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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틈만 있으면 그물을 들고 저 앞개울로 가곤 했지. 그래서 어른들이 고기잡이 목사라고들 불렀었지.
현재의 목사는 그때의 목사보다 아주 젊어 서른 전후로 보였다. 그는 내가 누구라는 걸 알자 벌써 장례를 치른 치른 지가 여러 날 된다고 했다. 고인이 운명하기 전에 내게만은 알려달라고 하면서 꼭 종지기 아무개라고 해야 할 거라고 하더라는 말도 했다.
내가 찾아온 것은 물론 장례식과는 관계가 없었다. 부고의 수신 주소가 학교로 돼있고 그 학교가 방학 중이어서 이래저래 내 손에 부고가 들어오기를 이미 한 열흘 뒤였던 것이다. 고인의 가족이 어디 사느냐고 젊은 목사에게 물었다. 이날 찾아온 목적은 여기에 있었다. 40여년이란 세월 속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릴 적 동무, 그것도 불과 이삼년밖에 같이 놀지 못한 동무가 내 현재 직장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평생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나로 하여금 고인의 유가족이나마 찾아보지 않고는 못 배기게 했던 것이다. 젊은 목사의 대답은 그러나 나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의 꼽추의 형태가 어떠했는지는 눈앞에 그릴 수 없었으나 가족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심한 불구자가 되었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것 같았다.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았었다는 방을 젊은 목사가 가리켰다. 나는 레지에게 교회당 종소리가 예전과는 달라졌으리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이 토요일 아녜요?]
오늘이 일요일로 착각하고 묻는 줄로 레지는 아는 모양이었다. 공연한 걸 물었다 싶었다.
사람들은 곧 새 종지기의 종소리에 익숙해질 것이다. 그래서 무방한 것이다. 옛날 그 종소리는 나 혼자 간직하면 족한 것이다.
그러는 내 가슴속에 불현듯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두 어린이가 종을 치고 있었다. 이제는 종지기인 성일이 아버지는 거기 없고, 단지 두 어린이만이 같이 종 줄을 잡고 있었다. 줄을 잡아당겼을 때의 뗑 소리와 줄을 늦출 때의 강 소리사이의 간격, 그리고 다음 뗑 소리와의 약간 긴 간격, 이러한 뗑과 강소리가 되풀이 되면서 내는 가락에 어울려 일종 특이한 여운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여운의 파문이 자꾸만 내 가슴을 채워왔다.
이 때 나는 보았던 것이다. 앞에 펴놓은 그림이 이상한 변화를 일으킨 것을, 아니 변화라기보다는 이 그림을 그린 고인의 본뜻을 비로소 알아볼 수 있었다는 게 옳았다. 그림의 붓놀림이 어쩌면 이렇게 즐거울 있을까. 불꽃처럼 보였던 선 하나 하나가 실상은 어쩔 수 없는 즐거움에서 우러나온 율동이었던 것이다. 킬킬킬 티 없는 웃음이 연필 자국마다 스며 있다가 되살아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40여 년전 웃음을 나눠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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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 [1948]
김동리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흘러서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 쪽 화개협(花開峽)에서 흘러 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과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치인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 주며, 다시 남으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본류였다.
하동, 구례, 쌍계사의 세 갈래 길목이라 오고가는 나그네로 하여, 화개장터엔 장날이 아니라도 언제나 흥성거리는 날이 많았다. 지리산 들어가는 길이 고래로 허다하지만, 쌍계사 세이암의 화개협 시오 리를 끼고 앉은 화개장터의 이름이 높았다. 경상 전라 양 도 접경이 한두 군데일리 없지만 또한 이 화개장터를 두고 일렀다.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 도라지, 두릅, 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 바늘, 면경, 가위. 허리끈, 주머니끈, 족집게 골백분 들이 또한 구렛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 미역, 청각, 명태, 자반 조기, 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으나, 그러나 화개장터의 이름은 장으로 하여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일지라도 인근 고을 사람들에게 고곳이 그렇게 언제나 그리운 것은, 장터 위에서 화갯골로 뻗쳐 앉은 주막마다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물고기의 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 전라도 지방에서 꾸며 나오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들이 마지막 연습 겸 첫 공연으로 여기서 으레 재주와 신명을 떨고서야 경상도로 넘어간다는 한갓 관습과 전례가 화개장터의 이름을 더욱 높이고 그립게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가운데도 옥화네 주막은 술맛이 유달리 좋고 값이 싸고 안주인 즉 옥화의 인심이 후하다 하여 화개장터에서는 가장 이름이 들 난 주막이었다, 얼마 전에 그 어머니가 죽고 총각 아들 하나와 단 두 식구만으로 안주인 옥화가 돌아올 길 망연한 남편을 기다리며 살아간다는 것이라 하여 그들은 더욱 호의와 동정을 기울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혹 노자가 딸린다거나 행장이 불비할 때 그들은 으레 옥화네 주막을 찾았다.
[나 이번에 경상도서 돌아올 때 함께 회계하지 라오.]
그들을 예사로 이렇게들 말하곤 하였다. 늘어진 버들가지 강물에 씻기우고, 저녁놀에 은어가 번득이고 하는 여름철 석양 무렵이었다.
나이 예순도 훨씬 더 넘어 뵈는 늙은 체장수 하나가, 쳇바퀴와 바닥 감들을 어깨에 걸머진 채 손에는 지팡이와 부채를 들고 옥화네 주막을 찾아왔다. 바로 그 뒤에는 나이 열 대여섯 살 쯤 나 뵈는 몸매 호리호리한 소녀 하나가 조금한 보따리를 옆에 끼고 서 있었다. 그들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저 큰애기까지 두 분입니까?]
옥화는 노인보다 큰애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저녁상을 물린 뒤 노인은 옥화에게 인사를 청했다. 살기는 구례에 사는데 이번엔 경상도 쪽으로 벌이를 떠나온 길이라 하였다. 본시 여수가 고향인데 젊어서 친구를 따라 한때 구례에 와서도 살다가 그 뒤 목포로 광주로 전전하였고, 나중 진도로 건너가 거기서 열일여덟해 사는 동안 그만 머리털까지 세어져서는, 그래 몇 해 전부터 도로 구례에 돌아와 사는 것이라 하였다. 그렇지만 저런 큰애기를 데리고 어떻게 다니느냐고 옥화가 묻는 말에 그렇잖아도 이번에는 죽을 때까지 아무데도 떠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떠나지 않고는 두 식구가 가만히 굶을 판이라 할 수 없었던 것이라 하겠다.
[그럼, 저 큰애기는 하라부지 딸입니까?]
옥화는 남폿불 그림자가 반쯤 비낀 바람벽 구석에 붙어 앉아 가끔 그 환한 두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곤 하는 소녀의 동그스름한 어깨를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노인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평생 객지로만 돌아다니고 나니 이제 고향 삼아 돌아온 곳이래야 또한 객지라 그들 아비 딸이 어디다 힘을 입고 살아가야 할는지 아무데도 의탁할 곳이 없다고 그들의 외로운 신세를 한탄도 했다.
[나도 젊었을 때는 노는 것을 좋아했지라오. 동무들과 광대도 꾸며 갖고 봤는듸 젊어서 한 번 바람 들어 농게 평생 못 가기 마련이랑게...... 그것이 스물네살 때 정초닝게 꼭 서른여섯 해 전일 것이여, 바로 이 장터에서도 하룻밤 논 일이 있었지라오.]
노인은 조용히 추억의 실마리를 더듬는듯,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곤 하는 것이었다.
[어이유! 참 오래 전일세!]
옥화는 자못 놀라운 시늉이었다.
이튿날은 비가 왔다.
화개장날만 책전을 펴는 성기는 내일 장 볼 준비도 할 겸 하루를 앞두고 절에서 마을로 내려오고 있었다.
쌍계사에서 화개장터까지는 시오리가 좋은 길이라 해도, 굽이굽이 벌어진 물과 돌과 산협의 장려한 풍경이 언제 보다 그에게 길 덜미를 내지 않게 하였다.
처음엔 글을 배우러 간다고 할머니에게 손목을 끌리다시피 하여 간 곳이 절이었고, 손 윗 동무들의 사랑에 끌니다다시피쯤 하여 왔지만 이즘 와서는 매일같이 듣는 북소리, 목탁 소리, 그리고 그 경을 치게 회 맑은 은행나무, 염주나무, 이런 것까지 모두 싫증이 났다.
당초부터 어디로 훨훨 가 보고나 싶던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러나 어디로 간다는것 말만 들어도 당장에 두 눈이 시뻘개져서 역정을 내는 어머니였다.
[서방이 있나, 일가친척이 있나, 너 하나만 믿고 사는 이년의 팔자에 너조차 밤낮 어디로 간다고만 하니 난 누굴 믿고 사냐?]
어머니의 넋두리는 인제 귀에 못이 박일 정도였다.
이러한 어머니보도 차라리, 열 살 때부터 절에 보내어 중질을 시켰으니, 인제 역마살도 거진 다 풀려 갈 것이라고 은근히 느꾸시는 편이던 할머니는, 성기가 세 살 났을 때 보인 그의 사주의 시천역이 들었다 하여 한때는 얼마나 낙담을 했던 것인지 모른다. 하동 산다는 그 키가 나지막한 명주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가 혹시 갑자을축을 잘못 짚지나 않았나 하여, 큰절(쌍계사를 가리킴)에 있는 어느 노장에게도 가 물어 보고 지리산 속에서 도를 닦아 나온다던 어떤 키 큰 영감에게 다시 뵈어 봤지만 시천역엔 조금도 요동이 없었다.
[천성 제 애비 팔자를 따라갈려는 게지.]
할머니가 어머니를 좀 비꼬아 하는 말이었으나 거기 깊은 원망이 든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말엔 각별나게 신경을 쓰는 옥화는,
[부모 안 닮은 자식 없단다. 근본은 다 엄마 탓이지.]
도리어 어머니에게 오금을 박고 들었다.
[이년아 애미한데 너무 오금박지 마라. 남사당을 붙었음, 너를 버리고 내가 그놈을 찾아갔냐, 너더러 찾아 달라 성화를 댔냐?]
그러나 서른여섯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하여 옥화를 배게 된 할머니나, 구름 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가지게 된 옥화나 다같이 화개장터 주막에 태어났던 그녀들로서는 별로 누구를 원망할 턱도 없는 어미 딸이었다.
성기에게 역마살이 든 것은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탓이요, 어머니가 중 서방을 정한 것은 할머니가 남사당에게 반했던 때문이라면 성기의 역마운도 결국은 할머니가 장본이라, 이에 할머니는 성기에게 중질을 시켜서 살을 때우려고도 서둘러 보았던 것이고, 중질에서 못 다푼 살을, 이번에는 옥화가 그에게 책장사라도 시켜서 풀어 보려는 속셈인 것이었다. 불경보다는 암만해도 이야기책에 끌리는 눈치요, 중질보다는 차라리 장사라도 해보고 소청이기도 하여, 그러나 옥화는 꼭 화개장만 보기로 다짐까지 받은 뒤, 그에게 책전을 내어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성기가 마루 앞 축대 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자 옥화는 놀란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더운데 왜 인저사 내려오냐?]
곁에 있던 수건과 부채를 집어 그에게 주었다.
