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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40년 만의 답장
저: 김정숙 수필집
출: 그루사
독정: 2024년 8월 29일
선생님, 선생님의 수필집은 287쪽에 걸쳐 56편의 수필이 실려 있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다시 음미하고 싶은 곳을 접으며 읽었는데 61 곳을 접어서 다시 읽어보았어요.
그 중에서 목수 이야기가 제일 의미 깊었어요. 그 당시 요셉과 예수의 삶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참 그래!’ 하는 깨침을 받았어요. 저도 동화로 한 번 그려내고 싶어요.
그리고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은 이 부분이었어요.
◎ 병원에 들어갈 때는 혼자 실려 사서 ‘보호자’가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응급실에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입원했음을 알고는 서로 당번을 짜서 낮이면 여자 졸업생들이 병상을 지켜 주었고, 남학생들은 퇴근길에 들러 그들을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공동 병실이었는데 내 자리는 늘 미안하도록 시끄러웠다. 혼자 사는 나에게도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지, 언제나 이웃은 있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대했으면 그들이 엣 교수의 병실 지킴이를 자처하며 돌보고 싶었겠어요? 참 거룩한 교수의 삶을 살아오신 모습이 그 속에 오롯이 돋아나 울컥 눈물이 났어요.
그 외 감동적인 말씀과 아름다운 생각들이 고인 글들 옮겨왔는데 이것만도 6쪽이네요. 좋은 공부가 되는 책 출간해주시고 공유해주셔 고맙습니다. 선생님 블로글에 들어가 글 남기고 시 ㅍ은데 글 올릴 공간이 없어 다시 나왔어요. 기회 되면 출판 기념회를 해드리고 싶어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유교가 바탕인 사회에서 한국사를 전공하면서 천주교회사에 매달리는 내가 본 따뜻한 사회가 다른 이들의 생활도 덥히면 좋겠다.- 작가의 머리말에서
1부: 관계와 사람. 2부: 사회와 문화, 3부: 절제와 자유, 그리고 하느님으로 구성
◎ 문학은 인류 사회가 던지는 공동 질문에 마음으로 답해야 한다. 인간과 환경, 우주 만물에 대해 공감하는 답. 백자를 굽고 싶다.
◎ 책은 종이의 무덤이다. 그 무덤에서 생명을 찾아내어 따뜻한 위로가 되어줘야 한다.
역사는 시간에 대한 이해이며 훈련이다. 시간과 관계로 삶의 장면을 살피는 이야기는 일상을 통한 ‘말걸기’ 이다.
◎ 장미 한 송이 사서 투명한 유리컵에 쫒았다. 장미는 시간을 두고 여러 겹의 꽃잎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기숙사 방 안에 혼자 있지 않음을 일깨워 주었다. 투명한 물속을 뚫고 오는 위로였다. 꽃은 순간성의 생명과 역동성을 가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도라지 꽃의 세계는 호사스러움으로 펼화를 빌어주는 것 같다. 천리향- 난초같이 쭉 뻗은 잎 위에 다발로 망울져 있는 하얀 꽃
◎ 남의 이야기를 마음을 다하여 자기 마음에 비추는 사람이 있다면 현대 사회에 남은 보석이다. 천리향 향기는 한마디 인사에 실려 널리 삶의 풋풋한 격려가 되어 가리라.
◎ 준비 운동을 정확히 하고 발차기와 손동작, 스트레칭, 호흡을 가다듬고 운동을 한다. 일단 수영이 시작되면 나와의 대화 속으로 빠져 내 그리운 모든 이들이 따라오고 있다.
◎ 신자가 되어 이름 하나 더 얻는 것- 주보 성인: 평생 모시고 닮아가며 함께 기도하는 사람. 가브리엘, 다비드 같은 친구 이름을 부를 땐 성경에 있는 사람들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하느님 말씀은 스스로 찾아가는 거라고 느꼈다. 하느님 사랑은 햇볕과 같아서 같은 순간에 도둑에게나 도둑맞는 사람에게 똑같이 비추고 있다고 배웠다. 선악과를 왜 만들었냐고 했을 때 자유의지를 주시고 그 자유의지로 사랑받고 싶어 하셨다고 했다. 내가 첫 영성체를 하게 된 것은 기도가 이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행위이며 기도의 힘을 믿는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 어떤 주제가 나와도 그것에 역사 사실을 엮어나갈 수 있음을 발견했다. 가령 한국 지폐 인물에서 모두 성리학 극성일 때 사람이었던 것에 주목, 조선 왕조 성리학 지도층의 변화와 한국인의 잠재의식까지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지도했다. 학생들의 젊음이 얼마나 큰 자산이고 활력인지 그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 높은 기개로 산 사람들 옆에는 그만한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 사람의 얼굴은 자기 것이면서 자기가 보는 예가 많지 않듯, 사람의 나이도 타인으로 확인된다.
