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루
죄송하지만, 비뇨기과에 가면 성인병 중에 그의 이름을 딴 병도 있다. 성지루. 그의 성도, 이름도 특이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특이한 이름과 맞물려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낸다.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다시 또 죄송하지만, 예전 같으면 그 얼굴로 TV 탈렌트가 되겠다거나 영화배우가 되겠다고 했다면, 주위 어른들에게 면박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바람난 가족]에서 우편배달부역으로 등장해 술을 먹고 [니들이 광국이를 알아?]라는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가 결국 교통사고를 일으킨 황정민과 시비가 일다가 직장을 잃자, 황정민의 아이를 빌딩 밖으로 집어 던져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는 극단적 배역을 소름끼치게 표현했었다. 이런 그의 연기를 보면, 그에 대한 모든 선입견을 지워버릴 수밖에 없다. 성지루는 이 작품으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는 또 [가문의 영광]에서는 호남 조폭 패밀리의 일원 장석태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고, [선생 김봉두]에서 학교 소사 춘식 역을 맡아 묻혀버릴 수 있는 배역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또 TV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폭풍 속으로][선녀와 사기꾼]등에 출연하면서 사회의 하층계급에 속하는 조연급 인물들을 맡아 맛깔스러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제 성지루는 만년 조연에서 주연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성지루의 첫 영화 주연 작품인 [손님은 왕이다]와 에릭의 촬영중 자동차 사고로 방영이 중단된 [늑대]의 뒤를 이어 긴급하게 편성된 [내 인생의 스페셜]이 동시에 대중들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우에게서 드라마가 편성에 잡혔다는 연락을 처음 받았다]고 말한 성지루는, 첫 영화 주연작인 [손님은 왕이다]의 홍보를 위해 모든 스케쥴을 맞춰 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여름 촬영되었다가 그동안 편성 시간을 잡지 못해 창고에 묵혀 있던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다. 김종학 프로덕션에서 사전 제작된 [내 인생의 스페셜]은 지난 해 여름 촬영되었다. 성지루는 의리 빼면 시체인 깡패 백동구 역을 맡아 명세빈 김승우 신성우 등과 함께 주연 급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이 드라마는 경쟁 시간대에 있는 타방송사의 [서동요][안녕하세요 하느님]과 맞서 10%대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긴급 편성되어 사전 홍보 없이 방송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서는 그의 원래 몸무게인 80kg의 넉넉한 몸집으로 등장하지만, [손님은 왕이다]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발사 안창진. 영화 캐릭터를 위해 살을 14klg 정도 감량해서 홀쭉한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TV 속에서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님은 왕이다]의 모든 이야기는 성지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정말 지금, 성지루 인생의 스페셜 한 시간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손님은 왕이다]에서 이발사를 맡고 있지만 군대 시절 그는 정말 깎새였다. 전 소대원들의 머리를 자신이 깎아주었다고 했다. [머리를 깎는 게 간단한 것 같지만, 가위를 잡는 데도 몇 가지 룰이 있다.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다른 손가락은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 엄지손가락의 날렵한 움직임으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깎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배역을 맡고 서는 다시 두 달 동안 이발소로 출퇴근하면서 이발하는 법을 배웠다. 제작진은 원래 극중에서 이발사가 명계남의 수염을 미는 클로즈업 쇼트는 대역을 쓰려고 했는데 성지루가 열의를 보임에 따라 대역 없이 촬영을 했다. 성지루는 촬영기간 중에도 스텝들의 면도를 도맡으며 끊임없이 실력을 향상시켰다는 것이다.
오기현 감독의 데뷔작 [손님은 왕이다]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독특한 설정과 반전이 뛰어난 작품이다. 이발사 성지루, 그의 부인 성현아, 그리고 이발소를 찾아와 은밀하게 이발사를 협박하는 이상한 손님 명계남이 등장한다. 성지루는 [가문의 영광]이나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에서의 코믹한 모습이 아니라 감정의 절제를 통한 내면연기로, 딜레마에 빠진 이발사의 고뇌를 깊이 있게 전달하면서 극의 내적 흐름을 탁월하게 조절한다.
성지루. 그의 특이한 이름은, 예명이 아니라 본명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 이름 얘기를 꺼내면 지갑에서 주민등록증부터 꺼내 보여준다. 정말 그의 주민등록증에는 성씨인 성자만 한자로 쓰여 있고, 이름인 지루는 한글로 적혀 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1968년 10월 17일생. 올해 39살이다. 어머니가 저녁 무렵 진통을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버지가 밭일 나갈 때까지 진통을 했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지루하게 안나오는겨?]라고 한 말씀 하셨고, 성지루는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어머니의 자궁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2남 1녀의 둘째로 태어났는데 형과 여동생은 가운데 돌림자인 지를 쓰는 한자 이름이지만, 성지루는 돌림자는 쓰고는 있지만 한글 이름이다. 청소년기, 그가 이름 때문에 겪었을 고충은 안들어도 훤하지 않은가? 아버지는 억지로 알 知에 누각 樓, 그래서 앎의 장소라는 뜻으로 풀이해주기도 했지만, 성적인 것에 민감한 사춘기 소년들이 그를 놀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이런 일들은 군대시절에도 이어진다. 알다시피 군대 졸병들은 계급이 올라가도 언제나 이름은 제외하고 성뒤에 계급을 붙인다. 성이병, 성일병, 성상병, 모두 성병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놀림감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하고 대학로로 진출했다. 그리고 한국 연극의 중심에 서 있는 오태석 사단의 핵심 멤버로 성장했다. 그에게 지루라는 이름을 안겨준 그의 아버지는 현재 6개월째 뇌출혈로 투병 중이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는데 누구보다 가장 즐거워 하실 아버지가 영화를 볼 수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성지루는 무뚝뚝한 아들이었다. 자신의 근황을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 몰래 객석에서 성지루의 첫 연극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세 번 던진 까닭은]을 보았다. 그 아버지는 이후 아들의 팬이 되어서 아들의 연극 공연이 있으면 가족들을 데리고 대전에서 상경해서 함께 연극을 보았다. 성지루는 가족들이 객석에 앉아 있는 날에는 더 긴장해서 대사를 틀리기도 하였다.
그가 지나가는 행인 같은 단역이 아니라, 배역을 맡고 영화에 출연한 것은 임상수 감독의 [눈물](2001년)이 처음이다. 그 뒤 차승원 이성재 김혜수 주연의 [신라의 달밤](2001년)에서는 덕섭으로, 아프리카(2001년)에서는 여성 강도 일당을 뒤쫒는 형사 김반장으로, [공공의 적](2002년)에서는 대길, [라이터를 켜라](2002년)에서는 만수, 그리고 [H](2002년), [가문의 영광](2002년), [휘파람 공주](2002년)를 거쳐 [바람난 가족](2003년)과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년), [선생 김봉두](2003년), [불어라 봄바람](2003년)을 찍는다. 성지루는 2004년 한 해는 연극 무대로 돌아갔다가, 다시 2005년 [간 큰 가족]의 박상무 역을 거쳐, 첫 주연작인 [손님은 왕이다]에 이르렀다.
[손님은 왕이다]의 흥행 결과에 따라 성지루의 몸값은 달라지겠지만, 그러나 그가 변함없이 뛰어난 배우로서 우리들 곁에 머무는 것은 확실하다. 어떤 배역을 맡아도 소홀하지 않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상상 이상의 그 무엇을 보여주는 성지루는, 단순히 감초 연기자로서가 아니라 그가 아니면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연기 영역을 한국 영화사에 쓰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