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방 한칸 / 김사인
세상은 또 한 고비 넘고
잠이 오지 않는다
꿈결에도 식은 땀이 등을 적신다
몸부림치다 와 닿는
둘째놈 애린 손끝이 천 근으로 아프다
세상 그만 내리고만 싶은 나를 애비라 믿어
이렇게 잠이 평화로운가
바로 뉘고 이불을 다독여 준다
이 나이토록 배운 것이라곤 원고지 메꿔 밥비는 재주 뿐
쫓기듯 붙잡는 원고지 칸이
마침내 못 건널 운명의 강처럼 넓기만 한데
달아오른 불덩어리
초라한 몸 가릴 방 한칸이
망망천지에 없단 말이냐
웅크리고 잠든 아내의 등에 얼굴을 대본다
밖에는 바람소리 사정 없고
며칠 후면 남이 누울 방바닥
잠이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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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 시인, 19년만에 새 시집
우리 시대 '최후의 휴머니스트, 김사인 시인이 19년 만에
새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을 냈다.
시인은 보잘 것 없고 가련한, 세상의 온갖 낮고 어둡고
축축한 것들을 제 몸으로 따뜻하게 품는다.
김사인의 시는 결코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지만, 물질에
눈먼 현대인들이 뉘우침으로 고개를 수그리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시인의 시선은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는' 노숙자,
'꼬부리고 숨어있는' 새끼발가락, '키 낮은' 풀, '별로
고울 것 없는' 버러지, '쓰다 버린' 집과 담벼락과 개 등에
머물며 함께 아파한다.
"몸이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다 그들에게는/
소비할 공간이 없다 먹고 죽을 공간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발을 두나 머리를 두나 먹을 입과 담아둘 위장/
과 배설할 항문을 어디에 두나 똥은/또 어디에 내려놓나/
모든 가능 공간을 몰수당했으므로 그들은/존재할 수 없음/
그러므로 그들의 시간도 꽃필 수 없음 나프탈렌처럼/
또는 유령처럼 생으로 졸아들다가 증발한다."
(- 노숙자 2)
"그토록 꼬부리고 숨어 있는 그것이 혹 죽은 것/은 아닌가
한순간
걱정되면서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가/그것을
건드리니,/아아, 가만히 움츠리며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그 기척이 어쩐지 우리들 희망의 절망적인
상징처럼 여겨져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 새끼발가락과 마주치다)
"작고 낮은 것들 옆에 함께 서서 섬기는 일, 같이 앓아주는
일, 나로선 이런 게 시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시만큼이나 수줍고 굼뜬 목소리로 시인은 말했다.
1987년 '밤에 쓰는 편지' 이후 새 시집이 나오기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90년대 초반에 형편이 좋지 않아 밖으로 다녀야 했던 때
(91년 '노동해방문학'지 사건으로 수배 당하던 때를
말한다)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마 그러면서 무릎이 꺾였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평론가 노릇을 할 상황이 자꾸 생기고 그러면서
작품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졌던 거지요."
예술과 시대적 당면 과제 사이에서의 갈등도 시작의
걸림돌이 됐다.
"1970~80년대는 시 쓴다는 일이 잘못하면 부끄러워질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옳아야 되는 일과 예술이
요구하는 도취, 아름다움 그 사이에서 많이 고통스러워
했죠. 90년대까지 그 고민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자유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지난 19년간 꾸준히 시를 쓰고, 쓴 시를
매만졌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적게는 2~3년에서
많게는 30년 동안 다듬고 깎은 것이라고 한다.
해설은 시인의 고등학교 1년 후배인 문학평론가 임우기씨
가 무려 40쪽에 걸쳐 썼다. 백석의 시세계에 빗댄 해설에
대해 김씨는 "폭력적 수준의 애정 표현이다. 과분하다"고
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김사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은
올 봄 받아본 시집 가운데 가장 무겁다.
154쪽의 시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집을 내기까지 19년간 붙잡아놨던 세월, 묻어두고
쟁여놨던 사연이 무겁다는 얘기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세월이 너무 길다. 그래서 남들 아는 얘기부터 시작한다.