◎ 초로의 신사란 온갖 경험을 다 안고 무언가 더 할 수 있는 사람이다.
◎ 너도 내 나이 되어봐라 하고 싶더라도 그들이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른다는 점에서 위로받아야 한다. 홍대 앞에서 ‘나이 없는 날’을 맞은 새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띤 공연과 토론에 놀랐다. 겁 없이 늙으면서 철없는 할머니를 창출해 내어야 할 때다
◎ 가난에 대하여-어느 정도 기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도 우리는 가난이라는 단어를 몰랐다. 배가 고팠고 무언가 없어서 불편했다. 남에게 해진 옷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속옷은 떨어져도 겉옷은 말끔했으면 바랐다. 그때는 모두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그것이 가난이라는 형태인줄 몰랐다.
◎ 식물은 참 적게 먹고도 사는데, 인간도 그렇게 적게 먹고 살 수 있을까? 코로나 피정이라 생각하고 혼자 즐겼다. ‘아파트 새시는 바깥 유리창 햇빛의 30% 이상을 차단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제라늄에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는다고 해서 1주일에 한 번씩만 주고 백합은 매일 주었다. 농장에서는 잎으로 모든 영양이 가니 꽃이 피지 피도록 잎을 따주라 했다. 꽃은 열악한 환경이 되어야 생존을 위해 핀다고 했다. 꽃 필 무렵에는 거름을 주지 말라고 했다. 겨울나무도 모두 일단 털어버린다. 정년을 하면서 일도, 물건도, 욕심도 줄여야 한다고 생각은 했다. 털어내야 산다. 작은 일을 이루자 큰일을 처리할 힘을 얻자. 실제로 자르기 시작하면 점점 더 강한 강철 가위가 될 것 같다. 정년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척 많음도 가르쳐 주었다. 이 세상 모든 것에는 끝이 있음, 심지어 물건에도 각기 수명이 있음을 함께 배웠다. 오늘 일은 오을 끝내고 하느님 앞에 가져갈 것만 선택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간다.
◎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하루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며칠 걸릴 일인지. 아예 해결할 수 없는지 보고 일을 정한다. 오래 힘들여도 안될 것은 처음부터 포기한다.
◎ 40년 만의 답장- 중 1학년 때 스스로 외롭지 않으려고 국군 장병에게 쓴 편지, 내가 그냥 받고만 있어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난 베트남 방문 이후 ‘정성’ 이라는 마음을 넣어 40년 만의 답장을 대신하고 있다.
◎ 동물 중 유일하게 옷 입는 동물인 인류가 장 안에 보관해 둔 옷을 함께 나누어 입을 수 있다면 그렇게 큰 장도, 큰 집도 필요하지 않을 듯. 수박을 주면 그것이 삶은 감자가 되어 우정을 담아 되돌아온다. 지근 내가 저장해 두려고 하는 바로 그 물건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죽는 이를 살릴 수도 있다. 달은 한 번 뜨면 천 개의 강을 비춰준다. 이 진리를 이미 15세기에 ‘월인천강지곡’으로 노래했다. 8월 한가위에 보름달이 비추는 모든 곳은 우리의 범주다. 직접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달을 통해서 서로 닿는 친구. 내가 지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전부 나눈다 해도 접시 위에 남는 떡에 내 이웃의 얼굴이 새겨지는 한가위면 좋겠다.
◎ 맨손뿐이어서 잡아주어야 할 것 같았던 손들. 일어서려 할 때가 진정으로 친구가 필요한 순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한국을 도운 나라였다. 스포츠라면 학계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다. 올림픽위원회가 열리던 기간 동안 김연아 선수가 아프라키 스케이터들에게 스켸이트 타는 법을 코치하던 일은 몇 장의 서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종합 외교였다. 그들이 따뜻한 고향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풍부해지는 길이다.
