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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8:1 그리스도와 나는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025년 우리는 1년의 시작을 어떤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구원이 되는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주님의 제자, 종, 선지자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진리가 아닌 거짓말을 진리로 말하는 자들에 대하여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구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성령님에 대하여도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이 글을 카페에 올리는 목적을 말한다면, 이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으며, 듣는 자들 가운데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됨을 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는 것에 목적을 가지고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들이 이 글로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고, 영의 양식이 되어, 그리스도인으로의 장성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삶의 사람 되게 하는데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미 믿는 자(너희가 된 자)들이 알고 있어야 할 것에 대한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면, 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선 정죄함이 없는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어떤 자를 말하는지, 또 실제로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요14장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보혜사 진리의 성령을 보내주신 것을 믿어 마음 안에 영접한 그때부터 말씀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시는데 그리 된자를 한 몸 된 자 라고 안에 계시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심으로 그리스도의 영향력이 우리 전체를 실제 적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뜻의 지배를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 생각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8:4절에서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시작하면서부터 무엇이 달라집니까? 마음과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 마음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되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생각,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안에 말씀이 거하면, 세상 필요를 위해 살기도 하지만, 항상 말씀을 생각을 하게 되고, 말과 행동이 말씀에 대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에게는 삶 자체가 말씀이 목적이 되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세상 일을 하면서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그 마음 안에 그리스도(말씀)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삶을 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중심이 되고, 목적이 되는 것이기에, 그 삶에 열매도 그리스도 적인 것들(포도)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자신의 삶이 중심이 무엇에 의해 살아지고 있는지 안다면 내가 세상 사람인지 종교인인지, 그리스도인인지.... 어떤 자인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게 하는 믿음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그 믿음은 말씀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떠난 믿음(종교 생활의 열심)은 열매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를 이어가면서 모태 신앙을 가진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것을 말씀을 믿는 자로 착각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얼마든지 종교 생활로 만들어진 생활을 하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기준이 바로 뭡니까? 요14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보혜사 진리의 성령(곧 말씀의 영)을 우리가 듣고 믿어 마음 안에 들어오면 믿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후13:5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말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라는 말씀이 맞습니까, 틀림니까? 맞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 안에 무엇이 없어서 버려진 자입니까? 그리스도의 말씀 곧 영적 생명이 없기 때문에 버리운자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다는 것은 -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이요 - 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은 -말씀이 없다는 것이요 -말씀이 없다는 것은 - 진리가 없다는 것이요 - 진리가 없다는 것은 - 진리의 성령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버리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12절에서 바로 “이 말씀을 영접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영이 없는 대상을 향해 롬8:7-8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라고 했는데, 왜 그래요?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라 여기고 자기 중심으로만 살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북한 땅에는 기독교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김정은이가 하나님이니까요.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우리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하여 살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그동안 누가 하나님이였는지,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살고 있었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이 사단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 없이 선악과 곧 지식을 가지고 자기 육신만을 위해 산다는 것을 사단의 생각으로 사는 자라고 하시면서, 이는 하나님의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자는 자기의 법(자기 욕심, 욕망, 뜻)대로 사는 고로 하나님의 법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롬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진리의 성령 안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됨에 기준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어야 하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는 얘기는 그에게는 진리의 성령이 말씀으로 내주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롬10:6~8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9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곧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기..... 그 이전에는 자기가 주인이었었던 것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그러면 여기서 들음은 어디서 듣습니까?
롬10:14-15절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본문을 거꾸로 읽어 볼까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가 됩니다.
그러면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뭡니까?
믿음이 없는 것입니까, 전파하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까? 전파하는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전파를 해야 합니까? 보내심을 받은 자가 전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내심을 받은 자는 바로 그리스도 곧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듣는 자는 말씀을 전파하는 그 전하는 자의 말씀을 듣고서 그 말씀을 마음 안에 영접하게 되면서 말씀을 믿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결국은 자기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13:20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왜냐하면 내가 보낸 자가 말씀(그리스도)을 전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보낸 자의 말씀을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고 나를 영접하는 것은 곧 나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영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임)셨는데, 이것은 곧 교회를 영접한 것이고 주께서 우리를 영접하셨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유대 나라에서는 손님이 오면 발 씻을 물을 주거나 씻기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영접하는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서로 영접하는 발 씻김이 없으면 서로가 상관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서로 영접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모습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결국은 최종적으로 우리가 믿음에 우뚝 선다는 것은.... 말씀을 그리스도로 영접(관계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접이라는 관계성이 형성된 우리에겐 왜 정죄함이 없습니까? 어찌하여 우리가 심판이 없습니까?
