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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를 알아야 천국에 들어갑니다.(2)
고전 10:31
(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지난 7월 둘째 주 동명의 설교에 이어지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이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솔직하게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에 천국에 가고 싶다면,
또는 현재 누리고 있는 인생의 달콤함을 천국에 들어가서도 계속 이어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어서 천국에 들어가고 싶다면
그 인생의 초점은 오직 자기 자신, 정확히는 자신의 육신적인 즐거움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서
안타깝게도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천국에 모든 소망을 두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천국에 들어가게 될 사람들로서
인생의 씁쓸한 고난에도 속지 않고, 인생의 달콤한 쾌락에도 속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라는 것이 확실하기만 하면 고난을 경험할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시간과 돈은 물론 생명도 아낌없이 기쁘게 드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하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적인 인생이 되기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성공,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고 자존감을 높여줄 많은 돈,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유명세와 명예 등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얻기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또는 남들을 다 제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며,
많은 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뭐든지 할 것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원하는 대로 포장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봐주고 동경해주기를 바라며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면서 자신을 홍보합니다.
요 6:27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기독교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적으로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면서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을 기도제목으로 삼으며, 최우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영향력이 있어야 복음도 전하는 것이다.” 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포장하는데
복음에 대한 그 열정이 진심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열심히 복음을 전하겠지만
지금은 영향력을 얻기 전이라면서 복음을 전할 생각이 없거나 간혹 전하더라도 형식적, 제한적이고,
나중에 영향력이 생겼을 땐 초심을 버리고 결국 그것으로 돈벌이를 삼는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즉 자신의 진짜 목적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세상적인 성공과 영향력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뒷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합니다.
단적인 예로 청년부 예배, 기도회에 가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기도제목과
청년부 목사들이 하는 축복이 “우리 교회 청년들이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대기업의 CEO, 국회위원 등의 사회지도층이 되게 해 달라.“ 는 내용, 더불어 취업 잘하고,
결혼 잘하고, 각종 국가고시 합격을 요구(?)하는 기도(가 아닌 세상적인 욕망)로 가득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은 그런 육신적인 내용의
기도도 아닌 기도에 아무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오히려 간절히 소망하며 “주여! 주여! 아멘! 아멘!” 을 외친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형교회들, 장자교단/대형교단이라며 자랑하는 교회들의
청년부 기도회에 가보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장년들이 모인 기도회도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요 6:26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가치관 가장 높은 자리에 두고
오직 그것을 얻기 위해 열심을 내며 살아갑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가치관 최상위에 있는 야망과 탐심을 남들에게서 숨기기 위해
‘복음을 위해서’ 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숨기는 것에 탁월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까지도 속여
자신이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부유해지길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라고 굳게 믿습니다.
아직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린 청소년들은
아직은 세상적인 성공 같은 것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순수한 것도 아니고, 오염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하교 후, 혹은 주말에 친구들과 어울려서 세상적인 쾌락을 즐기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이나 스마트폰에 몰두하거나
심지어 음란물을 보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지겹고 힘들다고 생각하는 시간(공부 시간)을 버티는 원동력이 바로
세상 쾌락을 즐기게 될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사실에 스스로 고개를 끄덕일 것입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런 청소년들이
나중에 계속해서 쾌락을 꾸준히 즐기려면 돈도 필요하고, 직업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그들도 똑같이 세상적인 성공, 혹은 돈벌이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친구들보다 정신적으로 빨리 성숙해져서 생각이 깊은 청소년들은
이러한 세상의 규칙을 빨리 깨달아서 장래에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의도로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대부분이 결국 육신적인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시키실지 아직은 모르지만
뭔가를 명령하셨을 때에 뭐든지 무리 없이 잘 순종할 수 있도록 미리 열심히 공부해두고,
몸도 건강해야 기도와 순종도 잘 할 수 있다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위해 운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청소년들은
정말 희귀한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어릴 때부터 세상과 구별된 이런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정말로 귀하게 사용하실 것이 분명하기에 장래가 기대됩니다.
