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18일 연중2주간 월요일
<신랑이 혼인 잔치 손님들과 함께 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가납(嘉納)하실 단식과 재
내가 어렸을 때는 정말 먹고 살기 힘들고 어려울 때였습니다.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양식이 귀해 굶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농사법을 활용한다 해도 그 당시 한마지기(200평)에서 양석(兩淅 : 쌀 두가마니)이 나오면 아주 농사를 잘 지었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잣집의 농지를 빌려서 한해 정성껏 농사를 지어주고 가을에 타작해서 반은 농지의 주인에게 돌려주고 나머지 반을 양식으로 가져옵니다. 소작인들은 그래도 부잣집의 일을 해주고 먹고 살만 하였으며 소작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소작도 못하였으니 정말 먹고 사는 일은 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는 것이 죽지 못해서 산다.’라는 말도 나오고, ‘사람이 왜 사는가?’라는 질문에 ‘먹기 위해서 산다.’라고 답변하고, ‘잘 먹은 귀신 때깔도 좋다.’, ‘먹는 게 남는 것이라.’거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말이 아마 그래서 생겨난 것 같습니다.
충청도에서 아침 인사를 ‘진지 잡수셨슈?’라고 하는데 이는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라는 말입니다. 하루 세끼 중 굶지 않아야 하는 끼니는 아침인데 그 아침 식사를 어떻게 하셨는지 묻는 인사여서 우리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표준말을 배우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안녕하십니까?’로 바꾸어 인사를 하는데 요즘은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는데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안녕하세요?’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사처럼 느껴져서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변화무쌍해서 그렇게 인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처럼 서로 만나서 나누는 인사가 식사 여부를 묻는 것처럼 어려서 밥을 굶는 것은 예삿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친구들의 엄마가 밥 먹으라는 소리가 들리면 게임에서 이기고 있고 재미있어도 쏜살같이 뛰어갑니다. 어느 날에는 엄마가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자기 집 굴뚝에서 연기가 오르지 않으면 그날 저녁은 없는 것입니다. 몇몇 아이들은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다가 시름없이 발길을 돌리며 돌아가는 발걸음이 축 쳐지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나도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점심시간은 밖에서 빙빙 돌아야 했을 만큼 하루에 세끼 밥을 찾아서 먹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식사 중에 밥상 앞에서 수저를 놓았다가는 천벌을 받을 짓이며, 지옥에 떨어질 빌미가 되는 일이고, 조상의 은덕을 영영 받을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잘못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날은 밥을 굶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부모님으로부터 꾸중을 같이 듣는 일이기에 가장 심한 욕은 ‘밥 빌어먹을 놈’이라는 말로 어려서 최고의 벌은 밥을 굶기는 것이었습니다. “넌 오늘 할일도 하지 않았으니 밥 먹을 생각도 하지마라!”하고 말씀하시면 무릎을 꿇고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자주 그렇게 화를 내고 밥상 앞에서 수저를 내동댕이치는 행동은 정말 식사의 소중함이나 밥을 굶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밥상 앞에서는 절대로 꾸짖지 말라고 옛 어른들은 가르쳤습니다. ‘개도 밥 먹을 때는 나무라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꾸중을 듣고 울면서도 밥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던 어리고 젊은 시절을 생각해서 나는 배고픔과 단식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고 있답니다.
우리가 어떤 뜻이나 일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밥을 굶고 항의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단식농성은 자신들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고 하는 일종의 시위행위입니다. 간디는 영국정부와 대항하면서 또 동족의 화합을 위해서 단식을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의 단식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뚜렷한 명분이 없는 단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얼굴을 내기 위한 단식은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의미 없는 단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단순한 율법에 의한 가식적인 단식은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재(齋)가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재를 지키는 때는 하느님을 빼앗겼을 때 하느님을 되찾게 해달라고 간절히 청원하기 위해서 단식한다면 명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내 탓으로 잃었을 때 하느님을 찾기 위해서 헤매며 단식한다면 하느님께서 받아주실 것이고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단식하며 달음질쳐가며 가야 하기 때문에 단식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진심으로 용서를 청할 때, 단식과 같은 재를 지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은 하느님께서 가납(嘉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신랑으로 오시어 혼인잔치를 벌리고 있는데, 그 잔치에 제자들과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단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단식의 재를 받으실 분이 단식이 소용이 없다고 하는데 사실 이를 반증할 근거는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단식하거나 재를 지킬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는 철저하게 단식하고, 재를 지키면서 재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가납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일 년에 두 번 공식적으로 교회에서 대재를 지키도록 권장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잘 지키지 못하고 소재도 잘 지키지 못하는데 바리사이들처럼 형식적인 재를 지키는 데에 내 마음을 두고 있지 않은지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끼를 굶는 단식보다는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5,1-10
1 모든 대사제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뽑혀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지정된 사람입니다.
곧 죄 때문에 예물과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2 그는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할 수 있습니다.
3 그리고 연약한 탓에 백성의 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죄 때문에도 제물을 바쳐야 합니다.
4 이 영예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아 얻는 것입니다.
5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도 대사제가 되는 영광을 스스로 차지하신 것이 아니라,
그분께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렇게 해 주신 것입니다.
6 또 다른 곳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10 하느님에게서 멜키체덱과 같은 대사제로 임명되셨습니다.
축일:1월18일(1월26일) 헝가리의 성녀 마르가리타 동정
St. Margaret of Hungary
Sta. Margarita de Hungria
Santa Margherita d’Ungheria Principessa e religiosa
Born:1242
Died:18 January 1271 at Budapest, Hungary;
remains given to the Poor Clares at Pozsony when the Dominican Order was dissolved;
most relics were destroyed in 1789, but portions still preserved at Gran, Gyor, Pannonhalma
Beatified:28 July 1789
Canonized:1943 by Pope Pius XII
마르가리따는 조국 헝가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만일 전쟁이 승리한다면 어린 마르가리따를 하느님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 은혜는 실제적으로 허락되었기에, 세 살 난 어린 딸을 베스프럼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원에 맡기게 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국왕 벨라 4세와 마리아 라스카리스였다. 그녀는 12세 때에 첫 서약을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서약할 자격이 미달된다는 내용을 여러 가지 증거를 들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즉 정치적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인 마르가리따는 수녀원을 떠나기 보다는 코와 입술을 자르라고 항변하여, 자신의 자발적인 의사임을 입증하였다.
그 후 하느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과 자기 극기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드러났다.
그녀는 가끔 온 밤을 지새우며 성체 앞에서 기도하였고, 기도의 효력을 확신하고 전능자 하느님께 간구하였다. 그녀는 이런 말을 하였다 :
"갑자기 비를 내려 달라고 기도할 순 없지만, 어쨌든 하느님께 청하면 무엇이든지 다 받을 수 있다."
사실, 그녀의 이 말은 입증된 적이 있는데, 한번은 2명의 수녀들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더 있다가 가라고 했지만, 즉시 떠나려 했을 때, 비가 와서 그곳에 더 머물렀다고 한다. 또한 그녀는 자주 탈혼하였고, 기적이 많았다. 또 사순절이 끝날 무렵이 되면, 그녀는 잠을 거의 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식으로 인하여 측은한 생각마저 들 정도까지 되곤 하였다. “성 금요일은 하루 중에서 가장 짧은 날이다"고 한 그녀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오늘 축일을 맞는 마르가리따 자매님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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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단식하며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전혀 그 의미에 침잠해 보지 못하고 한 생을 살아온 불쌍한 영혼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주님, 수산나의 주님 사랑을 깊이 받으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