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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막 11:22)
<서론>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서 입술로 고백하고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반드시 살아계신 것하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므로 하나님이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께 소원을 해도 될까 말까 한데 하나님께서 직접 나 살아있는 것을 믿어라. 나 찾으면 상 받는 줄 믿으라. 누가 안 믿겠어요? 저도 오늘 상 받기 위해서 저도 오늘 이 자리에 계신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에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본론>
1. 믿음의 요소
우리가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몇 가지 지켜야할 요소가 있습니다. 전부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데 뭘 믿는 것입니까? 네 믿음을 좀 보여다고 하면 참 난처하지요. 믿음을 보여줄 수 없으니까. 여러분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을 말하지 세상을 믿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 훌륭한 대통령이 계셔도 우리가 대통령을 위해서 목숨을 걸 수가 없고 부모님이 계셔도 전력을 다해서 부모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도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심치 않고 믿을 수 있는 조건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왜 그처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어야 믿을 수 있지 못하면 실력이 모자르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고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2절로 23절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좀처럼 마음에 확실히 믿을 자신이 없지요. 너무 위대한 일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라고 말했는데 나보고 너는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은 좀 힘들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좋겠는데 너나 다른 사람이나 누구든지 똑같이 이 산더러 들리어 저 바다에 던져지라 하고 그리고 자기 말한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 믿음이 얼마나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힘을 믿음 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삶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시편 11편 4절에 보면 “야훼께서는 그의 성전에 계시고 야훼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의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의 안목이 그들을 감찰하시도다”라고 말씀하셔서 주님이 항상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인 것을 우리가 늘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 무소불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막에서 길을 만드시고 홍해도 가르시고 요단강도 말씀으로 갈라놓으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여시면 막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막아 놓으면 열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37절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서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을 생활에 사용하면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으로 항상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고 그 모든 일들이 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봄의 법칙을 따라서 우리가 매일같이 소원하는 것을 바라보고 그다음 그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줄 믿고 입술로 고백을 하고 흥얼거리고 다니면 그 일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생애 속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생각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분, 그렇게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하나님께서는 나를 뜨겁게 사랑하시고 내가 기도하면 좋은 일을 이뤄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능치 못하신 것을 알고 하나님이 나를 뜨겁게 사랑하사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시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면 믿을 수가 있어요.
스바냐 3장 17절에 보면 “너의 하나님 야훼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전능자, 무엇이든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능자라는 것을 알고 그 다음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한다.’ 이 말의 의미를 우리가 전적으로 받아 주기가 힘듭니다. 하나님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여러분, 그런 경험이 여러분 일생에 한두 번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제가 어릴 때 어머니 손잡고 우리 외가집에 가는데 외가집에 외할머니가 뛰어 나와서 나를 끌어안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나를 안고 막 흔들면서 ‘아이고~ 용기야 잘 왔다. 많이 컸구나!’ 