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종교의 나라이다
우리나라처럼 종교가 많은 나라도 드물 것 이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민족 종교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유수한 종교들이 대부분 들어와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보면 수없이 많은 종교들이 육대주 오대양에 존재 한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종교의 대표주자는 역시 중동에서 태어나서 서구를 지배하고 있는 아브라함 신앙 (Abrahamic Faiths) 들 이다.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정교, 이슬람교 등은 유일신의 지고존재 (Supreme Being) 즉 신 (Deity) 이나 창조주 (Creator) 에 대한 숭배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는 예언자들에 의하여 전파되어 왔다.
……아브라함, 모세, 크리스나, 조로아스터, 예수, 무함마드(모하메트), 바압, 바하올라…… 등으로 이어지는 예언자들은 한결같이 인류에게 하느님의 목적을 설명하기 위하여 온 현시자 들로 알려져 있다.
이들 현시자들이 유독 중동에 집중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은 어두운 곳으로, 고통 받는 곳으로, 사막의 무서운 밤이 있는 곳으로 현시자를 보내시는 것 일까?
역사를 읽어보면 주기적으로 암흑과 같은 시기, 암울한 세상의 절망한 민중에게, 빛과 소금을 주러 때맞춰 현시자들이 탄생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현시자는 대부분 종교의 창시자로 추앙 되었고, 인간과 하느님을 연결 해 주고 있다.
모세는 유대교의 창시자 이다.
예수는 기독교(그리스도 교)의 창시자 이다. 예수는 유대교를 개혁하였다.
무함마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이다. 무함마드는 기독교를 개혁하였다.
하느님이 보낸 현시자들이 유일신인 하느님을 숭배한다는 점에서는 모두 공통 이다.
다만, 하느님을 숭배하는 방법과 교리를 달리 할 뿐 이다.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싯달타 는 불교의 창시자 이다. 그는 힌두교를 개혁하였다.
공자는 유교의 창시자 이다.
노자는 도교의 창시자 이다.
원래 B.C. 2,000 년경부터 인도에는 오래된 힌두교가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힌두교는 전통적인 신분계급 인 카스트를 인습적으로 내재하고 있었다. 즉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이 있었다.
B.C. 600 년경에 왕의 아들로 태어나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고다마 싯달타 가 왕궁을 버리고 수행 길에 올라 깨달은 바가 ‘아! 이것이 아니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평등한 존재야! 내가 나의 주인이야.’ 였다.
그는 사회를 개혁하고 힌두교를 개혁 했다. 이것이 불교의 시작 이었다.
유교를 보면, 아브라함적 추정(Abramhamic Assumption) 들과의 일치점도 발견되고 불일치점도 발견 되지만, 근본 원리(인간을 창조주와 연결하고 있는 점)는 하나임이 발견 된다.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 을 보면 지고존재에 대한 숭배를 찾아 볼 수 있다.
상제(上帝), 천재(天帝), 천(天)으로 표현되는 신성 (Deity)을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인간은 원래의 근본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존재하는, 전체(하느님)에서 분화되어 나온 개체이므로 천지인 합일 사상을 모태로 자신의 인격완성을 추구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 세기에 들어와서 종교는 과학과 많은 토론을 하고 덕분에 많은 접근을 보여 주었다.
종교(Religion)라는 단어는 ‘함께 묶는다’는 뜻이다. 그것은 인간의 삶 전체를 질서 지을 수 있는 하나의 제시된 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상의 위대한 종교들은 인간의 위대한 전통들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으로 말하면, 위대한 전통들은 위대한 종교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모두 인간 존재의 다양한 ‘길’ 들이고 이미 역사를 통하여 인류의 존재 즉 삶의 전체는 수 많은 다른 전통들과 수 많은 다른 종교들이 포개어져 있다.
중국인들을 만나보면 유교 신자라고 하는 대부분은 자신이 도교 신자라고 말한다.
유교전통과 도교전통은 상호 보완적으로 중국인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다.