◎ 맨밥이 고소하고 배추가 달다. 그동안 조미료에 익수했던 혀를 건진다. 이쯤 되면 신체 컨디션이 나아진다. 확실히 혈압은 떨어지고 체중이 준다. 조미료가 없는 담백함이 우리 순수를 회복해준다. 본래 동물은 양념을 하지 않는다. 양념은 각 미족 문화와 환경의 결정이다. 우리 땅에서 오랜 체험을 겪으며 이루어 온 우리 음식을 찾아 먹은 것이 우리에게 맞다. 최상의 질로, 절제와 여유, 품격과 정성을 담은 음식은 우리 건강을 구하고 95세 노종부가 우리를 구할지 모른다.
◎유교 질서는 상하 역할을 규정하는 수직적 질서를 가지고 그리스도교 문화는 수평적 질서를 지키고 있다.
◎ 한류 연속극 <대장금>에서와는 달리 궁중 요리도 남자들이 담당했기에 남성이 장에 가면 여자는 얼레빗을 사다 달라는 응석도 가능했다.
◎ 우리 사회는 어림셈하여 자신이 낼 차례를 지켜야 얌체가 안 된다. 현재의 게산에 충실한 외국인들은 부득부득 자신이 계산하겠다는 한국인에게 몇 번 얻어먹게 되지만, 그 기회가 줄어들 것은 뻔하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기록해두었다가 그에 상응하는 대략의 양을 돌려주는 것은 한국의 중요한 사회적 코드다.
◎ 선물이란 개인 간의 관계 속에서 어떤 계기를 빌려 드러내는 마음의 표시다. 제대로 된 선물은 자신의 또 다른 표현이며, 상대방과 새로운 관계 개선이 된다. 여학생이 손수건에 싸인 사과를 한 개 내밀었다. 사과 위에 이원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사과가 익을 때까지 햇빛이 차단 되로록 해두었다가 가져온 선물이었다. 그것이 오늘날 상품화되고 있다.
선물은 삶의 덤이기 때문에 조금은 앙증맞고 조금은 낭만적이거나 순간적이어도 좋을 듯하다. 내용보다는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하며, 감동에 남는 선물을 만드려는 노력은 새 생활의 창조다.
◎ 대학 다닐 때 들고 다니던 키에르케그로의 <죽음에 이르는 병> 은 절망이었다. 이 시대에 죽음에 이르는 병은 질투다.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몸이 상하게 하고 가까운 사람을 잃으며 고립되어 가는 병. 질투야말로 자살이며 죽음의 주범일 것이다. 질투란 가까운 사이에서만 생긴다. 아파트란 단독주택보다 상호 간 더 크게 영향 주고받는 공간일지 모른다. ‘짜깁기 된 이웃’이 형성된 자연촌 이웃과 같이 되었을 때 행복한 아파트가 될 것이다.
◎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신년 인사로 형식적인 연하장을 보내지 말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SNS 문자로 연하장, 신년 인사 기능이 대치되고 다시 손글씨가 저력이 되었다. 식사도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하는 편이 훨씬 친근하고 감동적이고 공감이 클 수 있다.
◎ 아비뇽 농가는 도데의 물레방아를 그려보게 했다.
도데의 <별> -목동의 어깨에 내려앉은 아가씨의 머리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평생을 지니는 순간들이 있다. “별들의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핳 때, 어깨 위에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가볍게 누르는 듯한 느낌. 잠이 들어 무거워진 아가시의 머리였다. 리본과 레이스, 꼬불꼬불한 머리를 사랑스럽게 내 어깨에 기대어 별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사라질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 아무 말오 오가지 않았으나 두 사람 사이의 신뢰가 쌓이는 순간이다.
◎ 병원에 들어갈 때는 혼자 실려 사서 ‘보호자’가 사인을 하지 않았다고 응급실에 몇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입원했음을 알고는 서로 당번을 짜서 낮이면 여자 졸업생들이 병상을 지켜 주었고, 남학생들은 퇴근길에 들러 그들을 집에 데려다주곤 했다. 공동 병실이었는데 내 자리는 늘 미안하도록 시끄러웠다. 혼자 사는 나에게도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지, 언제나 이웃은 있었다.
