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4월 2일 제1일 부르심의 날 오전>
하루의 출발은 새벽이다. 빛과 밝음은 반드시 어두운 밤을 지나야 온다. 그래서 먼동이 터 오르기 바로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가 보다.
우리 주님의 부활 새벽도 그랬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의 무덤에 갔던 그날이었다. 무덤에 돌이 치워져 있었고 천사가 그들에게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마태오 28장 6절)고 말했지만 도대체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평안하냐?” 그러자 두 여인은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발을 잡고 엎드려 절하였다.(마태오 28장 9절) 그들은 통곡의 밤, 슬픔의 밤을 지 샌 뒤에야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스러운 부활의 새벽을 맞이했던 것이다.
사순의 질곡을 지나 부활의 축제가 두 주일 째 계속되고 있는 4월 2일 새벽 4시 50분. 벌써 성당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님이 물으신 대로 참으로 평안한 아침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떠나는 순례자들 그리고 그들을 마중하러 온 고마우신 분들까지. 새벽 미사를 드리러 한 시간 전부터 벌써 새벽에 도착하신 할머니들도 적지 않다.
늘 인자하신 미소를 가졌고 다른 사람보다 한껏 여유롭게 그래서 한 박자 늦게 말씀하시는 버릇을 가진 김진영 바오로 사목회장님, 다른 사람에게 까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시는 개척 정신의 산 증인 송봉자 아네스 전 현양위원장님도 보인다. 유미영 테레사 노인대학 학장의 밝은 목소리는 성당의 아침을 더욱 청초하게 만든다.
이번 순례에 참여하는 장상봉 스테파노 부회장(기획분과장), 이재돈 그레고리오 부회장(시설분과장)도 바삐 움직이며 일손을 돕는다. 특별히 순례단을 전송하러 새벽별을 보고 나온 은성주 소화데레사 부회장님, 박민숙 마리아 청소년 분과장 등 여러 환송객의 미소가 새벽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반가운 인사를 나눈 주임 신부님은 순례자들과 환송객들과 함께 기도하시자며 소성당으로 들어서신다. 순례를 떠나는 순간 먼저 우리 주님과 성모님께 먼저 인사를 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 아닐까? 그리고 브뤼기에르 주교님과 본당 수호성인이신 김제준 이냐시오의 전구를 통해 부활이요 생명이시며 길이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주실 것을 기도드린다.
우리 모두는 김대건, 최양업 어린 소년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유훈을 받들어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가신 길을 반대 방향으로 걸어 마침내 마카오로 갔던 사실을 기억한다. 그들은 하느님이 부르실 때 모두들 “예!”하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을 떠났다. 우리 순례단도 마찬가지였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리고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부르실 때 언제나 “예!”하고 응답할 수 있도록 등불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처럼 깨어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기도해 본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자 현양분과장이 순례지 답사를 위한 가이드북과 성무소일과를 나누어 준다. 대충 만들어도 될 책자였지만 정성의 향기가 책 표지에서부터 배어 있다. 몇 달간 정성스레 만든 단행본 같다. 정성과 기도의 향기가 뿜어 나온다.
문제옥 안나 현양분과장이 총괄하고 이정화 릴리안 분과위원이 예쁜 표지를 디자인했다. 가이드북은 - 브뤼기에르 주교 발자취를 따라서(조선 입국로에서 유해 이장로까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그리고 표지 그림은 브뤼기에르 주교의 친필 서한이어서 더욱 우리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가이드북은 현양사업을 위한 기도문, 한국 순교자들에게 바치는 기도, 현양일지, 순례지도, 브뤼기에르 주교 일대기-연표가 붙어 있다. 또한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편지 모두를 성경 말씀과 함께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게 만든 묵상 편이 있으며 마지막엔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십자가의 길’이 들어 있다. 그리고 부록으로는 이번 여행에도 함께 동행 하며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평화신문 리길재 기자의 순례지 가이드까지 정말 풍성하다.
순례단을 이끄는 목자는 염수의 요셉 신부님이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조선 교구에 들어와 사목을 했다면 필시 이런 모습이었을 게 틀림없다. 강직한 성품에 불의에 대한 양보도 없는 성격, 그리고 본질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단순함으로 꽉 차 있다.
하느님이 왜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일을 하필 개포 성당에 맡겼을까? 그건 아무래도 염 신부님, 그리고 개포동 교우들이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많이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조선 교우들을 돌보려는 단 하나의 희망을 향해 나선 주교님의 길엔 결코 망설임도 후회도 없다. 그리스도의 선함과 단순함은 위대한 행동만을 부르기 때문이다. 개포동 성당도 그런 정신 앞에서 주임 신부님이 이끌고 교우들이 뒤에서 밀며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사회에 신선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 천주교회는 선교사의 전교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그래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교회의 역사를 지녔다. 수많은 순교자의 피와 백색 순교자의 노고로 마침내 보편 교회의 길로 나선 위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개포 성당은 바로 그 순교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감히 일개의 지역본당에 불과한 개포성당이 감히 이토록 큰일을 할 수 있으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한 일을 꿈꾸었고 또 현실에 옮겼으니 이 또한 주님의 크신 섭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아침이다.
고요한 아침의 출발시간에도 너무도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 문제옥 안나 현양 분과장이다. 출발 전날에도 저녁 늦게까지 남아 현양분과위원들과 이것저것 확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 가서 또 순례자들을 잘 먹이기 위해 야채와 김치까지 따로 준비하는 분이다.