1990년 당시 안기부는 ‘노동해방문학’(노해문) 발행인
김모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이적표현물 제작 등) 혐의로
수배했다. 그 김모씨가 김사인이었다.
그때 그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와 함께 대표적인 ‘빨갱이
시인’이었다. 꼬박 이태를 숨어 살았다.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미안하다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묻는다/어떤가 몸이여’
‘노숙’이란 시의 부분이다.
자신의 몸뚱어리를 내려다보며 미안하다고 말을 건다.
그리고 떠나도 되는지 몸뚱어리를 향해 묻는다.
지난해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인 이 시는 외환위기 이후
노숙자의 삶을 다룬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나 이 시는 옛날 수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유언의 한 대목 마냥 비장했던 것이다.
시인은 “원래는 내 얘기였는데, 어쩌겄어, 다르게 읽으면
다르겄지”라고 가만히, 느릿한 충청도 말투로 말했다.
‘가만히’. 여기에 또 다른 김사인이 들어있다.
그는 해맑다. 나이 쉰이어도 아이처럼, 혹은 박수 무당처럼
웃는다. 가만가만, 더듬더듬 겨우 입을 열어 하는 말이
“그려, 니 말도 맞어”다.
2년이나 도피생활이 가능했던 건 수많은 문인들이 뒤를
봐줬기 때문이고, ‘노해문’에 여러 문인들이 참여했던
것도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정작 시인은 왜 ‘노해문’ 맨 앞줄에 섰을까.
시인은 “그땐 옳은 문학이 전부였어. 그거밖에 없어”라고,
가만히 말했다. 그리고 말을 삼갔다.
그는 시도 느릿느릿 쓴다.
‘노숙’이 15년 묵힌 시이듯이 다른 시편도 서너 해 넘게
삭히고 매만져 내놓았다.
‘사랑가’와 ‘여수’는 30년 묵은 시다. 도피 생활 중에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를 통째로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여태 한 번도 시를 내려놓은 적은 없었다.
오직 한 수의 시가 나오기까지 남들보다 더뎠을 뿐이다.
시인은 “별 이유가 있겄어? 재주가 부족하니까 그런 겨”
라고, 다시 가만가만 말했다.
기나긴 산고(産苦) 끝의 출산이다 보니, 곁가지 사연도
생겨났다.
한동안 문단에서 비켜있었던 문학평론가 임우기(49) 씨가
40쪽짜리 장문의 해설을 붙인 것이다.
물어보니, 둘은 25년 지기였다. 평론가는 시 67편 가운데
먼저 ‘코스모스’에 주목했다. 시인이 드러나는 시라고 했다.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 자의/빈 호주머니여//언제나
우리는 고향에 돌아가/그간의 일들을/울며 아버님께
여쭐 것인가’
힘없고 가난하고 여린 삶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몸이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는 노숙자(‘노숙 2’에서
인용), 허리 꺾인 맨드라미(‘맨드라미’ 부분), 마른 쑥대
(‘마른 쑥대에 부쳐’ 부분), 바르르 떠는 키 낮은 풀들(‘풍경의
깊이’에서 인용) 등속은, 결국 ‘코스모스’와 같은 심상이다.
가녀린 들풀과 상처받은 짐승의 마음이다. 평론가가 바라본
것도 이 마음이리라.
끝으로 사연 하나 더.
87년 펴낸 첫 시집『밤에 쓰는 편지』얘기다.
당시 ‘청사’라는 출판사에 있던 김형수(46) 시인이
김사인 시인에게 시집 출간을 제안했단다.
그러나 그는 시집 생각이 전혀 없던 차였다.
한데 마침 부친 환갑이 코앞이었다.
“아버님 환갑 상에 형이 시집 말고 내놓을 게 뭐 있수?”란
말에 넘어갔다. 그러니까 이번 시집은 19년만의 두 번째
시집이 아니라 82년 등단하고서 작정하고 펴낸 첫 시집이다.
김사인 시인
1956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학과 졸업
1981년 '시와 경제'의 동인으로 참가하면서 시 발표
동덕여대 인문학부 문예창작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