지금까지 옥화에게 이야기책을 읽어 들려주고 있은 듯한 낯선 계집애는, 책 읽던 것을 멈추고 얼굴을 들어 성기를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흰자위 검은 자위가 꽃같이 선연한 두 눈이었다. 순간, 성기는 가슴이 찌르르하며 갑자기 생기 띠어 진눈으로 집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를 바라보았다.
얼마 뒤, 계집애는 안으로 들어가고, 옥화는 성기의 점심상을 차려 들고 나와서,
[체장수 딸이다.]
하였다. 어머니도 즐거운 얼굴이었다.
[체장수라니?]
성기는 밥상을 받은 채, 그러나 얼른 숟가락을 들지도 않고, 그의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례 산다더라. 이번에 어쩌면 하동으로 해서 진주 쪽으로 나가 볼 참이라는데 어제 저녁에 화갯골로 들어갔다.]
그리고 저 딸아이는 그 체장수의 무남독녀인데 영감이 화갯골 쪽으로 들어갔다. 나와서, 하동 쪽으로 나갈 때 데리고 가겠다고, 하도 간청을 하기에 그동안 좀 맡아 있어 주기로 했다면서, 옥화는 성기의 눈치를 살피듯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갯골에서는 며칠이나 있겠다던고?]
[들어가 보고 재미나면 지리산 쪽으로 깊이 들어가 볼 눈치더라.]
그리고 나서, 옥화는 또,
[그래도 그런 사람의 딸 같이는 안 뵈지?]하였다. 계연이란 이름이었다.
성기는 잠자코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러나 밥은 반도 먹지 않고, 상을 물려 버렸다.
이튿날 성기가 책전에 있으려니까, 그 체장수 딸이 그의 점심을 이고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래야 소리 지르면 들릴 만한 거리였지만, 그래도 전날 늘 이고 다니던 상돌엄마가 있을 터인데 이렇게 벌써 처녀티가 나는 남의 큰애기더러 이런 사환을 시켜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작 그녀 쪽에서는 그러한 빛도 없이, 그 꽃송이같이 화안한 두 눈에 웃음까지 담은 채, 그의 앞에 밥함지를 공손스레 놓고는, 떡과 엿과 참외들을 팔고 있는 음식 전 쪽으로 곧장 눈을 팔고 있었다.
[상돌엄만 어디 갔는듸?]
성기는 계연의 그 아리따운 두 눈에서 흥건한 즐거움을 가슴으로 깨달으며, 그러나 고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돌린 채, 차라리 거칠은 음성으로 이렇게 물었다.
[손님이 마루에 가뜩 찼는듸 상돌엄마가 혼자사 바삐 서두닝께 어머니가 지더러 갖고 가라 했어요.]
그동안 거의 입을 열어 말하는 일이 없었던 계연은, 성기가 묻는 말에, 의외로 생경한 전라도 쪽 토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가냘프고 갸름한 어깨와 목하며, 어디서 그렇게 힘차고 괄괄한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줌이나 될 듯 한 가느다란 허리와 호리호리한 몸매에 비하여 발달된 팔다리와 토실토실한 두 손등과 조그맣게 도톰한 입술을 가진 탓인지도 몰랐다.
[계연아, 오빠 세숫물 놔 드려라.]
이튿날 아침에도 옥화는 상돌엄마를 부엌에 둔 채 역시 계연에게 성기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세숫물을 놓는 일뿐 아니라 숭늉 그릇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밥상을 차려 오는 것이나 수건을 찾아 주는 것이나 성기에 따른 시중은 모조리 그녀로 하여금 들게 하였다. 그리고는,
[아이가 맘이 컴컴치 않고, 인정이 있고, 얄미운 데가 없어.]
옥화는 자랑 삼아 이런 말도 하였다.
[저의 아버지는 웬일인지 반 억지 비슷하게 거저 곧장 나만 믿겠다고, 아주 양딸처럼 나한테 다 맡기구 싶은 눈치더라만......]
옥화는 잠깐 말을 끊어서 성기의 낯빛을 살피고 나서 다시,
[그래 너한테도 말을 들어 봐야겠고 해서 거저 대강 들을 만하고 있었잖냐...... 언제 한번 데리고 가서 칠불 구경이나 시켜 줘라.]
하는 것이, 흡사 성기의 동의를 구하는 모양 같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서 옥화는 계연의 말을 옮겨, 구례 있는 저의 집이래야 구례 읍에서 외 따로 떨어진 무슨 산기슭 밑에 이웃도 없이 있는 오막살인가 보더라고도 하였다.
[그럼 살림은 어쩌고 나왔을까?]
[살림이래야 그까진 거 머 방문에 자물쇠 채워 두었으면 그만 아냐, 허지만 그 보다도 나그넷길에 데리고 나선 계연이가 걱정이지.]
이러한 옥화의 말투로 보아서는 체장수 영감이 화갯골에서 나오는 대로 계연을 아주 양딸로 정해 둘 생각인 듯이도 보였다. 다만 성기가 꺼릴까 보아 이것만을 저어하는 눈치 같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옥화는 성기더러 장가를 들라고 권했으나 그는 응치 않았고, 집에 술 파는 색시를 몇 차례나 두어도 보았지만 색시 쪽에서 간혹 성기에게 말썽을 내인 적은 있어도 성기가 색시에게 그러한 마음을 두는 일은 한 번도 있은 적이 없어, 이러한 일들로 해서, 이번에도 옥화는 그녀로 하여금 성기의 미움이나 받지 였한 컬레를 사들고 오려니까 비죽이 웃는 얼굴로 막걸리 한 사발을 그에게 떠주며,
[오늘 날씨가 너무 덥잖아?]
고 하였다. 술 거를 때 누구에게나 맛뵈기 떠 주기를 잘하는 옥화였다. 계연이는 방에서 갈아입고 있었다.
[계연아, 너도 빨리 나와, 목마를 텐데 미리 좀 마시고 가거라.]
옥화는 방을 향해서도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항라 적삼에 가는 삼베 치마를 갈아입고 나오는 계연은 그 선연한 두 눈의 흰자위 검은자위로 인하여 물에 어리인 한 송이 연꽃이 떠오는 듯하였다.
[꼭 스무 해 전에 내가 입었던 거다.]
옥화는 有感[유감]한 듯이 계연의 옷맵시를 살펴 주며 말했다.
[어제 꺼내서 품을 좀 주여 놨더니만 빠있음 무슨 내외할 사이냐?]
그러자 계연은 웃는 얼굴로 술잔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 마시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성기는 먼저 수양버드나무 밑에 와서 새 신발에 물을 축이었다. 계연이도 곧 뒤를 따라 나섰다. 어저께 성기가 칠불암까지 책값 수금 관계로 좀 다녀올 일이 있다고 했더니, 옥화가 그러면 계연이도 며칠 전부터 산나물을 캐러 간다고 벼르는 중이고, 또 칠불암 구경은 어차피 한번 시켜 주어야 할게고 하니, 이왕이면 좀 데리고 가잖겠느냐고 하였다.
성기는 가슴도 좀 뛰고, 그래서, 나물을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싫다고 했더니 너더러 누가 나물까지 캐라느냐고, 앞에서 길만 끌어 주면 되잖느냐고 우기어, 기승한 어머니에게 성기는 더 항변을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성기는 처음부터 큰길을 버리고,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수풀 속 산길을 돌아가기로 하였다 원체가 지리산 밑이요, 또 나뭇길도 본디부터 똑똑히 나 있지 않는 곳이라 어려서부터 자라난 고지만 울울한 수풀 속에서 성기는 몇 번이나 길을 잃은 채 헤매곤 하였다.
쳐다보면 위로는 하늘을 찌를 듯 한 높은 산봉우리요, 내려다보면 발아래는 바다같이 뿌우연 수풀뿐, 그 위에 흰 햇살만 물줄기처럼 내리 퍼붓고 있었다. 머루, 다래, 으름은 이제 겨우 파랗게 메아리져 있고, 가지마다 새빨간 복분자, 오디는 오히려 철이 겨운 듯 한 머리 까맣게았다.
성기는 제 손으로 다듬은 퍼런 아가위나무 가지로 앞에서 칡덩굴을 헤쳐 가며 가고 있는데, 계연은 뒤에서, 두릅을 꺾는다, 딸기를 딴다, 자꾸 혼자 처지곤 하였다.
[빨리 오잖고 뭘 하나?]
성기가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라면 계연은 딸기를 따다 말고, 두릅을 꺾다 말고, 그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물고는 뛰어오는 것인데, 한참만 가다 보면 또 뒤에 떨어지곤 하였다.
[아이고머니 어쩔꺼나!]
갑자기 뒤에서 계연이가 소리를 질렀다.
돌아다보니 떡갈나무 위에서, 가지에 치맛자락이 걸려 있다. 하필 떡갈나무에는 뮛 하러 올라갔을 까고, 곁에 가 쳐다보니, 계연의 손이 닿을 만한 위치에 그 아래쪽 딸기나무 가지가 넘어와 있다. 딸기나무에 가시가 있고 또 비탈에서 있어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그 딸기나무와 가지가 서로 얽힌 떡갈나무 쪽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 몸을 구부려 손으로 치맛자락을 벗기려면 간신히 잡고 서 있는 윗가지에서 손을 놓아야 하겠고, 손을 놓았다가는 당장 나무에서 떨어질 형편이다. 나무 아래서 쳐다보니 활짝 걷어 올려진 베치다 속에, 정강마루까지를 채 가루지 못한 짤막한 베고의가 훤한 햇살을 받아 그 안의 뽀오얀 것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성기는 짚고 있던 생나무 지팡이로 치맛자락을 벗겨주려 하였으나, 지팡이가 짧아서 그렇겠지만 제 자신도 모르게, 지팡이 끝은 계연의 그 발가스레 하고 매초롬한 종아리만을 자꾸 건드리고 있었다.
[아이 싫어! 남에서 떨어진당게!]
계연은 소리를 질렀다. 게다가 마침 다람쥐란 놈까지 한 마리 다래 넌출 위로 타고 와서, 지금 막 계연이가 잡고 서 있는 떡갈나무 가지 위로 건너뛰려 하고 있다.
[아 곧 떨어진당게! 그 막대로 저 다램이나 때려줬음 쓰겠는듸.]
계연은 배 아래를 거진 햇살에 훤히 드러 내인 채 있으면서도 다래 넌출 위에서 이쪽을 건너다보고 그 요망스런 턱주가리를 쫑긋거리고 있는 다람쥐가 더 안타까운 모양으로 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요놈의 다램이가......]
성기는 같은 나무 밑둥치에까지 올라가서야 겨우 계연의 치맛자락을 벗겨 주고, 그러고는 막대로 다시 조금 전에 다람쥐가 앉아 있던 다래 넌출도 한번 툭 쳤다. 이 소리에 놀랐는지 산비둘기 몇 마리가 '푸드득'하고 아래쪽 머루 넌출 위로 날아갔다.
[샘물이 있어야 쓰겄는듸.]
계연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이마의 땀을 씻으며 이렇게 말했다.
