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장 박 씨 “성추행이 아니라 피해자와 장난친 것” 항변
징역 3년 선고… 재판부 “사회통념상 피해자가 수치심 느끼기 충분”
박 씨, 공익신고자 이 씨에게는 해고통보 등 노동탄압 자행
포항시는 탈시설 지원, 시설폐쇄 계획 없이 피해자 전원조치만
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 홈페이지. ‘서로 사랑하라’라는 요한복음 13장 성경구절이 적혀 있다.
포항시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우리집’(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의 시설장 박 아무개 씨(52세)가 성폭력범죄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래 성폭력처벌법)으로 23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박 씨의 성추행 범죄는 시설 내에서 사회재활교사로 근무하던 이 씨가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공익제보하면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씨는 시각장애인인 이 씨의 근로지원인 이용을 거부하고 이 씨를 부당해고까지 했다.
게다가 성추행 피해자 ㄱ 씨는 탈시설하지 못하고 대형 거주시설로 전원조치됐다. 박 씨는 23일 법정구속 직전까지 ‘우리집’에서 시설장으로 근무해, ‘우리집’ 거주인과 성추행 가해자는 분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태가 이러한데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포항시는 여전히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포항공동투쟁단(아래 420포항공투단)은 지난 9일과 23일 양일간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시를 향해 △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 산하 3개 공동생활가정 내 인권침해 실태 전수조사 실시 △3개 공동생활가정 및 법인 폐쇄 △3개 공동생활가정에 거주 중인 장애인 7명과 피해자의 탈시설 지원계획 마련 △공익제보자 보호 관련 조례 제정 등을 요구했다.
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 조직도. 성추행 가해자 박 씨가 법인산하 3개 공동생활가정의 시설장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우리공동체
- 박 씨 “피해자와 장난 친 것… 성추행 아냐”
사회복지법인 우리공동체는 2006년 4월에 설립허가를 받았다. 현재 법인산하 공동생활가정은 우리집, 나눔의집, 예랑의집 등 총 세 곳이다. 박 씨는 세 곳 전체의 시설장이다.
성추행 범죄는 지난해 3월 24일 일어났다. 사회재활교사 이 씨는 박 씨가 ‘우리집’ 생활관 내 식당에서 중증 지적장애여성 거주인의 신체를 추행하는 걸 목격했다. 이 씨는 사진을 찍어 2020년 4월,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했다.
박 씨는 자신이 무고하다고 줄곧 항변했다. 박 씨가 법원에 제출한 변론요지서를 보면 박 씨는 ‘피해자는 지적장애인이라 유의미한 진술을 못하므로 (피해자 진술은) 증거가치가 없다’, ‘목격자는 이 씨의 회유에 못 이겨 허위진술을 했다’, ‘피해자가 나에게 ‘하지 마’라고 한 것은 성추행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장난 치면서 한 말이다’, ‘피해자가 평소에 나에게 신체를 접촉하며 장난을 많이 쳤고 내가 그걸 받아줬다’라고 주장했다.
1심 선고가 있기 전인 지난 9일에도 박 씨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공익제보인지 무고인지 아직 판결 나지 않았다. 이 씨를 ‘공익제보자’라고 부르는 것은 어폐가 있다”며 자신은 성추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피해자의 보호자도 ‘원장님은 전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탄원서를 제출했다”면서 “이 씨가 취직하지 않고 계속 먹고 놀아서 우리 시설에 취업시켜 줬는데 이런 신고를 해서 황당하다”고 했다.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 제1형사부는 23일 열린 1심에서 박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8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7년간 제한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박 씨)은 성추행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나 사회통념상 객관적으로 피해자가 성적수치심을 느꼈을 것이 충분하고 △장애인을 보호해야 하는 시설장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오히려 성추행 가해를 한 점을 들어 유죄판결했다.
박 씨가 복직계를 제출한 이 씨에게 보낸 업무지시서. 6세 시각장애자녀를 홀로 양육하는 이 씨가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의 업무내용이 적혀 있다. 사진 420포항공투단 제공
- 성추행 신고했더니 돌아온 건 ‘해고통보’
박 씨는 공익제보한 이 씨를 상대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다. 6세 시각장애자녀를 홀로 양육 중인 이 씨는 2020년 4월,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박 씨의 성추행 범죄를 신고한 후 바로 다음달에 육아휴직계를 제출했다. 신고 이후 보복행위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 이 씨를 지원하고 있는 김용식 경북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이 씨는 1년간 휴직하고 나면 성추행 가해자가 시설을 떠나 있을 거란 생각에 육아휴직계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는 시설을 떠나지 않았다. 법정구속 직전까지 우리공동체 산하 공동생활가정의 시설장으로 근무했다. 불구속 상태이긴 했지만 성폭력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됐는데 관리·감독기관인 포항시는 아무런 제재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이 씨는 지난 4월에 복직계를 제출했다.
이 씨가 복직계를 제출하자마자 박 씨의 부당노동행위가 시작됐다. 박 씨는 지난 4월 16일, 이 씨에게 법인명의의 공문을 보냈다. ‘이 씨의 시각장애가 중하지 않으니 근로지원인 이용은 추후 결정하겠다, 출퇴근 및 업무지시에 따라 근무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문에는 근로지원인 이용을 이 씨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적혀 있지만 이 씨는 이용을 거부당했다. 김용식 집행위원장은 “박 씨의 일방적인 결정이었다. 이 씨는 휴직 전 줄곧 근로지원인을 이용해 왔다. 공익신고에 대한 보복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근로지원인을 신청할 때 사업주(사측)의 동의를 받아 신청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장애인노동자의 근무환경, 장애정도에 따른 근로지원인 필요 여부 등은 사측이 아니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방문평가 후 판단한다. 공문에 적혀 있는 것처럼 ‘장애정도가 심각하지 않은 상황을 고려’하는 등의 판단은 사업주의 몫이 아니다. 박 씨는 이 씨가 근로지원인을 이용할 권리를 침해했다.
