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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8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 변한규 목사
본문 말씀 5절에는 하나님의 세 마디 말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또 하나는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하나는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그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영국 런던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웨슬레 형제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평소에 그가 좋아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글귀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죽기 전에 손을 높이 들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성도님들과 저를 결코 버리시지 아니하십니다. 따라서 지금도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6절에 보면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고 했고
7절에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여 극히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9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여호수아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주신 소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그리고 다음 세대의 일군 여호수아에게 격려하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죽었다는 말은 우리와 결코 무관될 수 없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지도해왔던 모세가 죽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꽃이 떨어진 것은 결단코 슬픔만은 아닙니다. 열매를 가져오는 결실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여호수아도 죽게 될 것이고 우리 모두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아마 금년에 그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고 또 이별을 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다고 했고 모든 영화도 그 풀의 꽃과 같다고 했으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고달픈 인생살이에 지친 우리 모두를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환경이 그렇고 실존의 의미가 그렇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지 아니하면 낙오자 인생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왜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
5절에 "내가 내 종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출3:12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과 같이 모세가 바로 앞에 섰을 때에도 하나님은 함께 하셨고 홍해 앞에 섰을 때에도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원망과 고통 가운데서도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40년 광야의 고난 속에서도 모세와 함께 하신 하나님. 뿐만 아니라 모세와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 어려움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험한 세상이고 죄악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 가지고 2001년을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꿈속에서라도 부를 찬송이 있는데 "두려울 것 없겠네.."입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우리의 인생을 승리키를 소원합니다. 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해야할 이유가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지 아니하시기 때문.
찬송가에 보면 "주 떠나가시면 내 생명 헛되네.." 이 내용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떠나시면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내 생명마저 마르는 풀처럼 되고 맙니다. 영원한 생명을 결코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야곱과도 약속했습니다.
창28:15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 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약속대로 야곱이 20년 동안 객지에서 나그네 생활을 했는데 하나님은 결코 야곱을 떠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을 그대로 지키신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약속을 믿고서 그 믿음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야곱과 하나님, 하나님과 야곱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믿는 성도들과의 관계인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 붙잡고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할 수 있었습니다. 환난 속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고 옥중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해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금년에도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네 곁에서 너를 지키시리라"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경우를 보십시오. 사장의 굴속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사
자가 다니엘을 물지 못했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떨어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으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했습니다.
찬송작가 마틴이 찬송합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
이것이 우리의 기도여야 하고 찬송이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생활하시겠다, 지켜주시겠다, 사랑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걱정할 것없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할 것 없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1년을 살아갈 때에 사랑하는 성도여,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7절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있어야한다는 말입니다.
그 믿음은 논리가 아니고 행동이며 실천입니다.
십계명을 지켜 행하는 실천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고 부모를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입니다. 어떠한 믿음입니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는 믿음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은 탈선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기차가 철로에서 탈선하면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는 성도들에게 기차의 철로와도 같습니다.
인생이 이 말씀에서 탈선하면 어찌됩니까? 지옥의 낭떠러지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물동이로 물을 길러 날랐습니다.
여인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갈 때 지켜야 될 행동원칙이 둘입니다.
하나는 앞을 보고 똑바로 가야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눈 팔고 곁눈 팔면 되는 것이 없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합니다. 믿음생활도 꼭 같습니다.
목적지까지 이르려면 좌로 우로 치우치지 말아야합니다.
그런데 주변의 유혹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단사설이 얼마나 많은 유혹의 미소를 던집니까. 그때에 넘어지는 성도들이 종종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양의 가죽 을 입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속은 노략질하는 이리입니다.
이단자들의 특징
특정한 인물을 절대화시키고 신성시함
교묘한 방법으로 금품을 끌어냄
가정을 분리시키고 기성교회로부터 떠나게 함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고 교묘하게 가르침
한 번 끌어낸 자를 끝까지 얽어매는 술책을 씀
본문 8절이 말합니다. "율법을 다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했습니다.
이 말씀만 주신 것 아닙니다. 축복도 약속하셨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네가 형통하리라"
그런데 어떤 것이 형통의 축복입니까?
본문 9절입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 그것이 형통의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 되었더라"
창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그 형통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요셉이 죄수복을 입고 옥중에서 복역중인데 하나님께서 옥중까지 심방하셔서 요셉과 함께하시매 죄수복 입은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의 형통이 아닙니까.
다윗의 경우를 보십시오.
양치는 목동에 지나지 아니했습니다. 전투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매 거인 골리앗을 물맷돌가지고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 바로 이것입니다.
삼하8:6,14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윗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다윗이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길 수 없는 형편인 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능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고 이것이 다윗의 형통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형통의 비결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입니다.
한해를 살 때에 우리 앞에 어찌 요단강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단강을 뗏목 타고 건너려하지 말고 우리는 건너는 비결을 배워야 합니다. 언약궤를 메고 믿음으로 건너는 강인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의심의 강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건너야 할 것이고 공포의 강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시험의 강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결코 버리지를 아니하십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미움의 강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 앞에 어찌 여리고 성이 있을 수 없겠습니까.
그런데 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습니까? 일곱 번 돌고 함성을 질렀더니 무너졌습니다. 성벽을 돈다고 무너지는 성을 보았습니까? 함성을 지른다고 무너지는 큰 성을 본 일이 있습니까? 여리고성은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너뜨릴 수 없는 도성입니다. 결국 믿음으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의 성이 있습니까?
인력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무너져야합니다.
탐심, 근심, 걱정, 염려, 불안, 초조의 성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이 성들을 무너뜨려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성도들에게는 전진만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에 누릴 수 있는 축복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가 없으리니" 당할 자가 없으리니 했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살펴보면 아무도 모세를 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 바로의 군대, 광야를 통과할 때에 아모리 족속, 이스라엘을 못살게 굴었던 아말렉 군대도 모세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모세에게 힘이 있었기 때문? 전법이 특별했기 때문?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전쟁, 물을 건널 때에도, 적군과 싸울 때에도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셨습니다. 떠난 적이 없습니다. 불꽃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계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 마귀를 무찌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롬8:31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대적할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모세나 여호수아나 바울은 어떤 존재입니까?
무쇠요 강철인생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우리와 꼭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귀가 그들을 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마귀가 당해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승리는 그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려합니다.
우리의 배경이 누구입니까?
누가 우리와 함께 하십니까?
1년을 살아 갈 때에 고달플 것입니다.
많은 문제와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그때마다 우리를 사랑하시매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문제가 따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이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축복을 생산해 낼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천하장사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 중풍병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까?
믿음으로 이적을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믿음은 성공의 자본, 밑천, 방법입니다.
따라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그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중풍병자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중풍병자를 보십시오. 올 때에는 상위에 누워서 왔으나 돌아갈 때에는 중풍병자가 그 상을 메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자리에 올 때에 심령이 컬컬했습니까?
답답했습니까?
문제가 있다고 여겼습니까?
그러나 돌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울어도 못합니다.
힘써도 못합니다.
참아도 못합니다.
믿으면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할 수 있습니다.
2001년 한 해를 형통한 해로 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