모롱이를 돌아 새로운 산줄기를 탈 때마다 연방 더 우악스런 어두운 수풀을 지나 환하게 열린 하늘을 내다볼 때마다 바다같이 질펀한 골짜기에 차 있느니, 머루, 다래 넌출이오, 딸기, 칡의 햇 덩굴이다. 산속으로 들어갈수록 여기저기서 난장판으로 뻐꾸기들은 울고, 이따금씩 낄낄거리고 골을 건너 날아가는 꿩 울음 소리마저 야지의 가을벌레 소리 듣는 듯 신산을 더했다.
해는 거 진 하늘 한가운데를 돌아 바야흐로 머리에 불을 끼얹고, 어두운 숲 그늘 속에는 해삼 같은 시꺼먼 달팽이들이 허연 진물을 토한 채 땅에 붙어 늘어졌다.
햇살이 따갑고, 땀이 흐르고, 목이 마를수록 성기들은 자꾸 넌출 속으로만 들짐승들처럼 파묻히었다. 나무딸기, 덤불딸기, 산 복숭아, 아가위, 오디, 손에 닿는 대로 따서 연방 입에 가져가지만 입에 넣으면 눈 녹듯 녹아질 뿐, 떨적지근한 침을 삼키면 그만이었다. 간혹 이에 걸린다는 것이 아직 익지 않은 산 복숭아, 아가위 따위인데, 딸리 녹은 침물로는 그 쓰고 떫은 볼에까지 묻어졌다. 먹을수록 목이마른 딸기를 계연은 그 새파란 산복숭아서껀, 둥그런 칡잎으로 하나 가득 따서 성기는 두 손바닥 위에다 그것을 받아서는 고개를 수그려 물을 먹듯 입을 대어 먹었다. 먹고 난 칡잎은 아무렇게나 넌출 위로 던져 버린 채 칡넌출이 담뿍 감겨 있는 다래덩굴 위에 비스듬히 등을 대이고 누웠다.
계
로 입에 들이부어 한입 가득 물고는 나머지를 그냥 0째었졌였
세 번째 칡잎에다 딸기알 라 계연은 그러나 성기가 어느덧 잠이 들어 있음을 보자 아깝 성기가 하듯하여 이번엔 제가 먹어 치웠다.
[참 잘도 잔당게.]
계연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기도 다래덩굴에 등을 대이고 비스듬히 드러누워 보았으나 곧 재채기가 났다. 목이 몹시 말랐다. 배도 고팠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가 무서웠다.
[덩굴 속에는 샘물이 없는가?]
계연은 덩굴을 헤치고 한참 들어가다 문득 모과나무 가지에 이리저리 얽히고 주렁주렁 열린 으름 덩굴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익어 있음 쓰겄는듸.]
계연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아직도 파아란 오이를 만지듯 딴딴하고 우들우들한 으름음을 제일 큰 놈으로만 세 개를 골라 따 쥐었다. 그리하여 한나절 동안 무슨 열매든지 손에 닿는 대로 마구 따 입에 넣곤 하던 버릇으로 부지중 입에 가져가 한 번 덥석 물어 떼었더니 이내 비릿하고 떫직스레한 풀 같은 것이 입에 하나 가득 끼었다.
[아 풋내 나!]
계연은 입안의 것을 뱉고 나서 성기 곁으로 갔다. 해는 벌써 점심때도 겨운 듯 갈증과 함께 시장기도 들었다.
계연은 성기의 어깨를 흔들었다.
성기는 눈을 떴다.
계연은 당황하여, 쥐고 있던 새파란 으름 두 개를 성기의 코끝에 내어밀었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복숭아, 으름 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 흙을 찌는 듯 한 향긋하고 고수한 고기냄새가 느껴졌다.
까악까악하고 난데없는 까마귀 한 마리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칠불은 아직 멀지라?]
계연은 다래덩굴에 걸어 두었던 점심을 벗겨 들었다. 화갯골로 들어간 체장수 영감은 보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떠날 때 한 말도 있고 하니 지리산 속으로 아주 들어간 모양이고, 옥화와 계연은 생각하고 있었다.
[산중에서 아주 여름을 내시는 갑네.]옥화는 가끔 이런 말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책을 들고 앉곤 하였다. 계연의 약간 구성진 전라도 지방 토음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맑고 처량한 노래 조를 띠어 왔다.
그동안 옥화와 계연의 사이에 생긴 새로운 사실이 있다면, 옥화가 계연의 왼쪽 귓바퀴 위에 있는 조그만 사마귀 한 개를 발견한 것쯤이었다.
어느 날 아침, 그녀의 머리를 빗어 땋아 주고 있던 옥화는 갑자기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참빗 쥔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머니 왜 그리여?]
계었으나 옥화는 그녀의 두 눈만 멀거니 바라보고 있을 따름 말이 없었다.
[어머니 왜 그러시여.]
계연이 또 한 번 물었을 때, 옥화는 겨우 정신이 돌아오는 듯 긴 한숨을 내쉬며,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다시 빗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연은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었으나 아무것도 아니라는 옥화에게 다시 더 캐어물을 도리도 없었다.
이튿날 옥화는 악양(岳陽)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겠노라면 서 아침 일찌기 머리를 빗고 떠났다. 성기는 큰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소나기가 왔다. 계연이가 밖에서 빨래를 걷어안고 들어오면서,
[어쩔 거나, 어머니 비 만나시겄는듸!] 하였다. 그녀의 치맛자락은 바깥의 신선한 비바람을 묻혀다 성기의 자는 낯을 스쳐 주었다. 성기는 눈을 뜨는 결로 손을 뻗쳐 그녀의 치맛자락을 거머잡았다. 그녀는 빨래를 안은 채 고개를 홱 돌이켜 성기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볼에 바야흐로 조그만 보조개가 패려 할 때,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머니 옷 다 젖겄는듸!]
또 한 번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마루로 나갔다. 성기는 어느덧 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성기가 다시 잠이 깨었을 때는, 손님들이 마루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계연은 그들의 치다꺼리를 해주고 있는 모양으로 부엌에서,
[명태랑 풋고추밖엔 안주가 없는듸!]
하고 소리가 났다.
나중 손님들이 돌아간 뒤, 성기는 그녀더러,
[어머니 없을 땐 손님 받지 말라고.]
약간 볼맨소리로 이런 말을 하였다.
[허지만 오늘 해 넘김, 이 술을 시어질 것인듸, 그냥두면 어머니 오셔서 화내시지 않을 것이오?]
계연은 성기에게 타이르듯이 이렇게 말했다. 조금 뒤 그녀는 다시 웃는 낯으로 성기 곁에 다가서며,
[오빠, 날 면경 하나만 사 주시오. 똥그란 놈이 꼭 한 개만 있었음 쓰겄는듸.]
하였다. 이튿날이 마침 장날이라 성기는 점심을 가지고 온 그녀에게 미리 사 두었던 조그만 면경 하나와 찰떡을 꺼내 주었다.
[아이고머니!]
면경과 찰떡을 보자, 계연은 놀란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그 꽃 같은 두 눈에 웃음을 담북 담은 채 몇 번이나 면경을 들여다보곤 하더니, 그것을 품속에 넣고는 성기가 점심을 먹고 있는 곁에 돌아앉아 어느덧 짝짝 소리까지 내며 찰떡을 먹고 있었다.
성기는 남이 보지 않게 전 앞에 사람그림자가 얼씬할 때마다 자기의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그것을 가리워 주었다. 딴은 떡뿐 아니라 참외고 복숭아고 엿이고 유과 일체 군 것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녀의 성미인 듯 하였다. 집 앞으로 혹 참왜장수나 지나가는 것을 보면 계연은 골무를 깁거나 바늘겨레를 붙이다 말고, 튀어 일어나 그것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멀거니 바라보며 섰곤 하였다.
한번은 성기가 절에서 내려오려니까, 어머니는 어디 갔는지 눈에 띄지 않고, 그녀만이 마루 끝에 걸터앉은 채 이웃 주막의 놈팡이 하나와 더불어 함께 있었다. 성기를 보자 좀 무안스러운 듯이 얼굴을 약간 붉히며 곧 일어나 반가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 오빠!]
[......]
그러나 성기는 그러한 그녀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방으로만 들어가 버렸다. 계연은 먹던 참외도 마루 끝에 놓은 채 두 눈이 휘둥그래서 성기의 뒤를 따라왔다.
[오빠 왜?]
[......]
[응 왜 그리여?]
[......]
그러나 성기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녀가 두 팔을 성기의 어깨 위에 얹어 그의 목을 껴안으려 했을 때, 성기는 맹렬히 몸을 뒤틀어 그녀의 팔을 뿌리치고는 돌연히 미친 것처럼 뛰어들어 따귀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처음 그녀는,
[오빠, 오빠!]
하고 찡그린 얼굴로 성기를 쳐다보며 두 손을 내어 밀어 그의 매질을 막으려 하였으나, 두 차례 세 차례 철썩철썩하고, 그의 손이 그녀의 얼굴에 와 닿자 방구석에 가 얼굴을 쿡 처박은 채 얼마든지 그의 매질에 몸을 맡기듯이 하고 있었다.
이튿날 장에 점심을 가지고 온 계연은 그 작고 도톰한 입술을 꼭 다문 채, 말이 없었으나, 그의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엔 어저께의 일에 깊은 적의도 원한도 품어 있지 않는 듯하였다.
그날 밤 그녀가 혼자 강가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 성기는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하늘엔 별이 파랗게 빛나고 있었으나 나무 그늘은 강가를 칠야같이 뒤덮어 있었다.
[오빠.]
계연은 성기가 바로 그녀의 곁에까지 왔을 때 일어나 성기의 턱 앞으로 바싹 다가들어서며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불렀다.
[오빠, 요즘은 어쩌자고 만날 절에만 노 있는 것이여?]
그 몹시도 굴곡이 강렬한 전라도 지방 토움이 이렇게 속삭이었다. 그즈음 성기는 장을 보러 오는 날 이외에는 절에서 일체 내려오지를 않았다. 옥화가 악양명도에게 갔다 소나기에 젖어 돌아온 뒤부터는, 어쩐지 그와 그녀의 사이를 전과 달리 경계하는 듯 한 눈치라, 본래 심장이 약하고 남의 미움 받기를 유달리 싫어하는 그는, 그러한 어머니에 대한 노여움도 있고 하여 기어코 절에서 배겨 내려 했던 것이었다.
이날 밤만 해도 계연의 물음에, 성기가 무어라고 대답도 채 하기 전에,
[계연아, 계연아!] 하는, 옥화의 목소리가 또 어느덧 들려오고 있었다. 성기는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 어머니도 어쪄면 저다지 야속할까?'
성기는 갑자기 목이 뿌듯해졌다.
반딧불이 지나갔다. 계연은 돌 위에 걸터앉아 손으로 여뀌풀을 움켜잡으며, 혼잣말같이, 또 무어라 속삭이는 것이었으나 냇물 소리에 가리어 잘 들리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일찌기 성기가 방안으로, 부엌으로 누구를 찾으려는 듯 기웃기웃하다가 좀 실망한 듯 한 낯으로 그냥 절로 올라가고 말았을 때, 그녀는 역시 이 여뀌풀 있는 냇물 가에서 걸레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사흘 뒤에 성기가 다시 절에서 내려오니까, 체장수 영감은 마루 위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고, 계연은 고개를 떨어버린 채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리를 감아 빗고 새옷<새옷이래야 전날의 그 항라 적삼을 다시 빨아 다린 것> 갈아 입고,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곁에 두고, 슬픔에 잠겨 있던 계연은, 성기를 보자 그 꽃같이 선연한 두 눈에 갑자기 기쁨을 띄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그 노기를 띤 듯 한 도톰한 입술은 분명히 그들 사이에 어떤 절박하고 불행한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막걸리 사발을 들어 영감에게 권하고 있던 옥화는 성기를 보자,
[계연이가 시방 떠난단다.]