출퇴근 시간 및 업무지시서 내용도 심각하다. 6세 시각장애자녀를 홀로 키우는 이 씨의 상황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출근시각은 오후 4시, 퇴근시각은 다음날 새벽 1시다. 게다가 오전 6시부터 8시까지 추가로 근무해야 한다.
이 씨는 중증 시각장애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는 점, 자녀를 지원하는 돌봄지원사가 밤 10시에 퇴근해 자녀가 밤에 혼자 있어야 되는 점 등을 들어 근무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박 씨는 이를 묵살했다. 이 씨의 휴직 전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였다.
이 씨가 박 씨의 출퇴근 명령을 따르지 않고 오전 10시에 출근하자 박 씨는 경찰을 불러 이 씨를 ‘우리집’에서 내쫓으려 했다. 또한 ‘거주장애인 방임, 장애인 학대 등으로 고소하겠다’며 이 씨를 협박했다. 이 씨는 박 씨의 노동탄압에 저항하며 출근하지 않았다.
결국 이 씨는 지난 9일부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박 씨가 지난달 10일, 이 씨 앞으로 보낸 법인명의의 공문에는 ‘이 씨를 6월 9일부로 자연면직한다. 파면에 해당하나 논의 끝에 장애여성인 점을 감안해 자연면직으로 결정했다’고 적혀 있다.
보건복지부 평가 결과, 우리공동체 법인이 운영하는 3개 공동생활가정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D등급은 100점 만점의 60점대, F등급은 60점 미만을 뜻한다. 사진 보건복지부 자료 캡처
- 탈시설 지원계획도, 시설폐쇄 계획도 없는 포항시
이 씨가 공익신고한 시점인 2020년 4월부터 지금까지 포항시는 무책임한 소극적 행정으로 일관 중이다. 박 씨가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지만 포항시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23일 법정구속되기 직전까지 시설장으로 계속 근무했다. 사태를 책임지라는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에게 포항시는 ‘재판결과가 나오면 다시 얘기하자’는 입장만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를 비롯한 ‘우리집’ 거주인에 대한 탈시설 지원계획도 전무하다. 피해자 ㄱ 씨는 2020년 6월에 보호자의 요청으로 대형 장애인 거주시설로 전원조치 됐다. 420포항공투단은 “피해자는 기껏해야 또다른 수용시설로 옮겨질 뿐이었다. 포항시는 범죄시설을 용인하고,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으며,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을 수립하지 않아 시설범죄를 부추기고 있다”고 성토했지만 포항시는 별다른 계획이 없는 상태다.
김민희 포항시 장애인시설팀 주무관은 23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현재 거주 중인 분들은 개별상담을 통해 전원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서 탈시설-자립생활 계획이 아닌 전원계획만을 말했다.
시설폐쇄에 대한 계획도 없는 상태다. 장애인복지법 62조에는 시설의 회계 부정이나 시설이용자에 대한 인권침해 등 불법행위, 그 밖의 부당행위 등이 발견되면 관할 지자체가 시설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 시행규칙에는 3년 내 동일한 부당행위가 3회 발생해야 시설폐쇄를 명령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박 씨는 성매매 알선 등으로 2009년에 벌금형, 2010년에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 시설을 운영하면서 보조금을 횡령해 두 차례 벌금을 낸 적도 있다. 또한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진행한 ‘사회복지시설 평가’에서 나눔의집은 D등급, 예랑의집은 D등급, ‘우리집’은 F등급을 받았다. 시설환경 및 운영, 이용자의 권리, 프로그램 서비스 등 각 항목 대부분이 낙제점이다.
이런 상황에 박 씨가 성추행 유죄판결을 받아 구속됐는데도 포항시는 시설폐쇄에 소극적이다. 김민희 주무관은 “검토 중이다. 절차대로 할 예정이다.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렵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420포항공투단은 23일 1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포항시청을 규탄했다. 사진 포항420공투단
장애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지자체가 의지만 있으면 부당행위 3회 발생을 기다리지 않고 시설폐쇄를 한 번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제2의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장수 벧엘의집, 인천 해바라기의 경우 인권침해 사실이 드러나고 언론에 알려진 후 시설폐쇄 명령이 떨어졌다. 지자체가 의지만 있으면 부당행위 한 번에 시설폐쇄를 할 수 있다”며 “강한 행정처분을 명령할 경우 시설이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지자체가 소송에 휘말리기 싫어하며 소극적 행정을 펼치느라 시설 내 인권침해같이 무거운 사안을 가볍게 다룬다”고 비판했다.
정민구 활동가는 “학대 피해자인 거주장애인을 전원조치하는 것은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뺑뺑이 돌리는 일일 뿐이다. 이렇게는 시설범죄를 막을 수 없다. 장수 벧엘의집의 경우 전원조치된 학대 피해자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또 시설범죄가 일어난 것”이라며 ㄱ 씨의 전원조치를 결정한 포항시가 부적절한 판단을 했다고 비판했다.
활동가들이 ‘포항시는 공익제보자 지원대책 마련하라’, ‘재판부는 성추행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라’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420포항공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