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매지 않는다
영천시 가족센터 팀장 / 박윤남 글라라
스무 살 남짓 어린 나이부터 시어머니와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왔지만 얼굴에는 늘 미소가 가득한 분, 남편의
전혼 자녀를 친자녀처럼 보듬어 키워내 군 입대 후 첫 훈련을 마친 자녀를 만나고 와서 "기특하게 훈련을 잘 마쳤어요.
"라고 말하며 대견함에 눈시울을 붉히시는 분, 남편만 바라보고 낯선 한국 땅에 용감히 첫 발을 내디디며 지역 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는 분 등등.. 각양각생의 특별한 가족 이야기로 가득한 이곳은 건강한 가정을
지향하며 사람과 사랑으로 함께하고 있는 "영천시 가족센터"입니다. 시대와 사회의 급속한 변화로 가족의 정의와 형태
가 다양해지면서 동시에 복잡하고 복합적인 가족문제도 함께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는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
하는 가족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그중에서도 한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지 15년 된 아리아(필리핀), 가명)씨는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진학에 필요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찾았습니다. 사실 2년 전만 해도 아리아씨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실직과 허리 부상으로 인한 장기간의 병원 신세로 가족 전체가 불안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고비를 넘기게 되었으나, 아리아씨는 자신의 가족과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마침 가족센터에서 추천해 준 이중언어강사 일자리에 용기를 내어 신천한 아리아씨는 올해부터 영천에 있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복지관 등에서 다문화 인식강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엄마를 부끄러워하던
아리아씨의 자녀들도 당당하게 강사로 활동하는 엄마를 보고 이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이중언어강사고 새로운
삶의 결실을 맺게 된 아리아씨는 처음 한국에 와서 힘들 때 도움을 주었던 가족센터 직원들처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삶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절망에 빠져있을 때 자칫하면 모든 걸 포기하고 내려놓는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고통에 짓눌려 쓰러져 있을
때 누군가의 격려 한마디나 흘러가는 노랫가락, 혹은 따스한 밥 한 끼가 그동안의 아픔을 낫게해주고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치 절망 속에 엠마오로 걸어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두 제자의 기쁨처럼 말이지요.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루카 6,43).'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가족센터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봄날의 민들레와
같습니다. 지금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만 짓밟혀도 곧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봄날의 민들레처럼, 곧 튼튼한 뿌리를
내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이내 좋은 향기까지 내뿜으리라 믿습니다.
저희는 이렇게 고난 가운데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가정, 한 사람에게 따스한 동반자가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이 길을 함께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