대번에 이렇게 말했다.
옥화의 말을 들으면, 영감은 그날, 성기가 절로 올라가던 저녁때에 돌아왔었더라 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이니까, 즉 어저께, 영감은 그녀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 것을 하루 더 쉬어가라고 만류를 해서, 그래 오늘 아침엔 일찌기 떠난다고 이렇게 막 행장을 차려서 나서는 길이라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상 모두 나중 다시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고, 처음은 그저 쇠뭉치로 돌연히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이 골치가 띵하며, 전신의 피가 어는 한 곳으로 쫙 ,모이는 듯한, 양쪽 귀가 머리 위로 쫑긋이 당기어 올라가는 듯한, 혀가 목구멍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듯한, 눈언저리에 퍼어런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는 듯한, 어지러움과 노여움과 조마로움이 한데 뭉치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의 그의 전신을 어디로 휩쓸어가는 듯만 하였다. 그는 지금껏 이렇게까지 그녀에게 마음이 가 있어 떨어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고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그것이 이제 영원히 헤어지려는 이 순간에 와서야 갑자기 심지에 불을 켜듯 확 타오를 마련이던가, 하는 것이 자꾸만 꿈과 같았다. 자칫하면 체면도 염치도 다 놓고 엉엉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이 목이 징징 우는 것을, 그러는 중에서도 이 얼굴을 어머니에게 보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식에서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마루 끝에 궁둥이를 찧듯 털썩 앉아 버렸다.
[아들이 참 잘 생겼소.]
영감은 분명히 성기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성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무슨 적의나 품은 듯이 앉아 있었다.
옥화는 그동안 또 성기에게 역시 그 체장수 영감의 이야기를 전해 들려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리산 속에서 우연히 옛날 고향 친구의 아들이 된다는 낯선 젊은 하나를 만났다. 그는 영감의 고향인 여수에서 큰 공장을 경영하는 실업가로, 지리산 유람을 들어왔다가 이야기 끝에 우연히 서로 알게 되었다. 그는 영감에게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살자고 했다. 영감은 문득 고향 생각도 날 겸 그 청년의 도움으로 어떻게 형편이 좀 펠 것 같이도 생각되어 그를 따라 여수로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나오는 길이라, 옥화가 무어라고 한참 하는 이야기는 대개 이러한 의미인 듯하였으나, 조마롭게 어지럽고 노여움으로 이미 두 귀가 멍멍하여진 그에게는 다만 벌떼처럼 무엇이 왕왕거릴 뿐 아무것도 분명히 들리지 않았다.
[막걸리 맛이 어찌나 좋은지 배가 부르당게.]
그동안 마지막 술잔을 들이키고 난 영감은 부채와 지팡이를 집어 들면 이렇게 말했다.
[여수 쪽으로 가시게 되먼 영영 못 보게 되겠구만요.]
옥화도 영감을 따라 일어서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 일을 누가 알간듸, 인연 있음 또 볼 터이지.]
영감은 커다란 미투리에 발을 끼며 말했다.
[아가, 잘 가거라.]
옥화는 계연의 조그만 보따리에다 돈이 든 꽃 주머니 하나를 정표로 넣어 주며 하직을 하였다.
계연은 애걸하듯 호소하듯 한 붉은 두 눈으로 한참동안 옥화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또 오너라.]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다만 이렇게 말하였고, 그러자 계연은 옥화의 가슴에다 얼굴을 묻으며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하였다.
옥화가 그녀의 그 물결같이 흔들리는 둥그스름한 어깨를 쓸어 주며,
[그만 울어, 아버지가 저기 기다리고 계신다.]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쓸어 주며 다만 이렇게 말하였고, 하는 음성도 이젠 아주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럼 편히 계시요.]
영감은 옥화에게 하직을 하였다.
[하라부지 거기 보시고 살기 여의찮거든 여기 와서 우리하고 같이 삽시다.]
옥화는 또 한 번 이렇게 당부하는 것이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계연은 이미 시뻘겋게 된 두 눈으로 성기의 마지막 시선을 찾으며 하직 인사를 했다.
성기는 계연의 이 말에 꿈을 깬 듯,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 계연의 앞으로 당황히 몇 걸음 어뜩 어뜩 걸어오다간, 돌연히 다시 정신이 나는 듯 그 자리에 화석처럼 발이 굳어 버린 채, 한참 동안, 장승같이 계연의 얼굴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편히 사시오.]
이렇게 두 번째 하직을 하는 순간까지도, 계연의 그 시뻘건 두 눈은 역시 성기의 얼굴에서 그 어떤 기적과도 같은 구원만을 기다리는 것이었고 그러나, 그 자리에 그냥 주저앉아 버릴 뻔 하던 것을 겨우 버드나무 가지를 움켜잡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계연의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은, 옥화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잊은 듯이 성기의 얼굴만 뚫어지게 있었으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인 성기의 두 눈엔 다만 불꽃이 활활 타오를 뿐, 아무런 새로운 명령도 기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빠, 편히 사시오.]
선 계연의 저만치 가고 있는 항라 적삼을, 고운 햇빛과 늘어진 버들가지와 산울림처럼 울려오는 뻐꾸기 울음 속에, 성기는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성기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 것은 이듬해 우수, 경칩도 다 지나, 청명 무렴의 비가 질금거릴 즈음이었다.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 지고 하는 날이었다.
아들의 미음 상을 차려 들고 들어온 옥화는 성기가 미음 그릇을 비우는 것을 보자, 이렇게 물었다.
[아직도 너, 강원도 쪽으로 가 보고 싶냐?]
[......]
성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장가들어 나랑 같이 살겠냐?]
[......]
성기는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해 아직 봄이 오기 전, 보는 사람마다 성기의 회춘을 거의 다 단념하곤 하였을 때, 옥화는 이왕 죽고 말것이라면, 어미의 맘속이나 알고 가라고 그래, 그 체장수 영감은, 36해 전 남사당을 꾸며 와 이 화개장터에 하룻밤을 놀고 갔다는 자기의 아버지임에 틀림이 없었다는 것과, 계연은 그 왼쪽 귓바퀴 위의 사마귀로 보아 자기의 동생임이 분명하더라는 것을, 동정하노라면 서, 자기의 왼쪽 귓바퀴 위의 같은 검정 사마귀까지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나도 처음부터 영감이 (서른여섯 해 전) 이라고 했을 때 가슴이 섬짓하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했지, 그렇게 남의 간을 뒤집어 놀 줄이야 알았나. 하도 아슬해서 이튿날 악양으로 가 명도까지 불러봤더니 요것도 남의 속을 빤히 듸려다나 보는 드키 재줄대는구나, 차라리 망신을 했지.]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 듯한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리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는듸 어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도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 한 형형한 두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새로운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쩔랴냐? 너 졸 대로 해라.]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자리에 드러 누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포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마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 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장터 삼거리릴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 고의적삼에, 명주수건까지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로 마춘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 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 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과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남으로 난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 질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희 장터 위를 굽이돌아 구례 쪽을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을 바라보고서 있을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렴 하여서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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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필 무렵 1936
이 효 석
여름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 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 팔리지 못한 나무꾼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들 있으나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 춥춥스럽게 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군 각다귀들도 귀치 않다. 얽둑배기요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코 동업의 조선달에게 낚아보았다.
[그만 거둘까?]
[잘 생각했네. 봉평장에서 한번이나 흐뭇하게 사본 일 있을까. 내일 대화 장에서나 한몫 벌어겠네.]
[오늘밤은 밤을 새서 걸어야 될걸?]
[달이 뜨렷다?]
절렁절렁 소리를 내며 조선달이 그날 산돈을 따지는 것을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 무명필과 주단바리가 두 고리짝에 꼭 찼다. 명석 위에는 천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 어물장수도, 땜장이도, 생강장수도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 리 밤길을 타박거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 주정군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 장날 저녁은 정해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생원, 시침을 떼두 다 아네...... 충줏집 말야.]
계집 목소리로 문득 생각난 듯이 조선달은 비죽이 웃는다.
[화중지병이지. 연소패들을 적수로 하구야 대거리가 돼야 말이지.]
[그렇지두 않을걸. 축들이 사족을 못 쓰는 것두 사실은 사실이나, 아무리 그렇다군 해두 왜 그 동이 말일세, 감쪽같이 충줏집을 후린 눈치든.]
[무어 그 애숭이가? 물건 가지구 나꾸었나부지. 착실한 녀석인줄 알았더니.]
[그 길만은 알 수 있나...... 궁리 말구 가보세나 그려. 내 한턱 씀세.]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쫓아갔다.
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 얽둑배기 상판을 쳐들고 대어 설 숫기도 없었으나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적도 없었고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 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버린다. 충줏집 문을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엔지 발끈 화가 나버렸다. 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녀석이 제법 난질군인데 꼴사납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 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부터 책망이었다. 걱정두 팔자요 하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상기된 눈망울에 부딪칠 때, 얼결김에 따귀를 하나 갈겨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동이도 화를 쓰고 팩하고 일어서기는 하였으나, 허생원은 조금도 동색하는 법 없이 마음먹은 대로는 지껄였다. 어디서 주워먹은 선머슴인지는 모르겠으나, 네게도 아비 어미 있겠지. 그 사나운 꼴 보면 맘 좋겠다.
장사란 탐탁하게 해야 돼지, 계집이 다 무어야. 나가거라, 냉큼 꼴 치워.
그러나 한마디도 대거리하지 않고 하염없이 나가는 꼴을 보려니, 도리어 측은히 여겨졌다. 아직두 서름서름한 사인데 너무 과하지 않았을까 하고 마음이 섬짓해졌다. 주제도 넘지, 같은 술손님이면서두 아무리 젊다구 자식 낳게 된 닦아 셀 것은 무어야 원. 충줏집은 입술을 쭝긋하고 술 붓는 솜씨도 거칠었으나, 젊은 애들한테는 그것이 약이 된다나하고 그 자리는 조선달이 얼버무려 넘겼다. 너 녀석한테 반했지? 애숭이를 빨면 죄 된다. 한참 법석을 친 후이다. 담도 생긴데다가 웬일인지 흠뻑 취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서 허생원은 주는 술잔이면 거의 다 들이켰다. 거나해짐을 따라 계집 생각보다도 동이의 뒷일이 한결같이 궁금해졌다. 내 꼴에 계집을 가로채서는 어떡헐 작정이었누 하고 어리석은 꼬락서니를 모질게 책망하는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얼마나 지난 뒤인지 동이가 헐레벌떡거리며 황급히 부르러 왔을 때에는, 마시던 잔을 그 자리에 던지고 정신없이 허덕이며 충줏집을 뛰어나간 것이다.
[생원 당나귀가 바를 끊구 야단이에요.]
[각다귀들 장난이지 필연코.]
짐승도 짐승이려니와 동이의 마음씨가 가슴을 울렸다. 뒤를 따라 장판을 달음질하려니 게슴츠레한 눈이 뜨거워질 것 같다.
