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썼던 내용을 퇴고했다.
석촌(石村) 임서(林㥠, 1570선조 ~ 1624인조, 임제 둘째 큰아버지 임복의 아들, 청백리, 저서 석촌유고 1집)
임서는 일찍이 나주까지 소문난 매창의 시와 거문고 연주를 흠모하여 교류를 해왔으며, 서로가 어린 나이이고 세살 아래인 매창과 기탄없이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친밀 했다.
19세인 1601년 과거 급제와 동시 성균관전적에 승진하고, 1605년 무장(고창) 현감으로 부임받은 후 생일을 맞아 매창을 초대했다.
지방관이나 양반이 기생을 초청하는 방법은 해당 관아에 단자를 받아 허락을 얻기만 하면 되는데, 석촌은 매창을 최고의 높힘으로 정중히 초대한 것이다.
'봉래산 여선 소식이 아득하여 전해지지 않으니
*봉래산: 중국 전설, 신선이 사는 산의 하나(매창 비유)
홀로 향기로운 봄바람을 맞으며 멍하니 선녀를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사람이여, 잘 지내시는가요?
흥겨운 무대 위로 선녀가 돌아오시기를 기다립니다.'
(매창 첫 사랑 정인 유희경이 1591년 처음 만나 매창을 무산선녀(중국 전설에서, 얼굴이 매우 예쁘고 아름답다는 선녀)로 불렀다.
임서가 초청 당시 매창은 심신이 쇠약해져 쉬고 있었기에, 무대 위로 돌아오시기를 기다린다는 표현을 했다.)
임서의 석촌유고 문집에는 아래와 같은 주석을 붙였다.
“낭의 이름은 계생이다. 노래와 거문고를 잘했고, 또한 시에도 능했다. 일찍이 내 지인 윤선(부안 현감)의 첩이 되었다가 지금은 청루에 있다. 내 생일잔치에 오도록 하기 위해 이 시를 써서 초청했다.”
매창도 초대에 응하는 답시를 적어 보낸다. 매창집에는 실려 있지 않고 '석촌유고'에만 실려 있다.
'파랑새 날아와 초청소식을 전해주니
병든 와중에 근심스러운 생각이 도리어 처연하게 하네요.
(투병 중이고, 유희경이 공주판관으로 13년 만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는데, 가까이 왔는데도 전갈이 없으니 오히려 상사(相思)만 처연하여 거동하기 싫어 방콕 중.)
거문고 흔들며 연주를 마쳐도 알아주는 사람 없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알아주시는 분 임서가 있으므로)
이제 장사현으로 적선을 찾아 떠나렵니다.'
(서둘러, 무장현으로, 적선 찾아 떠나겠사옵니다)
* 장사현(長沙縣): 무장현(茂長縣)의 옛 지명, 고창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임서를
적선(謫仙)에 비유했다.
'적선'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 온 신선을 가리키는 말이며, 문재(文才)가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당의 이백이 대표적이며, 역대 한나라의 동방삭(东方朔), 당의 두보, 송의 소식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임서가 매창을 정중히 부른 것은 오로지 그 재주를 사랑했기 때문이고, 매창도 진정으로 자신과 시를 나누고 싶어서 부른 것임을 확신하여 정중하게 화답한 것이다.
매창은 축하연이 끝나고나서 며칠 머무르며, 임서와 음악을 즐기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렸다. 부안으로 돌아갈 때도 임서가 마련해준 수레를 타고 갔다.
1610년 병조정랑인 임서는, 매창이 유일하게 옥랑(玉郞)으로 부르는 형조참의 허균 그리고 유희경과 함께 매창의 죽음을 애도했다.
1610년 허균은 과거시험출제 모함을 받아 탄핵받고 함열로 귀양왔으며, 1612년 무소불위 권력자 영의정 이이첨(李爾瞻)이 모후(母后)인 인목대비(仁穆大妃)를 내쫓아 서인(庶人)으로 강등시키려고 유희경ㆍ임서 등에게 상소(上疏)를 올리라 협박했으나 거절하고 따르지 않았으며 임서는 낙향해 버렸다.
낙향 11년 후 1623년 3월 13일 인조반정으로 인조(仁祖)가 왕위에 오른 뒤에 이이첨과 세 아들, 그 일당들을 사형시켰다.
임서의 절의를 높이 산 인조의 거듭된 호출을 거부하다가, 1623년 6월 정3품 안동대도호부사로 2품 승진 제수되었고, 황해도 관찰사 시는 이괄의 난 진압에 기여하여 승진하였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임서의 후예인 화리가
그날 그 추모 술자리의
임서를 대신 하여
화답시 한 수 읊어봤다.
<증여선贈女仙>
'숙청(淑淸)한 매창의 짧은 삶
기생 대신 드높게 불린
무산신녀 여선 여반 설도
유희경의 명철보신(明哲保身)에
그리움된 첫 사랑은 부질없었고
옥랑(玉郞, 허균)과의 우정은 버팀목 되었네
여선(女仙) 삶을 지탱해 준 옥랑과
시우(詩友)들이 극락에 올 때 마다
봉인해 놓은 불사약 풀면서
거문고 즐거이 종일 뜯으며
그들과
시를 노래하고 춤을 출 날
기다리고 그리워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