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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서울-신촌 아트 페스티벌' 개최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와 서대문구는 내년 3월 29일부터 4월3일까지 신촌지역 대학교,
거리, 영화관 등에서 '제1회 서울-신촌아트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페스티벌은
△국제학술 심포지엄과 '미디어ㆍ아트ㆍ컬쳐(MAC) 2004'
△현장 설치예술과 예술광고 공모전,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Univer-City'
△`서울국제대학영화제'
△`젊은 신촌 공연예술 무대' 등 4개 부문으로 진행된다.
'서울국제대학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에는 5천 달러(600만원)가 수여되고, `젊은 신촌
공연예술무대'에서는 대학 동아리 공연과 벼룩시장, 세계 민속문화 축제 등이 열린다.
페스티벌에는 연세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서강대, 홍익대, 명지대, 상명대, 추계예술대 등 7개
대학교ㆍ총학생회와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등 11개국의 대사관ㆍ문화원이 참여한다.
사무국은 "젊음의 지역이라는 특수성을 최대한 살려 젊은 신촌문화를 가꾸기 위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며 "페스티벌을 통해 신촌을 글로벌 시티로 브랜드화하고미래예술의 국제적 중심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병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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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제 1회 신촌 거리 문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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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 거리 문화 축제
상인은 물건을 파는 행위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하고 있는 거리공간을 활력있게 만들고
시민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도 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소개되는 사례를 통해서 상가거리를 만들어 나가는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신촌 거리 문화 축제의 시작과 진행과정
92년 이화여대 앞의 대신동, 창천동 상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상가지역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사람들을 모여들게 해야겠다는 취지로 모인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상업적인 이익만을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니다. 이는 축제기간동안 물건 값을 정상가보다 싸게 파는 것, 지역의 다양한 문화를
알리는 것에 주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시작은 이대 앞 형제갈비 사장이 시작했다. 형제갈비 사장이 주도하여 거리문화축제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상인들을 설득해 나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제 1회 거리문화축제를 열게 되는데 행사내용을
구성하고 진행하는 데에는 이벤트 회사의 힘을 빌어서 하였다.
신촌 문화 축제는 97년까지 차근차근 진행되다가 98년부터 일시 중단되었다 한다. 외환위기사태로
축제를 열 만한 여유를 잃은 것이다. 경제적 사정이 99년도까지 풀리지 않아 2회 연속 못 열고 있다.
올해도 열려고 하는데 이벤트회사들이 협찬을 주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2. 상인들의 진행방식
1회때 대신동쪽의 이재철 상가번영회 회장이 주도하였다. 2회때에는 신촌로타리와 연세대앞
상가거리인 창천동쪽이 주도하게 된다. 크게 볼 때 이화여대앞과 연세대앞 상권이 이어지기 때문에
같이 결합해서 축제를 진행할 필요성을 느끼고 매 회 대신동과 창천동이 번갈아 행사 주도를 하자고
합의한 것이다. 또한 그 해 진행하고 남은 돈은 다음 회 진행할 곳으로 이월해 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회 때 행사를 치르고 남은 돈을 대신동쪽으로 넘겨 줘야 하는데 당시 창천동
상인이 이를 넘겨 주지 않았다. 그 이후로 서로 돈을 넘겨 주지 않는다 한다.
행사준비는 3개월 정도 걸린다. 15명정도의 추진위원회가 주측이 되고 대신동, 창천동 동장들과
상인들, 공무원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3. 재원마련
행사준비를 할 때 기본적으로 추진위원장들이 500만원씩 부담한다. 그리고 상인들도 일정정도
부담한다. 그런데 상인들한테 일방적으로 돈을 내라고 하면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청사초롱을 만들어 상호이름을 넣어 거는 것이다. 초롱 1개당 20,000원씩 받는다.
그렇게 하면 약 3천만원정도 모아지는데 돈이 모아지면 이벤트회사와 행사내역을 계획한다.
추진위에서 낸 돈을 기본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협찬을 받아서 운영한다.
4. 함께 하는 사람들
기본적으로 구청과 경찰서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면 진행이 어렵다. 상인들이 무엇을 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장사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행정쪽의 힘을 빌어 공공성을 띤 성격의
행사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구청쪽에서도 상인들이 주도하여 축제를 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단순히 물건 파는 행위만이
아니라 지역의 문화를 알리고 공유하는 내용이 주이기 때문이다.
구청에서는 5천만원을 지원한다. 가장 고마운 것은 경찰서라 한다. 차가 못 다니도록 도로를 막는
일부터 공연때 질서유지를 하는 것까지 힘든 일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구청과 경찰서가 도와 주기 때문에 원활하게 진행하고는 있지만 관과 협조해서 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한다.
5. 우여곡절들
92년 처음 할 때 미인선발대회를 추진했었다. 미장원에 연락해서 내용을 마련하는데 이화여대
학생들이 관이 주도해서 소비문화를 부추기고 낭비한다고 반대하면서 데모를 하였다. 내용이 그다지
건전하지는 않지만 다양하고 재미있는 행사를 하고 싶은 마음에 보다 넓게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상인들의 불찰이기는 하지만 관이 주도해서 이끌어 간다는 것에는 학생들이 잘 못 생각하는 지점이
있었다.
95년도 4회 행사 때 처음 대학교 학생회장들과 같이 하려고 했다. 주변의 경기, 상명, 항공대,
이대, 서강대, 홍대, 명지대, 연대 등 학교 학생들과 주민이 같이 머리를 맞대고 행사를 만들자는 게
애초 취지였다. 학교에서도 참여하고 아래, 위 동네의 참여를 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행사일정을 잡고보니 95년도 5월 18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