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텅텅…. 자전거의 뒷바퀴가 좌우로 흔들리며 요동친다. 비포장의 작은 길은 온통 흙먼지로 덮이고, 마른 바닥을 가르는 타이어는 작은 스모그를 만든다. 자전거는 먼지들이 시멘트처럼 달라붙어 뒤덮고 만다.
네팔은 온통 산악지대로 아직은 아스콘이나 콘크리트가 깊숙한 산골까지 미치지 못하고, 시내도 중심부 중 핵심도로만 포장되어 있다. 높은 산에서 내려다보면 산골 깊숙한 곳곳까지 작은 소로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그들의 삶을 연결해주고 있다.
최근 네팔에는 산악자전거를 이용해 안나푸르나 라운드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다녀오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라이더에 따라서 조금 달라지지만, 보통 전구간의 40% 이상을 자전거를 메고 올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고산 라이딩은 고산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시도해야만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고소증을 극복하고 자전거를 메고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경우도 많다. 포터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는 어려운 점이 많아 고산경험이 있는 라이더나 산악인들이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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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설산을 뒤로하고 달리는 필자. '나는 자전거위에서 또다시 내 삶의 경주를 시작한다. 어디를 가나 나는 길을 만난다.'
해발 1,000m 산릉 따라 달리는 사랑곳
나는 포카라에 머물면서 사랑곳(Sarangkot) 주변과 페와 호수(Phewa Tal) 주변에 위치한 산악도로와 작은 산길을 찾아다니며 여러 코스를 발굴했다. 사랑곳 다운힐 코스, 세계평화불교탑 코스는 포카라에 머물면서 2~3시간에 다녀올 수 있는 코스로 1시간 이상 오르막을 올라야 하며, 네팔의 산골 풍경과 생활을 직접 가까이에서 접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다.
네팔은 산악자전거를 위한 최고의 대상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높은 산정에 올라 내려다보는 이들 산길은 그들의 삶의 길이지만, 라이더에게는 지상천국 같은 자전거길로 변한다.
1,592m의 사랑곳을 오르는 길목은 포카라에서 출발해 로컬버스 정류장을 지나 양쪽으로 시장이 이루어진 곳이다. 왼쪽으로 사랑곳이라는 이정표가 세워진 아스콘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도로는 해발 1,400m 정도에서 다시 비포장으로 변하고, 능선을 따라 나우단다(Naudanda)까지 연결된다. 이 비포장길은 해발 1,000m를 넘는 고지대로 10km나 연결되며, 환상적인 안나푸르나산군이 줄곧 바라뵈는 능선길이다. 사랑곳을 지나면 완만한 비포장 능선으로 어려움 없이 라이딩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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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페와 호수의 고요를 즐겼다. (오른쪽) 페와호숫가를 천천히 달리며 네팔 아낙네와 얘기를 나누는 필자.
- 나는 페와 호수 주변에서 머물며 아침시간을 이용해 오전 7~10시 사이에 라이딩을 마치고 오후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했다. 사랑곳 버스정류장에는 아침이면 안나푸르나 산군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줄지어 오른다. 필자가 두 달 동안 머무는 동안 한국인 관광객들이 매일 3~5대의 버스를 이용해 사랑곳을 올랐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면 잠시 휴식을 가지고 밀크티 한잔 으로 오르막길에서 흘린 땀을 식힌다. 몇 평의 조그만 구멍가게에는 주인아줌마와 두 딸이 함께 살아가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1~2학년 정도의 어린 딸아이가 고사리손으로 차를 가져다준다. 아줌마는 딸아이의 긴 머리를 손질해서 학교를 보낸다. 비록 이 산골에 문명의 혜택은 없지만 자신의 현재에 너무나 즐겁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3km 정도 되는 비포장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다운힐을 시작한다. 초입은 완만한 내리막으로 시작하지만 밑으로 내려갈수록 갈지자의 급경사 커브길로 변하며, 옆으로는 작은 골이 형성되어 자전거는 중심 잡기가 아주 힘들다. 불규칙한 모양의 돌이 많은 노면에서는 상당한 충격이 앞타이어에서 핸들로 전해져 두 팔이 후들거린다.
