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시드니 캠시에는 박씨 아저씨가 있다. 난 이 아저씨 집에 두
달 정도 머무르면서 일을 소개받아 주로 막일을 하였다.
페인트칠과 건축장의 청소, 사무실 청소, 땅파기, 해머로 철거하기,
잔디깍기, 한국인 골프장에서 공줍기, 지붕철거를 위한 아시바 쌓기,
가정집 수리의 디모도, 미장일 디모도도 해보았고 그전엔 포도밭에서
포도도 따 보았다.
일이 없는 날은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가거나 수영을 하기도 했고, 캠시 시내에 있는 종로서적에 들러 책을 읽거나 한국인 미시 아줌마들과 한담을 나누고, 타운 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5월에 있을 시드니 연고전에 대비하여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타고 아침햇살을 받으며 산책과 조깅을 나갔는데, 이때
담배도 끊었다.
일을 소개받기 위해 한국인을 만나는 날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다음날 다시 일을 오라는 연락이 오지 않으므로 반드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날 무리한 일을 했으면 반드시 하루는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사람을 만나야 일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여기 살 것도 아닌데 노가다 일이면 어떤가? 한국에서는 노가다를 못 한다고 쫓겨나는 경우도 많은데, 이곳에서도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껌을 씹어서도 않되는 일이었는데, 빌더는 삼사출신 장교였다.
집짓기를 혼자서 다 해치우는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좀 뒤틀려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혼자서 흙을 퍼다가 바닥을 메꾸는 일을 했는데 단 한번의 헛삽질에도 지적을 받는다.
결국, 그는 오후 3시쯤에 80불을 주고 그만 하라고 했다. 욕만 실컷 듣고 간다고 하니 자기를 나무란다. 그의 마누라가 이스트우드 역까지
태워 주어 미련없이 집으로 왔다.
박씨 아저씨에게 늦은 밤에 찾아가 이야기하니 100불을 다 주지 않고,
일을 그만 두게한 것은 그쪽 잘못이라면서 내게 수고했다고 한다. 박씨 아저씨가 소개해 준 일이었기 때문에 기대를 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나도 기분이 나빴다.
이제 막 집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기간 일자리가 보장되는 기회였는데 아쉽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지만 어떤 때는 단 한 시간 일하고, 50불을 받고 생선초밥을 먹고 온 일도 있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말이다. 어떨 때는 2시간
정도 콩을 날라주고 30불을 받는 경우도 있고, 안전장구도 없이 아시바위에 올라가 무거운 쇳덩이를 운반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칠수와 만수처럼 한국인 데이빗과 나는 이 작업을 했는데, 그래도 호흡이 잘맞아 무사히 설치를 끝냈을 때 설치미술을 끝낸 미술가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지상 8m 위에서 무거운 아시바를 들어 올릴 때는
정말 아찔한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홀가분 할 수 없다.
날품팔이처럼 자유롭고 재밌는 일이 없다.
하루 일해주고 하기 싫으면 일을 안 나가면 되고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 호주의 태양아래에서 땀을 흘리고 돈도 버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어딨는가? 그리고 일이 끝나면 바로 100불을 주니
이 돈을 가지고 슈퍼에 들러 먹고싶은 생선과 고기와 야채를 사다. 집에서 손수 해먹으면 5분도 안되어 소화가 되 버린다.
일주일치 집세가 60불이니 200불이면 일주일 생활이 가능하다. 나는
2-3일 정도 일하고, 4일은 개인적인 일을 했다. 박씨 아저씨는 마당에서 식사를 하고 잠도 마당에서 자는데 매일 일을 나가는 것 같았다.
가끔 소간을 사와서 참기름에 찍어 먹고는 할러데이 5미리를 피우는데, 나이가 60이지만 나보다 더 근력이 좋다.
나는 아저씨에게 일을 소개해 주어서 고맙다는 표시로 담배와 고추장을 사다 드렸고, 아저씨는 매일 다른 일을 소개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