민족사)
브라트야는 한반도로도 들어 왔는데 우리는 이 무리를 남사당으로 부른다.
한반도로 들어온 부라트야는 대부분 정착하여 농업에 종사한다.
정착하지 않은 브라트야 들은 국가가 정립되면서 무장해제 당한 후,
예술인(써커스) 과 악사 그리고 무당들을 데리고 전국을 떠돌아 다녔다.
우리가 남사당이라 부르는 이 단체가 지중해 쪽에서는 브라트야이다.
오늘날 우리는 남사당을 그냥 [딴다라]라고 부르며 천하게 여기지만
그들의 지도자는 거사님이라고 호칭되었고
거사는 불교의 재가중을 지도하는 지도자를 부르는 이름이다.
한반도로 들어와 정착농업을 하는 브라트야(새거란=서가족=남사당)들은
절(church)을 세우고 샤만을 두는데
남사당 중에서 한명을 선택하여 주지케하고
다른 남사당들은 떠돌다 가끔씩 찾아와 절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한다.
이것이 지중해 쪽에서는 교회의 원시형태이며
지나와 한반도에서는 사찰의 원시형태이다.
한반도 사찰들은 태고종(토속불교=제석밀교)으로 있다가
미군정에 의해 샤만들이 추방당하고 조계종으로 변환 되었지만
1970년대 까지는 조계종 승려들도 남사당의 전통을 이어 받아
수행자 집단에서 주지(住持 머물러 가진다)를 선출하여 사찰을 관리케 하고,
다른 사람들은 수행과 물자조달을 목적으로 유행(떠도는 것)하였다.
한반도의 자연 조건상 여름과 겨울은 안거(편안히 거주함)를 하고
봄과 가을엔 유행을 하는데 이 기간을 萬行기라고 하여
계율에 위배되지 않는 한 온갖 일들을 하여 자리이타를 실천하였다.
지금처럼 주지를 본사와 중앙총무원에서 임명한 것이 아니라
수행자 집단의 지도자인 조실(규모가 큰 단체는 방장)스님이 임명하는 한시직 이였으므로
주지직을 탐내지도 않았고 유랑선객들이 오면 숙식과 여비를 제공하는데 성심을 다 했는데
성심을 다한 이유는 자기 자신도 몇 개월 주지직이 끝나면
유랑선객 집단으로 귀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프차를 타고 너댓명씩 어우러져 다니면서
주지들한테 여비를 갈취하는 불량선객들이 나타나자
본말사 주지회의를 열어 유랑선객 제도를 없애 버렸다.
브라트야에서- 정착농경 으로- 정착지의 소도(솟대를 세운 사찰)건립-
사찰건립 후에 사찰에 소속되지 않는 브라트야는 남사당으로
이런 식으로 진행되던 새거란의 동이문화는 비폭력 염세주의 열반지향의 남방 소승불교를
이념으로 하는 조계종 출범으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한반도 사찰들은 이런 과정 속에서 시작 되었으나
일본의 강점기에는 일본인 주지승들이 차지하였고
일본이 물러간 후에는 문화재보호 라는 미명으로 조계종이 관리를 맡은 국가소유가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사찰 마당에 세워진 연혁 안내문 들은 그럴 듯하게 꾸며진 허구이다.
이승만 정권은 태고종과 지금의 조계종에 싸움을 붙여 막대한 법원수익을 얻은 후
조계종과 야합하여 사찰 부동산을 국유화 하였으며
이 과정 속에서 조계종은 입장권판매를 얻었고
서세는 제석신앙을 없애고 승려의 외모를 가진 개신교(서세에 의해 가공된 기독교) 신자를
불교 속에 침투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판사판공사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말을 이해하면 사찰역사를 이해 할 수 있다.
이판은 유랑선객이다 사찰의 큰방은 판도방이라 하여 공식행사에 쓰는 방이다.
유랑선객들은 흰 구름(백운)이라고 써진 곳에 서열순대로 줄지어 앉는데
이를 이판석이라고 한다.
주지 총무 재무 등 사찰 관리직들이 줄지어 앉는 곳은
푸른산(청산) 이라고 쓰여 진 자리로 사판석이다.
이 두 세력들이 이해타산을 따지는 등 모임을 갖는 것을 공사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산중 재판도 하는데 엄숙하고 살벌하였다.
