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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끝낸 변강호는 안국동으로 향했다.
퇴근하는 이소정을 만나 그녀의 집으로 같이 갈 계산이었다.
미리 전화를 해놓은 터라 회사 앞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변강호는 이소정의 외삼촌인 박무달에게서 저녁마다 치료를 받았다.
박무달의 경락치료는 잠자고 있는 변강호의 근육을 활성화 시키는 듯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치료보다는 박무달이 언급한 말에 더욱 솔깃한 변강호였다.
여자를 잘 만나면 자랄 수도 있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천하에 두려운 여자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하성애가 떠올랐다.
변강호는 속으로 머리를 저었다.
세상에 그녀를 만족 시켜줄 수 있을만한 남자는 아무도 없을 것만 같았다.
안국역에서 내린 변강호는 본사 건물 길 건너편에 서서 회사 앞을 살폈다.
퇴근 하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전동차 역사 출구마다 퇴근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대선 후보의 유세를 나온 홍보꾼들로 법석이었다.
그 놈이 그 놈이니 투표할 맛이 나겠어.'
변강호는 홍보하는 사람들이 나눠주는 여러 장의 홍보물을 훑어보다가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다주리 같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여자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 꼴이 바로 서겠다는 생각을 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가는군.'
본사 앞을 살피던 변강호는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다음 주부터 이천 공장으로 출근하게 되면 한동안 이소정을 못 볼 터였다.
박무달에게 치료받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변강호는 여러 가지 갈등이 됐다.
아직도 품속에는 사표가 들어 있었다. 변양수나 일수, 장수는 변강호가 사표 쓰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때려치워?'
변강호가 속주머니 속의 사표를 만지작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소정씨?"
"소정이가 누구냐?"
변강호는 휴대폰에 찍힌 발신자 번호를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인 강승혜였다.
"어쩐 일이세요?"
"오늘이나 내일 집에 다녀가라."
"시간 없어요."
"꼭 다녀 가. 안 그러면 내가 직접 오피스텔로 간다. 그럼 끊는다."
어머니인 강승혜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또 무슨 소리를 하실까? 참고 버티라고? 나도 자존심이 있는데.'
변강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코트 깃을 잔뜩 세웠다.
세밑이라 그런지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과 트리로 한껏 연말 분위기가 났다.
"변 대리!"
누군가 변강호의 등을 쳤다. 뒤돌아보던 변강호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
변강호의 등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하성애였다.
"구, 국장님. 여긴 어떻게?"
그녀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하성애가 변강호 등 뒤에 서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이 회사도 우리 하역장을 쓰거든. 연말이라 정산하러 왔고. 그런데 변 대리는 여기서 뭐해?"
"저, 저는···."
"소식 들었어. 이천 공장이 화재로 소실되었다면서?"
"세상이 좁긴 좁네요."
"좁은 게 아니라 내가 정보가 빠른 거야."
하성애는 슬그머니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늘 시간 돼?"
"네?"
변강호는 더럭 겁이 났다.
"서, 선약이 있어서…."
변강호는 벌써부터 물건이 졸아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선약? 설마 여자랑 자는 건 아니지?"
하성애가 변강호의 아랫도리를 힐끔 쳐다봤다. 변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모로 틀었다.
"그, 그런 거 아닙니다."
"나도 변양수 사장하고 저녁 약속이 있어. 밤늦게 술 한 잔 하자는 거지. 싫으면 말고."
변강호는 갈등했다. 비록 물건으로는 아니지만 어쨌든 다주리를 흡족하게 만들어주었던 일도
하성애가 변강호를 한심하다는 듯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변강호는 자존심이 상했다.
"저녁 몇 시면 되겠습니까?"
변강호는 힘주어 말했다.
"호호호, 나야 늦으면 늦을수록 좋지. 롯데호텔 1007호야.
난 호텔에 아마 9시 이후면 들어가 있을 거 같아.
변 대리 송별식도 해야지."