어른들도 인생에서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세상의 육신적인 모든 것들이 결국 다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오직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하루, 하루 열심히 인생을 사는 분들도
정말로 만나 뵙기 힘든 귀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히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확정되실 것입니다.
고후 13:5
(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오늘날 결국 청소년들이나, 성인들이나 다를 바 없이
세상적인 성공과 돈과 쾌락과 유명세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우리 중에 그런 마음이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철저하게 점검해봐야 할 때입니다.
목사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오랜 기간 신학을 공부하고, 어려운 목사고시를 통과하여 목사안수를 받은 후에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무엇을 명하시든지 순종하는 이들은 정말로 극소수에 불과하고,
그동안 노력한 수고의 대가를 회수(?)하려는 심리,
신학생 시절, 전도사 시절, 개척교회 시절 동안 가난하게 고생한 것을 만회하려는 심리로
대형교회가 되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합니다.
교회가 커질수록(성도가 많아지고 건물이 커질수록) 즐거워하며,
입이 간질간질하여 주변 목사들에게도 자랑을 하기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한 달에 고정으로 들어오는 헌금만 얼마라면서
공개적인 장소에서 액수까지 당당히 공개하며 우쭐댑니다.
그렇게 중/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된 자들은 가난한 교회 목사들에게는 말도 걸지 않으며,
노회에서 앉는 자리도 따로 마련합니다.
그리고 다시 교회에 돌아가면 지극히 거룩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돌아가
설교로 성도들의 기분을 좋게 하면서 ‘교회건물유지관리인’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따라서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이
여기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누구, 누구 할 것 없이 저와 여러분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세상을 향한 욕심과 바람과 야망 등이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크든지, 작든지 누구나 세상을 향한 육신적인 욕망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즉 누가 어떻다더라 하며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우리는 모두 키가 비슷한 도토리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더욱 특별하게 유심히 살펴봐야 할 부분은
이 육신적인 욕망의 마음을 천국까지 이어가려는 마음도 존재한다는 무서운 사실입니다.
천국에서 높은 자리에 앉고, 천국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왕 노릇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오늘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마 20:20-24
(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 19:27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나중에 왕이 되시면
자신들도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기대심리로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은 아예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혀 달라는 청탁을 했습니다.
이 청탁에 대해 나머지 10명의 제자들이 분히 여겼다는 사실로 미루어보아
제자들 모두가 세상적인 욕망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이 증명됩니다.
더불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를 외치던 그 많은 군중들 역시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민족을 해방시키며 강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기대로 예수님을 환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의 육신적인 기대와는 다르다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괴성을 질렀습니다.
그 중에 예수님 말씀의 진리를 깨달은 영적인 사람은 없었던 것입니다.
요 6:5-15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나눠주시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은 큰 무리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집중하기보다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즐거워하며
“저 분을 우리의 왕으로 삼으면 지금처럼 배고프지 않고 평생 배부르게 밥을 먹겠구나.” 하면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육신적인 마음을 이미 간파하셨기에 홀로 산으로 떠나가신 겁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표적을 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깨달아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신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기에
이들도 역시 욕망을 원동력으로 하여 움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당시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해주시는 진리의 말씀들을 제대로 알아듣는 이가 없고,
제자들마저 한 자리 차지해보려는 속셈으로, 또 한 사람은 팔아먹으려는 속셈으로
제자인척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셨을 때,
즉 영적인 사람은 한 명도 없이 그저 육신적인 욕망을 따라 움직이는 자들 사이에서
예수님만 홀로 영적인 분이셨습니다.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배를 불리고,
사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할 돈을 소유하고,
사람들 앞에서 무시 안 당하고, 인정받고 높임 받고 싶은 욕망을 채우기 위한 인생을 살다가
천국에 가서도 높은 자리에 앉고, 영원히 행복하게 왕 노릇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을 원동력삼아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도 결국 오직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난 설교에서도 강조되었던 것처럼
이 땅에서의 인생은 이미 틀린 것 같고 천국에라도 가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역시 육신적인 욕망에 초점을 맞춘 가치관입니다.