그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외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언제나 기뻤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이 여러분 생애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너무 좋아해서 기쁨을 이기지 못하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한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체면도 차라지 아니하시고 이렇게 하시느냐. 이렇게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성전에 함께 모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십니다. 여러분 보시고 하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시고 ‘그래, 날 찾아 왔구나. 날 보러 왔구나. 잘 왔다. 잘 왔어.’ 잠잠히 사랑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런 말씀을 우리가 조합해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위대한 일을 행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믿을 수 있고 우리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발을 굴리고 기뻐 외치시는 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실 줄 안즉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알아보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 입의 말 믿지 말라. 알아봐~ 흉악한 사람이다. 못 믿는다. 믿음이란 앎으로 생기고 모르면 못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이웃을 잘 알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심스러우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알고 믿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오늘 우리 하나님을 알고 있으므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2.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
그런데 우리가 또 하나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담이 있으면 기도가 응답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헐어버려야 돼요.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여러분과 나 사이에 있는 담을 헐어버리기를 스스로 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허물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될 계명을 주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계명은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주신 것이 이 계명이지만 우리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우리도 스스로 마음속에 세워놓고 비춰 보아서 십계명에 어긋나는 것을 늘 회개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방향을 제시해 주는 하나님의 계명이기 때문에 쓸데없는 것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쓸데있는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잘못한 것을 깨달아 알려면 십계명을 앞에 두고 생각을 하면 쉽게 우리 잘못을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여러분은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이 좋게 지내려면 계명을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야 되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당신 계명 지켜야 구원 받소.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계명은 우리가 행동이 하나님 뜻을 거스리느냐. 받아들이냐를 보여주는 계명이지 구원을 받는 조건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계명이 10개가 있고 그 계명을 우리가 살펴보아서 하나님과 어긋나는 것은 그 자리에서 회개해 버리면 돼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실(요일 1:9)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쉽게 예수님의 보혈로 청산해 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계명은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 우리가 다른 신들을 주면 그를 치우고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상에 절하지 말라.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넷째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이것 다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십계명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가 그 담을 스스로 만드는 것인데 어렵지가 않아요. 다른 신을 여러분 섬기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잖아요. 다른 신 섬기고 여기 와서 하나님 섬기는 분 없잖아요. 우상을 일부러 만들어 놓고 절하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의 이름을 장난삼아 사용하는 사람은 가끔씩 있을지 몰라도 우리 전체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라. 유대인들은 토요일날 안식을 지키나 우리는 예수님이 주일날 세상을 떴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토요일날 안식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주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나와 이웃과의 관계 계명을 우리가 알고 지키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 공경은 다 하지요. 살아계실 때 더 공경하면 좋겠지만 세상 뜨고 난 다음에 더 공경이 되는 것입니다. 