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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시 23: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으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깊고 깊은 홍해를 육지처럼 걸어서 건넜고, 모래와 바람밖에 없는 광야에서, 전갈과 사나운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광야에서, 아무 부족함이 없이,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건넜는데 있어서, 무엇을 했습니까? 광야 40년 동안, 그들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그 험난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들과 함께 했던 모세는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신 32:10)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와 만나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고,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고,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셨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도움 속에 살아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크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것들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의 시”라는 표제어가 붙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이 쓴 것은 분명한데, “언제 썼을까?” 하는 것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목동 시절에 썼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왕이 된 후,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목숨이 위협을 받을 때, 썼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의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기 보다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 우리의 죄악을 너무나도 잘 아셔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두렵고 무서우신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함부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너무나도 높은 곳에 계시고, 너무나도 멀리 계시는 분으로만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찾아오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친밀한 대화를 나누시며, 우리와 가깝고 친근한 분이라고 하는 생각을 감히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선한 목자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100편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하여,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라고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양이라고 하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양은 어떤 동물입니까? 양과 함께, 가까이에서 생활한 적이 없기에, 양은 깨끗하고, 순하고, 말을 잘 듣는 온순하고 착한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면서도, 누군가를 향하여, 쉽게 하는 욕이 있다고 한다면, “*새끼”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중동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욕 중의 하나가 “양같은 놈”이라고 합니다. 양은 생각도 모자라고, 고집도 세고, 어리석고, 지저분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양은 힘이 없고, 연약할 것이고 생각하는데, 앞발을 뻗대고,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으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대단히 힘이 센 짐승이라고 합니다. 실제 양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양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 센 양처럼, 하나님을 떠나 불신앙과 불순종의 길을 갔다고 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양은 선천적으로 눈이 아주 나쁜 동물입니다. 겨우 2-3미터 안에 있는 것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독수리는 저 높은 곳에서도, 먹이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내려와 낚아채 가는데, 양은 얼마나 눈이 나쁜지, 앞에 있는 것만, 간신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쉽게 길을 잃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양은 자기 방어를 위한 힘센 무기도 없습니다. 튼튼하고 강한 뿔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빨리 도망갈 수 있는 힘센 다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짐승들의 먹이감이 되기가 쉽습니다. 다시 말해, 양은 목자가 없이는 혼자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인 다윗은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동이었기 때문에, 양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미련한 양과 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아주 다급하게, 신도 신지 못한 채, 예루살렘을 빠져나가야 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신하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도망치는 다윗을 향하여 저주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한 나라를 호령하는 왕이라고는 하지만, 살기 위하여 도망쳐야만 하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를 배반한 신하들,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 사람들, 그를 죽이고자 따라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않았고, “이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라고, 자기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저들에게, 지금 내가 당한 수치와 모욕보다도 백 배, 천배 더 갚아 줄 것이다”라고 복수를 다짐하지도 않았고, 그 힘들고 어려운 순간, 오히려,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주께서 나의 슬픔이 변하여 내게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5,11)라고 고백한 적이 있는데, 신도 신지 못하고, 살기 위하여, 급하게 도망치고있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슬픔 대신 기쁨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살기 위하여, 다급하게,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는 다윗에게 무엇이 보였을까요?
이번 설 명절에는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많은 눈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었기에, “언제 서울을 갔다 오는 것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월요일, 눈이 안 내리고 해서, 서울을 가게 되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도 눈이 내렸지만, 그날 저녁, 내려오는 길에, 음성 부근에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만났습니다. 사방이 캄캄하고, 도로 위에는 눈이 잔뜩 쌓여 있고, 눈이 쏟아지고 있기에, 길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겨우 보일까말까 하는 앞차들이 지나간 자국을 보고,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눈은 내리지만, 눈이 도로 위에 쌓여 있는 지역을 벗어났을 때, 웬지 모르게 마음에 안정과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도, 그곳을 벗어나면, 화창한 날씨를 만나기도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밤 중, 도망치는 다윗에게, 무엇이 보였을까요? 지금처럼, 길가의 가로등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등불로 길을 환하게 밝히면, 그를 따라오는 적들이 그를 쉽게 발견할 수 있기에, 등불도 없이, 어둠의 밤길을 서둘러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간신히 적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동트는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다윗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곳이 어디인가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았습니다. 그곳이 바로,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는 아닐지라도, 위기를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는 바로 그 자리가 푸른 풀밭이요, 쉴만한 물가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다윗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 들판에서 양을 칠 때에도, 사울 왕을 피하여, 황무지로, 광야로, 동굴로 도망칠 때에도, 젊은 시절, 전쟁터에서 적들과 마주하여 싸울 때에도,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도망칠 때에도, 하나님은 다윗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캄캄한 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셨습니다. 다윗을 인도하셨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라는 말은 “나에게 다시 새 힘을 주시고”,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라는 말입니다.
