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인천에서 발행되는 계간문예지 '학산문학'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습니다.
이유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런데....언제부터인가 '학산문학'이 변했다는 것이 느껴지더군요.
이성률 작가가 편집주간을 맡으면서부터인가?
정확하진 않지만...
2023년 가을호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잡지를 이렇게 재미있게 읽었다니오!
박경리 작가론도 좋았고,
소중애 선생님의 동화 '나의 꼬마 할아버지'도 좋았고
구경분 선생님의 '아름다운 동시로 김구연 선생님을 추억합니다'도 좋았습니다.
<이 계절의 시인 공광규> 편도 참 좋았습니다.
공광규 시인이 2023년 6월 24일 '공산성 달밤 이야기 & 콘서트'에서 강연한 내용이 있었는데 이야기가 쉽고 다정해서 읽기 참 편했습니다.
공광규 시인의 신작 시도 있었지만, 또 다른 좋은 시도 많았지만
사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시 두 편을 소개해봅니다.
얼굴 반찬
옛날 밥상머리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있었고
어머니 아버지 얼굴과
형과 동생과 누나의 얼굴이 맛있게 놓여있었습니다
가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
먼 친척들이 와서
밥상머리에 간식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외지에 나가 사는
고모와 삼촌이 외식처럼 앉아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얼굴들이 풀잎 반찬과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 새벽 밥상머리에는
고기반찬이 가득한 늦은 저녁 밥상머리에는
아들도 딸도 아내도 없습니다
모두 밥을 사료처럼 퍼 넣고
직장으로 학교로 동창회로 나간 것입니다
밥상머리에 얼굴 반찬이 없으니
인생에 재미라는 영양가가 없습니다
담장을 허물다
고향에 돌아와 오래된 담장을 허물었다
기울어진 담을 무너뜨리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떼어냈다
담장 없는 집이 되었다
눈이 시원해졌다
우선 텃밭 육백 평이 정원으로 들어오고
텃밭 아래 사는 백 살 된 느티나무가 아래 둥치째 들어왔다
느티나무가 그늘 수십 평과 까지집 세 채를 가지고 들어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벌레와 새 소리가 들어오고
잎사귀들이 사귀는 소리가 어머니 무릎에서 듣던 마른 귀지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하루 낮에는 노루가
이틀 저녁엔 멧돼지가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겨울에는 토끼가 먹이를 구하러 내려와 방콩 같은 똥을 싸고 갈 것이다
풍년초꽃이 하얗게 덮인 언덕의 과수원과 연못도 들어왔는데
연못에 담긴 연꽃과 구름과 해와 별들이 내 소유라는 생각에 뿌듯하였다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금강으로 흘러가는 냇물과
냇물이 좌우로 거느린 논 수십만 마지기와
들판을 가로지르는 외산면 무량사로 가는 국도와
국도를 기어 나가는 하루 수백 대의 자동차가 들어왔다
사방 푸른 빛이 흘러내리는 월산과 청태산까지 내 소유가 되었다
마루에 올라서면 보령 땅에서 솟아오른 오서산 봉우리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나중에 보령의 영주와 막걸리 마시며 소유권을 다투어볼 참이다
오서산을 내놓기 싫으면 딸이라도 내놓으라고 협박할 생각이다
그것도 안 들어주면 하늘에 울타리를 쳐서
보령 쪽으로 흘러가는 구름과 해와 달과 별과 은하수를 멈추게 할 것이다
공시가격 구백만 원짜리 기울어가는 시골 흙집 담장으로 허물고 나서
나는 큰 고을 영주가 되었다
첫댓글 잡지 표지의 수록작가를 훓어보면서 대충 짐작~.
동화동시의 경우, 예전에는 인천 위주 작가였는데 지금은 전국 작가로 확대되었어요.
사람들이 참 부지런히 열심히 산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시인이 시를 시원시원하게 쓰시네요^^
잘 쓰는 시인 중의 한 사람.
@바람숲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