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려타곤(懶驢駞坤)-42
"쥐새끼 같은 놈----."
약이 바싹 오른 목소리가 철가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들이 공격을 시작
한 이래 금룡이라 불리는 양평은 단 한번도 공격을 맞받아 친 적조차 없었다.
지금처럼 죽어라 도망만 칠뿐이었다.
다행이 그들의 인원이 많다보니 양평을 소림이나 등봉현쪽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할 수 없었지만 그뿐이었다. 금룡이라는 이름을 허명으로 얻은 것이 아니
라는 것을 도망치는 실력 하나만으로 암천혈혼대의 인물들에게 양평은 훌륭하
게 증명한 것이다.
악종진의 얼굴도 잔뜩 성이 난 표정이었다. 그것은 갑자기 이곳에 들이닥친
마교의 고수들 때문이었다. 어디에 숨었는지 종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마교의
고수들이 등장해서 길목을 감시하고 있던 그와 그의 부하들 즉 암천혈혼대를
향해 공격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 크하하하, 구환맹에 암천혈혼대가 있다면 마교에는 암흑전사단이 있는 것
이다!"
누군가 흑의를 거친 장신의 거한이 그렇게 소리치면서 마교의 공격은 시작되
었고, 양평을 쫓는 암천혈혼대의 숫자는 겨우 세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암흑
전사단의 인물들과 싸워야만 했던 것이다.
시간은 결코 양평의 편이 아니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른다면 소림의 인물들
이 이 숲으로 오게 될 것이다. 소림사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내기 전에 어서 빨
리 임무를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다. 소림사가 가지고 있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림의 거인이라 불리는 소림의 힘이 깨어나면 아
무리 구환맹 최강의 조직이라는 암천혈혼대라도 감당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더
불어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이일을 하고 있는 악종진의 삶도 끝나게 될 것
이다.
소림에서 이 일을 눈치 채기 전에 어서 끝내야만 하는 것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마교에서 보낸 자들 역시 한결 같이 고수 아닌 자가 없었고, 두 명의 적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는 악종진은 차례차례 죽어 가는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목숨도 이런 상황이라면 장담 할 수 없는 것이다.
붉은 옷에 철가면을 얼굴에 쓰고 있는 암천혈혼단의 인물들과 붉은 옷에 하
나 같이 검은 복면을 하고 있는 마교의 암흑전사단이 숭산 아래에서 전쟁을 벌
이게 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 아이의 곁으로 이자들이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라! 우리는 이들이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면 된다!"
암흑전사단의 인물들은 단지 시간만 질질 끌 생각만 하고 있었기에 승부는
쉽사리 나지 않고 있었다.
'펑! 펑!' 하는 요란한 폭음 소리가 터지고 쇠로 된 무기들이 정신없이 부딪
치는 숭산 아래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소림에서 모를 수가 없었다.
요란한 전투는 벌써 한시진 째로 접어들고 있었고 소림에서도 사대금강과 일
단의 무승들이 폭음이 터져 나오는 숭산 아래의 한 지역으로 무서운 속도로 몰
려오고 있었다.
"삐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울려 퍼졌다.
"철수신호다! 모두 철수하라!"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고 먼저 그 자리를 떠난 것은 마교의 인물들이었다. 바
로 다음에 철수한 것은 암천혈혼대의 인물들이었다.
사대금강이 바위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양평을 발견한 것은 그
로부터 일각의 시간이 흘러서였다.
온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양평의 눈은 안도의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파의 암천혈혼대와 마교의 암흑전사단이라는 단체는 무림에서 최강의 무력조
직으로 알려진 곳이었다. 두 무리가 모두 자신이 등에 매달고 있는 아이를 노
리고 있었다. 한쪽은 죽이기 위해서였고 한쪽은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
교로 대리고 가기 위해서였다. 양평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조건 그 두 무리로부
터 도망치는 것뿐이었다. 쌓은 무공이 있으니 싸울 수도 있었겠지만 상대가 너
무 많았다. 무조건 피하고 도망치는 사이 몸에 상처들은 하나씩 늘어나고 이제
상황이 종결되고 보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헤헤, 사형들 왔네요."
흐릿한 미소를 흘리며 양평은 그렇게 말하고 그대로 까무러쳤다.
" 도대체 어떤 녀석들이 감히 소림의 영역에서 칼부림을 할 생각을 하는 거
지?"
사대금강의 둘째인 방오(方悟)가 온몸에 피칠을 한 채 쓰러져 누워 있는 사
제 양평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대금강의 첫째인 방진은 양평의 등에 끈으로 매달린 채 기절해 있는 꼬마
의 옆으로 다가갔다. 꼬마의 몸도 양평과 마찬가지로 상처투성이였다.
" 어서 두 사람을 일단 정각 장로님에게 대려 가자."
사대금강은 직접 둘을 안아들고 소림사가 있는 태실봉을 향해 몸을 날렸다.
서둘러야 할 시간이었다.
기절해 쓰러져 있던 칠호가 다시 의식이 깨어난 곳은 사방이 칠흙처럼 어두
운 공간에서였다. 살수로서의 훈련을 받을 때 칠호가 있던 곳은 지금 있는 곳
처럼 어둠만이 있던 곳이었다. 칠호로서는 이렇게 어두운 곳이 보통사람과는
달리 아늑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 깨어났냐?"