선두에는 내가, 뒤로는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인 하치경이 따르고, 중국 자전거 횡단을 함께 한 후배 김형욱이 앞뒤로 오가며 사진을 찍고 있다. 자칭 사진작가라며 나와 치경을 여러 번 반복해서 오르내리게 한다. 다운힐 때 잘 정비된 국내 임도에서는 적어도 시속 30~50km의 속도로 달릴 수 있지만 이런 산길은 속도감을 맛보기에는 너무나 험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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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굴렁쇠를 굴리며 필자를 따라 달리는 아이들.
- 길가로는 가끔 조용한 산속의 집들이 지난다. 앞마당에는 노란 유채가 가득하고 아래로는 넓은 페와 호수의 반짝이는 수면이 내려다보인다. 마을을 지날 때면 온 동네 아이들이 달려와 함께 경주한다. 굴렁쇠를 가지고 자전거와 경주하는 아이, 모든 힘을 다해 자전거를 앞서려는 아이들까지 숨이 턱에 차올라도 오르막을 쉬지도 않고 달린다.
촬영을 위해 5번 정도 100m 경주를 했지만 아이들은 처음처럼 변함없이, 쉼 없이 함께 달린다.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보답해야 할 것 같아 마을의 1평 남짓한 상점에서 사탕 3봉을 구입해서 주었다. 모두 사탕 주변을 둘러싸고 가장 큰 아이가 공평하게 사탕을 나누어주고 있다. 다만 우리 마음을 읽은 상점주인 아저씨가 사탕 값을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받았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경주한 기쁨이 반감되고 말았다.
이 산길을 달리다보면 높은 산릉에서 상인들이 나무막대기에 주방용품을 달고 산골을 헤매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카라로 출근하는 여성들의 바쁜 발걸음, 학교로 가는 학생들의 분주함, 고산의 채소를 팔기 위해 시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 등이 우리의 옛 생활과 비슷하다.
사랑곳 다운힐이 끝나면 자전거를 완전히 세차한 후 다시 기름칠을 하고 자전거를 정비해야 한다. 먼지들이 자전거 구석구석을 채운 채 샤워를 기다리고 있다. 브레이크와 나사들은 조임 상태를 재확인하지 않으면 큰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실제로 나도 타이어 전체를 잡고 있는 큐알레버가 풀려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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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평화의 탑으로 가기 위해 뗏목으로 물줄기를 건넌 일해. (오른쪽) 사랑곳 다운힐. 길을 휘감고 내려가는 속도감은 잡념을 말끔히 날려버린다.
평화의 탑까지 올랐다가 신나는 다운힐
페와 호수 오른쪽을 따라 평지의 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 다시 비포장의 먼지 날리는 돌길이 나타난다. 이 길로 들어 물이 말라붙은 호수의 끝을 지나면 작은 물줄기가 호수로 유입되는 상점 입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작은 뗏목으로 물줄기를 건너 반대편에 위치한 마을로 건너간다. 누구나 자전거를 이용해 페와 호수를 일주하고 싶어 하지만, 전체를 돌아볼 수 있도록 일주도로가 만들어져 있지 않다.
물줄기 오른쪽으로 가면 질퍽한 논으로, 계속해서 자전거가 달리지 않으면 멈추고 만다. 진흙 속 라이딩은 그렇게 끊임없이 추진력을 가져야만 바퀴가 진흙 속으로 빠져들지 않고 굴러갈 수 있다. 형욱은 몇 달만에 타는 자전거라 진흙 속에서 자전거를 전진시키지 못해 자전거도 신발도 온통 진흙탕으로 범벅이 됐다.
주변을 지나가는 현지인들은 ‘왜 진흙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말 한 마디를 던지고 간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저 미친 외국놈들, 돈이 많아 배가 불러 이상한 짓을 하는구나’ 하는 정도의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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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께 경주하던 아이들과 함께.
