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사공(守使公) 위대기(魏大器) 장군께서 친히 착용하셨던 투구가 나주역사박물관에 전시되면서 장군과 그 후손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위대기 장군은 장흥위씨의 한 계파를 이룬 인물이지만, 후손이 크게 번성하지 못하여 오늘날 직계 후손의 수가 많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장군의 가계와 후손에 대한 연구 또한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에 장군의 직계 후손을 족보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족보에 따르면 위대기 장군은 두 아드님을 두셨다. 그러나 장자 계통은 25세에 이르러 후손이 끊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현재 전해지는 수사공 위대기 장군의 직계 후손은 모두 차자(次子) 계열에서 이어진다.
이제 수사공 위대기 장군 후손의 맥을 이어온 차자 계열의 세계(世系)를 차례로 살펴보고자 한다. 수사공 차자는 휘 위정현이시다.(필자주)
字吉甫宣祖丁丑生 墓 慶尙南道 固城郡 道善面德致創谷壬坐竪碑
配全州李氏父德敎墓公塋左邊壬坐
公童蒙時自長興熊峙離家
但持父親錄券一冊寄留于統營固城
娶于妻土姓全州李氏之門仍居而
五代獨子子子單身兼且生活難千有餘里遠程故鄕莫往莫來故累等漏譜耳攷家狀而入譜焉
¤<해설>
公童蒙時 自長興熊峙離家/
공이 어린 시절 장흥 웅치에서 집을 떠나
但持父親錄券一冊/
다만 부친의 녹권(錄券) 한 책만을 가지고
寄留于統營固城/ 통영·고성에 의탁하여 머물렀다.
娶于妻土姓全州李氏之門 仍居而/ 그곳의 토착 성(姓)인 전주 이씨 집안의 여인에게 장가들어 그대로 그곳에 살았다.
五代獨子/ 5대에 걸쳐 독자로 이어졌고,
子子單身/ 자손들도 홀로 지내며,
兼且生活難/ 게다가 생활도 어려웠으며,
千有餘里遠程 故鄕莫往莫來/ 고향은 천여 리나 떨어진 먼 곳이어서 고향에 오고 갈 수도 없었다.
故累等漏譜耳/ 그러므로 여러 차례 족보에서 누락되었을 뿐이다.
攷家狀而入譜焉/ 이에 가장(家狀)을 고증하여 족보에 올린다.
字는 吉甫요, 宣祖 丁丑一五七七生이니 墓는 慶尙南道 固城郡 道善面 德致 創谷 壬坐며 有碑하다.
配는 全州李氏요 父는 德敎며, 墓는 公塋左邊壬坐다.
公이 童蒙時에 自長興熊峙離家할새
但持父親錄券一冊하여 寄留于 統營固城타가 娶于土姓全州李氏之門하고
仍居之하되 五世獨子로 兼且貧困하여 千里故鄕을 莫往莫來故로 累次漏譜타가
今攷家狀하야 入譜焉하다.
<해설> 字는 吉甫, 宣祖丁丑生/
자는 길보(吉甫)이고, 선조 정축년(1577)에 태어났다.
墓는 慶尙南道 固城郡 道善面 德致 創谷 壬坐 竪碑/ 묘는 경상남도 고성군 도선면 덕치 창곡에 있으며 임좌(壬坐)에 비가 있다.
配는 全州李氏요 父는 德敎며/ 배는 전주 이씨이며, 그 부친은 덕교(德敎)이다.
墓 公塋左邊壬坐/ 부인의 묘는 공의 묘역 왼쪽에 임좌로 있다.
公이 童蒙時에 自長興熊峙離家할새/ 공이 어린 시절 장흥 웅치에서 집을 떠날 때,
但持父親錄券一冊하여/ 다만 부친의 녹권 한 책을 가지고
寄留于統營固城타가/ 통영·고성에 의탁하여 머물다가,
娶于土姓全州李氏之門하고 仍居之하되/ 그곳의 토착 성(姓)인 전주 이씨 집안에 장가들어 그대로 그곳에 살았다.
五世獨子로 兼且貧困하여/ 5대에 걸쳐 독자로 이어졌고, 게다가 가난하기까지 하여,
千里故鄕을 莫往莫來故로/ 천 리 먼 고향에 오고 갈 수 없었으므로,
累次漏譜타가/ 여러 차례 족보에서 누락되었다가,
今攷家狀하야 入譜焉하다/ 이제 가장(家狀)을 고증하여 족보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