문 안나 분과장은 필시 어릴 땐 금이야 옥이야 사랑을 받으며 컸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시집을 가도 막내아들에게 갔으니 그저 누리며 살았을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본격적으로 성당에 오면서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마태오 19:30)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뤄지고 말았다. 집에선 막내로 물을 튀기고 살았지만 이 큰 성당에 와서 맏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숨 쉴 겨를도 없이 바쁘다.
첫째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코 9:35) 맏며느리는 고난의 길이다. 모든 게 그의 일이 되고 말았다. 순례 전에는 가이드북과 성무소일과를 만드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순례객 간식과 야채를 준비하느라 매일 밤잠을 설쳤다.
순례 출발 아침 문안나 분과장의 눈은 충혈 되다 못해 마치 토끼 같은 모습이다. 그래도 이곳저곳을 여전히 뛰어 다닌다. 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옆에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사랑의 향기가 느껴진다. 누구보다 낮은 자리로 내려가 일하는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성모님의 향기다. 어떤 사목위원 형제님이 “문 안나와 같이 회의라도 하면 괜히 신이 난다.”고 했는데 이번 순례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고 아름다울 게 분명하다.
그 옆에서 덩달아 바쁜 사람이 이상욱 베드로다. 한때 청소년 분과장을 맡았으니 현양 분과 출범과 함께 부분과장으로 ‘강등’된 셈이다. 이 베드로는 왕요셉 발바닥처럼 역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서한집이나 여행기를 읽을 때 등장인물 중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왕요셉이다. 주교님의 조선 입국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으며 그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던 우리 조선 교회의 숨은 은인. 이 베드로는 늘 그런 모습으로 일하고 다닌다.
버스 앞에 마치 파수병처럼 서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리길재 기자다. 그를 보면 한 눈에 선함이 느껴진다. 난 리길재 기자를 보면 늘 베드로를 떠 올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서를 아름다운 중국의 시로 번역했던 오웅경(John Wu)박사가 묘사한 베드로다.
유교, 불교, 도교의 깊은 지식을 다 가졌으며 개신교의 일파인 감리교를 거쳐 마침내 귀정(歸正)해 성모님의 품에 안긴 오박사는 『동서의 피안』(가톨릭출판사)이란 책에서 베드로 성인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베드로는 오른쪽을 들어 올려주면 왼쪽으로 넘어지고 왼쪽을 들어 올려주면 오른 쪽으로 넘어질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고 너무 착하다는 표현이 아닐까?
리길재 기자의 선함이 꼭 베드로의 그것과 너무 닮았으니 브뤼기에르 주교님도 자신을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리길재 기자를 너무 사랑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가 순례길에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반석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든든하다.
이번 순례단엔 귀한 손님인 한수산 작가도 왔다. 집이 양평인지라 개포동 가까운 호텔에 하루 먼저 와서 대기하다 새벽녘에 택시로 날아왔다. <부초> 이래 수많은 작품으로 한국의 문학을 풍성하게 만든 바로 그 장본인. 젊은 날 국민배우 안성기 저리 가라할 정도의 꽃미남이었고 소설계에 흔치 않았던 오빠부대를 몰고 다닌 그 스타가 아니던가?
이젠 그에게도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그 역시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를 넘어서며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그 상처가 아직도 그의 얼굴과 가슴에 남아있지만 이젠 성모님의 손길이 가득한, 그래서 그 아픈 상처마저도 감사하고 은총으로 받아들인 작은 성자의 모습으로 우리의 순례길을 찾아온 것이다.
그 질풍노도의 어두움을 넘어왔을 때 필시 우리 주님은 한수산 작가에게 물었을 것이다.
“평안하냐?”
한 작가는 마침내 “주님, 이제 평안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그가 연재해왔던 성지 순례기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를 103회나 연재한 피로도 잊은 채 다시 달려온 브뤼기에르 주교의 길. 주교님의 일생을 요약한다면 바로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으신 착한 목자”이니 그 제목만 봐도 한수산과 브뤼기에르 주교는 하느님의 섭리 안에 그 전부터 함께 해 왔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느껴진다.
사람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들 한다. 한수산의 눈은 늘 눈물을 그렁그렁 담고 다니는 것 같다. 툭하고 치면 철렁철렁 눈물이 차고 넘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하다. 세상 사람들이 그저 가벼운 상처로 여기는 작은 일조차 그에겐 가슴을 치고 통곡하며 온 몸으로 느껴야 할 버거운 짐이 된다. 그 눈물이 강을 이루면 그것이 소설이 되고 순례기가 된다. 그래서 오늘의 새벽은 더욱 특별하다.
마침내 특별한 새벽, 버스는 출발한다. 버스 안에서도 버스 밖에서도 손을 흔든다. 사랑이다. 버스 밖의 손은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자취에서 많은 주님의 은총을 받기를 기도하는 기도손이다. 버스안의 손은 여러분의 기도로 잘 다녀오겠다는 또 다른 기도손이다. 흔드는 손 모두 하나의 기도손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현양 사업을 통하여
저희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이 날로 깊어지고
개포동 성당 공동체가 하나로 일치되어
주님 보시기에 더욱 더 아름다운 공동체로 성장하도록
늘 함게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브뤼기에르 주교 현양 사업을 위한 기도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