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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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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과 청주, 괴산이 둘러싸고 있는 충청북도 증평군에는 장뜰시장이 있다. 인구 3만 5,000여 명이 살고 있는 작고 조용한 지역이지만 장이 서는 1일과 6일은 장 나들이를 나선 사람들로 증평읍내에 활기가 넘친다. 수십 년 동안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은 대장간이 남아 있고, 모자람 없이 몇 번이고 채워주는 인심 좋은 국밥집도 만날 수 있다. 정겨움이 넘치는 장뜰시장으로 떠나보자.
장뜰시장은 늘 문을 여는 상설시장이지만 1일과 6일 장이 서는 날이면 더욱 활기차게 변신한다. 시장 입구 도로변에 옷이며 이불, 잡화 등을 파는 좌판이 늘어서고 주변 마을에서 장 나들이 나온 어르신들로 버스정류장이 분주하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 반가움이 넘치고, 장바구니에 든 물건들을 내보이며 정겨운 대화도 오간다.
1920년대 중반, 청주와 증평을 잇는 충북선 철로가 개통되면서 증평은 음성, 진천 등 주변 지역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고 자연스럽게 장이 들어섰다. 증평역에서 가까운 이 자리는 '장이 선다' 하여 '장뜰'로 불렸고, 장터 이름도 장뜰시장이 되었다.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재래시장인 셈이다. 200m 남짓한 거리를 한 줄로 연결한 것이 시장통의 전부이지만, 노점을 포함해 100여 곳의 상점이 있고, 장날이면 집에서 가지고 나온 채소를 파는 할머니들까지 더해져 시장통이 꽉 찬다.
어슬렁어슬렁 시장 구경을 나서보자. 비가림 시설이 되어 있어 약간 어두운 듯한 시장 안은 양쪽의 상설 상점들을 사이에 두고 노점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비가림 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쪽은 천막을 드리워 따가운 햇살을 가리고 있다. 그릇가게, 옷가게 사이에 미용실이 있는가 하면 잡화노점 옆에 생선노점이 자리를 잡았다. 같은 품목끼리 모여 있지 않고 들쭉날쭉 엉성하게 자리를 잡은 것 같지만 오히려 그래서 시골 장터 맛이 난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뻥튀기 가게, 방앗간 앞으로는 제법 너른 행사무대도 마련되어 있다. 설, 추석 명절이나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쓰이는 공간이다. 엉덩이 붙일 만한 곳에는 할머니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철 맞은 오디를 들고 나온 할머니도 있다. 판매 품목은 오디 딱 하나다.
"오디는 손으로 못 따. 저녁때 나무 아래 돗자리를 펴놓고 다음날 아침에 가보면 저절로 떨어져서 이만큼씩 쌓여 있어. 오늘 아침에 이거 거두느라 야단을 했지. 이걸로 술 담가 먹으면 몸에 좋아. 그냥 먹어도 맛있고. 한번 먹어봐."
장마 오기 전 지금이야말로 오디 맛이 절정이다.
시장 골목 한쪽이 소란하다. '여름 슬리퍼 단돈 5,000원'. 종이상자를 뜯어다 써붙인 광고 팻말 아래 알록달록 여름 슬리퍼가 수북이 쌓여 있다. 할머니들은 이것도 신어보고 저것도 만져보며 쇼핑 삼매경에 빠졌다. 여인네의 장 나들이는 요런 재미다. 화려한 색깔의 굽 있는 슬리퍼를 신어보던 할머니, "밭일 할 때 좋겄다"며 앞뒤가 막힌 플라스틱 신발을 고른다. 예쁜 것 보며 마음 설레는 여인에서 밭일 걱정하는 어머니로 돌아서는 순간이다.
시장 끝까지 걸어가자 한적한 공간에 골동품점이 들어섰다. 화로에 향로, 꽹과리가 앞줄에 서고 뒤편 선반 위에는 작은 불상, 금박 입힌 돼지인형, 앙증맞은 주전자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언뜻 보면 유치하고 조악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정겹다. 하나같이 깨알 같은 이야기를 가득 담고 있는 옛 물건들이다.
