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대학 '형법 각론 특강'을 오전 10시부터 듣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특강은 앳되 보이는 여자 변호사로 또박또박 강의에 환한 미소가 매력적이다.
같은 반 급우들과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는 마로니에 공원 산책을 나간다.
여기가 내가 66년 의과대학 예과 때부터 2년간 공부를 한 곳이고
물론 청량리 예과건물에서 진행된 수업도 일부 있었지만.
그리고 의과대학 본과는 건너편의 의대 건물과 그 위의 병원에서 이었다.
개천이 복개가 되기전 다리 이름이 '미라보 다리'
봄이면 개나리가 뒤덮었었다.
오늘 점심을 먹은 오가네.
본과 다닐 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이 골목에서 호빵을 사먹곤하였다.
순박하게 생긴 아줌마에게'하루에 몇개나 만들어 팔아요? 6백에서 7백개 란다.
어림 짐작으로 웬간한 월급쟁이 수입보다 더 번다.
일요일은 꼬박 꼬박 교회에 나가는 분이다.
내 나이 이십대 초반에 40대 후반이었으니 지금쯤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시겠지.
그 시절에는 동숭동 캠퍼스 부근에 다방이 두어개, 대학다방과 학림, 그리고 무었이었지?.
주변에 논문인쇄해주는 공판인쇄소.
서점이 불어로 별인 '에또알' 중국집 진아춘, 혜화동 쪽으로 쌍과부 막걸리집,
혜명 당구장, 나이드신 주인 아줌마를 몇년전 내과 외래에서 만나 적도 있었다.
옛 문리대와 대학본부로가는 길 옆,
그러니까 법대 앞에는 작은 관목과 화초를 심어 잘 꾸며 놓았다.
오랜 연륜을 겪어 온 프라타나스도 새로와 보인다.
법대 건물 옆에는 이런 공원도.
설치된 조각품은 아무리 보아도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네.
여기가 대학원 자리가 아니었던가?
입구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표석.
학교 뒤로 나오니까 현대적인 아름다운 건물이.
사실 이곳은 서울대학 교수 관사가 있었고
나도 여기서 하숙한 적이 있었다.
길건너에는 동숭장이라는 양옥건물이 있어 당시 유행하던 청춘물의 단골 무대가 되었었고
아마도 우석대학 김모씨 소유이었다가 팔려서 음식점으로 변하였었다.
그때 고기 굽는 냄새가 올라가는 곳은 지금은 철거되어 낙산공원으로 변한 연탄불 때는 십여평짜리 서민 아파트.
이 주민들에게는 냄비를 가져오면 싼 값으로 설렁탕을 제공하여 민원을 막은 적도 있었지요.
곧 끝날 가을을 아쉬워하는 일년생 화초들.
이런 동상들을 설치하는 것도 하나의 역사를 공부시키는 법.
문리대 본관은 철거가 되어 새 건물로 지어졌다.
이곳에서 황산덕교수의 법학총론을 들은지가 벌써 사십여년이 지났다.
고목이 된 마로니에 나무.
10월 20일 서울대학 동창의 날에서 만난 법대의 최교수가 하는 말.
마로니에를 옮겨 오지 않은 게 좋았다.
왜냐하면 새로 심은 마로니에 나무들은 학생들 데모에 쏜 최루탄연기로 모두 죽었다.
동숭동에 두었으니 '마로니에'공원이 되지 않았나.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자세히 살펴본다.
여기는 우리 예과 2학년 때 강의를 받던 당시로는 최신식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서 커다란 비누방울을 만드는 분.
이 주위에 관악 캠퍼스로 옮겨간 4.19기념탑이 있지 않았나?
90년에 이집트 룩소의 기원전 15세기에 지어 진 카르낙 대신전에서
높이가 33미터나 되는 열주가 늘어선 걸보고 놀래 자빠졌다.
4.19기념탑은 거기에 비하면 연필심 정도.
그 주변에 수북히 떨어진 은행낙엽을 깔고 앉아 오징어에 소주 먹던 기억.
나는 왜 항상 먹는 것만 기억을 할까?
뒤로는 운동장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공연장, 술집, 음식점으로 도배를 해 놓았다.
야외 공연장에는 젊은 듀엣이 노래를 부르고
그 옆에 소란스러워 구경하였더니 'Black Gospel'이란 독립영화선전이다.
다시 강의실로 돌아온다.
고목 그늘아래는 맥문동이 자라고 있다.
여름내내 꽃을 피우던 배롱 나무도 단풍이.
오늘 강의를 들은 역사관, 예전에는 국립공업연구소 건물이었다.
잠시간의 산책이 옛일을 일깨워 준다.
첫댓글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뇌파가 많이 생성된다고 하는데 왜 뫃여 앉으면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대로 잠시 돌아가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조카 사위 하나가 방송통신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왜 거처를 그곳 인근에 마련했는지 알게 되었다.
어느 교수이지요?
Charles Yoon, 재미 동포로 Wisconsin 출신
방송통신대학 강의는 나도 가끔 보는데, 거기 있었네요....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그 곳을 세밀하게 기억하시는지 .... 놀랍습니다.
내가 강조하는 말은 학문에 도움되지 않고 살림에 도움되지 않은 것만 기억한다는 점..
아스라히 떠오르는 젊은 날의 기억
아스라히 떠오르는 젊은 날의 기억들~~~~.
무엇인가 채위지지 못해 방황했던 아쉽기도한 시절이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