그러므로 결단 나는 것을 이판사판공사판이라 하는 것이니,
이로써 사찰이 그 지역 정착민 브라트야들이 십시일반으로 세운 것이여서
개인 사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브라트야는 정식 브라흐만은 아니지만
브라흐만 들이 가주기 동안 부모 밑에서 학습하다가 결혼하여 자식을 얻으면
출가하여 숲에 머물면서 도를 닦는 임서기를 거치고
말년에는 방랑수도를 하는 유행기를 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 직업을 갖는 과정을
브라트야 들도 같이 했다는 점을 들어
한국의 불교와 남사당의 유래가 알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교의 범패와 농사 짓는 두레의 노동요가 흡사한 버전을 가지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며
흑인들이 부르는 흑인영가 역시 범패와 닮은 이유가
알타이에서 같이 살던 흑인들이 서쪽으로 갔다는 것이다.
칠성님의 후예들인 삼천명의 동남동녀가 흑수백산에 내려와
오색인종을 지상에 퍼트렸다는 한단고기의 기록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마] 동쪽에서 동이문화가 사라진 이유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여왜씨 그림이 감숙성에서 출토되고
에덴이라는 지명도 감숙성에 있는 것으로 보아
수밀이 국은 수미산(현 ;카일라스)근처에 있었다고 생각 한다.
히브리인들은 수메르 인들에게서 분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신으로부터 선택 된 백성이라는 초슨피플의 초슨은 조선일 가능성이 있다.
로마 쪽에서는 알타이를 동방이라고 하고 이란 이라크를 근동이라 부른다.
따라서 알타이에서 로마 쪽으로 간
히브리 유대교 힌두교 등 조로아스터 교 영역에 있는 종교들을 동방밀의 종교라고 하는데
동방밀의 종교란 다름 아닌 알타이 제석밀교이다.
그렇다면 제석불교의 서양식 사찰(절) 인 로마 카토릭이 무슨 이유로
자기들 天父를 내세우며 동양의 제석 父天(부테=불타)를 몰살시켰는가?
동방밀의 종교가 로마에 들어가자 로마 왕들은 긴장하게 되었다.
그 까닭은 동방밀의 종교는 디아스포라(神市)를 형성하는 정치집단이며 무장집단이기 때문이다.
2008년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처럼
디아스포라도 유능한 지도자의 훈령을 청종하는 종교단체인 것이다.
주술 무술 역술에 능통한 제사장(제석사만)이 로마왕 옆에 있게 되면
로마왕 들은 지위를 선양해야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 역시 동방밀의 종교이기에 박해를 받은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로마의 종교가 제석밀교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제석밀교가 제석부천을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여러 신을 같이 섬긴다면
로마교는 황제를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여러 신을 섬긴다는 것이 다르다.
로마의 잡신들이란 조왕신(부엌) 용왕신(샘이나 강) 산신 야신 성주신(가옥)등인데
이들 보다 황제가 더 높다는 신앙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방밀의 종교의 신시 집단이 접근해 갔으니
로마의 왕이나 황제들이 반가와 할 이유가 없었다.
예수님 승천 후 예수님 혼령은 막달라 마리아 등 예수님 제자들에게 내리시어
예수님 제자들은 사람의 병을 낫게 하는 신통력을 갖게 되었고
민중이 이들을 열렬히 환영 할수록 로마의 위정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로마의 왕 들은 동방밀교를 자기들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때마침 막달라와 헤게모니를 벌이고 있던 베드로를 이용하기로 한다.
베드로를 얻은 로마의 왕들은
예수를 神으로 인정하고 섬긴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신변의 안전을 구축한다.
이들은 신변안전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예수님을 얼굴마담으로 팔아먹는 로마 카토릭을 만든다.
로마 카토릭의 교리는 생전의 예수님 사상에 위반되는 것인데,
그것은 하느님의 독생자 예수, 삼위일체 의 예수,
인류의 원죄를 대속코자 오신 예수님 등을 새롭게 조작하는 것이였다.
이런 사상으로 국민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카토릭의 권위를 강화하여
영원히 국민의 지배자가 되는 게 이들의 목표인데
반동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신비주의 기독교이다.
막달라는 기도 속에서 예수의 혼령과 접신한 후 예수님의 능력을 받아
모든 사람이 예수님처럼 되는 것을 교단의 목표로 하였고
이 가르침은 생전의 예수님 소망 그 자체였다.
막달라 교단 은 로마카토릭 에게는 치명적인 반동이였고,
결국 세력이 월등한 로마 카토릭에 의해 막달라는 추방 당한다.
예수님의 신통력은 오직 로마 카토릭 전유물이어야 한다는 것이 로마카토릭의 사상이다.
이 사상이 차이나대륙 으로 오게 되면 차이나에는 널려 있는 게 예수님의 신통력이였다.
로마카토릭 입장에서는 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석불교가 지나대륙에서 서기 1800년대 말에 완전히 사라졌고
한반도에서는 서기 1955년 이후에 사라졌다.
출처 :주신(朝鮮) 원문보기 글쓴이 : 수적천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