송별식? 변강호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더 묻기도 전에 하성애는 이미 지하보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우연 흔하지 않아. 자신 없으면 오지 않아도 돼."
계단 아래 서서 하성애가 변강호를 올려다보았다.
"반드시 가겠습니다."
하성애가 사라진 뒤 변강호는 또 쓸데없는 호기를 부렸다고 후회를 했다.
퇴근한 이소정을 만나 삼청동으로 향하는 내내 변강호는 걱정이 되었다.
"고민 있어요?"
하성애 문제를 말할 수 없었다.
이소정의 집에 도착한 변강호는 박무달에게 마지막 치료를 받기 위해 옷을 벗었다.
"몸에 걱정이 꽉 찼네, 뭐야, 고민이?"
변강호의 어깨와 허리를 만지던 박무달이 족집게처럼 변강호의 마음을 읽었다.
"그게 말입니다…."
변강호는 어쩌지 못하고 하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변강호는 박무달에게 하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천하의 옹녀인 하성애에게 굴욕을 당한 일도 고백했다.
"우리나라 남자들의 문제는 그 짓도 밥 먹는 것처럼 빨리빨리 하려고 해서 문제야.
그 여자를 정말 맛이 가게 만들어 주고 싶어?"
변강호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네!"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하지만 소정씨한테는 비밀로 하고 싶은데…."
"자네 우리 소정이 좋아하나?"
박무달이 다짜고짜 물었다.
"좋아한다기 보다…."
변강호를 치료하던 박무달은 손을 접고 반가부좌인 자세로 앉아 눈을 감았다.
변강호는 하성애 이야기를 괜히 꺼낸 것 같아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가 외삼촌이어도 다른 여자 뽕 가게 만드는 방법 가르쳐 달라는 놈에게 자기 조카를 주겠어?'
변강호는 박무달의 눈치를 살폈다.
'나도 참, 결혼할 것도 아닌데, 아니지 결혼할 수도 있는데….'
변강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인도의 카마수트라에는 '가니카'라는 유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쉽게 말해 가니카는 고급 창녀야.
인도에서는 그녀들이 왕비 다음으로 대접 받을 정도로 고위직이었어. 자네가 말한 하성애가
바로 그런 기질을 가진 여자인지도 모르지. 그런 여자에게는 배울 게 많아."
박무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다른 여자 후릴 생각을 하는 놈과 조카가 사귀는걸 허락할 수 없다거나, 카사노바 같은 놈이
제 주제도 모른다고 하면서 야단을 칠 줄 알았던 변강호는 내심 안도했다.
"그런 여자는 물건만으로 상대해선 승부가 안나."
"그럼 어떤 방법으로 승부를 내죠, 스승님?"
변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박무달을 스승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어떻게 자네 스승님이야?"
"뭐라고 부를 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외삼촌이라고 부를 수도 없고 그냥 아저씨라고 하기도 그렇고."
"무달 도사라고 불러."
박무달은 또 한 번 의외의 대답을 했다. 변강호는 벌써부터 박무달에게 끌리고 있었다.
투박한 인상에 비해 마음 씀씀이는 서글서글하고 무엇보다 무술도 수준급인데다
섹스 문제에 있어서도 달인인 듯했다.
'이 참에, 차라리 회사 때려치우고 이 양반 제자로 나설까?'
변강호도 어느새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달 도사님, 그럼 방법이 있겠습니까?"
박무달이 오른손 손가락 두 개를 들어보였다. 변강호도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손가락 두 개면 해결 돼."
변강호는 급히 문 밖을 살핀 후 박무달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이 놈아, 징그러워. 떨어져 앉아."
"무달 도사님, 손가락 두 개로 어쩌라는 겁니까? 설마 손가락으로 해결하라는 뜻은 아니겠죠?"
변강호는 문밖의 동정을 살피며 은밀하게 말했다. 어쩐 일인지 박무달 역시 신이 난 듯했다.
"우리 한국 남자들의 맹점이 바로 속도거든. 흥분하면 어떡하든 빨리 삽입하려고 한단 말이야.
