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와 오리엔탈리즘의 종언
- 한동대 정진호 교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가 된 에드워드 사이드가 있다. 그는 1978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세계적 석학의 반열에 올라선다.
역사적으로 항상 동양에 뒤쳐져 있던 서양인들이 기독교 문명을 먼저 받아들인 이후,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단숨에 동양을 압도하는 과학기술 문명과 군사력으로 제국주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은 비교적 근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동양의 대부분 국가가 서방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전락한 이래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에 대한 암묵적 멸시와 편견의식을 가지고 지난 150년을 보내왔다.
그들의 잠재의식 가운데는 서양인들은 항상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며 위생적"인 반면 동양인들은 "미신적이고 더럽고 비과학적인 반문명국가"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것이다.
그 같은 서양인들의 의식 세계는 그들이 만들어낸 각종 예술 작품과 디즈니 만화에서도 여과없이 들어날 뿐 아니라 심지어 동양을 찾아온 서양 선교사들에게서 조차 종종 나타나곤 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양인들이 지닌 그 같은 집단심리현상의 총체를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칭하면서 날카로운 문명비판을 가하였다.
그 오리엔탈리즘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까지 예외없이 이어져온 대세였고, 그 피해자인 동양인들 역시 잠재적 열등의식으로 오랜 세월 길들여져 왔다.
서양문물을 신속히 받아들여 준서방국가로 행세하면서 G7의 말석에 앉아 오리엔탈 속의 서구인 행세를 해 왔던 일본만이 그 예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가 그 모든 것을 송두리채 흔들어놓고 있다.
코로나의 기승 속에서 3월 2일 부터 전국에 흩어진 학생들을 상대로 온라인 강의를 시작한 한동대학에서, 강의 첫 시간에 내가 꺼내든 말은 이것이었다.
"여러분은 앞으로 코로나 이전과 전혀 다른 코로나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나는 다시 한번 <과학기술과 인간정신 >이라는 과목 강의 중에 이번 코로나 사태가 가져올 중요한 의미 중 하나를, 지난 20세기를 통해 서구사회가 지녀온 “오리엔탈리즘”이 종언을 고하는 중요한 상징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지금 한국이 해내고 있는 이 놀라운 방역 위생체계 앞에서 G7국가는 당혹감을 넘어 경이로움과 두려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1세기 전만 해도 조선이라는 이 나라는 서구인들의 눈에 너무나 미개하고 더러워서
자신들이 키워낸 일본이라는 선진문명국가의 식민지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던 그런 나라였다.
그런데 그 판이 뒤집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60~70%가 코로나에 걸리게 될 것이고, 우리 주변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한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예측이 맞아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리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영국 총리는 자국민을 방치상태로 내버려두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발언을 하고 있는 셈이다.
120년전만 해도 전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의 초라한 현실이 독일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국가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경이로운 방역체계를 소개하는 BBC의 강경화 장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저 사람을 영국 총리로 데려와야겠다고 소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현재 유럽국가들이 겪고 있는 일은 초유의 사건이다.
모든 곳에 헌병과 경찰이 깔려서 봉쇄되어 고속도로가 막히고 통행증이 있어야만 다닐 수 있고 많은 나라들이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마스크를 살 수 있고, 사재기로 대형 마트가 텅텅비고, 앞으로 유럽이 이런 디스토피아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서서히 그들을 엄습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예견한 것처럼, 이번 코로나 사태는 순서만 다를 뿐이지 세계의 모든 국가가 한번은 거쳐야할 홍역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대처하는 모습과 결과물은 각 국가별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조만간 한국은 10위권 밖으로 물러날 것이고 결국 미국이 중국 이태리와 2,3위를 다투는 나라로 부상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의 상황이 바로 비교가 될 것이다. *4월5일 현재 한국 17위, 미국1위 중국 6위, 이는 첨예한 미중 패권전쟁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기에 더욱 의미가 큰 것이다.
만일 중국만이 첨단 IT인프라와 그동안 갖추어온 전국민 감시 시스템인 텐왕 시스템을 가동하여 코로나를 조기 종식시킬 수 있음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서구사회가 견지해온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되면 중국은 더 급격히 빅브라더 사회로 진입할 것이고, 포스트 코로나의 서구 사회도 크게 흔들리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다가올 코로나는 더 강력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이 중국식의 봉쇄와 통제 정책이 아닌 투명한 정보공개와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한채 이 사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면(아직 결코 맘을 놓을 시기는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 시스템을 지닌 서구 국가들이 한 가닥 희망의 한숨을 내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유럽과 미국의 전 매스컴이 유래가 없이 한국의 방역체계를 향해 보도의 홍수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식 방역체계의 성공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체제경쟁의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전쟁 폐허 속에 일어난 이 작은 나라 코리아가 세계 문명사의 전환을 가져오는 첫 단추를 끼고 있다.
BTS와 ⟪기생충⟫ 열풍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직후에 벌어진 코로나 사태가, 이제 전화위복이 되어 서양인들에게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구시대의 유물을 역사의 뒤안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120년전 19세기에서 20세기로 올라가던 바로 그 순간, 대영제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열역학 제2법칙으로 유명한 과학자 윌리엄 톰슨(켈빈경)에게 새로운 세기를 여는 키노트 스피치를 부탁했다.
톰슨은 대영제국의 찬란한 미래를 예견하며 이제 인류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과학적 발견이 끝났기에 앞으로의 세상은 그것을 활용하여 어떻게 유토피아를 만들 것인가 그 과제만 남았다라고 장미빛 포부를 밝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어 살아왔던 유럽과 미국의 서방세계는 21세기의 암울한 디스포피아를 염려하면서 오히려 동양의 작은 나라에 희망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끝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오리엔탈리즘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서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되고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개념이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라는 폭넓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adie Said, 1935~2003)가 발간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서구 국가들이 비(非)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 확산되었는지를 분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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