[부락스런 녀석들이라 어쩌는 수있어야죠.]
[나귀를 몹시 구는 녀석들은 그냥 두지는 않을걸.]
반평생을 같이 지내온 짐승이었다. 같은 주막에서 잠자고, 같은 달빛에 젖으며서 장에서 장으로 걸어 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짐승을 함께 늙게 하였다. 가스러진 목뒤털은 주인의 머리털과도 같이 바스러지고, 개진개진 젖은 눈은 주인의 눈과 같이 눈곱을 흘렸다. 몽당비처럼 짧게 쓸리운 꼬리는, 파리를 쫓으려고 기껏 휘저어보아야 벌써 다리까는 닿지 않았다. 닳아 없어진 굽을 몇 번이나 도려내고 새 철을 신겼는지 모른다. 굽은 벌써 더 자라나기는 틀렸고 닳아버린 철 사이로는 피가 빼짓이 흘렀다. 냄새만 맡고도 주인을 분간하였다.
호소하는 목소리로 럽게 울며 반겨한다.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니 나귀는 코를 벌름거리고 입을 투르르 거렸다. 콧물이 튀었다. 허생원은 짐승 때문에 속도 무던히 썩였다. 아이들의 장난이 심한 눈치여서 땀 밴 몸뚱어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좀체 흥분이 식지 않는 모양이어었다. 굴레가 벗어지고 안장도 떨어졌다. 요 몹쓸 자식들, 하고 허생원은 호령을 하였으나 패들은 벌써 줄행랑을 논뒤요 몇 남지 않은 아이들이 호령에 놀래 비슬비슬 멀어졌다.
[우리들 장난이 아니우. 암놈을 보고 저 혼자 발광이지.]
코흘리개 한 녀석이 멀리서 소리를 쳤다.
[고녀석 말투가......]
[김첨지 당나귀가 가버리니까 온통 흙을 차고 거품을 흘리면서 미친 소같이 날뛰는걸. 꼴이 우스워 우리는 보고만 있었다우. 배를 좀 보지.]
아이는 앙토라진 투로 소리를 치며 깔깔 웃었다. 허생원은 모르는 결에 낯이 뜨거워졌다. 뭇 시선을 막으려고 그는 짐승의 배 앞을 가리어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늙은 주제에 암샘을 내는 셈야. 저놈의 짐승이.]
아이에 웃음소리에 허생원은 주춤하면서 기어코 견딜 수 없어 채찍을 들더니 아이를 쫓았다.
[쫓으려거든 쫓아보지. 왼손잡이가 사람을 때려.]
줄달음에 달아나는 각다귀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왼손잡이는 아이 하나도 후릴 수 없다. 그만 채찍을 던졌다. 술기도 돌아 몸이 유난스럽게 화끈거렸다.
[그만 떠나세. 녀석들과 어울리다가는 한이 없어. 장판의 각다귀들이란 어른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인걸.]
조선달과 동이는 각각 제 나귀에 안장을 얹고 짐을 싣기 시작하였다. 해가 꽤 많이 기울어진 모양이었다.
드팀전 장돌림을 시작한 지 20년이나 되어도 허생원은 봉평장을 빼 논 적은 드물었다. 충주 제천 등의 이웃 군에도 가고, 멀리 영남지방도 헤매기는 하였으나 강릉쯤에 물건 하러가러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군내를 돌아다녔다. 닷새만큼씩의 장날에는 달보다도 확실하게 면에서 면으로 건너간다. 고향이 청주라였으나 고향에 돌보러 간일도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장에서 장으로 가는 길의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그에게는 그리운 고향이었다. 반날 동안이나 뚜벅뚜벅 걷고 장터 있는 마을에 거지반 가까왔을 때 거친 나귀가 한바탕 우렁차게 울면 더구나 그것이 저녁녘이어서 등불들이 어둠 속에 깜박거릴 무렵이면 늘 당하는 것이건만 허생원은 변치 않고 언제든지 가슴이 뛰놀았다.
젊은 시절에는 알뜰하게 벌어 돈푼이나 모아 본 적도 있기는 있었으나, 읍내에 백중이 열린 해 호탕스럽게 놀고 투전을 하고 하고 사흘 동안에 다 털어 버렸다. 나귀까지 팔게 된 판이었으나 애끓는 정분에 그것만은 이를 물고 단념 하였다. 결국 도로 아미타불로 장돌림을 다시 시작할 수밖에는 없었다. 짐승을 데리고 읍내를 도망해 나왔을 때에는 너를 팔지 않기 다행이었다고 길가에서 울면서 짐승의 등을 어루만졌던 것이었다. 빚을 지기 시작하니 재산을 모을 염은 당초에 틀리고 간신히 입에 풀칠을 하러 장에서 장으로 돌아다니게 되었다.
호탕스럽게 놀았다고는 하여도 계집 하나 후려보지는 못하였다. 계집이란 쌀쌀하고 매정한 것이었다. 평생 인연이 없는 것이라고 신세가 서글퍼졌다. 일신에 가까운 것이라고는 언제나 변함없는 한 필의 당나귀였다.
그렇다고는 하여도 꼭 한 번의 첫 일을 잊을 수는 없었다. 뒤에도 처음에도 없는 단 한번의 괴이한 인연! 봉평에 다니기 시작한 젊은 시절의 일이었으나 그것을 생각할 적만은 그도 산 보람을 느꼈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어.]
허생원은 오늘밤도 또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조선달은 친구가 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렇다고 싫증을 낼 수도 없었으나 허생원은 시치미를 떼고 되풀이할 대로는 되풀이하고야 말았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빛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을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공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선 허생원의 이야기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장 선 꼭 이런 날 밤이었네. 객줏집 토방이란 무더워서 잠이 들어야지. 밤중은 돼서 혼자 일어나 개울가에 목욕하러 나갔지. 봉평은 지금이나 그제나 마찬가지지. 보이는 곳마다 메밀밭이어서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돌밭에 벗어도 좋을 것을, 달이 너무나 밝은 까닭에 옷을 벗으러 물방앗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거기서 난데없는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쳤단 말이네. 봉평서야 제일가는 일색이었지......]
[팔자에 있었나부지.]
아무렴 하고 응답하면서 말머리를 아끼는 듯이 한참이나 담배를 빨 뿐이었다. 구수한 자줏빛 연기가 밤기운 속에 흘러서 녹았다.
[날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달리 기다리는 놈팽이가 있는 것두 아니었네. 있단 말야. 짐작은 대고 있으나 성서방네는 한창 어려워서 들고날 판인 때였지. 한 집안일이니 딸에겐들 걱정이 없을 리 있겠나? 좋은 데만 있으면 시집도 보내련만 시집은 죽어도 싫다지...... 그러나 처녀란 울 때같이 정을 끄는 때가 있을까. 처음에는 놀라기도 한 눈치 였으나 걱정 있을 때는 누그러지기도 쉬운 듯 해서 이럭저럭 이야기가 되었네...... 생각하면 무섭고도 기막힌 밤이었어.]
[제천인지로 줄행랑을 놓은 건 그 다음 날이렷다.]
[다음 장도막에는 벌써 온 집안이 사라진 뒤였네. 장판은 소문에 발끈 뒤집혀 고작해야 술집에 팔려가기가 상수라고 처녀의 뒷공론이 자자들 하단 말이야. 제천 장판을 몇 번이나 뒤졌겠나. 허나 처녀의 꼴은 꿩궈먹은 자리야.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었지. 그때부터 봉평이 마음에 든 것이 반평생을 두고 다니게 되었네. 반평생인들 잊을 수 있겠나.]
[수 좋았지. 그렇게 신통한 일이란 쉽지 않어. 항용 못난 것 얻어 새끼 낳고, 걱정 늘고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나지...... 그러나 늘그막바지까지 장돌뱅이로 지내기도 힘드는 노릇 아닌가?
난 가을까지만 하구 이 생계와두 하직하려네. 대화쯤에 조그만 전방이나 하나 벌이구 식구들을 부르겠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기란 여간이래야지.]
[옛 처녀나 만나면 같이나 살까...... 난 거꾸러질 때까지 이 길 걷고 저 달 볼 테야.]
산길을 벗어나니 큰길로 틔어졌다. 꽁무니의 동이도 앞으로 나서 나귀들은 가로 늘어섰다.
[총각두 젊겠다, 지금이 한창 시절이렷다. 충줏집에서는 그만 실수를 해서 그 꼴이 되었으나 설게 생각 말게.]
[처 천만에요. 되려 부끄러워요. 계집이란 지금 웬 제격인가요. 자나 깨나 어머니 생각뿐인데요.]
허생원의 이야기로 실심해 한 끝이라 동이의 어조는 한풀 수그러진 것이었다.
[아비 란 말에 가슴이 터지는 것도 같았으나 제겐 아버지가 없어요. 피붙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뿐인걸요.]
[돌아가셨나?]
[당초부터 없어요.]
[그런 법이 세상에]
생원과 선달이 야단스럽게 껄껄들 웃으니 동이는 정색하고 우길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으려 했으나 정말예요. 제천 촌에서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어머니는 집을 쫓겨났죠. 우스운 이야기나,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아버지 얼굴도 본 적 없고 있는 고장도 모르고 지내와요.]
고개가 앞에 놓인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내렸다. 둔덕은 험하고 입을 벌리기도 대근하여 이야기는 한동안 끊겼다. 나귀는 건듯하면 미끄러졌다. 허생원은 숨이 차 몇 번이고 다리를 쉬지 않으면 않으면 안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나이가 알렸다. 동이 같은 젊은 축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땀이 등이 한바탕 쪽 씻어 내렸다.
두 못 예기넝구나? 어찌서 보리넌 조깨씩 누아 먹으라닝개 죽여라구 안 듣구서, 이렇게 허―연 쌀만 쌂어 먹으러 드냐?"
"그 궁상스런 소리 작작 허시우, 아버니두……."
서울아씨가 듣다못해 아버지를 핀잔을 주는 것입니다.
"쌀밥 좀 먹기루서니 만석꾼이 집안이 당장 망헐까 바서 그러시우? 마침 보리쌀을 삶은 게 없어서 그랬대요…… 고만두시구, 어여 진지나 잡수시우!"
"아―니, 보리쌀은 삶잖구 그냥 누아 두먼, 머 제절루 삶어진다더냐? 삶은 놈이 읎거던 다아 요량을 히여서, 미리미리 조깨씩 삶어 두구 끄니때먼 누아 먹어야지……! 그게 늬덜이 모다 호강스러서 보리밥이 멕기 싫으닝개루 핑계대넌 소리다, 핑계대넌 소리여. 공동뫼지를 가부아라? 핑계 읎넌 무덤 하나나 있데야?"
윤직원 영감은 아까운 듯이 밥을 한술 떠넣고 씹으면서, 씹으면서 생각하니 더욱 아깝던지, 또다시 뇌사립니다. 자기 자신이 부연 쌀밥만 먹기가 아깝거든, 이 아까운 쌀밥을 온 집안 식구와 심지어 종년이며 행랑것들까지 다들 먹을 것이고, 솥글겅이와 밥티가 쌀밥인 채로 수챗구멍으로 흘러 나갈 일을 생각하면, 그야 소중하고 아깝기도 했을 겝니다.