그러면 끝장이야."
변강호는 귀를 바짝 세웠다. 그때 이소정이 방문을 열었다.
"두 분이서 뭘 그렇게 열심히 속삭이세요. 속삭이는 것도 좋으니까 저녁이나 드시고 하세요."
이소정은 변강호와 박무달이 가까이 붙어 앉아 있는 걸 보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 아무튼 도덕적이면서도 경제에 밝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젊은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살죠."
밥상을 마주하고 앉은 변강호와 박무달은 이번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식사를 끝냈다.
이소정은 책 볼 게 있다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박무달과 변강호는 이소정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서재로 향했다.
"무달 도사님, 아까 하시던 이야기…."
"아, 손가락 두 개."
박무달이 정색을 하고 앉았다.
"여자가 알몸이 되면 말이야, 우리 남자들은 여자 알몸을 보고 개처럼 흥분해서 격렬하게
달려드는 데 그러면 말짱 꽝이야.
반대로 흥분한 여자가 달려들면 정중하게 밀어내고 애무를 하는데…."
변강호는 눈을 크게 뜨고 박무달을 바라보았다.
"손가락 두 개로 발가락에서부터 머리털 끝까지,
구석구석 왼쪽으로 원을 그리며 부드럽게 돌리며 애무를 하는 거야."
박무달이 허공에 대고 손가락을 돌리며 시범을 보였다.
"뭐, 그래봐야. 5분 남짓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안 된다는 거야. 5분 가지곤 안 되고 짧아도 20분 정도는 해야 돼."
"네? 20분이나요?"
"그 정도 인내할 자신 없으면 난 할 말 없어."
박무달은 입을 닫고 책 들고 꺼내 건성으로 읽었다. 변강호는 애가 탔다.
"도사님, 그러지 말고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지금 남자 자존심 다 구기게 생겼습니다.
그 여잔 쳐다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그런 여잡니다."
"그렇게 미인인가?"
박무달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미인이다 뿐입니까, 뇌쇄적인 여잡니다."
"흠, 뇌쇄적이라…."
박무달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어느 순간 박무달이 눈을 부릅떴다.
"그럼, 끈기 있게 인내할 자신은 있지?"
아니라고 말할 재간이 없었다.
"네, 인내 빼면 전 시쳅니다. 지금까지도 인내로 살았거든요."
"허긴, 두들겨 맞는 거 보니까 맷집이랑 인내는 대단하겠어."
박무달의 말에 변강호는 새삼 두들겨 맞은 자리가 쑤셔오는 듯했다
"애무와 맷집이 무슨 상관있습니까."
변강호가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그게 다 통하는 거야. 아무튼 아까도 말했지만 애무하는 데 한 곳도 빼놓으면 안 된다는 거
명심해야 돼."
박무달은 다시 신이 나서 말하기 시작했다. 도무지 도인의 기품이라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무술의 달인이고 기공치료의 달인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는 권위주의적인 도사라기보다 서민형 도사라고 해야 어울릴 듯했다.
"손가락 사이사이, 겨드랑이, 귀 뒤, 허벅지 안쪽, 둔부, 심지어 코끝이나 눈꺼풀까지도
정성을다해 애무를 해야 해. 애무를 한다고 해서 그냥 하면 안 되고 반드시 왼쪽으로 돌려야해.
그게 음양의 법이야."
'애무하는 데 음양의 법까지 따져야 하나?'
변강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순간 박무달이 효자손으로 변강호의 머리를 쳤다.
"애무도 음과 양의 법에 따라야만 하는 거야."
'독심술도 하나?'
변강호가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인마, 독심술도 한다."
박무달이 한 번 더 변강호의 머리를 쳤다.
"죄송합니다. 음양법에 따라 왼쪽으로 돌리며 애무를 하라 이 말이죠."
"자네 욕조나 세면대에서 구멍으로 물 빠져 나가는 거 봤어?"
변강호는 고개를 저었다.
"물이 구멍으로 빠져나갈 땐 반드시 왼쪽으로 돌면서 빠져나가. 살면서 잘 보란 말이야.
