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17) ///////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 최은우
숲에 살롱 / 최은우
자꾸 이야기하다 보니 말이 생깁니다 기분이 달라지고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기분 탓인가요? 그러자고 한 건 아닌데 수다장이가 돼서 오물조물 오래 씹어 쉴 새 없이 꺼냈어요 이야기라면 해도 해도 할 게 많아요 귀를 여는 자가 없다면 저 무성한 나뭇잎들이 있잖아요 이리 와서 들어봐요 늘 같은 이야기지만 오늘은 하나 더 추가시킬 예정이에요 극적인 요소는 늘 있어요 마녀들이 밤에 모여 항아리에 대고 떠들던 주문 같은 것도 있다니까요 인생은 재미 아니겠어요? 문밖 무성한 화분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이야길 엿듣고 흉내 내느라 줄거리가 아니 줄기가 생겨서 풍성해졌어요 염치도 없이 나무 옆에 나무를 낳네요 자꾸만 나무들이 생기는 오후에 하나 더 있다고 하나 더 없다고 나무가 나무 아닌 것은 아니겠지요 비 오는 오후에도 어김없이 이야기에 중독된 여자들이 똑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감수분열하듯 옆에서 옆으로 다음 손님을 부르네요
여자는 거미 다리 같은 손가락으로 사뿐사뿐 머리카락을 잘라요 몸이 생기기 전부터 손가락만 있었던 것처럼 손은 여자를 떠나 가위를 들고 허공에서 춤을 춰요 원피스에서 요란하게 싸우고 있던 꽃무늬들이 살짝 얼굴을 빼자 잎사귀들이 떨어져요 떨어져서 허공으로 떠다니는 꽃들. 차를 마시던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아요 알지 못해요 가위질 소리에 맞춰 간간이 웃음소리를 끼워 넣을 뿐. 유리문이 밀릴 때마다 들어오세요 붙여진 팻말에서 글자들이 살짝 떨어졌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서죠 비밀과 상처는 오늘은 괜찮고 내일은 거대해지다 모레면 잊고 글피엔 주저앉게 만드니까요 쉽게 묻는 게 좋을까요 쉽게 말하는 게 좋을까요 수다장이들이 수다스럽게 찻잔을 부딪치며 그런 건 관심 없다고 하네요
[당선소감] ‘모든 봄은 언제나 첫 번째였다’는 걸 이젠 압니다
이 겨울이 지나면 또 봄이 올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첫 번째 봄이고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때마다 똑같이 피어나는 꽃들을 기를 쓰며 보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꽃들 앞에서 같은 포즈를 취하며 그곳에 그날,
그 시각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을 찍는지를 말이지요.
아주 오랜 시간 낙방하고 이제 신춘문예는 봄이 오기 전 우체국에 들르는 작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 많은 연례행사를 치르며 나이를 먹고 왜 봄이 오면 사람들이 꽃을 보러 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모든 봄은 언제나 첫 번째였고 짧은 진통으로 낳은 둘째도 결국은 내 처음의 아이였다는 것을요.
어느 순간 핸드폰 카메라 앨범엔 꼭 찍혀야 할 단풍이 있고,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길고양이가 있으며,
재개발을 기다리는 골목의 장미여관이 가지 말라며 제 발을 붙들었습니다.
그 골목을 찍고 있는 순간도 다시 오지 않을 그 하루의 처음이었다는 것을요.
시와 함께 한 살 더 나이 먹을 수 있게 해주신 부산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에서 나의 아픈 손을 잡아 주어 나의 한쪽,
나의 시가 되어가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심사평] 읽고 있어도, 읽고 나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시
506명이 보내온 1903편의 작품에 깃들어 있는 무게감.
당선작을 결정하는 일은 그것을 이겨내는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눈길을 끈 것은
‘모두의 잠깐’
‘뱉은 씨앗’
‘숲에 살롱’ 세 편이었다.
‘모두의 잠깐’은 잘 쓴 시다.
‘우리는 중요한 일일수록/일의 틈틈마다 그 잠깐을 배치시켜 놓아요/하루가 연속성의 과정이라면/
하루엔 얼마나 많은, 다양한 잠깐들이 있을까요’라는 진단은
휴식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마땅하고 옳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진단의 힘은 약해지고,
잠깐의 목록들을 호출, 나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뱉은 씨앗’은 ‘오물거리는 입속에서 톡톡 내뱉어지는/수박씨들, 저것은 아마도 최초의 농법’이자
‘직파법’이라는 발상이 뛰어났다.
그러나 이 발상이 인간에게로 향하는 심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시를 닫아버린 것이 못내 아쉬웠다.
‘숲에 살롱’은 재미있다.
읽고 있어도, 읽고 나서도,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어느 동네나 있을 법한 살롱(미장원)과 어느 동네나 떠돌만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요리조리 이야기의 잎사귀들, 시의 잎사귀들을 갖다 붙였다.
시가 독자를 억압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대면이 어려운 이 시대에, 이런 재미난 이야기의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첨언 한 가지.
이 시가 만약 잎사귀가 아니고 꽃을 이야기했다면 얼마나 끔찍했을까.
아무쪼록 좋은 시는 꽃이 아니라 잎사귀를 보기 좋게 매다는 일이다.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전동균·유홍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