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 학과가 발간하는 월간 '러시아CIS 토크' (Russia-CIS Talk)는 새해 첫 호(2026년 1월호, https://ruscis.hufs.ac.kr)에서 러시아가 동남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 여기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피면서 중국과 비교 분석했다. 박상진씨(석사 과정, 러시아·CIS 정치 전공)가 쓴 '러시아-베트남 관계의 경로의존성:러-중 관계와 러-베트남 관계 비교'다. 소개한다/편집자
**본 칼럼은 저자 개인의 의견이며, 학과와 바이러시아(www.buyrussia21.com)의 공식 견해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동방으로의 전환’과 베트남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는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비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전례 없이 강화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코지레프 외무장관 시기, 러시아의 대외 정책은 서방 주도의 세계질서로 편입을 지향했으나, 이 정책이 실패한 후 옐친 전 대통령이 프리마코프를 외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친(親)서방 정책에서 벗어나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동방으로의 전환’(Pivot to the East)이며, 이 때부터 러시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국가와 관계 강화를 도모했다. ‘동방으로의 전환’이 시작된 시기에 중국이 주요 외교 대상으로 지목되었으나, 베트남도 관계 강화 대상이 된 주요 국가 중 하나였다.
◇소련-베트남 관계의 형성과 발전
베트남은 독립 과정에서 소련으로부터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베트남 통일 이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호찌민(Hồ Chí Minh)이 1923년 소련을 처음 방문한 후, 소련은 베트남의 독립·전쟁·통일·건국 과정(1945년 9월 하노이에서 독립 선언→1946년 대(對)프랑스 독립전쟁·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54년 프랑스 철수, 남북 베트남 분단→1955년 남베트남공화국 수립→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출범·베트남 통일/편집자)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1945년 독립 선언이후 북베트남(통칭 베트콩)은 줄곧 소련과 강한 우호 관계를 형성하며 정치·군사·경제 부문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3차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독립 전쟁및 통일 전쟁)에서 소련의 전폭적인 지원은 베트남이 국제사회에서 소련과 유례없는 긴밀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베트남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미국과는 달리, 소련은 처음부터 베트남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베트남과의 관계 증진이 특별한 이익으로 인식되지 않았고, 베트남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세력권에 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군의 (북베트남) 폭격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소련 폭격을 연상시키면서 소련 측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코시긴 소련 총리가 하노이에 머물고 있을 때에도 미국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폭격을 감행했다. 소련으로서는 심한 모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소련은 남베트남·미국과의 전쟁은 물론, 캄보디아 및 중국과의 전쟁에서도 북베트남 측을 적극 지원했다. 이에 베트남은 (통일 후) 소련에 미군으로부터 노획한 최신 군사 장비들을 넘겨주고 깜란 해군기지를 대여하는 등의 방법으로 보답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련은 동남아시아에서 베트남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을 확보했다.
베트남 호치민시 도심에 있는 호치민 동상/바이러 자료사진
◇적대적으로 바뀐 소련-중국 관계
소련의 대(對)아시아 정책에서 베트남보다 먼저 주목해야 할 국가는 중국이다. 소련은 '중화인민공화국'(한때 중공으로 불렸다/편집자) 건국 직후인 1950년 중국과 우호 관계를 형성했고, 이후 군사, 경제, 문화 등 전방위에서 협력을 발전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우호 관계는 1956년에 개최된 제20차 소련공산당 당대회를 계기로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련 최고 지도자 흐루쇼프 공산당 제1서기는 전임자인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는데, 이는 곧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스탈린에 대한 소련 새 지도부의 비판이 즉각적으로 중국과의 관계 단절을 초래한 것은 아니었고, 기본적인 협력 관계는 유지되었다. 하지만 1967년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중-소 간의 실용적 협력마저 끊어졌다. 이어 1969년 충돌한 국경분쟁으로 양국은 사실상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이같은 관계는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이 1989년 중국을 방문해 화해 선언을 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탈냉전기 러시아-베트남 관계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러시아는 베트남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했다. 푸틴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인 2000년 9월 러시아는 110억 달러에 달하는 베트남의 대(對)소련 국가채무 중 90억 달러를 탕감해주면서,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를 시작했다.
베트남은 남중국해 영토 분쟁으로 중국과 대립하고 있는데, 러시아는 중국과의 공고한 협력관계에도 불구하고, 영토 분쟁에서 중국의 편에 서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위기(전쟁) 발발 이후에도 러시아와 베트남 간에 다양한 협력이 이루어진 근본적인 이유다.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베트남 간 자유무역지대 창설 협정 체결, 2014년 11월 러시아-베트남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러시아 함정의 깜란항 접근 절차 간소화 등이 대표적이다.
탈(脫)냉전 시절 베트남은 소련의 지원이 중단되면서,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경제적 영향에 노출되었지만, 여전히 미-러 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베트남은 중국과 영토 분쟁을 고려해 군사력 증강을 추진 중이다. 이같은 경제적·군사적 주변 정세는 러시아가 베트남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협력과 긴장이 병존하는 러-중 관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 시절, 러시아는 세계질서의 다극화 정책 기조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 이후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브릭스(BRICS)의 창설과 발전은 러시아가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서방과의 경쟁을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하지만 양국은 제도적인 군사 동맹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SCO 회원국들과의 군사 협력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와 같은 러시아 주도의 안보기구와 장기적 협력을 제도화하는 것을 꺼린다. 2007년 8월에는 CSTO와 SCO의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는 러시아의 구상이 중국에 의해 거부되기도 했다. 이는 양국 관계에 여전히 긴장이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일원의 구소련 지역을 ‘근외’ 지역으로 규정하면서, 역내 패권국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력권으로 편입할 뜻을 분명히했다. 따라서 무역과 투자를 통해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중국의 시도는 앞으로 러시아의 영향력을 잠식하면서 양국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베트남 협력, 계속될 일만 남았나?
2023년 4월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체르니셴코 러시아 부총리와의 면담에서 서방의 대(對)러 제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듬해(2024년) 6월 베트남 방문에서 최고 지도자인 또럼 공산당 서기장과 15개에 달하는 다양한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베트남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인식은 복합적이다.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양국 모두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21%와 6%는 각각 베트남과 러시아에만 이익이 되고, 5%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또 2024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 어디인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7%만이 베트남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반전의 여지는 있다.
2020년 헌법 개정 이후 러시아는 소련에 대한 기억 정치를 외교 활동과 연계하는 행보를 보여왔는데, 푸틴 대통령은 전승절 80주년(2025년 5월 9일) 기념 행사에 참석한 또럼 서기장에게 "양국의 우정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근원을 두고 있다"며 "베트남의 참전은 양국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위기로 서방 진영과의 관계가 악화하면서, 러시아는 소련과 동맹 관계에 있던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련 시절에 얻은 역사적 경험은 러시아가 베트남을 아시아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간주하도록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