"……글씨 야덜아, 그 보리밥이랑게, 사람으 몸에 무척 좋단다. 또오, 먹기루 말허더래두 볼깡볼깡 십히넝게 맨쌀밥만 먹기보다는 훨씬 입맛이 나구…… 그런디 늬덜은 왜 그걸 안 먹으러 드냐?"
태식이가 밥을 먹느라고 째금째금 시근버근 요란을 떨 뿐이지, 아무도 대답이 없고, 두 손자며느리는 그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고 순종하겠다는 빛을 얼굴에 드러내기에 애가 쓰입니다.
"……그러나마 늬덜더러 구찬헌 보리방애를 찌여 먹으랬을세 말이지, 아 시골서 작인덜 시키서 대껴서, 그리서 올려온 것이니, 흔헌 물으다가 북북 씻어서 있는 나무에 푹신 쌂어 두구 조깨씩 누아 먹기가 그리 심이 들 게 무어람 말이냐……? 허어, 참 딱헌 노릇이다……!"
말을 잠깐 멈추더니, 그 다음엔 아주 썩 구수하게 음성도 부드럽게,
"……야덜아, 그러구 말이다, 거 보리밥이 그런 성불러두, 그걸 노―상 먹느라먼 글씨, 애기 못 낳던 여인네가 포태를 헌단다! 포태를 헌대여! 응?"
과부나 생과부가 남편이 없이 공규는 지켜도 보리밥만 노상 먹노라면 아기를 밴단 말이겠다요.
그러나, 그 말의 반응은 실로 효과 역력했습니다. 한 것이, 맏손자며느리는, 그렇다면 내일 아침부터 꼭꼭 보리밥을 먹어야 하겠다고 좋아했고, 둘째손자며느리는 아무려나 나도 먹어는 보겠다고 유념을 했고, 서울아씨는 나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입니다.
다만, 이편 건넌방에서 시방 싸움을 잔뜩 벼르고 앉아 있는 며느리 고씨만은, 저 영감태기가 또 능청맞게 애들을 속여 먹는다고 안방으로 대고 눈을 흘깁니다.
참말이지 조금만 무엇했으면, 우르르 쫓아와서 그 허연 수염을 움켜쥐고 쌀쌀 들이잡아 동댕이를 쳐주고 싶게 하는 짓이 일일이 밉광머리스럽습니다.
이 고씨는, 말하자면 이 세상 며느리의 썩 좋은 견본이라고 하겠습니다.
― 암캐 같은 시어머니, 여우나 꽁꽁 물어 가면 안방 차지도 내 차지, 곰방조대도 내 차지.
대체 그 시어머니라는 종족이 며느리라는 종족한테 얼마나 야속스러운 생물이거드면, 이다지 박절할 속담까지 생겼습니다.
열여섯 살에 시집을 온 고씨는 올해 마흔일곱이니,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죽는 날까지 꼬박 삼십일 년 동안 단단히 그 시집살이라는 걸 해왔습니다.
사납대서 살쾡이라는 별명을 듣고, 인색하대서 진지리꼽재기라는 별명을 듣고, 잔말이 많대서 담배씨라는 별명을 듣고 하던 시어머니 오씨(그러니까 바로 윤직원 영감의 부인이지요), 그 손 밑에서 삼십일 년 동안 설운 눈물 많이 흘리고 고씨는 시집살이를 해오다가, 작년 정월에야 비로소 그 압제 밑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남의 집 종으로 치면 속량이나 된 셈이지요. 그러나 막상 이 고씨라는 여인이 하 그리 현부(賢婦)였더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하기야 아무리 흠잡을 데 없이 얌전스럽고 덕이 있고 한 며느리라도, 야속한 시어머니한테 걸리고 보면 반찬 먹은 개요, 고양이 앞에 쥐요 하지 별수가 없는 것이지만, 고씨로 말하면 사람이 몸집 생김새와 같이 둥실둥실한 게 후덕하기는 하나, 대단히 이퉁이 세어 한번 코를 휘어 붙이면 지렛대로 떠곤질러도 꿈쩍을 않고, 또 몹시 거만진 성품까지 없지 않습니다. 사상의(四象醫)더러 보라면 태음인(太陰人)이라고 하겠지요.
그래 아무튼 고씨는, 그 말썽 많은 시집살이 삼십일 년을 유난히 큰 가대를 휘어잡아 가면서 그래도 쫓겨난다는 큰 파탈은 없이 오늘날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종수와 종
학 두 아들을 낳아서 윤직원 영감으로 하여금 군수와 경찰서장을 양성할 동량(棟梁)도 제공했고, 그리고 이제는 나이 마흔일곱에 근 오십이요, 머리가 반백에 손자 경손이가 중학교 이년급을 다니게까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계제에, 작년 정월에는 암캐 같은 시어머니였든지 테리어 같은 시어머니였든지 간에 좌우간, 그 시어머니 오씨가 여우가 꽁꽁 물어 간 것은 아니나 당뇨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러므로 주부의 자리가 비었은즉 제일 첫째로 며느리인 고씨가 곰방조대야, 피종을 피우는 터이니 차지를 안 해도 상관없겠지만, 안방 차지는 응당히 했어야 할 게 아니겠다구요?
장모는 사위가 곰보라도 이뻐하고,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뻐드렁 이에 애꾸눈이라도 이뻐는 하는 법인데, 윤직원 영감은 어떻게 된 셈인지 며느리 고씨를 미워하기를 그의 부인 오씨 못잖게 미워했습니다. 노마나님 오씨의 초종범절을 치르고 나서, 서울아씨가 올케 되는 고씨한테 안방을 (섭섭하나마) 내줘야 하게 된 차인데 윤직원 영감이 처억 간섭을 한다는 말이,
"야―야! 너두 아다시피 내가 조석을 꼭꼭 안방으 들와서 먹넌디, 아 늬가 안방을 네 방이라구 이름지어 각구 있으 량이면 내가 편찬히여서 어디 쓰겄냐? 그러니 나 죽넌 날까지나 그냥저냥 웃방(건넌방)을 쓰구 지내라."
핑계야 물론 그럴듯합니다. 그래서 안방은 노마나님 오씨의 시체만 나갔을 뿐이지 전대로 서울아씨가 태식을 데리고 거처를 하고, 고씨는 건넌방에 눌러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흥! 만만한 년은 제 서방 굿도 못 본다더니, 나는 두 다리 뻗는 날까지 접방살이(곁방살이, 행랑살이) 못 면헐걸!"
고씨는 방 때문에 비위가 상할 때면 으레 이런 구느름을 잊지 않곤 합니다. 그러나 고씨의 억울한 건 약간 안방 차지를 못 하는 것 따위만이 아닙니다.
시어머니 오씨는 마지막 숨이 지는 그 시각까지도 며느리 고씨를 못 먹어했습니다.
"오―냐, 인재넌 지긋지긋허던 내가 급살맞어 죽으닝개, 시언허구 좋아서 춤출 사람 있을 것이다!"
이건 물론 며느리 고씨를 물고 뜯는 말이요, 이제 자기가 죽고 나면 며느리 고씨가 집안의 안어른이 되어 가지고 마음대로 휘둘러 가면서 지낼 테라서, 그 일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밉고 하여 숨이 넘어가는 마당에서까지 그대도록 야속한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미상불 고씨는 어머니의 거상을 입으면서부터 기를 탁 폈습니다. 예를 들자면 드리없지만, 가령 밤늦게까지 건넌방에서 아무리 성냥 긋는 소리가 나도, 이튿날 새벽같이,
"밤새두룩 댐배질만 허니라구 성냥 열일곱 번 그신(그은) 년이 어떤 년이냐?"
하고 야단을 치는 사람이 없어, 잠 못 이루는 밤을 담배로 동무삼아 밝히기도 무척 임의로웠습니다.
또, 나들이를 한 사이에 건넌방 문에다가 못질을 해서 철갑을 하는 꼴을 안 당하게 된 것도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만 조금 펴고 지내게 되었을 뿐이지, 실상 아무 실속도 없고 말았습니다.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이 처결하기를, 집안의 살림살이 전권(全權)이 마땅히 물려받아야 할 주부 고씨는 젖혀 놓고서, 한 대를 껑충 건너뛰어 손자대로 내려가게 했던 것입니다. 고씨의 며느리 되는 종수의 아낙인 박씨, 즉 윤직원 영감의 맏손자며느리가 시할머니의 뒤를 바로 이어서 집안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묻지 않아도 내가 주부로 들어앉아 며느리를 거느리고 집안 살림을 해가는 어른이 되겠거니 했던 고씨는 그만 개밥의 도토리가 되어 버리고, 도리어 시어머니 오씨 대신에 며느리 박씨한테 또다시 시집살이(?)를 하게쯤 된 셈평이었습니다. 선왕(先王)의 뒤를 이어 즉위는 했으나 권력은 왕자가 쥐게 된 그런 판국과 같다고 할는지요.
그런데다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은, 죽고 없는 마누라 몫까지 해서 갈수록 더 못 먹어서 으릉으릉 뜯지요. 시뉘 되는 서울아씨는, 내가 주장입네 하는 듯이 안방을 차지하고 누워서 사사이 할퀴려 들지요. 그런데, 또 더 큰 불평과 심홧거리가 있으니…….
고씨는 시방 동경엘 가서 경찰서장감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 둘째아들 종학을 낳은 뒤로부터 스물네 해 이짝, 남편 윤주사 창식과 금실이 뚝 끊겨 생과부로 좋은 청춘을 늙혀 버렸습니다.
윤주사는 시골서부터 첩장가를 들어 딴살림을 했었고, 서울로 올라올 때도 그 첩을 데리고 와서 지금 동대문 밖에다가 치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새는, 그새까지는 별로 않던 짓인데 새 채비로 기생첩 하나를 더 얻어서 관철동에다 살림을 차려 놓고는, 이 집으로 가서 놀다가 저 집으로 가서 누웠다 하며 지냅니다.
그리고는 본집에는 돈이나 쓸 일이 있든지, 또 부친 윤직원 영감이 두번 세번 불러야만 마지못해 오곤 하는데, 오기는 와도 사랑방에서 부친이나 만나 보고 그대로 휭나케 돌아가지, 안에는 도무지 발걸음도 않습니다.
이 윤주사라는 사람은 성미가 그의 부친 윤직원 영감과는 딴판이요, 좀 호협한 푼수로는 그의 조부 말대가리 윤용규를 닮았다고나 할는지, 그리고 살쾡이요 진지리꼽재기요 담배씨라던 그의 모친 오씨와는 더욱 딴세상 사람입니다.
도무지 철을 안 이후로 나이 마흔여섯이 되는 이날 이때까지 남과 언성을 높여 시비 한 번인들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남이 아무리 낮게 해야, 그저 그런가 보다고 모른 체할 따름이지, 마주 대고 궂은 소리라도 하는 법이 없습니다. 본시 사람이 이렇게 용하기 때문에 그를 낮아하는 사람도 별반 없지만…….
가산이고 살림 같은 것은 전혀 남의 일같이 불고하고, 또 거두잡아서 제법 살림살이를 할 줄도 모릅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의 말대로 하면, 위인이 농판이요, 오십이 되도록 철이 들지를 않아서 세상 일이 죽이 끓는지 밥이 넘는지 통히 모르고 지내는 사람입니다.
