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글을 쓴다는 것은 쓰는 행위처럼 나 자신 살아온 길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내적성찰 같은 것이다.
글을 쓰는 자는 결국, 나이며 나와의 소통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글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인간만의 특권이라 본다. 글쓰기는 따라서 언어유희
일수 있겠다. 인간이 미를 추구한다고 하면 글쓰기라는 행위 역시 아름다운 미를 추구하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유희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식물은 식물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사물은 사물대로 그들식의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존재한다. 다만, 인간만이 그들의
상징체계인 언어를 부리며 감정을 토로하고 생각을 의사표현하는 것.
나는 글을 쓰는 행위가 인간적이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유익한 삶의 소일거리라 본다.
물론 논리가 부족하거나 허무맹랑한 천기누설이라면 그것은 언어공해일 수 있다.
뻔하게 아는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뻥튀기하거나 과장되게 표현한다거나 따위
글 쓰는 이가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내뱉는 설익은 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장자가 말하고 있는 '도'라는 것은 어느 한쪽에 치우 지지 않는 그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위도 무위도 아닌 발가숭이 천진난만한 '도'이다. 그것은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상 속에 던져진 존재와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내버려 두면 스스로 알아서 계절을 바꾸는 자연처럼 인간도 마찬가지 스스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단, 자연과 달리 인간이 가진 불완전함이라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삶에 대한 순진한 연민이며 더 구체적인 말로는 개인의 이기적인 욕망이다.
욕망은 삶이라는 공장을 가동하는 원동력이다. 이 욕망의 구조에 인간이란 존재가 안고 있는
틈이 생겨나는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방법론적인 회의를 통하여 물질과학을 창조하였다면
호모사피엔스 덕택에 세상은 욕망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이 시대가 과연,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인간적인 상상을 한다.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자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의문이다.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던져졌는가?
적어도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현존재라면 이 따위 물음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외친 것 또한 그가 무신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을 찾는 행위는 인류의 탄생부터 비롯된 사실이다. 적어도 삶이란 진정 무엇인가?
신이라는 헛된 망령을 전진배치하여 나를 합리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널리고 널린게 교회 십자가이고 대한민국의 이름난 명산치고 절터 아닌 곳 있더냐?
나의 글쓰기는 그런 우상파괴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전복적 글쓰기란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도덕적 양심을 지키려는 정신이다.
현실을 외면하고 내세를 외치는 헛된 망상들을 파괴하기 위하여
나는 글을 쓴다.
적어도 그게 이 세상에 던져진 나의 숙명임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