그게 음양의 하나야.
그러니까 물이 빠져나가는 방향으로 애무를 하라는 말이지. 왼쪽은 음, 여자도 음,
그러니까 왼쪽으로 부드럽게 돌리며 애무한다는 건 음을 뜨겁게 만드는 매우 간단한 방법이야.
거꾸로 하면 효과가 거의 없어."
변강호는 박무달이 시범을 보이는 그대로 따라 손가락을 놀렸다.
"그런데 15분쯤 지나면 어지간한 여자들은 몸이 뜨거워져. 아무리 무던한 여자라고 해도
20분이면 충분해.
시간이 흐르면서 여자의 다리가 저절로 벌어지게 되지."
이번에도 참지 못하고 변강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안 그런 여자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말한 여자 같은 경우 말입니다."
박무달의 효자손이 연신 변강호의 머리를 두드렸다.
"끝까지 들어. 그리고 그쯤해서도 여자가 다리를 안 벌리면 그건 석화야."
"석화라뇨?"
"불감증이란 말야. 그런 여잔 그런 방법으론 백날 해봐야 소용없어."
"그런데 도사님이 그런 건 어떻게 잘 아시죠?"
박무달이 껄껄껄 웃었다.
박무달은 수염도 없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곤 가슴을 앞으로 쭉 내민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전통 무술의 대부분이 음양의 법에 충실하지.
여자를 애무하는 거랑 무술하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아.
그러니까 적을 쓰러뜨린다는 심정으로 애무를 해야 한다는 말이지."
박무달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여자가 남자 손을 잡아서 끌어당기기 시작할 거야. 그래도 참아야 해.
20분이 넘을 때까지 말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애무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단, 절대로 손으로 중심을 건드려선 안 돼."
"다음엔요?"
"계속 애무를 하다보면 여자가 움찔 움찔 놀랄 때가 있어 거기가 성감대이긴 해. 하지만 그
렇다고 거기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그건 하수야. 조금 진하게 애무를 해줄 필요는 있지만
그 이상은 아냐.
여자의 성감대는 몸 전체라고 보면 돼."
"그게 끝인가요?"
"남녀의 교접은 궁극적으로 쾌락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자는 거야.
그저 단순하게 섹스나 하자는 게 아니란 말야. 그런데 우리는 남녀의 섹스를 저속하게
생각해 왔어. 그래서 우리도 모르게 그 일을 빨리 치르기 시작했지."
변강호는 다음을 조심스럽게 재촉했다.
"20분이 지나면 여자는 몸을 비틀고 난리가 날 거야. 그때 접촉을 하는데.
명심할 게 반드시 접촉이라는 거야. 삽입이 아니고. 알겠어?"
"접촉이요?"
"물건과 중심만 맞대는 거야. 거기서 삽입하면 그냥 평균 정도의 오르가슴만 느끼고 끝나.
그건 물건 크고 정력 좀 센 놈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거든. 그럴 거야?"
"물론 아니죠."
"그러니까 내 말 들어. 일단 접촉해서 5분 남짓 치골과 치골을 비벼. 압박과 마찰이지.
그 즈음 되면 여잔 이미 황홀함을 느끼게 돼. 그걸 어떻게 아냐? 여자의 복부가 떠는 걸 보거나
느낄 수 있지. 그래도 삽입은 참아. 계속해서 압박과 마찰을 가하는 거야.
그 정도에서도 어지간한 여자는 오르가즘을 느끼게 돼. 그게 접이불루(接以不漏)야."
"접이불루요?"
박무달이 이번에도 효자손으로 변강호의 머리를 내려쳤다.
"접이불루도 모르면서 여자한테서 자존심 부리려고 그랬단 말야?
접이불루란 남녀가 합쳐진 상태에서도 정이 새어나가지 않는 걸 말하는 거야. 이 놈아!"
변강호는 접이불루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런 다음에 삽입하면 물건이 작건 크건 전혀 상관이 없어지는 거야. 중요한 게 뭐라고?"