어버이 섬기기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 섬기는 것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아무리 울고 통곡을 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말라 말라 하는데 우리가 이런 것들은 마음에 곧장 회개하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여러분을 지옥에 보내려고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긋남이 없이 깨끗하고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이러므로 구원은 예수님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절대로 타협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지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 우리 행위를 정결케 하는 것이 십계명이기 때문에 십계명은 여러분의 발을 깨끗이 해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 혹은 말씀 읽는 중에 성령이 마음속에 가책을 주십니다. 성경께서 이것은 버려라. 이 길로 가지 마라. 내가 지시하는 길로 가라. 여러 가지 여러분에게 고요하고 잠잠하게 성령께서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 성령의 꾸짖으시는 말씀은 그 자리에서 고백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응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응답을 주시고자 해도 하나님이 좋지 않게 여기시는 일이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혀 있으면 하나님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대로 회개하면 씻으시고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 이상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를 원하시고 우리는 기도응답을 좀 많이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수천 번 수만 번이라도 기도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 응답을 주시므로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세상에 증명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응답은 내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참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응답을 많이 받게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고 성경에 믿음이 응답받기 위해서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만사 제켜 놓고 하나님 먼저 모시고 하나님 기뻐하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다른 좋아하는 것을 비교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제켜 놓고 그것을 먼저 하면 하나님이 기뻐 안 하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친구가 있는데 친구가 모든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좋아해서 나와 같이 일을 도모하기를 원하시면 그 친구 정말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가 있는데 자기 좋아하는 일 다 먼저 해놓고 난 다음에 쓸데없는 시간에 날 기뻐하고 받아주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마음에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제가 50년 목회해 오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는데 목사님 중에 아주 우리가 한때는 좋았던 사이를 가졌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도 밤중에라도 내가 오라고 하면 뛰어오고 나도 밤중에라도 나를 보고 와달라고 하면 옷 갈아입고 그 집으로 갑니다. 그렇게 아주 다정한 친구인데 세월이 흘러가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그 사람이 나를 멀리하는 것 같고 나도 그 사람을 멀리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점심 먹자고 전화를 해놓으면 그 점심 먹는 것은 한 달이나 두 달이나 지나야 될까 말까 합니다. 자기 좋은 일 한다고 시간 안 내놓거든요. 며칠 전에도 나에게 조목사, 우리 모여서 한번 점심 같이 하자. 내가 같이하지. 시간 내줘. 내가 알아볼게. 알아보기는 뭘 알아봐요. 지금 나 안 알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친구보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그 친구는 내 좋은 친구들 다 만나보고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만나볼 것입니다. 박수쳤다고 그 사람 나에게 화낼지 모르니까 박수치지 마십시오. 먼저 하고 나중한다. 좋은 것을 먼저하고 좋지 않은 것을 나중에 하는 것은 우리 생활에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하나님을 먼저 좋아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두 번째로 제켜 놓고 신앙생활하는 일이 없도록 제가 간절히 부탁합니다. 우리가 성수주일하기가 굉장히 힘든 것은 사실이에요.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특별히 말하든지 심방가자고 하든지 다른 어떤 쇼핑을 가자고 하든지. 그 날이 주일입니다. 야~ 오늘 주일이기 때문에 나는 못 간다. 예배드리고 가야 된다 하면 언제 그렇게 깊이 신앙이 들어왔노? 친구도 모르냐? 두고 보자! 아이고 알아줘~ 이해해줘~ 나 이해 못해! 그러면 성수주일을 포기하고 그 친구하고 같이 갈 때가 가끔 있어요. 저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과 다르잖아요. 나는 목사고 여러분은 평신도니까. 여러분은 그 친구를 따라가는 친구가 많이 있어요. 그냥 가면 좋은데 나에게 허락받기 위해서 전화를 내게 합니다. 오늘 친구가 꼭 나가자고 하는데 목사님 갔다 오겠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하나님께 용서 빌어야지 왜 내게 용서를 빕니까? 그러면 제가 고약한 소리만 좀하고 말지요. 성수주일 안 하고 답답할 때는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고 잘된다 잘돼! 그래도 한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내가 눈 감는다고 좋지는 않지요.