◎ 로봇을 만드는데 스스로가 잃어버린 많은 본능과 잠재력을 한 가지씩 기계에 얹는 작업일지 모른다. 병원에 입원 한 어린이들에게 치료 보조 수단으로 새끼 동물들과 놀래 하나고 해도 어린이들은 동물을 ‘움직이는 인형’ ‘반응하는 인형’으로 여기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사슴이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환경에서 산 사람들에게 월터 디즈니 동물 만화는 만화가 아니고 생활일지 모른다. 그들은 생활에서 사슴을 체험하고 월터 디즈니에게 그들과의 세계를 만든다. 동물과 함께 삶을 깨닫고 소통하여 이야기를 만들려는 노력은 풍요로운 자연을 보듬어 안는 일이다. 동물 세계에 대한 이해는 잃어가는 울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지름길이다.
◎ 광화문에 몇 명이 모였는가는 주최 측은 시위 현장 참여 사람을 헤아리지만, 경찰 측은 시위 현장의 넓이를 기준으로 일시에 운집하는 사람들을 계산한다고 한다. 아무튼, 헤아려지는 숫자보다 사람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젠 부모가 자식을 데리고 시위에 참여하기도 한다. 축제 같다. 외국 언론은 광화문 시위를 최고 권력의 부정을, 평화적이고 규율을 지키면서 바로잡을 수 있는지 보여 주는 본보기라고 했다. 물론 반탄핵ㄷ 시위도 같은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가 변하고 있다. 광화문의 함성은 우리의 일상생활로 뻗쳐갈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더라도 얼마나 사람을 존중하며 일 했냐는 질문을 듣는다. 이 질문은 일상생활, 개인 생활의 민주화애 대한 요구다. 이번 성탄, 우리가 마구간에 태어난 아기 예수의 마음을 선물로 얻는다면 교회는 밝은 미래를 향해 가는 새로운 길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오랜 경험은 그 길을 단단히 다질 것이다.
◎ 내 편이 아닌 이들도 우리 것의 주인이다. 그렇게 인간은 자연에 안길 것이다. 그 끝에는 우주 질서를 주관하시는 분이 기다리신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름길이다.
◎ 창조란 그 사회의 여럭이 한 사람을 통해 표출되는 것이다. 피겨 스케팅의 우아하고 종합적인 경기는 대한민국의 삶ㄴ이 그 수준에 왔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도 양반 문화의 여유를 누릴 경제적 여력도 있다. 100년에 걸친 근대화 건설과정에서 종부 문화는 100년간의 고독으로 다져져 왔다. 근대 문화에 전총문화를 입히면 한국이 뿜어내는 신비는 어느 누구도 입 다물지 못하게 할 것이다. 자연과 조화되는 삶, 인간애가 살아있는 삶, 품겨 높은 예술을 지양하는 우리의 새로운 문화는 미래의 삶에 대한 대안으로 온 인류에 답하는 문화가 되리라.
◎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100만 조문객 인파는 물론 신자만이 아니었다. 신자들은 보통 본당에서 추모를 하기 때문에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추기경을 추모하던 인파는 그만큼 한국 사회에 가톨릭 정신이 뿌리내렸음을 말한다. 한국가톨릭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실천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 최근 교회 내 일부 신자들이 정의 평화를 위한 사회 활동에 대해 의사를 표했다. 사회의 정의아 평화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이 하느님 자녀라는 입장에서 소외된 이웃을 챙긴다. 그러나 정의 평화활동을 하는 분들이 같은 울타리 내에 있는 사람들돠 다 함께 공명하려는 노력을 조금 더 기울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그들에 반대하는 분들도 일정 ‘명목’을 가지고 그들을 남의 그룹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하는 한다. 한 번 더 그 이야기를 경청했으면 싶다. 우리끼리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동료의 이름을 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머리 굴려가며 거짓말했던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매 맞고 목숨 내놓으면서까지, 또 배교자로 지탄받을 각오를 하면서도, 보호하고 싶었던 교회와 교우들이 있었기에 할아버지들은 행복했다.
