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세종
라테파파 탄생기
세종엔 양육 적극 참여 아빠 많아
날마다 등원시키고 저녁에도 돌봐 주말엔 공원으로 요리교실로…
아빠 육아 참여 늘어나면 노동시장 성평등 촉진 효과
아이 두뇌·정서 발달에도 긍정적 세종 출산율 전국에서 1위
라테파파 전국 확산시키려면 노동시간 단축·워라밸 정착 중요
아빠 휴직할당제 등 검토 필요

▶ ‘라테파파’는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다.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한 손엔 유모차를 끌며 다른 아빠들과 ‘육아 수다’를 떤다는 그 아빠들 말이다. 그런데 세종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아침 출근시간, 어린이집에는 엄마들보다 아빠들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저녁 시간 동네 놀이터에서는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뛰놀고 있었다. 세종 라테파파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지난 11일 세종시 종합복지센터 3층
행복맘터 조리실습실. 머릿수건과 앞치마를 두른 아빠와 아이들이 ‘커리두부스테이크’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스테이크는 아이들이 먹기 좋도록
한입 크기로 야채와 닭고기로 만들게요. 야채를 잘게 자르는데요. 양파는
겉껍질을 벗기면 얇은 막이 나와요. 이것도 없애고요. 파프리카는
네 등분 한 뒤에 안쪽에서 썰면 쉬워요.” 푸드 컨설턴트 윤명현씨가 설명하자 아빠와 아이들이 메모를
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수업은 세종시가 주최한 ‘아빠와 함께하는 신나는 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의 첫번째 수업(총 2회)이다. 아빠와 아이들은 배운 대로 요리에 나섰다. 아빠가 야채를 씻는 동안 아이가 야채볼을 준비했다. 함께 손을 겹치게
잡고는 야채를 썰었다. 아이가 두부를 으깨 반죽하고 작은 모양의 동그랑땡을 빚으면 아빠가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구웠다. 노릇노릇한 냄새가 조리실습실을 가득 채울 즈음, 아이들은
뜨거운 김을 후후 불며 아빠와 음식을 나눠 먹었다.
▶ 라테파파란? 한 손에 커피(라테)를, 다른 한 손엔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아빠(파파)를 가리키는 말로,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를 의미한다. 1974년 세계 최초로 아빠 육아휴직제도를 도입해 현재는 거의 모든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하고 남녀 공동육아 문화가 정착돼 있는 스웨덴에서 유래했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석한 강대곤(36)씨는 세종시청 누리집에서 프로그램
안내를 보고 신청했다고 했다. 16가족을 선착순으로 뽑았는데 51가족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아홉살, 다섯살 두 아이를
둔 강씨는 주말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는지 시청 누리집 등을 자주 살핀다. 지난번에는
조치원에서 열린 ‘아빠와 함께하는 역사교실’에 참여했다. 두달간 토요일마다 우리나라 역사를 아이와 함께 공부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주말이면 아이들과 야구, 축구를 하러 다닌다. 몸풀기
체조를 같이 하고 공도 주고받으면서 논다.
강씨는 세종에서 전혀 ‘특별한’ 아빠가
아니다. 세종에서는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아빠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아침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데려오는 아빠들, 퇴근 뒤나 주말에
동네 놀이터와 도서관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아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모차를 끌고 다니며 다른
아빠들과 육아에 관한 수다를 떤다는 ‘라테파파’가 세종에선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 목소리 들으며 일하는 아빠들
지난 14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5동 1층에 있는 직장어린이집인 이든샘어린이집.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엄마와 함께 오는 아이들보다 아빠 손을
잡고 오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아이의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아이를 꼭 잡은 아빠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 일찍 도착한 아빠들은 부모대기실에서 아이가 골라 온 책을 읽어 준다. 집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챙겨 먹지 못한 약을 먹이는 아빠도 있다. 박성경
이든샘어린이집 원장은 “맞벌이 부부가 95% 정도 되는데, 아빠랑 등하원하는 아이들이 70% 정도”라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에서 마련한 1박2일 동안 아빠랑만 어린이집에서 보내는 행사에도 참여율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인 곽병배(41)씨는 2년
전부터 일곱살 아들과 날마다 함께 출근하고 있다. 대전의 직장으로 출근하는 아내는 시간이 빠듯하기 때문에
아침에 아이를 깨워서 밥을 먹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서너살 때는 엄마가 출근하면 울기도 했는데 이제는
아빠 손을 잡고 엄마를 배웅할 정도로 의젓해졌다. 가끔 아이가 열이 오르면 어린이집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면 잠시 짬을 내서 내려와 상태를 보고는 해열제를 먹이거나 한시간 외출을 끊어서 병원에 데리고
간다. 업무 중에 아이 목소리를 듣는 반가운 순간도 있다. 사무실
창문을 열어놓으면 어린이집 아이들 웃음소리,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들 목소리는 귀에 와서 꼭 박힌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들의 자녀들에 대한 관심은 교육 활동에서도 드러난다. 세종 도램마을아파트에
있는 힐스누리어린이집에서는 휴대전화 앱으로 ‘알림장’을 보낸다. 이 어린이집 관계자는 “선생님이 이 앱에 아이의 하루를 적으면 부모가
댓글을 다는데 아빠들의 댓글도 자주 눈에 띈다”고 말했다. 등원할
때나 하원할 때는 선생님과 만나 아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나눈다고 한다. 아이의 일상과 성장에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생략)
출처 : 한겨레
기사원문 : http://naver.me/5s5k71Z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