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면 용서는 해주시겠지만 그 일을 자주하면 하나님 나중에는 용서도 안 해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대단히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우리가 착실히 드리므로 하나님을 중요시 여기는 것을 온천하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우리가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더구나 오늘 성찬예배 드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깨어진 몸을 먹고 흘리신 피를 마시고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들어간다는 이 예배는 정말 중요한 의식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로 24절에 보면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우리 예배를 굉장히 기뻐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드리면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대만에 가서 성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만 내가 알지 못하는 오랜 옛날에 나의 집회에 참석했다가 병이 나은 대만 사람들 여러명이 제게 와서 인사를 하는데 나는 본적이 없어요. 기억이 안나요. 그러나 그분들은 내가 싱가폴에서 집회할 때 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집회할 때 왔다. 그런 먼 곳에 기도를 받으러 와서 기도를 받고 병이 깨끗이 낫고 건강하게 되어서 낫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얼마나 주님을 기뻐하는지 몰라요. 그러한 사람들을 볼 때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주님께 받은 은혜를 기뻐하고 감사드리면 얼마나 즐거워하실까 마음에 감격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정말 인산인해라고 하더니만 인산인해로 사람들이 모여 왔어요. 주님을 사랑해서... 그래서 말씀을 증거하는데 내가 평안한 것은 주지사에게 물어봤습니다. 나 한시간 이상해도 괜찮습니까?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설교해도 좋습니다. 그러니까 옛날로 돌아가면 마음에 평안하게 증거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와서 말하기를 원로목사님이 아니고 원래목사님이다. 여기서는 원로목사님으로 하지 말고 원래하던 식으로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대로 해줬지요. 원래 하던 대로 오래하고 전부 기도하고 나은 사람들 앞에 불러다가 간증을 시키고 원래대로 하니까 참 재미있고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예배시간에는 원래대로 안할 것이니까 조심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귀중하게 여긴 만큼 우리를 귀중하게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 십일조를 꼭 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십일조는 율법시대에 하던 것이라 안 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내가 십일조를 꼭 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내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라고 성경에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십일조를 내면 다른 사람에게 십일조를 내라고 큰소리 할 수 있는데 저는 예수님을 알고 난 이후로 십일조를 도둑질한 경험이 기억이 안 납니다. 언제나 10분의 9, 10분의 8 이렇게 냈을 때가 많지 도둑질한 적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물질적으로 필요할 때 기도하면 얼마나 담대한지 모릅니다. 주님 보세요. 내가 주님보다도 물질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십일조 꼭 드린 것 주님 기억하지요? 내가 지금 돈이 필요하니까 그만한 돈을 주님 좀 주십시오. 내일까지요. 너무 기다리지 말고 주십시오. 그날에 꼭 생겨나요. 내가 하나님께 물질 구해서 못 받은 적이 없어요.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야훼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을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내가 개척할 때 예화로 종종 드는 유화문씨와 이초희씨 전도에 대한 것을 오늘도 기억합니다. 하루는 주일날 아침에 이초희씨가 머리에 무엇을 이고 왔어요. 그때는 교인수가 적으니까 다 내려주고 악수하고 인사하는데 이게 뭡니까 하니까 십일조입니다. 무슨 십일조를 머리에 이고 옵니까? 쌀입니다. 쌀이요? 열어보니까 쌀 반, 진흙 반 그렇게 되었어요. 무슨 쌀 십일조가 진흙이 많습니까 하니까 주저 앉으면서 울기 시작해요. 그래서 내가 등을 두드려 주면서 ‘울지 말고 말하라고 기도해 줄테니까 말하라고.’ 이 교회에 주의 종이 인도하는 대로 나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라고 해서 꼭 내게 생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는데 이번에는 어제 저녁에 우리 남편이 10년동안 술주정뱅이가 술 끊었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이 축하한다고 함경북도 도청에 나가는 친구들이 모여서 쌀 한가마니를 선물로 주었어요. 다른 것 선물로 줄 것이 없으니까 쌀을 한가마니를 주었는데 그때 가마니는 이런 큰 가마니가 아니고 이런 조그마한 부대다가 보따리도 아니고 부대입니까? 부대에 줬어요. 그 쌀을 보고 난 다음 얼마나 오랫동안 쌀구경을 못했든지 기겁을 했어요 그 부인이... 그래서 그 쌀을 안고서 너무 기겁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데 성령께서 마음속에 십일조, 십일조, 이중에 십일조는 내꺼다. 십일조. 아이구 가난이 얼마나 원수고 미움인데 또 가난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릇가지고 오너라 이것 십일조 떼자! 그러면서 십일조를 부어놓고 난 다음에 기도를 하니까 너무 아까워서 도로 넣자. 하나님이 뭐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가 쌀 못 먹었는데 이것 먹는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벌 주겠느냐. 도로 부어놓자. 또 도로 부어 놓았다가 아니야 아니야~ 하나님이 그 무서운 가난을 도로 우리에게 주면 어떻게 하느냐. 그래서 도로 갖다 놓았습니다. 초저녁에 붓기 시작한 것이 새벽기도할 때까지 부었다 넣었다. 