"손가락으로 정성을 다해 20분 이상 애무를 해라?"
"아직 멀긴 멀었군. 그게 핵심이 아냐.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라는 말이야.
여자의 몸이 100프로, 200프로 활짝 열릴 때까지 말이야."
박무달은 성스러운 강연을 끝낸 듯 혼자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변강호는 지금껏 자신이 만났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만족한 듯 표정을 지었던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대부분 거짓말일 수도 있다는 말을 하성애에게서 들은 일이 있었다.
"그래도 여자들은 만족한 듯 연기를 잘 하잖아요."
"손톱으로 네 등을 파면 그건 진짜야. 이게 바로 카마수트라의 기본이야."
변강호는 손을 들어 손톱을 살폈다.
"자네가 만난 여자는 힙이 각진 데 없고 잘 빠졌지? 살집도 좀 있고?"
"어떻게 아세요?"
변강호가 놀란 눈으로 박무달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도사지. 그런 여자들은 토성형이야. 이성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그냥 즐기는 타입이지. 그래서 바람둥이가 많아. 그러면서 성적으로도 매우 발달되어 있는 여자야.
다만 그런 타입은 많지 않아. 그런 형은 희귀한데 잘 해 봐."
토성형? 변강호는 생소한 단어들 때문인지 부쩍 박무달에게 믿음이 갔다.
"아주 가끔 성감대가 없는 여자가 있어. 그런 여자들은 발가락이 성감대야. 알았지?"
이처럼 노골적으로 대화를 나눈 사이라 아무래도 이소정과 사귀는 일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섹스는 섹스고 사랑은 사랑인데….'
밤 9시가 넘은 후에야 변강호는 이소정의 집에서 나왔다. 이소정은 어쩐 일인지
그를 보고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변강호는 괜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골목을 뛰어나온 변강호는 곧바로 택시를 타고 하성애가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란 말이지.'
변강호는 택시 안에서도 손가락을 들어 왼쪽으로 열심히 돌렸다.
하성애가 묵고 있는 1007호의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자 슬립을 입은 하성애가 나타났다.
젖은 머리카락과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듯한 가슴이 변강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변강호는 속으로 다짐했다. 하성애가 현관에 서 있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잡던 변강호는 깜짝 놀랐다. 하성애의 손이 너무 뜨거운 때문이었다.
변강호는 그녀의 손에 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접이불루, 접이불루….'
변강호는 주문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얼굴에 비장한 각오가 보이는데?"
하성애가 깔깔거렸다. 그녀는 미니 홈 바 쪽으로 변강호를 데려갔다.
"변 대리 그 동안 상심이 컸겠어."
술잔을 들며 하성애가 변강호의 얼굴을 살폈다.
"뭐, 저희 같은 샐러리맨들이야 다 그렇죠."
"너무 염려 하지마. 난 변승우 회장을 누구보다 잘 알아."
오물거리며 말하는 하성애의 입술이 오늘은 유독 빨갰다.
하성애는 변강호를 잡아먹기 위해 단단히 벼른 듯했다. 젖은 머리카락, 슬립, 적당한 술,
입술에만 루즈를 칠한 폼. 변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양반 절대로 전자 포기할 사람 아냐. 건설이나 의류, 원단, 화학이 사실은 전자를 꾸려나가기 위한 전초기지인 셈이거든. 대일에는 그걸 아는 사람이 없어."
"우리가 기존의 전자회사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죠."
하성애가 변강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변강호는 잠깐 긴장했다.
본격적으로 하시겠다?'
술잔을 든 하성애의 반대편 쪽 어깨 슬립 끈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헐렁해져버린 슬립 사이로 그녀의 가슴과 붉은 유두가 살짝 보였다.
'하, 이런 걸 보고 어떻게 참지? 접이불루 접이불루….'
변강호는 계속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치도 없이 일어서려는 물건을
하성애에게 들키지 않게 꼬집었다.
발기되던 변강호의 물건이 조금 잦아들었다.