이 땅에서의 욕심은 이제 다 내려놓았기에 세상적인 미련이 전혀 없고,
오직 천국에 방금과 같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도
높아지는 장소가 현세냐, 내세냐의 차이일 뿐
똑같은 육신적인 욕망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는 것이 나쁩니까?” 라며 반문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천국에 소망을 둔다는 말의 의미는
그곳에 있는 좋은 것들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해주신, 죽어 마땅한 자신을 대신하여 죄를 지시고 대신 제물이 되어 죽어주신
예수님께 모든 소망을 두는 것이기에
그런 질문 자체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서가 아니라
천국에 가야 영원히 행복할 것 같아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천국에 자신의 모든 소망을 두고 있어도 결국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마 22:37-40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았기에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최고로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강조하여 말씀해주신 가장 큰 첫째 계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중요한 첫째 계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로서 당연히 천국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영적인 존재로 산다는 것은 자신을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을
나도 가장 사랑하기에 사랑하는 하나님과 마음이 합해져서
모든 영혼을(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들의 영혼마저도 사랑하여 비록 그들의 행위는 악하지만
부디 늦지 않게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중보기도 하는 것이 원수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중보기도 하여 그 기도가 응답되면
그 원수들도 나중에 천국에서 미안해하며 영원토록 고마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천국에서 영원히 누릴 것들에 나의 모든 소망을 두었다면서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 ‘더러워도 좀만 참자...어휴’ 하면서 견디는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하나님과 뜻이 같은 자로서
하나님과 서로 영원히 사랑하며 함께 살게 될 가족이지
자기 자신이 누리게 될 것들을 가장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 눈에 들어서 천국에 들어가 보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자”가 많은 곳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눅 13:23-28
(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진리를 깨달은 자들은 가치관 자체가 다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실까?’ 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생각도, 말도, 행동도 마음중심에 자기 자신이 있는 이들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은 ‘나를 영원히 행복하게 해줄 곳’ 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계신 바로 그 곳’ 이기에
예를 들어 만약(그럴 리는 없지만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함께 지옥으로 가자.” 하셔도
그곳을 바로 천국으로 인식하며 “네! 주님!” 하며
즉시 따라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견딜 수 있고,
예수님을 위해서라는 것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억지로 희생과 목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 알기에 믿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가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 마음이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들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완전히 솔직하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즉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십시다.
내가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가?
만약 천국이 힘든 곳이라고 해도 들어가고 싶은 것이 맞는가?
그동안 내가 바라고 있던 내가 누리고 싶어 하는 모든 좋은 것들이 천국에 없고
만약 다른 곳에 있다면 그래도 예수님이 계신 천국으로 가고 싶은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적인 성공인가? 돈인가? 명예인가?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유명세인가? 배부르고 안전하고 안락한 휴식인가?
천국에서 영원히 왕노릇 할 것을 위해 지금은 더러워도 꾹 참고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천국 혹은 지옥 두 군데 밖에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나아보이는 천국에 가기 위해
솔직히 귀찮지만 억지로라도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닌가?
나를 먼저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진심으로 깨달았기에
이제는 나도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여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나님께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마음 가치관 최상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 그 어떤 좋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보다는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이 될 사람들을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설교의 내용은
인간이 움직이는 이유, 저와 여러분들의 인생의 근본적인 얘기입니다.
사람마다 다 원하는 것이 있고, 그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움직입니다.
그 중에는 육신적인 것(세상적인 것)도, 영적인 것도 있는데
우리도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거하는 존재이기에 육신적인 것이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누구나 매일 정상적인 식사를 하고 싶고, 안전한 집에 살고 싶고,
몇 년에 한 번은 새 옷도 사 입고 싶고,
이 무더운 여름에 선풍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전기료를 낼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싶고,
에어컨을 구매하고 유지할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도 갖고 싶어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싶어 하고,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 지금보다 더 큰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인간적인 자연스러운 욕망 자체가 전부 다 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열심히 움직이게 하는 각 사람의 원동력이 무엇이냐에 대한 주제입니다.