우리 보기에는 우습지만 얼마나 절실한 것입니까? 그래서 새벽기도 시간이 늦어질까 싶어서 입구를 묶지 아니하고 그대로 머리에 이고 오다가 눈물이 눈을 가려서 도랑에 걸려서 자빠졌어요. 이 논바닥에 다 흩어졌어요. 그 논바닥에 진흙하고 다 끓어 모아서 울면서 이제 진흙 반, 쌀 반 해서 가져와요. 그것을 가지고 그렇게 우는데 나중에는 그 울음에 마음이 감동되어서 나도 울고 그도 울고 주위에 오는 사람들도 울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이 그 진흙에 섞인 쌀을 받으시고 난 다음 그 다음부터 그 집이 점점 생활이 부요해져서 나중에는 우리 교회에서 사라졌어요. 잘 사는 동리로 이사를 가서 잘 사는 동리 교회로 나가고 우리 교회는 옛날교회로 바이바이 당하고 말았습니다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진흙 반, 쌀 반 된 십일조도 기쁘게 받으시고 난 다음 내가 축복해 주었는데 그 축복이 그 집에 이르렀어요. 나중에 그 집 아홉 명의 아들 중에 두 사람은 주의 종이 되었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같이 하시는지요.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로 역사하려면 반드시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개인 소득의 십일조는 물론, 회사 이윤의 10%를 사회에 기부하는 사장님도 계셨어요. 미국 한인사회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하는 ISI의 설립자 김진수 대표는 개인 소득의 십일조는 물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기업 환경 속에서도 회사 수익의 10%를 꼭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가 이처럼 하나님 중심의 경영으로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자기 집안 한 구석에서 홀로 창업했던 회사가 500명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사업에서 은퇴한 그는 자선재단을 설립해서 연간 20만 달러를 후원하고, 또 비즈니스 선교로 제2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원의 의사는 십일조 수술을 해요. 돈 많은 사람에게는 돈을 받고 돈 없는 사람에게는 십일조만큼 공짜 수술을 해줘요. 그래서 공짜수술을 받는 10%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십일조를 드리는 모습들은 다양하지만 그 마음은 동일합니다.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얻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은 주인에게 돌려드린다는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여러분, 십일조를 꼭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4. 믿고 구하라
그 다음에 믿고 기도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다 이렇게 했으니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나님이 알아서 안 해주십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꼭 구해야 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없는 것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지 아니하면 없습니다. 꼭 하나님께 구하는데 보통 구해서 될 것도 있고 좀 열심히 뜨거운 마음으로 구할 것도 있는데 보통은 여러분, 자고 깨고 일하면서 마음속에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는 기도가 많습니다. 저는 낯 씻다가도 하나님 알지요? 낯 씻고 있으면서 내가 기도한 것 응답해 주십시오. 자기 전에 침대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께 ‘하나님, 꼭 응답해 주십시오.’ 어제 저녁에도 올라가면서도 나 피곤해서 쉬어야 되겠는데 ‘간단히 하겠습니다. 하나님, 내일 아침 설교할 때 목소리가 청명하게 나오게 해주시옵소서.’ 오늘 아침 목소리가 청명하잖아요.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평시에 평범하게 늘 말하는 것으로 해도 되는 것입니다. 좀 열심히 하려면 다른 일 치워 놓고 시간 내어서 하고 아주 긴박하고 답답한 일을 당했을 때는 금식기도가 굉장히 효과가 있습니다. 다 제켜 놓고 오산리기도원으로 가서 금식으로 기도하면 그것은 굉장히 효과가 있습니다. 저는 답답한 일을 당했을 때 금식기도 하고 나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꼭 응답이 와요. 그래서 믿고 구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나님과 관계가 나쁘지 않고 좋은데 하나님 내 기도 들으신다고 믿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응답이 와요. 우리 기독교는 기도응답의 종교인 것입니다. 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종교가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기도로써 섬기면서 나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 29절로 30절에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계신 것을 여러분이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1절로 4절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야훼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야훼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하나님께서 보통 사랑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물을 통할 때도, 불을 통할 때도, 물 가운데서 불 가운데서 너와 같이 하여 건져 주겠다. 성경말씀 거짓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닌지라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생이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여러분 진실로 그 마음을 열어놓고 말씀하시는 것이므로 적당히 넘기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사랑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한번 따라 말씀하세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이 사랑하고 살아계시다는 것을 늘 입술로 중얼거리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은 날 사랑하시고 계신다.
