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 2026. 1. 20(화)
◇ 산행장소 : 진주 준봉산-깃대봉-만수산-보잠산-작당산
◇ 산행코스 : 발산재 - 고종후 묘소 - 준봉산 - 깃대봉(back) - 낙남월아지맥 갈림길 - 만수산 - 나동고개 - 보잠산 동봉
- 보잠산(back) - 동봉 - 삼남고개 갈림길 - 작당산 - 경상남도수목원 - 도로 - 발산재
◇ 거리 및 시간 : 22.3km, 8시간 11분
▲진마대로(2번 국도) 봉암육교 부근의 수발사 입구(발산재)를 출발 깃대봉 – 준봉산(back) - 만수산 – 보잠산 – 작당산 – 경남수목원을 거쳐 도로 따라 다시 이곳 발산재로 돌아오는 22.3km 원점회귀 산행을 시작한다.
▲낙남정맥이 깃대봉에서 북진하며 발산재로 내려갈 때, 서쪽으로 분기하는 월아지맥 산줄기를 붙들고 씨름하는 하루가 되었다.
▲'효열공 고종후 묘소입구' 여기가 오늘 산행 들머리다.
▲ 빗돌에 장흥 고씨 자연장 추모공원이라고 새겨놓았다.
▲등로는 묘지 오른쪽으로도 오르면 되고 위에서 다시 만난다
▲낙남정맥의 중앙에 '효열공 고종후(孝烈公 高從厚 1553~1593)'의 묘소가 있다.
▲고종후 묘소의 유방백세(流芳百世)비석으로 '향기로운 이름을 백세까지 흘려보내다'라는 뜻이니 훌륭한 명성이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
☆준봉 고종후
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
본관은 장흥. 자는 도충, 호는 준봉. 아버지는 의병장 경명이다.
1577년(선조 10)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전적·감찰·예조좌랑을 지냈다.
1588년 임피현령이 되었으나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인후와 함께 아버지의 뜻을 받아 금구·김제·임피 등지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금산 싸움에서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그는 이듬해 4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복수의병군을 조직했다.
일본군이 진주를 공략한 뒤 호남지방으로 침입하려 하자 휘하 의병을 이끌고 진주성에 들어가 성을 지켰다.
격전이 계속된 지 9일째인 6월 29일 진주성이 함락되자 창의사 김천일, 경상병사 최경회 등과 함께 남강에 투신, 순국한 삼장사 중의 한 사람이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광주 포충사와 진주 충민사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효열이다.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우회하여 오른다.
▲징검다리 모양의 쉬어가기 좋은 바위
항산과 서북산의 하늘금을 그려본다.
▲전망대 역할을 하는 월아지맥 갈림길 암봉이다.
가야할 등로는 낙남과 헤어져 정면 철탑능선으로 이어가야 하지만 깃대봉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철탑 뒤의 만수산은 진주와 고성을 가르는 경계지로 경남수목원 부근의 보잠산으로 이어진다.
길은 묵어 없어지고 잡목들의 저항이 심하다.
☆준봉산
준봉산(528m)은 낙남정맥 진주 - 고성 경계를 가른다. 이쪽 길은 준봉산으로 가는 길은 낙남정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선명하고 주변에는 많은 산들이 늘어서 있다. 준봉산의 이름은 민관군 7만명이 산화한 진주성 2차전투로 훗날 인구에 회자하는 삼장사 중 1인인 고종후의 시호가 효열(孝烈), 호가 준봉(準峯)이다. 이 산 중턱에 준봉 고종후의 묘가 있다.
▲깃대봉을 지나 준봉산을 넘어가면 선동치에서 적석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여항산에서 서북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의 하늘금
▲깃대봉까지 다녀와 월아지맥 갈림길에서 만수산을 올랐는데 길은 묵었고 잡목의 저항들이 엄청나다.
정상석 직전 이 바위가 있는 봉우리가 지형도상의 만수산이다.
☆만수산
만수산(456m)은 진주시 이반성면 길성리 수성마을 수당골·발산리 시동마을 시동골과 고성군 개천면 나선리 수동마을 경계에 걸쳐 있는 산이다. 낙남정맥 줄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능선 월아지맥에 위치하고 이어가면 보잠산에 이른다.
▲만수산을 지난후 368.1m봉에서 나동고개로 바로 가지않고 고성군 나선마을로 내려섰다.
▲나선마을 선동저수지
▲진주와 고성의 경계지역인 나동고개에 도착했다.
등로는 노란리본이 보이는 경계석을 올라야 한다.
▲삼각점이 있는 보잠산 동봉에 도착했다.
깃대봉을 지나 만수산 오름길부터 나동고개까지, 또 여기 나동고개에서 보잠산 동봉까지는 거의 개척산행 수준이다.
여기에서 보잠산을 다녀온다.
▲보잠산에 도착했다.
☆보잠산
보잠산(453m)은 진주시의 이반성면 대천리와 일반성면 남산리 및 고성군 개천면 나선리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동쪽으로 만수산, 깃대봉이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서북쪽으로 큰 골을 이루었는데, 원통마을이다. 보잠산 동쪽으로 이티재가 있는데, 남해에서 내륙의 반성·의령으로 이르는 지름길에 위치한 고개이다.
보잠산성은 보령산성이라고도 하는데, 보잠산의 좌측 봉우리 9부 능선의 테뫼식 석축성으로 규모가 작다.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 당항만에서 내륙으로 침략해 오는 적에 대비해서 고려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보잠산 동봉으로 돌아왔다.(왕복 21분)
▲이제부터 등로는 고속도로와 다름없다.
▲상남고개 갈림 이정표. 작당산이 1.2km 남았다.
▲작당산에 도착했다.
▲관리가 안된 탓일까? 이정표는 부러지고
▲산패는 땅에 떨어져 뒹굴고 있다.
☆작당산
작당산(249km)은 진주시의 이반성면과 일반성면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보잠산 줄기가 거의 북쪽으로 달리다가 원뿔 모양의 작당산을 형성하였다. 작당산 줄기가 서북쪽으로 뻗어가다가 끝난 지점이 경상남도수목원이다.
작당산과 경상남도수목원의 중간쯤에 까치재가 있는데 답천리 양전마을에서 대천리 대동마을로 넘나들던 고개이다. 고개 이름은 작당산에서 나왔으며, 작당산은 까치가 많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작당산성은 둘레가 약 250m 정도였으나 대부분 무너져 흔적만 남은 석축성이다. 임진왜란 때 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맨발등산로와 발씻는곳
▲경상남도 산림연구원 산림바이오센터쪽으로 내려왔다. 수목원은 반대쪽
낙남에서 갈라져 만수산과 보잠산을 다녀온 후 보잠산 동봉에서 작당산을 거쳐 경남산림연구원 하산을 하고 차량회수를 위하여 도로따라 발산재까지 6km를 발품을 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