아까의 그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가 먹으려는 그것은 마교의 고수가 죽은 후 남긴 원정내단이다. 그것을
먹으면 넌 미치게 될 거야. 거기다 파괴와 살인만을 하면서 미친 듯이 세상을
떠돌게 되겠지."
"그래서 저보고 어쩌라고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암흑에 대고 칠호는 소리쳤다.
"네가 마기(魔氣)에서 벗어나면 이곳에서 자동으로 나갈 수 있게 될 거다.
그럼 안녕!"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칠호는 황당했다. 이렇게 제멋 대로인 노인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
다. 자신의 생각은 들어보지 않고도 사람을 이런 곳에 가둔 것이다.
" 근데 사탕인지 원정내단인지 그건 어디 있지?"
그는 땅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손바닥으로 둥근 알의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 후 사탕의 껍질을 벗은 원정내단은 은은한 붉은
광채를 내뿜으며 칠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이걸 먹으면---, 미치게 된다고? 이것을 먹으면---, 마교를 두려워하지 않
을 정도의 실력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칠호는 홀린 듯이 그것을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탕봉지를 손에 들고 노인은 한 알 한 알씩 입안에 넣으면서 사탕의 단맛을
즐기던 노인은 흘낏 자신이 막아 놓은 동굴의 입구를 쳐다보았다.
" 흠, 저 정도면 쉽게 나올 수 없겠지. 누구의 원정내단인지 몰라도---, 이
것으로 일단 세상에 일어날 피보라 중 하나는 막은 셈인가---."
노인은 다시 걸음을 옮기다 산아래 등봉현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린 계집아이가 금 타는 솜씨가 상당히 뛰어나던데---. 다시 가서 그 아이
가 타는 금 소리나 들어볼까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노인의 몸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방수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열 살 난 여아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 올려
놓은 금 위를 오가는 동안 그 옆의 탁자에 둘러앉은 방씨 일가족은 차를 마시
고 있었다.
"음악만 들으니 재미가 없구나. 화련아, 네가 춤을 한번 보여주지 않겠니?"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부탁하는 것이었지만 사실은 명령이었다.
방화련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찻잔만을 만지작거리며 이 좀이 쑤시는 자리를 언
제 벗어날까만 생각하다 어머니의 말을 듣고 한껏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 어머니, 제가 배가 아파서 지금은----."
"꾀병은 그만, 어서 네 아버지한테 네가 배운 것을 보여드려야지."
모처럼 한 가족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였다. 막내만 빼 놓고 모여 있는 방씨
일가족의 한가한 시간이었다.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방종대 역시 기대에 찬 목소리로 딸에게 말했다.
"네 동생도 지금 금을 연주하고 있지 않니? 그러니 너도 어서 춤을 보여다
오."
방화련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자에서 마당으로 내려 온
다음 동생을 쳐다보았다.
"언니, 어떤 곡으로 연주할까?"
"흥겨운 걸로 해. 네가 좀 전에 연주하던 것은 졸려서 죽는 줄 알았단 말이
야."
"알았어. 그럼 준비해."
둘째딸과 셋째 딸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방종대와 장봉화는 서로를 바라보
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방수련은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자세를 잡고 바로 다음 순간 흘러나오는 금음
소리에 맞춰 뱅글뱅글 돌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지붕 위에 누워 금음 소리를 듣던 노인은 신선이 부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잠시 동안 금음(琴音)이 그치더니 또 하나의 여아가 마당으로 나와서 춤을 추
기 시작했다.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방수련이 추는 춤을 바라보던 노인의 눈은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 이들은 그들의 후예란 말인가?"
어설프기는 했지만 방수련이 추는 춤은 노인과 깊은 관계에 있는 춤이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 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정문이 그렇게 경악
해 하는 동안 방종대는 마누라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여보, 저 춤은 조상 대대로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거라 결코 다른 곳에서는
구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고 봤더니 막내가 안보이던데?"
"저도 아까 침실로 가 보았는데 안보이더라고요. 어디 숨어서 또 낮잠이나
자고 있나보죠."
"그럴까? 하긴 소림사의 고수가 지키는 아이인데 별 일 없겠지. 우린 아이들
의 음악과 춤이나 보도록 하자구."
"그래요. 수련이에게 저 춤을 알려 주느라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세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방종대는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내가 이런
자리를 마련하고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뭔가 비싼 것을 바랄 때뿐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한 방종대였다.
"여보, 이번에 서역에 갔다 온 상인이 가지고 온 물건이 하나 있는데 말이죠
---."
방종대의 이마 위로 주르륵 땀방울이 하나 흘러내렸다. 마누라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목숨을 내걸고 비단 길을 통해 서역에 갔다 온 상인이 가지고 온 물
건을 사달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중원에서 나는 물건도 아니고 서
역에서 가지고 온 물건이라면 엄청나게 비쌀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그들 부부가 그런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지붕 위에 누워 있는 노인의
관심은 방수련의 춤에 쏠려 있었다.
"육천의 하나였던 봉황선녀의 후예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단 말인가? 무공은
모두 사라지고 저 춤 하나만 전승된 모양이군--. 혼천문이 만들어지면서 천년
의 세월동안 육천의 후예들은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그 꼬마의 일도 다
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구나---."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던 노인은 바로 다음 순간 꼬마 아이를 죽이려고 기를
쓰던 무리들이 있었다는 것과 마교의 인물들까지 아이를 노리고 있던 아까의
상황을 떠올렸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우중에 포근한 하룻길 이시길요
즐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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