◎ 빛도 전기를 띤 입자가 가속도 운동으로 파장을 일으켜 우리 눈에 닿는다. 이렇게 소리나 빛이 형체가 없는 작은 분자들이듯이 생각도 작은 분자들이 운동하는 것이라 믿어진다. 어떤 사람이 열심히 생각하고 있으면 그 생각 분자가 운동을 일으켜 그 파장이 상대편에 茶(다)감을 일으킬 것이다.
◎ 김대건 신부 댁 직계가족은 신부의 절제적 희생을 따라 살다가 욕심 없이 하늘로 옮겨 갔다.
◎ 지구 반대 편에 공동의 기억을 나눌 친구가 있음은 축복이다.
◎ 현재의 가난은 마더 데레사가 구하려 했던 물질적 가난과는 다르다. 고독이나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진 넓고 황량한 새로운 들판인 것이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두고 예수임을 따라나섰고 자캐오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모셨다. 박해시대 순교자들을 베드로에 비하면 세상일에 다 참여하면서 사는 현대 신자들은 자캐오에 가깝다. 순교자들의 삶이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고, 우리가 갈 길을 말해준다. 순교자의 모법과 기 도, 그들의 통공은 4차 혁명 시대라는 사회에서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열쇠다.
◎ 묵주 기도를 시작하자 몸에 전율이 일었다. 몸이 따듯해지며 행복한 느낌이 있었다. 그 뒤 묵주 기도는 몸으로 확인하는 성모님께 말 걸기가 되었다. 그러면서 되풀이하며 외우는 기도문이 자기를 비우는 방법임을 알았다. 묵주 기도는 성모님 치맛자락을 붙들고 예수님 생애를 묵상하는 기도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뜻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것이다.
ㅍ건축이란 설계자의 마음을 말하고. 건축주의 꿈을 품으며, 보는 이의 희망을 담는다. 그래서 오래가는 건물일수록 많은 이야기를 한다.
◎ 유신이 말 머리를 밸 때의 마음을 배워야 하는 순간이 인생을 살면서 어찌 한 번 뿐이겠는가? 가을, 이제 내년을 준비하며 털어버려야 할 것을 다시 생각한다. 버리되 ㅈㄴ지하게 고뇌하며 버려야 ‘선택’이 된다.
◎ 연락도 안하고 오는 걸 보니 내가 죽을 때가 되는 걸 아는가 보구나. 엄마는 내 팔이 많이 남을 정도로 작아지셨다. 사람은 작게 태어나서 점젘 커나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점점 작아진다. 아마 손안에 들 만큼 작아지고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귀천하는 건지도 모른다.
◎목수- 예수 아버지 요셉은 목수였다. 기원전 1세기 유대 나라 목수는 무엇을 했는가? 유대는 더운 나라이므로 흙집이었으리라. 특히 예수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이집트 시골은 지금도 흙으로 사압 벽을 쌓고 지붕에 대추야자 잎을 덮는 그런 형태 집이 주종을 이룬다. 집이 단순한 형태의 마을이었을 터니 목수 요셉은 평상시에 가구나 창틀, 살림 도구 등을 만들었고 못 쓰는 물건을 소용에 닿도록 해주고 편리하게 고쳐주는 사람이었겠다. 아버지 밑에서 그 일을 거들며 배웠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예민하고 두루 소통하며 서로 원만한 관계를 지니고 살았을 것이다. 그렇게 요셉은 가사도구며 집을 고치는 동네 살림의 의사였다. 그의 아들 예수는 나중에 사람의 영혼을 고치는 의사가 되었다. 목수는 나무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흔히 한옥 짓는 사람들은 나무를 자기 생명처럼 여긴다. 적송은 육송보다 짙고, 더 단단하다는 사실을 안다. 박달나무는 참나무보다 더 단단해서 숯을 만들면 참나무보다 더 오래간다는 사실도 안다. 미루나무는 곧게 뻗어 올라가며 아무데나 꺾어서 꽂아도 잘 산다는 성격도 꿰고 있다. 그들은 나뭇결을 살리고 굽은 나무는 그 부위를 제대로 쓸 곳을 골라야 목재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을 잊지 않는다. 잘라 놓은 나무에서 어디가 뿌리 부분인지도 안다. 요셉도 목수로서 나무와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이스라엘에서 자라는 감람나무(올리브나무), 무화과나무, 대추야자, 감귤나마, 포도나무 등과 대화하며 지냈을 거다. 그 나무가 형성되는 과정을 통해 자연이 말하는 오묘한 진리를 터득했을 것이다. 펠리나는 ‘나자렛의 예수’라는 영화에서 요셉이 밤을 세워 고민하마다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는 꿈을 꾸면서 마리아를 위해서 결혼하는 장면을 그렸다. 성경에 의하면 그는 조용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올리브나무는 독특한 면역체계를 지니고 있는 애벌레로부터 공격을 당하면 고유의 화학성분을 합성하여 냄새를 분비한다. 이것이 바람에 날려 옆 나무에게 옮겨져 벌레들의 공격을 막는화학 물질을 합성한다. 그러면 먼저 공격당한 나무는 죽지만 이웃한 나무들은 살게 된다. 이렇게 살아오는 나무들은 요셉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 장식장을 집안에 들임으로써, 저녁에 새 장을 생각하다가 목수라는 직업의 위력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 속에 목수 요셉 성인이 살아났다. 그의 지혜가 함께 묻어왔다. 그의 아들 예수의 어린 시절도 그 장과 함께 되풀이 되고 있다.