마틴 루터가 그렇게 했습니다.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을 추진하면서 수많은 위험과 박해에 직면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탁자에 손가락으로 “그는 살아 계시다! 그는 살아계시다!(Vivid! Vivid!)”라고 늘 기록을 하고 읽었습니다. 대다수가 교황의 편이었고 모든 상황이 자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힘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그 말씀을 늘 외웠습니다. 여러분께서 어려운 일을 당하시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하나님이 나와 같이 계신다. 자기에게 말을 하는 것은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한번은 마틴 루터가 완전히 종교개혁을 실패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이 배반해 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교황이 분노해서 군대를 동원해서 그를 체포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가 완전히 기가 죽어서 힘을 다 잃고 있는데 부인이 저쪽 방에서 통곡을 하고 울고 있다 말입니다. 그래서 불행에 불행이 다가왔나? 왜 이러느냐? 일어나서 가보니까 부인이 초상난 집 수의를 입고 발을 뻗고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보! 누가 세상을 떴어? 이럴 수가 있느냐. 내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데 또 가족 중에 누가 세상을 뜨다니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하니까 아니에요 아니에요~ 모든 것이 끝났어요. 뭐가 끝났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뜨셨다구요. 무슨 장난 같은 소리를 하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니! 나는 당신만 믿고 사는데 당신이 이런 것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데 당신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세상을 뜨지 않고서야 이렇게 당신이 초상집 상주처럼 행동할 수가 있습니까? 당신을 보니 하나님이 세상을 뜨셨어요. 아이고 하나님 이 세상 떴으니 우리는 어떻게 사노? 그 부인이 머리가 좋지 않습니까? 나보다 아이큐가 좋은 것 같아. 다른 설교하는 것보다 효과가 더 발생 되었어요. 당장 하나님께 회개하고 일어나서 용기와 힘을 가지고 종교개혁을 계속해서 오늘 종교를 개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죽은 하나님을 모신 것처럼 힘이 빠졌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시죠? 결코 힘을 놓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여러분 보고 하나님 세상 떴구나. 저 사람 행동하는 것 보니... 이렇게 말하면 절단입니다. 하나님은 돌아가실 수가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이 너무 꾀죄죄하고 적은 것같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크신 하나님 같으면 가슴을 펴고 크신 하나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살아야 될 것인데 꾀죄죄 해서 하나님 믿으면 그렇게 꾀죄죄하고 있느냐. 네 하나님 얼마나 꾀죄죄하기에 네가 그 모양이냐. 그렇게 사람들이 말하거든요.
필립스(J.B. Philips) 목사님이 쓴「네 하나님은 너무 작다」라는 책은 “20세기 교회를 움직인 100권의 책”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크신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인생의 크기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장로님, 하나님이 크십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크신 하나님 모신 장로님으로 행동을 하고 꾀죄죄하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강단에 있는 저와 여러분 우리들도 크신 하나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살아야지. 꾀죄죄한 하나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내 손자, 손녀들이 가끔 가다가 내 집에 오는데 포켓을 빨리 뒤져서 뭐 있으면 줘요. 그런데 요사이 여러분,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 애에게 돈 천 원주면 다시 쳐다보는 것입니다. 내가 저번에 왔기에 포켓을 뒤져보니까 천 원짜리 밖에 없어요. 그래서 천원을 줬더니만 날 보고 고맙습니다 하고 웃기에 정말로 고마워하는 줄 알고 효과를 발생했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가서 자기 어머니에게 가서 엄마,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이냐. 이것을 주잖아요. 이것을... 엄마, 할아버지 도로 갖다줘! 그 어머니가 내게 천원짜리를 가지고 왔어요. 얘가 받았는데 안한다고 도로 갖다 드리라고 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요사이 천 원짜리를 시원찮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천 원짜리 주셨다고 간증을 하면 너무 적은 하나님을 간증해서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구하거들랑 굵직하게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크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주의 종들이 우리는 적은 교회를 자랑한다. 큰 교회를 자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실제 양심적으로는 큰 교회를 사랑하는데 큰 교회가 안 되니까 적은 교회를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데 큰 교회를 세워서 교회 중에 들어오는 수입을 약한 교회들하고 나누면 좋지 않겠습니까? 