미워서 꼬집자면 그렇게 말도 할 수가 없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나, 또 좋게 보자면 세상 물욕(物慾)을 초탈한 사람이라고도 하겠지요.
누가 어려운 친척이나 친구가 찾아와서 아쉰 소리를 할라치면, 차마 잡아떼지를 못하고서 있는 대로 털어 줍니다.
남이 빚 얻어 쓰는 데 뒷도장 눌러 주고는 그것이 뒤집혀 집행을 맞기가 일쑵니다.
윤직원 영감은 몇 번 그런 억울한 연대채무란 것에 몇만 원 돈 손을 보던 끝에 이래서는 못쓰겠다고 윤주사를 처억 준금치산선고를 시켜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랬다고 쓸 돈 못 쓸 리는 없는 것이어서, 윤주사는 준금치산선고를 받은 다음부터는 윤두섭이라는 부친의 도장을 새겨서 쓰곤 합니다.
윤두섭의 아들 윤창식이가 찍은 도장이면 그것이 위조 도장인 줄 알고서도 몇천 원 몇만 원의 수형을 받아 주는 사람이 수두룩하고, 차용증서도 그 도장으로 통용이 되니까요.
나중에 가서 일이 뒤집어지면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자식을 인장 위조죄로 징역은 보낼 수가 없으니까, 그런 걸 울며 겨자 먹기라든지, 할 수 없이 그 수형이면 수형, 차용증서면 차용증서를 물어 주곤 합니다.
윤주사 창식 그는 아무튼 그러한 사람으로서, 밤이고 낮이고 하는 일이라고는 쌍스럽지 않은 친구 사귀어 두고 술 먹으러 다니기, 활 쏘기, 제철 따라 승지(勝地)로 유람 다니기, 옛 한서(漢書) 모아 놓고 뒤지기, 한시(漢詩) 지어서 신문사에 투고하기, 이 첩의 집에서 술 먹다가 심심하면 저 첩의 집으로 가서 마작하기, 도무지 유유자적한 게 어떻게 보면 신선인 것처럼이나 탈속이 되어 보입니다.
물론 첩질이나 하고, 마작이나 하고, 요정으로 밤을 도와 드나드는 걸 보면 갈데없는 불량자고요.
사람마다 이상한 괴벽은 다 한 가지씩 있게 마련인지, 윤주사 창식도 야릇한 편성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마음이 그렇듯 활협하고 남의 청을 거절 못 하는 인정 있는 구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서, 어느 교육계의 명망유지 한 사람이 그의 문을 두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소간은 그 명망유지 씨가 후원을 하고 있는 사학(私學) 하나가 있는데, 근자 재정이 어렵게 되어 계제에 돈을 한 이십만 원 내는 특지가가 있으면 그 나머지는 달리 수합을 해서 재단의 기초를 완성시키겠다는 것이고, 그러니 윤주사더러 다 좋은 사업인즉 십만 원이고 이십만 원이고 내는 게 어떠냐고, 참 여러 가지 말과 구변을 다해 일장 설파를 했습니다.
윤주사는 자초지종 그러냐고, 아 그러다뿐이겠느냐고, 연해 맞장구를 쳐주어 가면서 듣고 있다가 급기야 대답할 차례에 가서는 한단 소리가,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못 하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있는 학교도 못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하고 엉뚱한 반문을 하더라나요. 그래 명망유지 씨는 신명이 풀려, 두어 마디 더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갔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윤주사는 남의 사정을 쑬쑬히 보아 주는 사람이면서도 공공사업이나 자선사업 같은 데는 죽어라고 일전 한푼 쓰지를 않습니다.
부친 윤직원 영감은 그래도 곧잘 기부는 하는 셈이지요. 시골서 살 때엔 경찰서의 무도장(武道場)을 독담으로 지어 놓았고, 소방대에다가 백 원씩 오십 원씩 두어 번이나 기부를 했고, 보통학교 학급 증설 비용으로 이백 원 내논 일이 있었고, 또 연전 경남 수재 때에는 벙어리를 새로 사다가 동전으로 일 원 칠십이 전을 넣어서 태식이를 주어서 신문사로 보내서 사진까지 신문에 난 일이 있는걸요. 그 위대한 사진 말입니다.
그러나 윤주사 창식은 도무지 그런 법이 없습니다. 영 졸리다 졸리다 못하면, 온 사람을 부친 윤직원 영감한테로 슬그머니 따보내 버릴망정 기부 같은 건 막무가내로 하지를 않습니다.
속담에, 부자라는 건 한정이 있다고 합니다. 가령 천석꾼이 부자면 천 석까지 멱이 찬 뒤엔, 또 만석꾼이 부자면 만 석까지 멱이 찬 뒤엔, 그런 뒤에는 항상 그 근처에서 오르고 내리고 하지, 껑충 뛰어넘어서 한정없이 불어 나가지는 못한다는 그 뜻입니다.
미상불 그렇습니다. 가령 윤직원 영감만 놓고 보더라도, 일년에 벼로다가 꼭 만 석을 받은 지가 벌써 십 년이 넘습니다. 그러니 그게 매년 십만 원씩 아닙니까?
또 현금을 가지고 수형장수〔手形割引業〕를 해서, 일년이면 이삼만 원씩 새끼를 칩니다.
그래서 매년 수입이 십 수만 원이니 그게 어딥니까? 가령, 세납이야 무엇이야 해서 일반 공과금과 가용을 다 쳐도 그 절반 오륙만 원이 다 못 될 겝니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 오륙만은 해마다 처져서, 십 년 전에 만 석을 받은 백만 원짜리 부자랄 것 같으면, 십 년 후 시방은 백오십만 원의 일만 오천 석짜리 부자가 되었어야 할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글쎄, 그다지도 가산 늘리기에 이골이 난 윤직원 영감이건만 십 년 전에도 만석 십 년 후 시방도 만석…… 그렇습니다그려.
그렇다고 윤직원 영감이 무슨 취리에 범연해서 그랬겠습니까? 결국 아들 창식이 그런 낭비를 하고, 또 맏손자 종수가 난봉을 부리고, 군수를 목표한 관등의 승차에 관한 운동비를 쓰고 그러는 통에 재산이 그 만석에서 더 붇지를 못하고 답보로―읏을 한 거랍니다.
윤직원 영감은 가끔 창식의 그런 빚을 물어주느라고 사뭇 날뛰면서, 단박 물고라도 낼 듯이 호령 호령, 그를 잡으러 보냅니다. 그러나 창식은 부친이 한 번쯤 불러서는 냉큼 와보는 법이 없고, 세번 네번 만에야 겨우 대령을 합니다.
"야, 이 수언 잡어 뽑을 놈아, 이놈아!"
윤직원 영감은 혼자서 실컷 속을 볶다가 아들이 처억 들어와서 시침을 뚜욱 따고 앉는 양을 보면, 마구 속이 지레 터질 것 같아 냅다 욕이 먼저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다 치면 창식은 아주 점잖게,
"아버니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허십니까!"
하고 되레 부친을 나무랍(?)니다.
"……아, 손자놈들이 다아 장성을 허구, 경손이놈두 전 같으면 벌써 가속을 볼 나인데, 그것들이 번연히 듣구 보구 하는 걸, 아버니는 노오 말씀을 그렇게……."
"아―니, 무엇이 어찌여?"
윤직원 영감은 그만 더 말을 못 합니다. 노상 아들한테 입 더럽게 놀린다고 핀잔을 먹은 그것을 부끄러워할 윤직원 영감이 아니건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들 창식이한테만은 기를 펴지를 못합니다.
혼자서야, 이놈이 오거든 인제 어쩌구저쩌구 단단히 닦달을 하려니 하고 굉장히 벼르지요. 그렇지만 딱 마주쳐서는 첫마디에 기가 죽어 버리고 되레 꼼짝을 못 합니다.
"그놈이 호랭이나 화적보담두 더 무선 놈이라닝개! 천하 무선 놈이여!"
윤직원 영감은 늘 이렇게 아들을 무서운 놈으로 칩니다. 그러니 세상에 겁할 것이 없이 지내는 윤직원 영감을 힘으로도 아니요, 아귓심도 아니요, 총으로 아니면서 다만 압기(壓氣)로다가, 그러나마 극히 유순한 것인데, 그것 하나로다가 그저 꼼짝못하게 할 수 있는 창식은 미상불 호랑이나 화적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밖에 없는 것입니다.
번번이 그렇게 윤직원 영감은 꼼짝도 못 하고서는 할 수 없이 한단 소리가,
"돈 내누아라, 이놈아……! 네 빚 물어준 돈 내누아!"
"제게 분재시켜 주실 데서 잡아 까시지요!"
창식은 종시 시치미를 떼고 앉아서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그제는 아주 기가 탁 막혀서 씨근버근하다가,
"뵈기 싫다, 이 잡어 뽑을 놈아!"
하고 고함을 치고는 돌아앉아 버립니다.
이래서 결국 윤직원 영감이 지고 마는 싸움은 싸움이라도, 한 달에 많으면 두세 번 적어서 한 번쯤은 으레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이런 빚 조건으로 생긴 싸움이, 아들 창식하고만이 아니라 맏손자 종수하고도 종종 해야 하니, 엔간히 성가실 노릇이긴 합니다.
또 그런 빚을 물어주는 싸움은 아니라도, 윤직원 영감은 가끔 딸 서울아씨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작은손자며느리와도 싸움을 해야 하고, 방학에 돌아오는 작은손자 종학과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며느리 고씨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랑방에 있는 대복이나 삼남이와도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맨 웃어른 되는 윤직원 영감이 그렇게 싸움을 줄창치듯 하는가 하면, 일변 경손이는 태식이와 싸움을 합니다.
서울아씨는 올케 고씨와 싸움을 하고, 친정 조카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경손이와 싸움을 하고, 태식이와 싸움을 하고, 친정아버지와 싸움을 합니다.
고씨는 시아버지와 싸움을 하고, 며느리들과 싸움을 하고, 시누이와 싸움을 하고, 다니러 오는 아들과 싸움을 하고, 동대문 밖과 관철동의 시앗집엘 가끔 쫓아가서는 들부수고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싸움, 싸움, 싸움, 사뭇 이 집안은 싸움을 근저당(根抵當)해놓고 씁니다. 그리고 그런 숱한 여러 싸움 가운데 오늘은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과 며느리 고씨와의 싸움이 방금 벌어질 켯속입니다.
석회살포
........
깨 파종기
7. 쇠가 쇠를 낳고
사랑방에는 언제 왔는지 올챙이 석서방이, 과시 올챙이같이 토옹통한 배를 안고 윗목께로 오도카니 앉아 있습니다.
시쳇말로는 브로커요, 윤직원 영감 밑에서 거간을 해먹는 사람입니다.
돈도 잡기 전에 배 먼저 나왔으니 갈데없이 근천스런 ×배요, 납작한 체격에 형적도 없는 모가지에, 다 올챙이 별명 타자고 나온 배지 별게 아닐 겝니다.
"진지 잡수셨습니까?"
올챙이는 오꼼 일어서면서 공순히, 그러나 친숙히 인사를 합니다.
윤직원 영감은 속으로야, 이 사람이 저녁에 다시 온 것이 반가울 일이 있어서 느긋하기는 해도, 짐짓,
"안 먹었으면 자네가 설넝탱이라두 한 뚝배기 사줄라간디, 밥 먹었나구 묻넝가?"