증평대장간은 사라져가는 옛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장뜰시장의 명소다. 1974년 문을 연 이래 쇠 녹이는 화덕에 불 꺼진 날이 없다. 대장간 주인장 최용진 선생은 쇠를 다루는 일이 제일 쉽다고 말하는 타고난 대장장이다. 열여섯 살 때 대장간 심부름꾼으로 일을 시작해 '남들이 호미 150개 만들 때 자신은 500개를 만들어내며' 망치질에 전념했다. 전국의 대장간들이 사라지고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바뀔 때도 묵묵히 한자리를 지켰다. 대장간 부문에서 전국 최초의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충청북도 향토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되었을 만큼 이 분야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명인이다.
"아무리 더워도 쇠만 보면 힘이 나요. 하루 종일 망치질을 해도 팔 아픈 줄도 모르구요. 사람들이 찾아오면 더 신이 나지요. 일부러 우리 대장간을 보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인데 얼마나 고마워요. 그래서 잠깐 쉬다가도 구경 온 사람들이 있으면 하다못해 작은 호미 만드는 거라도 보여줘요. 잠깐 기다려봐요, 내가 얼마나 손이 빠른지 한번 보여줄게."
말을 마치기 무섭게 구석에서 쇠뭉치 하나를 꺼내 화덕에 넣어 달구고 망치질을 시작한다. 대장장이라기보다는 서당에서 글을 읽었을 듯한 고운 얼굴에 차분한 말씨, 여린 몸매의 주인장이 뚝딱뚝딱 몇 번의 망치질 끝에 묵직한 엿장수가위를 만들어내는데, 감탄이 절로 터진다.
"내가 일을 혼자 해도 워낙 손이 빠르니까 전국에서 주문이 와도 다 해내요. 얼마 전에도 TV 드라마에서 쓴다고 창을 수십 개나 만들었어요. 달인 프로그램에서 와가지고 이틀 내내 촬영도 하고."
열 평 남짓한 대장간 벽과 천장에 낫이며, 호미 같은 농사 도구부터 시작해 영화 소품으로 쓰이는 창들이 즐비하다.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꽉 들어찬 물건들은 주인장의 자랑이자 그의 인생이다. 대량생산 시스템으로 연장들을 척척 만들어내는 요즘이지만,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물건을 사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 대장간 물건 참 좋아요. 풀 베는 이 낫자루는 손에 착 감기고 잘 들어요. 청주에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다니까."
낫 한 자루를 골라든 손님의 얼굴이 환하다. 신문지로 말아 싼 물건이지만 이런 것이 진짜 명품이다. 집에서 쓸 부엌칼이나 과도, 도끼나 낫, 호미 등을 축소해 만든 기념품 하나쯤 사가도 좋겠다.
장뜰시장에 대장장이 명인이 있다면 국밥 장인도 있다. 시장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장뜰시장의 맛집 장터순대는 30년 넘는 세월 동안 돼지고기를 손질하고 국밥을 끓여온 식당이다.
"애들 아빠는 아프고, 여섯 식구가 먹고 살려니 고생이 많았지. 국밥 만드는 걸 배우려고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식당에 나갔어요."
시장에 터를 잡고 사는 상인들 중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30년 전을 떠올리는 사장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고생이 많았던 만큼 인심도 후하다.
"배고파서 왔으니 배가 불러서 가셔야지. 고기가 모자라면 고기를 더 드리고, 국이 모자라면 국을 더 드리고."
주문과 동시에 뚝배기부터 데우고, 커다란 솥에서 우려낸 국물을 부어 펄펄 끓인 다음 손님상에 낸다. 취향에 따라 순대나 머릿고기를 선택할 수 있다. 새우젓으로 입에 맞게 간을 하고 칼칼한 맛을 더하는 청양고추까지 넣으면 잡내 없는 뽀얀 국물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국밥 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장뜰시장을 찾아도 좋을 만큼 훌륭한 맛이다. 나란히 붙어 있는 선지국밥집도 단골손님이 많은 식당이다.
아이들과 함께 나선 가족 여행객이라면 최근 문을 연 신바람분식점도 추천한다. 매콤달콤한 쫄면과 김밥 맛이 좋다. 시장 어귀에서 시원한 식혜 한 병과 떡 한 봉지를 사 먹으며 장터 구경을 시작하는 것도 재미다.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13년 6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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