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마지막 전투에서 천하의 제갈량이 연전연패한다. 6번이나 총력을 기울여 기산으로 나아가 화살과 칼과 창을 쏘고 휘두르고 찌르지만, 사마의의 방패를 한번도 뚫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사마의가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단점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갈량은 장점을 한번도 못 써 보고 분사하고 만다. 오장원에서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의 혼을 빼는 것을 보고 독자들은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역시 제갈공명이 최고다!"
바로 이것이다. 맞서 싸우면 사마의는 제갈량한테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다. 그래서 기산에서 굳게 성문을 닫고 제갈량이 제 풀에 지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더군다나 제갈량은 밤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영웅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재주를 가졌지만, 가학적일 정도로 성실하고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세심하여 큰 일에서 작은 일까지 일일이 챙겼다. 좀 못하더라도 아랫사람에게 믿고 맡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 건강이 아주 안 좋았다. 사마의는 이걸 노렸다. 그러면 틀림없이 일찍 죽게 된다. 또한 요새말로 하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그가 죽으면 나라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그러면 절로 1등이 된다. 과연 제갈량은 54세에 죽었고 사마의는 72세에 죽었다. 위나라마저 촉오와 싸우다가 영웅호걸이 하나 둘 사라진다. 삼국이 실컷 싸우다가 쇠약해지자, 그는 비로소 야심을 드러내어 중원을 독차지한다.
[이순신 장군의 지혜]
전쟁이라면 고금을 통틀어 이순신 장군을 능가하는 사람이 없다. 식량이든 군사든 무기든 아무도 도와 주지 않는 상황에서 헐뜯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그는 오로지 혼자 힘으로 묵묵히 준비했고 싸웠다 하면 반드시 이겼다. 그것도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을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하고 실지로 기가 막히게 잘하던 왜군이 웬일인지 이순신 장군만 만나면 힘 한 번 못 쓰고 일방적으로 패했다.
"이순신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라!"
풍신수길은 이렇게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알고 보면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아군의 장점으로 적군의 단점을 쳤기 때문이다. (졸고 '백전백승한 충무공 이순신의 비결' 참조)
이런 이순신 장군도 딱 한 번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철저한 정보 수집에 의해 모든 전투는 그의 작전대로 한 치의 틈도 없이 진행되었는데, 딱 한 번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적의 소굴을 완전 소탕하기 위해 과감히 부산포까지 간 적이 있는데, 이 때 전혀 예상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작전에 의해 사정거리가 긴 포로써 사정거리가 짧은 적의 조총을 상대했기 때문에 아군은 늘 안전지대에 있었는데, 갑자기 조선 수군의 전선(戰船)에 적의 대포가 날아온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임기응변도 대단히 뛰어났다. 사태를 알아차리고 즉시 전군을 뒤로 물러나게 했다. 도망친 것이다. 그러나 진짜 도망친 것은 아니다. 멀찌감치 물러나 밤이 되길 기다렸다.
적들은 이순신 장군의 작전을 알고 배를 정박시켜 놓고 모조리 육지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막강한 조선의 포를 설치하여 조선 수군을 향해 신나게 쏘아댄 것이다! 그 뛰어난 포를 조선은 육전에서 한 번도 제대로 못 써 보고 공포에 질려 달아나기에 급급했는데, 역시 전쟁의 귀신인 왜군은 달라서 그걸 도리어 조선의 수군에 써먹었던 것이다! 흔들리는 배에서보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 육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쏘아대자 그 위력은 엄청났다. 그러나 조선의 수군이 물러나자 그들도 별 수 없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 수군에게 적의 전선이 어디 위치해 있는지, 잘 파악하게 지시하고 밤이 되길 기다렸다. 어두워지면 왜군이 조선의 막강한 대포를 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서 내린 지시였다. 마침내 어둠이 밀려오자 우리 수군은 쏜살같이 내달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적의 전선을 일방적으로 불태워 버렸다. 무려 1백여 척을 불태웠다. 그러나 너무 오래 끌면 도리어 위험에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소탕하지는 못하고 밤을 틈타 재빨리 물러났다.
[북한의 의도대로 흘러간 15년]
북핵이 불거진 지 어느새 15년이다. 미국의 첩보위성이 북한이 수상한 원자로를 건설하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포착한 때는 1982년이었다. 1987년에는 재처리시설의 전형적 형태인 두꺼운 방사능 차폐벽들이 설치되는 것을 포착했다. 1989년 프랑스가 상업위성 SPOT2호로 찍은 영변의 핵 시설 전경을 세계 언론에 흘렸다. 북핵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바로 이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후에 북한은 핵 재처리 시설 두 개를 교묘하게 위장했다. 하나는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나무를 심었고 하나는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그러나 이렇게 숨기는 것도 미국의 첩보 위성이 다 찍었다. 미국 위성의 성능이 그 정도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북한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으며 시치미를 뚝 뗐다.
