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 이야기(2)/靑石 전성훈
4월 12일 사흗날, 오전 5시 45분에 일어나 아침 기도를 바치고 핸드폰으로 ’매일 미사‘를 찾아서 독서와 복음 말씀을 읽으며 묵상한다. 호텔 조식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오늘의 일정을 밟는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 침략군에 의해 강제로 가고시마에 끌려온 조선 도공과 그 후예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두 칸 기차를 타고 1시간 반 정도 간다. 히가시이치키(東市來)역에 내려 택시를 불러서 ‘심수관가마’를 찾아간다. 바람이 살살 불어서 조금 쌀쌀하지만 덥지 않아서 다행이다. 도공의 후예 중 도공으로서 일가를 이루어 심수관가마(沈壽官窯)를 창조해낸 빛나는 업적에 머리가 숙어진다. 우리나라 매스컴에도 보도되어 더욱 반가운 마음이다. 현재 이곳에는 심수관 16대손이 머물고 있으며 1년에 2회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옛날 방식으로 자기를 굽는다고 한다. 이 지역은 미야마(見山)지역으로 심수관가마 이외에도 10곳 가마에서 도자기 공예를 하고 있다. 도자기 고장 구경을 하면서 이러한 시골구석까지 우리나라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차를 타고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돌아와 역 부근에서 일본라멘 전문점을 찾아간다. 하가타라멘 전문점인 ‘키키’, 주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자세히 볼 기회를 얻어 흥미롭게 바라본다. 빈 그릇에 흑돼지 고기를 푹 삶은 뜨거운 국물을 넣고 그릇을 따뜻하게 데운다. 몇 분 동안 그렇게 한 다음, 빈 그릇에 담긴 육수를 끊는 육수통에 다시 집어넣는다. 그다음 뜨거운 육수를 그릇에 담고 돼지고기 몇 점과 생라멘을 넣고 그 위에 주문한 라멘 종류에 따라서 야채 혹은 김 등을 뿌려준다. 우리나라 튀긴 라면과는 달리 생라멘은 졸깃졸깃한 맛에 가느다란 국수의 풋 냄새가 조금 나는데 국물은 담백하다. 일본 라멘은 일본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숙소에 들어와 쉰다. 일정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자유여행의 특권이다. 저녁 무렵 메이지유신 시절 가고시마 출신 유신 후루사토관을 찾는다. ‘사이코 다카모리’는, 일본에서는 구국의 영웅이자 개혁 공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좋지 않은 인물로 기억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의 공신인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샤스마번의 인물인 ‘사이코 다카모리’는 메이지 유신 선봉장의 한 사람이자, 훗날 메이지 정부에 반역하여 대항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인물의 공적과 허물을 살펴서 그가 죽은 후에 공적을 기리는 일본인의 역사 인식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건국 토대를 만든 인물들에 대한 평가 방식이 너무나 다르다. 그 시대를 모르는 후대인이 좌파시각의 확증 편향적 사고에 매몰되어 그들의 입맛대로 역사적 인물을 비난하고 평가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저녁 식사는 정통 일본 ‘야끼니큐’인 일본식 불고기를 처음 먹어본다. 소 혓바닥, 소갈비, 호르몬(내장), 그리고 등심까지 입맛에 맞아서 다행이다. 야채를 별도로 주문하는 게 불편했지만, 이것 역시 일본 음식점 풍습이라 여기고 사케를 마시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4월 13일 나흗날, 어제 낮과 저녁에 커피를 마신 탓에 잠이 오지 않아서 거의 비몽사몽 상태로 밤을 지새웠다. 비가 뿌리는 날씨인데 오늘 일정에 차질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고시마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한다. 태평양을 바라보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다. 비가 뿌리고 안개가 끼어 차창 밖 풍경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는 화물선 여러 척 떠 있다. 화장실이 딸린 두 칸 기차는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다. 목적지 이부스키(指宿)역에 내려보니 모래를 즐기라는(砂樂) 표현이 눈에 들어온다. 구덩이를 판 백사장에 누워 모래찜질하는 체험이다. 검은 모래 위에 누우면 종업원이 삽으로 모래를 온몸에 덮어 얼굴만 빼꼼히 내놓는다. 뜨거운 모래의 열기는 견딜 만하여 눈을 감고 있으니까 스르르 잠이 온다. 종업원은 약 10분 정도 찜질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25분 정도 즐긴다.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달라, 뜨거운 모래와 무게 때문에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모래 온도가 잘 맞고 기분이 좋아져 정말 좋은 체험이다. 모래찜질 후에 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뜨거운 탕에서 피로를 푼다. 비용은 찜질과 사우나를 합하여 1인당 1100엔,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여서 전혀 부담이 없다.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참으로 유감이다. 찜질과 목욕을 하고 나니 허기가 올라와 택시를 타고 소바 전문점에 가서 소바와 튀김을 맛있게 먹는다. 배가 불러 느긋한 마음으로 택시를 불러서 일본 열도 JR 마지막 역인 니시오오야마(西大山) 간이역 구경을 하러 간다. 살짝 비가 뿌리는 가운데 10여 명의 관광객이 모여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일정을 마무리하고 기차를 타고 다시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돌아온다. 저녁에는 닭꼬치요리 전문점에 들려 식사를 하면서 여행이 끝나감을 아쉬워한다. 아기사슴을 닮은 섬이라는 가고시마(鹿児島)여행, 정성을 다하여 프로그램을 짜고 안내를 해주신 선배 그리고 함께한 옛 동료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행 중 맛보는 음식이 중복되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해 준 선배님에게 다시 한번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4월 14일 집으로 가는 날, 호텔에서의 마지막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가고시마 공항으로 떠난다. 간단히 출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면세점에 들려서 가족에게 줄 선물인 과자 ‘하얀 연인“을 산다. 여행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짧은 4박 5일 일정을 잘 마치고 아무 탈 없이 돌아가니 다행이다. 낯선 고장의 풍경을 보고 그곳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맛있는 향토 음식을 먹는 게 여행의 즐거움이다. 나와 우리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웃 나라 사람들에게서 인간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본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사는 모습만이 옳고 유일한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고 배운다. 자연과 더불어 다양하게 사는 모습을 여행지에서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행지에서 느끼고 배운 삶의 자세를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이라도 표현할 수 있다면, 더욱 값지고 보람 있는 여행의 결과가 될지도 모르겠다. (202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