"틈새라는 건 항상 있어."
하성애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흘러내린 어깨 끈을 끌어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옆으로 몸을 틀고 앉았다. 희디 흰 가슴골이 훤히 보였다. 변강호는 술잔에 집중했다.
애무를 하면서 최소한 20분 이상 버티려면 벌써부터 발기되어서는 힘들 것 같았다.
"머리만 깨어있으면 그 틈새는 언제든 보이기 마련이야.
변승우 회장은 그걸 기다리고 있지.
그런 걸 해낼 인재를 말이야."
하성애가 변강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하성애의 집에서
그녀를 맞이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는 지금 잔뜩 발정 난 암컷 같았다.
그녀의 손길이 이마를 한번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 변강호는 벌써부터 몸이 저릿저릿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 틈새 나한테도 있거든. 볼래?"
하성애는 이제 노골적으로 어깨에 남아 있던 슬립 끈을 밀어버렸다.
환한 불빛 아래 두 알의 젖가슴이 드러났다.
변강호는 일단 젖가슴에서 눈을 떼기 위해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런 후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는 침대로 향했다. 아무래도 감정 조절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저 땀을 좀 흘려서 그러는데 샤워 좀…."
변강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성애는 그를 끌어안았다. 변강호도 침대 위로 쓰러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난 뒤의 남자 냄새를 난 좋아해."
하성애의 말이 변강호의 귀 뒤를 간질였다. 몸이 짜릿짜릿했다.
'점점 이상하게 흘러가네. 무달 도사 말대로 해야 하는데. 이대로 흘러가다간 지난번처럼….'
변강호는 바짝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위로 보나 아래로 보나 국장님이 저보다 윈데 아무래도 제가 서비스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성애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전모를 쓰고 이천 공장 공사 현장을 둘러보던 변강호의 눈에 여자 건축기사가 눈에 띄었다.
작으면서도 제법 살집이 있고 위로 솟은 엉덩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득 하성애가 떠올랐다.
'아무튼 만족을 모르는 여자였어.'
그래도 하성애가 복부를 부르르 떨던 그 느낌을 변강호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팜므파탈 같은 여자를 녹초로 만들었다는 자신감이 변강호를 변화시켰다. 잡초처럼 짓밟혀도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새록새록 돋아났다. 변강호는 여느 때보다 걸음걸이가 활기찼다.
변강호는 여자 건축기사 뒤로 다가갔다. 타이트한 작업복을 입고 있어 하체의 곡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매우 야성적이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여자 특유의 늘씬함이 인상적이었다.
'음, 토성형인데.'
변강호는 공사 현장을 살피는 척하며 은밀하게 여자의 뒤태를 훔쳐봤다.
'저런 힙이면 현수 성교가 가능할까?'
변강호는 박무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소리 나지 않게 침을 꿀꺽 삼켰다.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체위가 바로 현수 성교라는 거야. 그 체위는 여자의 몸무게와
엉덩이가 비교적 작아야해. 그래도 남자의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정신을 필요로 하는 체위지.
한번 맛들이면 다른 체위론 못해.'
변강호는 인부들에게 지시하는 여자를 훔쳐보며 혼자 상상을 했다.
여자의 다리를 변강호의 무릎이나 허리에 걸치도록 한 후 선채로 하는 체위였다.
힘이 들지만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체위라고 박무달이 말했다.
여자의 엉덩이를 보고 있는 변강호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이 되어 물건이 발기되고 말았다.
박무달에게 기공 치료를 받은 후라 그런 건지 아니면 하성애와 일을 치르며 자신감이
쌓인 덕인지 변강호의 물건은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발기했다.
'아무튼 이 놈의 정력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가까스로 물건을 진정시킨 후 뒤돌아서는데 느닷없이 여자의 목소리가 변강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변 대리!"
변강호를 부른 그녀는 입사동기인 윤장미였다. 괄괄하고 털털한 성격이라 한때 동기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던 여자였다. 대일 건설에서 지원 나온다고 들었는데 그녀가 나온 모양이었다.