요5:24 “내 말을 듣고(믿음이 생기죠) 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자는 영생(그리스도 즉 생명의 말씀)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이전까지는 우리가 사망 가운데 있다가 이제는 영생을 소유했기 때문에 생명 가운데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왜 심판을 받지 않고 정죄를 받지 아니하느냐?
롬6:1~ 죄에 대하여 언제 죽었습니까?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받은 우리는 →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따라서 그리스도를 마음 안에 영접한 후에 예식적인 물세례(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의 연결(관계성)입니다.
“우리로 새 생명(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그것은 곧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례받음의 근본적인 목적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참 세례를 받은 자입니까?
주일 잘 지키고, 십일조 잘 내고 헌금도 정성스럽게 잘하고 교회생활을 잘 하면?, 그러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참 세례를 받은 자는 종교 생활을 잘하고를 말함이 아닌, 말씀 가운데서 말씀과 함께 계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생활이 안식일로 주일로 매일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말씀에 잠겼다. 세례 받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세례를 받고 나서 실제로 그렇게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아니라면 말씀 안에 잠기는 (깨달음이 없는)형식적인 세례를 받은 것이며 이는 그 삶에 영적인 생명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교인의 의무로 산 것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영접한 자가 아닌 것입니다.
롬6: 5-6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은 바로 나의 죽음이고, 나의 장사고,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면 나도 역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그분과 연합되어 심판을 받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난 것은,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은 결과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죽은 후 부활이 없었다면 자신도 누구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활을 했다는 것은 자기의 죄가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기 전에는 죄의 몸이 시키는 대로 내 욕심 내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함께 부활했으므로 이전에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기만을 위하여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 옛 사람
그러나 이제는 나는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 하나님만을 향해 사는 사람 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옛사람이 죽은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사람이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사는 사람은 과거의 죄를 용서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사는 것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죄가 그대로 있는데 사는 것입니까? 죄를 용서 받았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어버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알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그 사람에게 임하신 것을 아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분이 실제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방주사로 죽은 것입니다.
홍역이라고 하는 것이 심하게 걸리게 되면 죽느냐 사느냐입니다.
그러나 예방주사를 맞으면 홍역을 치루기는 치루데 간단하게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실제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의 심판을 통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연합된 관계에서 그의 피의 예방주사를 통해서 죽고 땅속에 들어가지 않고서 죽음을 체험했다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는 그와 함께 바로 누구에 의해서? 진리의 성령 말씀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그런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제 이전에는 나를 위해서 살다가 내가 하나님이었다가 이제는 말씀 중심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될 때 나의 과거의 죄는 사함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삶이 시작되었다. 라고 하는 증거다 그런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누구와 연합된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까?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에서 되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우리 조상 조상이 낳기 전에 2000년 전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우리가 무엇 안에서 죽고 삽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사는데 무엇이 우리 옛사람을 죽이게 만들고 무엇이 우리를 새 생명 가운데 살게 합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2,000년 전의 육신으로 오셨던 예수는 부활, 승천하시어 이제 이 땅에 안 계십니다.
주님은 아버지에게로 가시면서 보혜사 진리의 영 곧 말씀의 영으로 다시 오겠다고 하셨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오신 진리의 성령(말씀 성령)이 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죠? 곧 그리스도의 영으로 거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이 상태을 다르게 표현 하면, 즉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영으로 사람 안에 오셔서 그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새 생명으로 부활했다 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우리는 영적으로 살았던 사람입니까, 죽었던 사람입니까? 죽었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죽은 자였던 우리 안에서 그 분이 말씀으로(그리스도의 생명) 다시 살아나신 모습인 것입니다.
말씀이 죽은 자 안에 거하여 새 생명의 사람으로 거듭난 생명의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그와 연합된 한 몸 관계에서 죽고 다시 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진리의 성령, 즉,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다음에는 삶의 방향이 죽은 자의 삶에서 말씀이 인도하는 삶으로 바꿔 살아지게 되는 것이며, 그 삶을 믿음으로, 새 생명 가운데 거듭난 삶을 산다 라고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살던 방식에서 종교인으로 살던 생활에서 말씀에 반응하며 사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말씀과 함께 영원토록 산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을 영원한 새 생명을 소유했다. 구원받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모습은 질그릇 안에 보배를 담고 있는 것과 같으므로 우리는 그 보배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우리를 귀하게 여기실 뿐만 아니라 다시는 정죄함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개념이 달라져야 합니다. 구원케 하시는 사역 곧 은사적인 성령만 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의 성령은 죽은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주시는 성령으로 우리과 그리스도와 영적인 한 몸의 관계가운데 살게 하시는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때 그리스도와 생명적인 관계가운데 살고 있는지 확인 하고, 혹시 이웃 중에 이 관계가 단절 된 분들이 있으면, 그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 하는 사람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