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어 보는 시>
내리막 길 / 20131111
인간을 회의懷疑 한다
서로를 회의하면서 살아가다가
신발이 거꾸로 신겨질 때가 있다
나는 앞으로 가는데, 내 발자국은 뒷걸음질치며
집으로만 들어간다 집은 피난처다
아무런 댓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아득한 곳이다 그 아득한 곳에서 나와 나는
다시 아득한 곳으로 나가는 중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똑바로 뻗은 길로
내가 탄 자동차는 제 정신으로 달리는데
그 아득함을 가슴에 풍선처럼 빵빵하게 채우면서
내리막길을 달린다 무서워, 무서워,
길이란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어야 하는데
내 차는 내리막길만을 달려간다
내리막길에도
곳곳에 평지가 매달려 있고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도시가 있고,
모양이 제 각각인 나무가 있다 옷이 서로 다른
동네가 있고, 무표정한 얼굴이 있다
마치 성난 사람들처럼,
속도가 너무 빨랐으므로 내리막길에서는
뒤를 돌아 볼 틈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나는, 떠난 사람들이
뒤를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위안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도.......회의懷疑 한다
잠시 멈춰 서면 될 것 아냐?
뒤돌아서서 가면서도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AI-gemini ; 감상>
성찰적이고 아득한 시선 속에서 인간관계의 쓸쓸함과 그리움이 깊게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시적 구상과 의도, 시의 행간마다 담긴 안타까움과 번민이 더욱 입체적으로 다가옵니다.
시인의 의도처럼, 이 시는 관계의 종말에서 오가는 날카로운 언어와 예기치 못한 차가움, 그리고 그 제어할 수 없는 속도감을 '내리막길'과 '거꾸로 신겨진 신발'이라는 강렬한 상징으로 훌륭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주요 상징 및 구조에 대한 감상
거꾸로 신겨진 신발과 집 (1연)
"나는 앞으로 가는데, 내 발자국은 뒷걸음질치며 / 집으로만 들어간다"
관계에서 상처받은 마음이 세상(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일한 피난처인 내면 혹은 개인의 공간(집)으로 움츠러드는 모습을 '거꾸로 신은 신발'로 시각화한 대목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찾아 숨어드는 인간의 방어적인 태도가 여실히 느껴집니다.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내리막길 (2연~3연)
"내 차는 내리막길만을 달려간다""속도가 너무 빨랐으므로 내리막길에서는 / 뒤를 돌아 볼 틈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야"
서로에게 모난 말을 던지며 갈라서게 되는 순간, 관계가 무너지는 속도는 결코 일상적인 제어가 불가능합니다. 오르막이나 평지가 있을 법도 한데 멈추지 않고 가속만 붙는 내리막길은,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 느끼는 무력감과 공포("무서워, 무서워")를 잘 대변해 줍니다.
풍경(호수, 산, 도시, 무표정한 얼굴)이 스쳐 지나감에도 그것을 감상할 겨를 없이 앞으로만 쏠려 내려가는 모습은, 헤어짐의 와중에 주변이나 상대방을 배려할 여유조차 상실해버린 상황을 절묘하게 비유합니다.
위안과 회의, 그리고 멈춤에 대한 질문 (3연 후반)
"떠난 사람들이 / 뒤를 볼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고 위안하기 시작한다 / 그러면서도.......회의懷疑 한다 / 잠시 멈춰 서면 될 것 아냐?"
떠나간 사람들의 야속한 뒷모습을 '내리막길의 가속도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해 보려 하지만, 이내 *"잠시 멈춰 서면 될 것 아니냐"*는 솔직하고도 서운한 회의가 터져 나옵니다. 자기합리화와 서운함 사이를 오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선이 돋보입니다.
마지막 여운 (4연)
"뒤돌아서서 가면서도 /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비록 헤어짐의 순간이 오더라도 모난 말로 서로를 할퀴며 황급히 내달리기보다는, 서로를 품어주고 기억해 줄 수 있는 여유와 품격을 지닌 '아름다운 뒷모습'을 갈망하며 시가 마무리됩니다. 이 마지막 두 줄이 시 전체에 감도는 씁쓸함 위에 깊은 아쉬움과 온기를 동시에 부여합니다.
총평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이별의 순간과 제어되지 않는 관계의 속도감을 자동차와 내리막길, 신발이라는 일상적 매개체로 차분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낸 매력적인 시입니다. 이별 속에서도 관계의 본질을 되돌아보고 '뒷모습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화자의 유연하고도 깊은 시선이 오래도록 잔상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