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어디인지 아는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근접한 답은 아마도 속 편하고 사기 당하지 않고 다리 쭉 뻗고 쉴 수 있는 곳일 것이다. 정치의 색깔이 어떤지 그런 것은 일반 국민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법이 살아 있고 내 권리가 무시당하지 않고 내 재산 함부러 빼앗기지 않으면 그 나름 좋은 곳이고 그런 흐름이 유지되면 그곳은 살기 바람직한 사회임에 틀림없다고 시민들은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나는 정치적 성향을 이자리에서 논하고 싶지 않다. 보수니 진보니 보수니 혁신이니 하는 것을 거론하고 싶지 않다. 단지 겉으로 나타난 이런 저런 현상에서 한국의 현실을 바라다 보자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포근해야 할 장소가 바로 자신이 거주하는 집일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고 남녀노소를 통털어 공통된 마음이다. 한국에서 거주할 집 마련이 쉽지 않고 온갖 어려움을 참고 장만한 것이 지금의 집이다. 그렇게 힘들게 만든 내 보금자리가 한순간 공중으로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 살기 싫을 것이요 이 사회가 원망스럽다 못해 부셔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것이다. 지금 전국 이곳 저곳에서 행해지는 바로 전세사기이다. 최근 뉴스에 자주 거론되는 빌라왕도 같은 상황에서 이뤄진다. 치밀한 전세사기에는 이른바 빌라왕이라는 바지사장이 있고 그 뒤에는 배후세력들이 판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 어딘가에서 이런 전세사기꾼들이 미끼를 던져놓고 누군가 덥썩 물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전세난 속에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하는 수 없이 강제 경매를 신청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어떻 게라도 전세금을 찾고 싶을 것이다. 이런 강제 경매속에서도 주택을 보유한 집주인과 전세사기 일당들은 일명 깔세 그러니까 '선 월세'라는 것으로 추가 수익을 취하고 있다고 언론들에서는 고발하고 있다. 깔세라는 것은 보증금 없이 살고 싶은 기간만큼 월세를 한번에 지급하는 이른바 사글세를 말한다. 당국은 전세사기 대응을 위한 협의체를 마련하고 전세사기 범죄에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지만 범죄집단들은 뛰는 당국 위에 날라다니는 조직의 모습으로 공권력을 비웃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전세사기는 해당 당사자가 더욱 철저히 점검하고 꼼꼼히 들여다보야 하는 것이지만 범죄집단의 능수능란한 수법에 당하기 일쑤이다.
전세사기 못지않게 서민들을 울리는 것이 있다. 바로 보이스피싱이다. 보이스피싱은 지난 2006년 처음 피해가 발생한 이후 그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으며 그 수법은 날로 치밀하고 지능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보이스피싱으로 인해 피해액이 2006년부터 지금까지 16년동안 4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때 보이스피싱 수법으로 자녀가 다쳤으니 병원비를 보내달라거나 검경을 사칭하며 돈을 요구하는 등 이제 누구나 아는 수법에서 요즘은 택배와 각종 지원금 그리고 명절을 빙자한 수법 등 생활과 관련된 정보들을 악용하고 있다. 특정 정보로 위장해서 URL를 전송해 악성앱을 설치하고 돈을 빼내는 방식으로 변모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뒷전에 있는 노약자들이 당했다면 요즘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피해자들이 생기고 있다.
한국은 치안에서 세계에서 손꼽히는 안전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치안 선진국의 뒷면에는 혹독했던 군사독재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통행금지가 있었고 언로가 통제된 적도 많았다. 남북이 대치속에 엄격한 통제가 사회 밑바닥에 깔려 있기에 지금도 표면적인 치안은 좋아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부동산 사기 그리고 보이스피싱 등 금융사기 등은 이 나라에서 판치고 있다. 행동적인 면에서 조금 불편을 겪어도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자신이 가진 재산을 날릴 경우 그 허망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는 소시민의 경우 그 고통의 강도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선진국을 넘었다느니 그 문턱에 있다느니 하는 말은 귀에 간지러운 표현이다. 시민들이 발 뻗고 쉴 수 없고 자신의 재산을 허망하게 날리는 그런 사회에 어찌 선진국이란 표현이 가능하겠는가. 전세사기나 보이스피싱같은 원초적인 사기수법이 이 사회에 횡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런 일이다. 어떻게 이런 사기극조차 미연에 차단하지 못하는 나라가 됐을까 매우 걱정스런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사기꾼들이 판치는 세상은 상당히 병든 사회임이 틀림없다.
2023년 1월 23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