- 사랑곳 정면에 위치한 평화의 탑을 향한다. 페와 호수 하류 쪽 댐을 내려가 인도로 이어진다는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오른쪽 산으로 부처님 그림이 그려진 이정표가 나타난다. 초행이라 마을에서 물어보니 길을 알려준다. 그런데 차와 자전거는 산 위로 갈 수 없다며 자전거를 상점에 보관하고 가야 한다고 일러준다. 하지만 그냥 한번 올라보고 싶다고 말하니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차도 갈 수 없는 급경사 길을 자전거로 올라간다니 너무도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산위로는 붉은 흙으로 지은 전형적인 네팔 가옥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비포장 산길로 접어들자 경사가 생각보다 좀 완만한 마른 흙길이다. 그런대로 올라가볼 만해 다행이라 생각하고 힘차게 페달을 저어 가는데, 점점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작은 돌들이 워낙 많아 타이어가 점점 접지력이 약해지며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눈길은 계속해서 산 위로 가지만 능선 위의 탑은 보이지도 않고, 길은 계속 산을 휘감고 돌아간다.
몸의 체중을 앞으로 밀며 핸들바를 누르고 히프를 안장 앞으로 당겨 체중을 최대한 앞으로 가져와 무게를 최대한 타이어에 전달해 지면과 마찰을 최대로 하지만, 27단의 앞뒤 모든 기어를 변속해도 역부족이다. 결국 두 번이나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 올라간다.
이 날은 치경도, 형욱도 따라나서지 않았다. 이미 이곳의 경사와 상태에 대해 산악자전거를 빌려주는 현지 샵에서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1시간 이상 계속된 오르막길이 끝나고 다른 방향에서 올라오는 큰 도로와 만나는 지점에 도착하니 사륜구동차 한 대가 작은 상점 앞에 주차되어 있다. 아니! 이 차가 어떻게…. 야! 차도 올라올 수 있구나’ 생각하고 차량을 확인하니 무지막지한 4륜의 군용 차량이다.
길은 이제 더 이상 자전거로 진행이 불가능해 보인다. 정상은 걸어서 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나이가 칼을 잡았다면 무라도 잘라야지 하는 마음으로 페달을 저어간다. 등 뒤로는 땀이 옷 속을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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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골 네팔인들의 일상은 우리의 옛모습과 비슷하다.
- 평화의 탑에 도착하자 큰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고 있으며, 정말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 포카라를 내려다보고 있다. 조그마한 상점과 숙소의 아낙들이 나를 정말 이상한 짐승처럼 바라본다. 산골 언덕에 자리한 학교의 여교사 두 명이 지나가며 어디에서 올라왔는지 묻는다. 포카라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한국 사람이냐며 밝은 웃음을 짓는다. 너무 가고 싶은 나라라며….
페와 호수 방향으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자전거를 배에 싣고 포카라로 돌아올 수 있고, 올라간 길로 도로 내려올 수도 있다. 1시간의 오름짓은 온몸의 근육을 놀라게 했지만, 길을 휘감고 내려오는 속도감은 힘든 오름짓을 말끔히 날려버린다.
나는 언제나 자전거 위에서 3가지 경주를 한다. 첫째는 함께 달리는 동료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리는 사람과 사람의 경주다. 둘째는 언제나 변화하는 자연적, 인위적 요소와 만나 싸우며 나아가는 자연과의 경주다. 셋째는 가슴이 울리는 고통을 극복하고 끝까지 목표점을 향해 나아가는 내 자신과의 경주다.
나는 자전거 위에서 또다시 내 삶의 경주를 시작한다. 어디를 가나 나는 길을 만난다. 하지만 그 길은 내 길이 아니며, 내가 그 길 위를 달릴 때 비로소 내 길이 되며 길을 내어준다. 길은 나아가는 자만이 달릴 수 있는 삶의 길이다.
/ 글·사진 박정헌 노스페이스클라이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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