"장, 장미구나."
변강호는 좀 난처했다. 신입사원 전체 단합대회 때 그녀를 어떻게든 한번 꼬드겨보려고
달려든 적이 있었다. 그때 술 취한 윤장미가 느닷없이 변강호의 아랫도리를 손으로 잡고
깔깔거렸다.
그 후 장미가 했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야, 가라, 가. 그 물건으로 무슨….'
윤장미도 변강호가 공략해야할 대상이었다. 윤장미가 다가와 변강호의 어깨를 터프하게 툭 쳤다.
변강호는 거침없는 그녀의 행동에 기분이 나빴다. 눈으로 먼저 아랫도리를 훑어보는 폼이
신입사원 때의 일을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눈치였다
샐러리맨들의 월급이라는게 세금, 공과금, 할부금 등등 이리저리 찢고 나면 남는 돈 한 푼도
없을 때가 있을 정도로 박한 게 현실이다. 변강호처럼 미혼이면 그래도 저축할 여유 돈이 있지만
애가 둘 있는 유부남의 경우는 저축은커녕 마이너스가 안 되면 다행인 정도다.
양주와 안주가 나왔다. 거의 다 벗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웨이트리스들이 서빙을 하는 통에
테이블 위에 뭘 올려놓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테이블 위에 술잔 하나 안주 접시 하나를
내려놓을 때마다 여자들이 허리를 굽혔는데 가느다란 선 하나로 가려진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가 눈에 들어와 아찔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변강호 역시 앞에 앉은 여사원들 보기가 민망했다.
신정하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고리타분하게 놀지 말자구요. 돼지 냄새 풀풀 나는 고기 집에서 소주에다
술 먹는 건 과장님 신입 때나 하는 거라구요. 나쁘지 않죠?"
"무슨 소리야? 나도 이런 데 좋아한다고. 앞으로 우리 부서 회식은 이런 데서 하자고."
"좋지요."
앞 뒤 계산 없기는 임달호나 고길수나 매한가지였다. 맹순희는 양주잔을 홀짝이며
홀을 오가는 여자들의 엉덩이만 구경했다. 신정하도 신정하지만 맹순희 역시
알다가도 모를 여자였다. 이소정만이 굳은 표정으로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양주 몇 잔이 돌았다. 여자들이 재떨이를 갈아준다, 필요한 게 없느냐며
끝없이 다녀갔다. 그때마다 남자들의 눈길이 그녀들의 가슴과 엉덩이로 쏠렸다.
"친구들이랑도 가끔 와요. 이런 데 와야 긴장이 되거든요."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여기 종업원들 몸매 보면서 나를 다그치죠. 이런 데 일하는 여자들도
저렇게 아름다운데 넌 뭐니 하고 말이죠. 깔깔깔!"
아무래도 신정하 역시 고문관인 듯했다.
'골치 아프게 생겼군'.
변강호는 잔을 들이켜며 옆 테이블에 서빙 온 여자의 엉덩이를 힐끔 훔쳐봤다.
변강호는 술이 숨구멍으로 넘어가 사레가 들고 말았다.
"야, 신정하. 오늘은 첫날이니까 참아주는데 난 앞으로 이런 데 안 온다."
너무 조용하다 싶었던 이소정이 벌떡 일어나며 신정하에게 말했다.
"소정씨, 그냥 쿨하게 즐기다 가면 안 되나?"
신정하가 비꼬듯 말했다.
"신정하씨 혹시 레즈비언이야?"
기어이 이소정이 사고를 치고 말았다. 분위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신정하와 이소정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신정하씨는 갑부 집 딸이라 여기서 마시는 술값이 껌 값인지 몰라도 난 아닙니다."
이소정이 당차게 몰아붙였다. 변강호는 묘하게도 신정하보다 이소정에게 더 매력을 느꼈다.
그는 담배를 빼어 물고 두 여자의 싸움을 신나게 구경했다. 누군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자신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첫댓글 즐독입니다
즐독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