마지막 때라면서 육신적인 것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다 때려치우고 계속해서 말씀과 기도만 하라는
어떤 사이비 교주의 어리석은 주장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인생을 열심히 살되 그 열심의 목적이 육신적인가, 아니면 영적인가를
우리가 스스로 점검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요 6:63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인 것들에 대한 내용인데
그 말씀을 듣는 청중들은 계속해서 육신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는 있지만 주제가 정반대인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말씀을 묵상할 때에 지금 읽고 있는 이 말씀이
영적인 것에 대한 내용임을 알지 못한 채
육신적인 것에 대입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자신이 그런 세상적인 욕망, 육신적인 것들을 천국에까지 연결하여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천국에서 누릴 것들에 대한 기대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하나님보다 자신의 욕망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솔직하고 진지하게 점검해보아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기에
최우선으로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객관적으로 점검해보십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 어떤 것보다 귀하게 여기며, 경외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태도, 올리는 예물을 보면 어느 정도는 스스로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고,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며 반문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온다는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이 어떠한가에 따라 예배를 드리는 태도와 예물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에 크게 하품을 하고, 엎드려 있고, 코를 후비고, 손톱정리를 하거나
다리를 꼬거나 덜덜 떨고 있는 등 불손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겉으로는 정성스레 예배를 드리는 듯 보이지만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은 어서 빨리 예배가 끝나고 세상 쾌락을 즐길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역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이 맞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자신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절대로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예를 들어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것 같은 사람이
조폭 앞에서는 ‘분노조절잘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취미생활에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몇 만원, 몇 십 만원은 쉽게 쓰면서
하나님께 예물을 올릴 때에는 인색한 마음으로 아까워하며 100원, 1천원, 5천원.. 이렇게 한다면
그 마음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길바닥에 100원이 떨어져 있어도 더럽다며 줍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는 100원을 드린다면 과연 그 마음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일까요?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과부의 두 렙돈은 비록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적은 액수였지만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은 예물(생활비 전부)을 올렸다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하나님께 예물을 올릴 때에는 얼마를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표현하는 액수가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자발적이며, 아낌없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올려드려야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도 보시고,
동시에 행위도 보시는 분이기에 결코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그 무엇보다 귀하게 생각하고, 가치관 최상위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인생을 살고 있고,
천국에 들어가고 싶은 이유 또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싶어서가 확실하다면
우리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을 누리고 있는 복된 자들이며,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몇 안 되는 개체들로서
머지않아 하나님의 영원한 가족으로 확정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의 내용을 깊이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진지하게 점검하여
회개하고 돌이킬 것이 있는 이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고,
오염된 부분이 있는 이들은 다시금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다시 정케 되시며,
변화되고 성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이들은
성령 하나님께서 충만히 임해주셔서 도와주시며, 친히 인도해주시기를 간절히 간구 드리십시다.
그리고 간구한대로 순종하십시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날들을 후회 없이, 영적으로 안전하게 보내다가
예수님께서 다시 와주시는 날을 모두 기쁘게 맞이하십시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스스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점검해봄으로서
나를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지,
과연 내가 천국에 가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금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괜찮은지,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괜찮은지 생각해봄으로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들 중에
저와 여러분들이 반드시 포함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 4:23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고후 9:7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2.07.31.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475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1. 이 세상은 요란하나 내 마음은 늘 편하다 구주의 뜻 준행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2. 이 세상은 늘 변하고 험악한 일 참 많으나 주 은혜만 생각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3. 육신의 눈 못볼 때에 신령한 눈 곧 밝히사 저 천성문 보게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4. 내 마음과 내 영혼이 모든 욕심 다 버리고 주 은혜로 성결하니 참 기쁜 복 내 것일세
5. 이 육신의 복락보다 신령한 복 더 좋으니 내 맘과 뜻 다 합하여 저 천성만 향해가네
첫댓글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다시한번 깊이 제 진심을 점검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기에
계속 간구하며 나아 가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부족하고 연약하니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새롭게 공급을 받고
성령님께서 친히 인도해주시기를 간구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늘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계속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아멘아멘아멘.!
오직 예수님만으로 만족하며 행복하게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