하면서 탐탁잖아하는 낯꽃으로 전접스런 소리를 합니다.
"아, 잡수시기만 하신다면야 사드리다뿐이겠습니까?"
생김새야 아무리 못생겼다 하기로서니, 남의 그런 낯꽃 하나 여새겨 볼 줄 모르며, 그런 보비위 하나 할 줄 모르고서, 몇천 원 더러는 몇만 원 거간을 서 먹노라 할 위인은 아닙니다.
옳지, 방금 큰소리가 들리더니, 정녕 안에서 무슨 일로 역정이 난 끝에 밥도 안 먹고 나오다가, 그 화풀이를 걸리는 대로 나한테 하는 속이로구나, 이렇게 단박 눈치를 채고는 선뜻 흠선을 피우면서, 마침 윤직원 영감이 발이나 넘는 장죽에 담배를 재어 무니까, 냉큼 성냥을 그어 댑니다.
"……그렇지만 어디 지가 설마한들 설렁탕이야 사드리겠어요! 참 하다못해 식교자라두 한 상……."
"체에! 시에미가 오래 살먼 구정물통으(개숫물통에) 빠져 죽넌다더니, 내가 오래 사닝개루 벨일 다아 많얼랑개비네! 인재넌 오래간만으 목구녁의 때 좀 벳기넝개비다!"
윤직원 영감 입에서는 담배 연기가 피어올라 자옥하니 연막을 치고, 올챙이는 팽팽한 양복가랑이를 펴면서 도사렸던 다리를 퍼근히 하고 저도 마코를 꺼내서 붙입니다.
"온 영감두……! 지가 영감 식교자 한 상 채려 드리기루서니 그게 그리 대단하다구, 그런 말씀을……."
"글씨 이 사람아, 말만 그렇기, 어따 저어 상말루, 줄 듯 줄 듯허먼서 안 주더라구, 말만 그렇기 허지 말구서 한 상 처억 좀 시기다 주어 보소? 늙은이 괄세넌 히여두 아덜 괄세넌 않넌다데마넌, 늙은이 대접두 더러 히여야 젊은 사람이 복을 받고 허넌 벱이네. 그렇잖엉가? 이 사람……."
윤직원 영감은 히죽이 웃기까지 하는 것이, 방금, 그다지 등등하던 기승은 그새 죄다 잊어버린 모양으로 아주 태평입니다. 워너니 그도 그래야 할 것이, 만약 그 숱해 많은 싸움을, 싸움하는 족족 오래 두고 화가 풀리지 않을래서야 사람이 지레 늙을 노릇이지요.
"아―니 머, 빈말씀이 아니라……."
올챙이는 금세 일어서서 밖으로 나갈 듯이 뒤를 들먹들먹합니다.
"……시방이라두 나가서, 무어 약주 안주나 될 걸루 좀 시켜 가지구 오지요. 전화루 시키면 곧 될 테니깐두루…… 정녕 저녁 진질 아니 잡수셨어요? 그러시다면 그 요량을 해서……."
"헤헤엣다! 참, 엎질러 절 받기라더니, 야 이 사람, 그런 허넌 첼랑 구만 히여 두소. 자네가 암만히여두 딴 요량장이 있어 각구서 시방 그러넌 속 나두 다아 알구 있네!"
"네? 딴 요량요? 원, 천만에!"
"아까 아참나잘으 와서 이얘기허던 그 조간 때미 그러지? 응?"
"아니올시다, 원……! 그건 그거구 이건 이거지, 어쩌면 절 그런 놈으루만 치질 하십니까! 허허허."
"그러구저러구 간으, 그건 아침에 말헌 대루 이화리〔二割引〕아니구넌 안 되니 그렇게 알소잉?"
윤직원 영감은 정색을 하느라고 담뱃대를 입에서 뽑고, 올챙이도 다가앉을 듯이 앉음새를 도사립니다.
"그리잖어두 허긴 그 사람 강씰 방금 또 만나구 오는 길인데요…… 그래 그 말씀두 요정을 내구 허기는 해야겠습니다마는……."
"그럼, 이화리 히여서라두 쓴다구 그러덩가?"
"그런데 거, 이번 일은 제 얼굴을 보시구서라두 좀 생각해 주서야 하겠습니다!"
"생각이라께 별것 있넝가? 돈 취히여 주넝 것이지."
"물론 주시긴 주시는데, 일 할만 해주세요!"
"건, 안 될 말이래두!"
"온, 자꾸만 그러십니다. 칠천 원짜리 삼십 일 수형에 일 할이라두, 자아, 보십시오, 선변을 제하시니깐 육천삼백 원 주시구서 한 달 만에 칠백 원을 얹어서 칠천 원으루 받으시니 그만 해두 그게 어딥니까……? 아무리 급한 돈이래두, 쓰는 사람이 생각하면 하늘이 내려볼까 무섭잖겠어요……? 그런 걸 글쎄, 이 할이나 허자시니!"
"허! 사람두……! 이 사람아, 돈이 급허면 급헐수룩 다아 요긴허구, 그만침 갭이 나갈 게 아닝가? 그러닝개루 변두 더 내구서 써야지?"
"그렇더래두 영감 말씀대루 허자면 칠천 원 액면에 오천육백 원을 쓰구서 한 달 만에 일천사백 원 이자를 갚게 되니, 돈 쓰는 사람이 억울하잖겠습니까?"
"억울허거던 안 쓰먼 구만이지……? 머, 내가 쓰시요오 쓰시요 허구 쫓아댕김서 억지루 처맽긴다덩가? 그 사람 참!"
윤직원 영감은 이렇게 배부른 흥정으로 비스듬히 드러누우려고는 하지만, 올챙이의 말이 아니라도, 육천삼백 원에 한 달 이자 칠백 원이 어디라고, 이 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에누리를 하는 셈이지요. 해서 이 할을 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고, 눈치 보아서 일 할 오 부로 해주어도 괜찮고, 또 저엉 무엇하면 일할이라도 그리 해롭지는 않고…… 그게 그러나마 달리 융통을 시켜야 할 자본일세 말이지, 은행의 예금장에서 녹이 슬고 있는 돈인 걸, 두고 놀리느니보담이야 이문이 아니냔 말입니다.
"영감이 무가내루 이 할만 떼신다면, 아마 그 사람두 안 쓰기 쉽습니다……."
올챙이는 역시 윤직원 영감의 배짱을 아는 터라, 마침내 이렇게 슬그머니 한번 덜미를 눌러 놓습니다. 그리고는 한참 있다가 다시,
"……그러니 자아 영감, 그러구저러구 하실 것 없이, 일 할 오 부만 하시지요…… 일 할 오 부라두 일칠은 칠, 오칠 삼십오허구, 일천오십 원입니다!"
"아―니 이 사람, 자네넌 내 밑으서 거간 서구, 내 덕으 사넌 사람이, 육장 그저 내게다가 해만 뵐라구 드넝가?"
"원 참! 그게 손해 끼쳐 디리는 게 아닙니다! 일을 다아 되두룩 마련하자니깐 그리지요. 상말루, 싸움은 말리구 흥정은 붙이라구 않습니까? 그런데 그게 남의 일이라두 모를 텐데 항차 영감의 일인 걸……."
"아따, 시방 허넌 소리가……! 야 이 사람아, 구문이 안 생겨두 자네가 시방 이러구 댕길 팅가?"
"허허, 그야…… 허허허허, 그런데 참 구문이라니 말씀이지, 저두 구문만 많이 먹기루 들자면 할이가 많은 게 좋답니다. 그렇지만 세상 일을 어디 그렇게 제 욕심대루만 할래서야 됩니까?"
"이 사람아, 그런 소리 말소. 욕심 읎이 세상 살라다가넌 제 창사구(창자) 뽑아서 남 주어야 허네!"
"것두 옳은 말씀은 옳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자아, 어떡허실렵니까? 제 말씀대루 일 할 오 부만 해서 주시지요? 네?"
"아이, 모르겄네! 자네 쇠견대루 허소!"
"허허허허, 진즉 그리실 걸 가지구…… 그럼 내일 당자 강씰 데리구 올 텐데, 어느만 때가 좋을는지……? 내일 은행 시간까진 돈을 써야 할 테니깐요."
"글씨…… 대복이가 와야 헐 틴디. 오늘 저녁으 온댔으닝개 오기넌 올 것이구, 오머넌 내일 아무 때라두 돈이사 주겄지만…… 자리넌 실수 읎을 자리겄다?"
"그야 지가 범연하겠습니까? 아따, 만창상점이라구, 바루 저 철물교 다리 옆입니다. 머 그 사람이 부랑자루 주색잡기하느라구 쓰는 돈이아니구, 내일 해 전으루다가 은행에 입금을 시켜야만 부도가 아니 나게 됐다는군요……! 글쎄 은행에서들 돈을 딱 가두어 놓군 돌려주질 않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죽는 소립니다……! 그러나저러나 간에 이 사람 강씬 아무 염려 없구요. 다 조사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내가 무얼 알겄넝가마는……."
윤직원 영감은 담뱃대를 놓고 일어서더니, 벽장 속에서 조선 백지로 맨 술 두꺼운 장부(?) 한 권을 찾아냅니다.
이것이 대복이의 주변으로, 종로 일대와 창안 배오개 등지와, 그 밖에 서울 장안의 들뭇들뭇한 상고들을 뽑아 신용 정도를 조사해 둔 블랙리스트입니다.
신용이라도 우리네가 보통 말하는 신용이 아니라, 가산은 통 얼마나 되는데, 갚을 빚은 얼마나 되느냐는 그 신용입니다.
이걸 만들어 놓고, 대복이는 날마다 신문이며 흥신내보(興信內報)며 또는 소식 같은 걸 참고해 가면서, 그들의 신용의 변동에 잔주〔註解〕를 달아 놓습니다.
그러니까 생기기는 아무렇게나 백지로 맨 한 권의 문서책이지만, 척 한번 떠들어만 보면, 어디서 무슨 장사를 하는 아무개는 암만까지는 돈을 주어도 좋다는 것을 휑하니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윤직원 영감은 시골 사람, 그 중에도 부랑자가 돈을 쓴다면 으레 매도계약까지 첨부한 부동산을 저당 잡고라야 돈을 주지만, 시내에서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는 대개 수형을 받고서 거래를 합니다. 그는 수형의 효험과 위력을 잘 알고 있으니까, 안심을 합니다.
세상에 수형처럼 빚 쓴 사람한테는 무섭고, 빚 준 사람한테는 편리한 것이 없답니다. 기한이 지나기만 하면 거저 불문곡직하고 수형 액면에 쓰인 만큼 차압을 해서 집행딱지를 붙여 놓고는 경매를 한다나요.
가령 그게 사기에 걸린 돈이라고 하더라도, 수형이고 보면 안 갚고는 못 배긴다니, 무섭지 않고 어쩌겠습니까.
윤직원 영감은 이 편리하고도 만능한 수형장사를 해서 매삭 이삼만 원씩 융통을 시키고, 그 이문이 적어도 삼천 원으로부터 사천 원은 됩니다.
일 할 이상 이 할까지나 새끼를 치는 셈이지요.
송도 말년(松都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