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이 왕 되길 거절 함
삿 8:22-28
22 그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하는지라
23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니라
24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요청할 일이 있으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지니라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25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에 던지니
26 기드온이 요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가 금 천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초승달 장식들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색 의복과 또 그 외에 그들의 낙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27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되니라
28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이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더라
삿 8:22-28 / [왕위를 거절하는 기드온] 얼마 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기드온님, 기드온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를 건져내 주셨으니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기드온님뿐만 아니라 기드온님의 아들과 손자들까지도 내내 우리를 다스려 주셨으면 합니다.' 23) 이 말에 기드온이 대답하였다. `나와 내 아들이 그대들을 다스리다니요. 말이나 됩니까? 그대들을 다스릴 분은 오직 여호와 한 분뿐이십니다.' 24) 그는 이어서 `그대들에게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들이 전리품으로 빼앗은 귀고리를 나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기드온이 이렇게 부탁한 이유는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적군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라 전리품으로 빼앗은 금고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5)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하고 모두가 가지고 있던 귀고리를 펴놓은 겉옷에 던졌다. 26) 이렇게 기드온이 부탁하여 거두어들인 금귀고리의 무게를 달아 보니 모두 1700세겔이나 되었다. 그 밖에도 반달 모양의 금장식뿐만 아니라 목걸이와 미디안 왕들이 입고 다니던 붉은 빛 옷들이 있었으며, 그 왕들이 타고 다니던 낙타의 목을 꾸몄던 사슬도 있었다. 27) 기드온은 거두어들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고향 마을인 오브라에 모셔 두었다. 그러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브라로 와서 그 에봇 섬기기를 우상 섬기듯 하였다. 이렇듯 그 에봇이 기드온과 그 집안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올가미가 되었다. 28) [또 다시 등돌리는 이스라엘] 미디안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다시는 쳐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 동안 그 땅에는 평화가 깃들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이 에봇을 만듭니다. 이것이 올무가 되어 백성들이 하나님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는 동안 그 땅에 평온함을 주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드온의 실수(22-27)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의 왕권을 제안합니다. 이에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는 그럴듯한 말로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8:23). 그러나 그는 전쟁에서 탈취한 약 21kg의 금품을 백성들로부터 모아 자신의 승리를 상징하는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의 소지품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려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삼상 23:9-12; 30:7-8). 기드온이 에봇을 만든 목적은 실로에 가서 대제사장을 만날 필요 없이 자기의 처소에서 하나님의 뜻을 편하게 알아보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실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바알 제단을 허물고, 또한 그 곁에 서 있던 아세라 상을 찍어 버리는 등 용맹스럽게 행동하던 기드온입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한 후 교만한 마음을 품은 듯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는 것을 거절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왕처럼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에봇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상 숭배의 대상으로 악용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를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8:27b)고 지적합니다. 기드온의 에봇이 고향 오브라에 설치된 결과, 이스라엘 민족이 실로에 있는(18:31) 성막의 제사에만 집중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른 데서도 문란하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거나 혹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기도 하였습니다(17:5). 이는 점차 다른 우상에게 물들어 타락해 가는 틈이 되었습니다(왕하 1:2-3).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신실하셨지만 기드온은 이스라엘 백성이 잘못된 예배를 드리게 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습니다.
그 땅이 평온하였다(28) 미디안은 이스라엘 앞에서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였습니다. 미디안 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와도 전쟁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평안하면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평안의 시기를 말씀으로 백성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자신의 향락을 즐기는 기회로 만들어버렸습니다(30). 영적인 은혜를 육적인 쾌락으로 바꾸는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는 사십 년 동안 그 땅이 평온하였습니다(28).
적 용 : 지금 당신의 삶은 평안하십니까? 그 평안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또한 우리에게는 어떤 ‘에봇’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용서는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어려운 기술 훈련과 함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말했습니다. ‘용서란 간헐적 행위가 아니라 영구적 태도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줄 선물로 은혜와 용서의 문화를 가꾸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미래의 유일한 희망은 과거에 우리의 적이었던 자들을 너그러이 용서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용서가 단지 종교적 감상이 아니라 중력의 법칙만큼이나 인간 영혼에 근본적인 법칙이라는 점입니다.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면 무릎이 깨지는 것처럼 용서의 법칙을 어기면 영혼에 치명상을 입게 됩니다
< 설 교 >
그 집안의 올가미
사사기 8:22-31
성서에서 기드온처럼 드라마틱한 공을 세운 사람도 드뭅니다. 승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에게 “장군께서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 주셨으니, 장군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대를 이어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게 하여 주십시오.”(삿 8,22)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습제를 도입하고 왕권을 세우기를 요구합니다.