◎ 침묵이라는 언어-피정은 물론 침묵으로 이루어진다. 외척 침묵과 내적 침묵, 눈인사도 해서는 안 된다. 고요를 깨지 않기 위해 수저도 그릇에 부딪치지 않도록 하고 기침이 나와도 미안한 형편이어서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했다. 걷는 데도 소리가 나지 않게 하려니 자연히 품격 있는 그림자 걸음이 될수 밖에. 침묵은 모르는 사람들이 모였는데 다른 구성원을 위해 배려를 기울이도록 했다. 누군지 어떤 인생 여생을 지녔는지 모르지만, 현재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환경과 그 사람을 존중해준다. 물론 나도 존중받고 있었다. 산다는 것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현재 상황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가장 중요한 일이다. 침묵 속에 흐르는 현재 사랑이다. 입으로 발음하면 할수록 사라지는 언어. 헛되이 발음하여 놓치고 싶지 않은 진실들이다. 침묵은 어쩌면 배려고 이루어진 새로운 언어 체계에 들어가는 행위이다. 지끔까지 쓰던 단어들이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그 언어로 대화하고 함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선듯한 느낌. 그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침묵이었다.
◎ 그가 살았던 서로 다른 장소에서 얻은 친구들도 다 우리의 친구들이 될 것이다. 신부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 우리가 모두 예수님 팔 안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 링컨 대통령이 노예를 해방시켰지만 흑인의 평등권은 100년 후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이루어졌다.
◎ 김연아 선수가 빙상 위에서 춤추는 물방울이 되어 우승했을 대 울었다. 비움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동작은 인간의 몸이 실현할 수 있는 최고의 한계까지 전닿해준다. 몸의 절제가 인간의 삶까지 풀어낸다. 선수가 울면서 안길 때 등응 두드리는 모습은 그들이 함께한 힘을 느끼게 한다. 마치 하느님이 우리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한다. 이 세사응 혼신을 다해서 힘들게 이기고 돌아가면, 주께서도 그렇게 팔 벌리고 계실 것만 같다. 진정한 혼자의 길이야말로 쓸데없는 군살을 버리게 한다. 전념할수록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자신을 깨닫고 자존의 세계를 세우기 위해 힘들어 본 사람이라면 대화는 더 쉽게 열린다. 버리지 못하면 듣지 못한다. 듣지 못하고 자기 말만 하는 것은 소통이 아니다. 우리는 독재자를 싫어한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듣지 못하는 한 우리 모두는 자신이 관여하는 범위 안에서 독재자일 수 있다. 우리가 김연아가 전설을 만들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께서는 우리가 전설이 되길 바라실 것이다.
◎ 옹기촌 칠옹 사람들은 옹기는 오곱이 남고, 칠기는 칠곱이 남아서 칠기라고 한다면서 먹고살기에는 괜찮았다고 했다.
◎ 권대근 평론가의 평
김교수 수필은 지식과 체험과 사상이 용해되어 예술적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대상을 창의적으로 비판하는 인식의 맛. 지성적 언어로 구축된 준열한 삶의 실상. 생명 의식과 진실탐구와의 환상적 교직. 자기 자신을 만나기 위한 모색의 일환 .사상 근육이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