한국도 이런 사정은 까맣게 몰랐기 때문에 노태우 정부는 이미 1992년 1월에 북한과 함께 '한반도비핵화선언'에 공식서명하고서 자주외교를 내세워 미국을 경원시했다. 보다 못한 미국이 마침내 위성 사진을 한국 정부에 보여주었다. 꼼짝할 수가 없었다. 북한이 한사코 핵 발전소라고 우기는, 서울의 달동네 하나를 밝힐 정도의 5MW(5000KW)에는 발전시설도 송전시설도 전혀 없었다. 핵 폭탄 제조용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곧 죽어도 발전용으로 우기는 그 원자로는 5MW로 알려져 있지만, 실험용으로 계산하면 20MW로 4배나 늘어난다. 1963년 러시아로부터 들여온 실험용원자로 IRT-2000이 7MW인 것을 고려하면, 자체적으로 건설한 영변의 원자로는 그 크기가 무려 3배나 늘어난 것이다. 그 사이 북한의 핵 기술이 괄목할 정도로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첩보위성이 1982년부터 찍은 사진과 IAEA서 핵사찰 결과로 한국이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한반도비핵화'가 아니라 '대한민국비핵화'였다. 민족자주평화외교로 미군이 한국에 배치한 핵은 다 가져가게 만들고, 거기에 더하여 노태우 정부는 자진해서 평화적인 목적의 핵 재처리도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이후로 70년대 80년대 대학의 단골 구호였던 한반도비핵화라는 말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한국은 안 되지만, 북한은 괜찮다는 말이다. 한국의 데모라는 것이 알든 모르든 북한과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비로소 한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8차에 걸친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하고 그 부속합의서도 만들었지만, 그것은 다 북한의 시간 벌기 작전에 지나지 않았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1993년 3월 12일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도 안 되어 북한은 느닷없이 NPT 탈퇴를 선언했다. 북한 특유의 벼랑끝외교가 시작된 것이다. 이 때부터 한국이든 미국이든 일방적으로 북한에 밀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1994년 10월 21일 '미북 제네바합의'에 서명했다. 한국은 1000MW(100만KW)의 경수로 2기 건설에 70% 이상의 비용을 대는 '물주' 역할만 하고 아예 회담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바보도 그런 바보 국가가 없었다. 우리말로 합의라고 했지만, 영어로는 agreement가 아니라 아리송한 agreed framework(합의된 틀)이다. 구속력이 없다는 말이다. 여차하면 안 지켜도 그만이라는 말이다(이용준, [북한핵]). 미국과 북한의 입장만 충실히 반영하여(미국은 한두 개의 핵 보유보다 핵 확산을 훨씬 두려워했고 북한은 1개든 10개든 핵 폭탄을 갖기만 하면 목표의 90%를 달성하는 셈이었지만, 한국으로서는 1개든 100개든 북한이 핵을 갖는 그 자체가 생각만 해도 끔찍한 공포인데, 그런 입장을 조금도 반영하지 못했던 것이다.), '과거 핵'은 불문에 부치고 '미래 핵'만 다룬 이 희한한 합의서는 애초에 지킬 의사가 전혀 없었던 북한에 의해 넝마조각으로 변한다. 미국은 그 사이 해마다 북한 수입 원유의 절반이나 되는 중유 50만 톤을 꼬박꼬박 바치고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도 200만 톤이나 무상으로 주었다. 한국은 열심히 경수로를 지었고. 쌀도, 비료도, 달러도.
2002년 10월 북한은 새로운 카드를 꺼냈다. 방북한 켈리 미 정부 특사에게 핵 농축 프로그램이 있다고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네바 합의서에는 고농축 우라늄(Highly Enriched Uranium)에 대한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전혀 합의서를 깬 게 아니었다. 우라늄 핵 폭탄은 핵실험을 할 것도 없이 100% 터지기 때문에 이건 정말 위험하다.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터뜨린 것이 바로 우라늄탄이었다. 그 후 나가사키에는 플루토늄탄을 떨어뜨렸고.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원심분리기가 최소한 1000개는 있어야 하고 농축 우라늄은 그 양이 워낙 적게 나오기 때문에 공갈협박으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한국 정부는 거의 100% 미국 정부는 50%. 그러나 심각한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원심분리기는 1개에 약 20만 달러. 100개로는 5년간 가동해야 고농축 우라늄 15kg을 얻을 수 있음. 북한은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던 1998년 무렵 원심분리기의 핵심 재료인 알루미늄을 파키스탄으로부터 집중 매입함. 김대중이 전세계를 감쪽같이 속이고 5억 달러를 정상회담 선수금으로 지불한 걸로 보아, 아직 드러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지만, 외환이나 금괴를 쉽게 다룰 수 있었던 정주영은 6년간 공식적으로 주기로 한 9억4천만 달러 외에 금강산 관광 선수금으로 최소한 1억 달러 이상의 현금이나 그에 상당하는 금괴를 김정일에게 바쳤을 것임. 북한이 1998년 7월경부터 원심분리기를 가동한 것으로 추정되니까, 정주영은 김대중이 1997년 12월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대우보다 부채비율이 높았고 지배구조가 5대 재벌 중 가장 전근대적이었던 현대그룹을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살려 내기 위해, 신정부가 틀림없이 희생양을 만들 것으로 보고 사생결단의 절박한 심정으로 선수를 쳐서 재빨리 김정일에게 거액을 바침으로써 확실하게 한국의 절대 권력자로 부상한 김대중의 환심을 샀을 것임. 김대중-김정일-정주영의 이해관계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듯함.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특사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물증을 제시하자 어쩔 수 없이 북한은 큰소리치듯 농축우라늄 보유를 시인한 듯한데, 이 때 이미 북한은 4년간에 걸쳐서 농축우라늄을 최소한 10kg 확보했을 것임. 그 후로 다시 2년이 흘렀으니까, 적어도 15kg의 농축우라늄을 확보하고 이것으로 핵실험할 필요 없이 무조건 터지게 되어 있는 우라늄 핵탄을 작은 규모로 2개 정도 제조했을 것임. 3~4 개로 추정되는 플루토늄 핵탄까지 합하면 현재 북한은 한국 전체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최소 5개 최대 10개의 핵폭탄을 보유한 듯함.)