원래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강력한 왕권체제 아래서 노예로 지냈기 때문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새로 시작한 공동체는 특정한 계급을 부정하는 사사체제로서 왕권이나 계급, 신분을 부정하는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불특정한 사사에 의해서 공동체가 운영된다는 것은 한편 항상 불안하고, 평시에 상비군으로 무장한 적군에게 대비할 수 없는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기드온이 혁혁한 공을 세우니 백성들은 세습제를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말합니다. “나는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의 아들도 여러분을 다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주께서 여러분을 다스리실 것입니다.”(23절) 안병무 선생님께서 항상 즐겨 쓰시던 말씀 “功成而不居(공을 세웠으나 머물지 않는다)” 그대로 입니다. 성서는 오히려 자신이 공을 세웠다는 것 자체를 부정합니다. 여기까지는 매우 흘륭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이 단지 하나의 청을 백성에게 합니다. 전리품으로 빼앗은 것 중에 귀고리하나씩을 달라는 청입니다. 백성들이 그까짓 것이야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모은 금이 1,700세겔인데 이것을 환산하면 약 20kg에 해당합니다. 이것으로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인데 원래 가나안에서는 신상에 걸치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신상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 옷만으로 신상을 대신해서 섬기기도 했습니다. 27절에 보면 “음란하게 섬겨서...”라며 에봇이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을 말합니다. 기드온이야 단지 옷으로 만들었겠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실체처럼 믿기가 어려우니 무언가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을 잡아보려고 발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잡으려고 쫒아가는 역사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진 불신의 역사이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역사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었다”고 합니다. 기드온이 승리한 후 백성들이 군림해 달라는 요구도 잘 뿌리쳐 사사의 본을 잘 보여주었는데 그 까짓 금귀고리는 무엇 때문에 붙잡았는지? 집안에 금덩어리가 있으면 뿌듯한가? 기드온 역시 불안했든가 봅니다. 무언가 보이는 것, 자신이 안정할 수 있는 증거를 하나님 아닌 것에서 찾았기 때문에 그것이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된 것입니다.
30절에 보면 그의 아내가 많았다고 합니다. 실제 그가 왕권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에게는 세겜의 있는 첩에게서 난 아들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비멜렉이란 문자적 의미는 “나의 아버지는 왕이시다”란 뜻입니다. 물론 신앙적인 이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나의 아버지”란 주님, 하나님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주께서 왕이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비멜렉의 행적을 보니 그런 거룩한 의미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아버지인 기드온 자신이 그 이름을 지어 주었다면 간접적으로 자신이 왕이란 암시를 하는 이름인데, 기드온이 왕권은 뿌리쳤지만 왕권에 대한 향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기드온의 화려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년에 대한 평가는 처절합니다. “또 여룹바알이라고도 하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풀었지만, 아무도 그 가족에게 은혜를 갚지 않았다”(35절)고 합니다.
9장은 아버지가 끊지 못한 세상의 고리에 대한 심판이 구체화됩니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그의 형제 70명을 살해하고 세겜에서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에게 “내가 그대들과 한 혈육”임을 호소하며 왕이 되었습니다.
여기 가시나무 설화가 나오는데 고대 이스라엘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 같은 것이었습니다. 올리브와 무화과와 포도나무에게 가서 왕이 되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 날 뛰겠느냐?”라며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가시나무는 “너희가 정말 나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겠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 피하여 숨으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실 가시나무는 그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오직 협박과 위협만이 가시나무가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한마디로 왕을 아주 우습게 아는 노래입니다. 오랜 왕정동안 어떻게 이런 노래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참 의문입니다.
이 때 가알(“구원하다, 속량하다”란 뜻)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왜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겨야합니까?”라며 세겜 사람들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결국 아비멜렉에게 가알이 패배당하고 세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성이 점령당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비멜렉은 데베스로 가서 그곳 사람들을 망대에 몰아넣고 망대 아래쪽에서 불을 질러 공격하려고 망대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때 바로 망대에 있던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이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떨어져 아비멜렉은 두개골 파열로 죽게 됩니다. 악인의 기세가 등등하고 온 천하를 삼킬 것 같지만 결국은 아주 코미디 같이, 군사훈련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여인이 던진 맷돌 한 짝의 심판으로 가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그의 화려한 승리 못지않게 그의 그림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공을 세우고 그것을 기억하면 안됩니다. 그것이 올가미가 되어 그를 끌어 내릴 것입니다. 그 공의 일부라도 내게 돌아오길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하듯 해야 합니다. 여기에 조그만 부분이라도 인간의 계산이 들어가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게 댓가 없이 임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갚아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께서 왕이시다”는 찬양을 부릅니다. 그 왕권은 무엇입니까? 철저한 신뢰,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 다른 대안에 매달리는 것은 비록 그것이 귀거리 하나, 아들의 이름 하나의 실수 일지라도 결국은 그 집안에 올가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삼하 8,7에는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에 사무엘이 마음이 상하여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답변합니다. “백성이 너에게 한 말을 다 들어 주어라. 그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서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주님을 우리의 왕으로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주께서 왕이시다”고 고백하며 철저히 그분의 주권 아래 거하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시길 바랍니다. 이 세상 어떤 것도 그 사이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