거칠게 단순화 시켜 말하면, 유교는 외적인 삶을, 도교는 내적인 삶을 동시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현대 중국문학의 거장 원이둬(聞一多)는 “중국인의 마음에는 유교와 도교가 하나되어 함께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중국인의 심성 에는 유교의 가르침인 예의와 염치, 어짊과 인의로 설명되는 덕목이 녹아 있다. 반면에 도교의 초탈을 꿈꾸며 개인적 자유로움과 융통성을 추구하려는 실리적 덕목도 함께 있다. 때문에 유교가 명분적 격식과 위계질서를 뜻하는 ‘네모의 문화’ 유산과 연결 된 것이라면, 도교는 개인적 자유로움으로 실리와 타산을 뜻하는 ‘동그라미 문화’의 유산과 연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중국인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전통이고 종교인 것이다.
일본에 가 보면, 일본인은 유교, 불교 의 기본교리가 혼합되어 있는, 일본인들만 이 믿는 신도(神道)를 신앙하고 있다. 이것이 일본인의 전통이고 그들의 종교이다. 일왕(日王)은 신도의 최고지도자를 상징하는 동시에 일본정부의 정신적 수반을 상징하고 있다.
한국인은 어떠한가?
한국인의 삶에는 전통적인 한국적 신선도, 풍류도 와 유불도가 모두 녹아있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오고부터는 유불도와 기독교 사상이 함께 공존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이 시대의 한국인이고 한국인의 삶의 전체적 모습이다.
대한민국에는 고유의 민족종교들(단군교, 천도교, 대종교, 증산교, 갱정유도교, 대순진리교 등)과 유교, 불교, 원불교, 가톨릭, 개신교(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안식일교,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교, 순복음교, 통일교 등) 및 성공회, 정교, 이슬람교 등 수없이 많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종교간의 갈등, 대립, 투쟁 없이 평화로운 종교사회를 발전시키고 있다. 오히려 종교, 종단 내부의 분열, 갈등, 대립은 간혹 발견할 수 있어도, 적어도 종교간의 싸움, 투쟁, 전쟁은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지도자들이나 신앙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종교만이 옳고 다른 종교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맹신자들이 범하는 잘못이 확대되면 우리사회에 불신기조를 만드는 독소를 키우게 될 것이고, 결국 상호비방으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나는 생각한다.
어느 종교이든, 아주 미시적이고 편협한 것에 지나지 않는 자신의 교리,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면서 배타적이 되어서는 참 종교인 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만을 주장하는 것은 참 종교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배타적인 종교는 닫힌 종교 이다. 종교사를 보면 닫힌 종교는 모두 멸망의 길을 걸었다.
종교들이 더욱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인류의 삶을 같이 걱정하고 같이 기도 할 때, 인류는 존재의 가치를 더욱 빛 낼 수 있지 않을까?
和元 김진수 올림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복을 빌고자하는 마음이 많은가 봅니다. ㅋㅋㅋ 배타적인 종교는 백해무익하다는 말씀 공감합니다
종교를 보는 시각이 너무 훤하십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공부를 했소. 화원의 종교관에 나역시 동감이며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한국적인 현실에서 보는교에 관한 눈이 재미 있다. 교를 보다 내면적인 면에서 보지 않으면 김진수군의 견해는 아주 공평하다. 그러나 여기 개인적인 것이라는 의미의 정의에 따라서 배타적인 교의 의미도 라진다. 예로, 기독교는 가장 배타적인 것같으면서도 실존적인 인간 조건을 가장 폭넓게 이해한다. 한국은 수천년간 유불선이라는 혼합된 사고방과 정서로 물들었다. 그래서 이잡탕적인 것이 그후에 들어 온 딴 교, 예를 들면, 기독교를 역시 그렇게 전래된 것과 계속 혼동하는 결과를 낳아서 한국의 기독교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한국인의 사고방식, 의식들은 그래서 논리적, 법적인 것, 생활 문제 해결등에 애매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