국가 안보를 설마에 맡긴 나라는 동서를 막론하고 역사상 예외 없이 국가 존망의 위기를 겪었던 것이다. 2004년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는 것과 1999년 북한에서 3개의 '핵 장치'를 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6자 회담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는 무기를 하나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1994년에 잘 난 척하는 클린턴을 농락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 꿴 북한에게는 그게 별로 무섭지 않을 것이다.
[6자 회담을 성공시키려면]
6월말에 제3차 6자 회담이 열린다. 이미 실무회담은 시작되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두고 숨바꼭질이 계속될 것이다. 북한은 도저히 미국이 들어 줄 수 없는 조건을 내걸 것이다. 이미 부시한테 북한 안전보장에 대한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 다음은 평화협정이고 그 다음은 미군 철수이다. 별 수 없이 다음 회담을 기약하고 또 헤어질 것이다. 6·15 선언 이후 북한에 코가 꿰인 한국은 한미공조하는 척하면서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북한을 두둔할 것이다.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이걸 아무도 쓰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장점으로 북한의 단점을 치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필승전략이다. 북핵은 북한의 최대 장점이지만, 북한인권은 북한의 최대 약점이요 우리의 최대 강점이다. 이걸 들고 나오면 북한은 꼼짝 못한다. 이걸로 북핵을 녹여야 한다. 미국이 하는 일마다 딴지를 거는 프랑스가 인류역사상 최악인 북한인권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보다 10배나 더 적극적이다. 중국도 탈북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10만원 정도만 쳐주면 단박 입이 벌어진다. 2008년 북경 올림픽 때문에 중국은 인권 국가라는 말을 꼭 듣고 싶어한다. 티베트는 쉽사리 양보 못하지만, 탈북자는 한국 정부만 적극 나서면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 돈도 벌고 명예도 얻고! 왕 서방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다.
미국은 지금 북한자유법안을 제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반긴다. 미국은 한국이 UN의 대북한인권결의에 2003년 불참하고 2004년 기권한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있다. 한미공조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앞장서서 북한인권을 꺼내 보라. 한국을 보는 눈이 싹 달라질 것이다. 납치자 문제 때문에 북한과 거의 모든 교류를 끊고 있는 일본도 한국정부가 북한인권 문제를 꺼내면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할 것이다. 러시아도 반대할 리 없다. 민주 국가란 말을 엄청 듣고 싶어하니까.
방법은 하나 더 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북한이 일방적으로 깬 것에 근거하여 우리도 핵 보유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IAEA의 사찰만 받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핵 재처리를 평화적 목적으로 쓰기 위해서 늦었지만 시작하겠다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그러면 우라늄을 태우고 난 핵폐기물에 들어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니까, 핵에 관한 과학기술을 완성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대국민 합의도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다.
[안타까움]
노태우 정부는 잘난 척하다가 뒤통수를 맞았고, 김영삼 정부는 어리석어서 돈만 대었고, 김대중 정부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아리송한 태도를 취하면서 북한에게 간을 떼 주었고, 노무현 정부는 민족과 자주와 평화를 내세워 북한에게 쓸개까지 내 주고 있다.
북한인권이라는 기가 막힌 호재를 전세계가 한 마음으로 2년 연속 안겨 주는데도, 편지 한 통 오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김정일에게 달러 바치는 것을 남북화해라고 우기며 한사코 거절하고 있다. 북한인권을 6자 회담에 써먹을 리가 없다. 핵 재처리? 그것도 생각할 리가 없다. 그러면 당장 전쟁이 날까 봐 벌벌 떤다. 전쟁이 싫으면 그에 대비하면 되는데, 스스로 무장해제하고 있다. 그게 바로 전쟁의 지름길인 줄을 전혀 모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