큰 꿈을 아예 꾸고 목회를 하려면 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다고 입을 넓게 열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가난한 교회와 연약한 성도들과 많이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내 제자 중에 한 사람 큰 꿈을 꾸고서 나가서 교회를 개척해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 있을 때도 열심히 일 잘했어요. 그런데 우리 교회 조금 못 미칠 만한 교회를 지었었습니다. 짓고 난 다음에 빚을 잔뜩 졌는데 그 빚을 못 갚으니까 하는 말이 뭐냐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을 듣고 나는 입을 열었는데 너무 크게 열어가지고 입이 찢어져서 지금 고생을 하고 있다. 내가 감동을 받았어요. 입이 찢어질지라도 입을 크게 한 번 열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잘못 믿었다는 말은 안하고 입을 넓게 열라고 해서 넓게 열었는데 그만 찢어져서 지금 피가 나고 어려운데 아물면 된다고... 아물면 되는데 하나님이 아물게 해줄실 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크게 믿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적게 믿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홍해수가 갈라지는 것이 항복하여 들어가서 종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여러분, 필립스 목사님이 책에서 기록한 대로 인생의 크기는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의 크기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므로 여러분이 큰 하나님, 좋은 하나님을 섬긴다면 여러분 크게 좋게 구하고 믿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을 마음속에 믿고 계시면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그대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왜 기도 응답 안 해주십니까? 또 안 해주시겠지? 어렵지? 안되겠지?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능력이 한이 없으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이 성경구절을 생각하고 기도하세요.
이사야 40장 28절로 31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야훼,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왜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라고 했느냐면 독수리는 회갑이 되면 새로 옷을 입습니다. 독수리가 회갑이 되면 바위에 올라가서 햇빛이 비취는데 아무것도 안 먹고 햇빛을 보고 눈을 반짝반짝 하고 있으면 털이 다 떨어져 나옵니다. 몸에서 털이 떨어져 나가고 날개쭉지는 입으로 찢고 바위에 쳐서 떨어뜨리고 나중에는 완전히 통닭처럼 되버립니다. 그러면 도로 새털이 나요. 또 새털이 나고 깃털이 나서 자기가 보니 조금 날만하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는 것은 야훼를 앙망하는 자는 주님을 쳐다보고 주님을 기다리는 자는 낭패, 실망, 절망이 다 사라지고 새로운 꿈과 희망과 용기가 생겨나서 새로운 능력으로 새로운 인간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한 사람들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마태복음 7장 7절로 8절에 보면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분명한 목표를 갖고 계속해서 구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부왕으로 불리는 폴 마이어(Paul J. Meyer)는 “목표 설정을 통해 성공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그 원리는 보험 세일즈를 했는데 나이 27세에 백만장자가 된 것은 목표를 두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항상 목표를 마음속에 꿈꾸고 감사한 결과에 27세에 백만장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루는 열쇠는 바로 목표 설정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방법으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능한 한 많은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 부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너 혼자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기 위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삶을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방법으로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능한 한 많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익의 50%를 하나님을 위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다는 약속을 평생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전 세계에 40개 이상의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30개가 넘는 사역단체와 자선단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생생하게 꿈꾸고, 열렬하게 소망하고, 진실하게 믿고, 열정적으로 행동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가 늘 여러분에게 말씀하는 것 한 가지인 것입니다. 따라 말씀하세요. 바라보고 꿈꾸며 뜨거운 마음으로 믿으며 입으로 확신하면 이루어진다. 그가 늘 말하는 것은 제가 마음속에 재밌게 읽기도 합니다. Whatever you vividly imagine, ardently desire, sincerely believe, and enthusiastically act upon must inevitably come to pass! 분명하고 올바른 목표를 가지고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응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응답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