살기 위하여, 도망쳐야만 했던 다윗에게, 하나님은 다시 새 힘을 주셨습니다. 동트는 아침을 맞이할 때, 도망치느라 지쳤던 몸에 생기가 넘쳐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분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오셨습니까? 어떤 분으로, 여러분에게 찾아오셨습니까? 무섭고 두려운 분으로 다가오셨습니까? 아니면, 여러분과 항상 함께하시며,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찾아오셨습니까?
다윗의 삶을 보면,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의 삶이 온통 장미빛이었고, 실수 한 번 없고, 죄 하나 없는 완전하고, 완벽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의 풍파 많은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잘나고 똑똑한 형들 밑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그의 집에 찾아왔을 때, 어린 다윗 혼자 들판에 남아, 양을 지키고 있어야 했습니다.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장인되는 사울 왕은 그의 생명을 노리고, 그를 죽이고자 쫓아다녔고, 아내인 미갈에게서도 업신여김을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을 만났는데, 불행하게도 남편이 있는 여자였습니다. 노년에는 가장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 왕이 되겠다고, 칼을 들고 덤벼들어, 정처 없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고달픈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을 부요하게 하고, 그를 강하게 하고, 그를 위대하게 만들어 준 것은 금과 은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다윗의 목자이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다윗처럼, 목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1968년, 스웨덴의 중남부에 위치한 하보 마을에서,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난 “레나 마리아”라는 복음성가 가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자서전에서, “내가 태아였을 때도, 하나님은 내 곁에 계셨을까? 왜 하나님은 내게 이렇게도 많은 고난, 고통, 질병, 장애를 주셨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때로는 몸이 굳어지는 걸 느끼고, 무리하면 허리에 통증이 심하다. 팔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다. 나는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을 평생토록 찬양하고 싶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까? 정상적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마저 짧은 중증 장애인의 고백입니다.
레나 마리아는 감사할 수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원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목자되신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면, 우리는 행복하다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헬렌 스타이나 라이스”라는 시인이 쓴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가장 좋은지 아버지 아시니 / 불평할게 무어랴 / 우린 언제나 햇살을 그리나 / 비가 내려야 함을 하나님은 아시니 / 때로는 괴롬과 슬픔으로 / 우리를 시험하시는 아버지 / 그 시험은 벌이 아니라 / 내일을 맞이하라고 우릴 도우심이어라 / 거센 폭풍을 이겨야 / 자라나는 나무들은 힘을 얻고 / 끌로 날카로이 도려내야 / 대리석이 아름다움과 형상을 얻듯이 / 하나님은 부질없이 우릴 헤치지 않으시며 / 우리 아픔 저버리지 않으시리니 / 무엇을 잃게 하시면 다시금 가득히 얻게 하신다오”
힘들고 고달픈 환경에 놓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묵묵히 따라왔던 한 여인의 고백입니다.
사람들은 아무 어려움이 없이, 항상 평안한 삶만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항상 평안한 삶만을 살아가지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어떤 때는 평안의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거친 세파 속에서 허덕일 때도 있습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에서 쉴 때도 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치 양과 같아서, 우리의 앞날을 한 치도 볼 수가 없습니다. 때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절망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디로 가야 할지, 우리의 나아갈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의 길을 인도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누구일까요? 끝까지, 우리의 삶을 책임져주시고, 돌보아주시고, 인도해 주실 분이 누구일까요?
다윗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많은 환란과 고난을 당해야 했으며,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의 생명을 해치려는 사울왕의 추격과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양과 같이 한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얼마나 낙심하고 절망했겠습니까? 도망치다가 잡혀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까? 신도 신지 못한 채, 도망치는 그 순간,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겠습니까? 그런 위급한 순간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목자되신 주님께서, 다윗의 삶을 인도하셨습니다. 지쳐 쓰러져 있는 다윗에게 새 힘을 주셨고, 그를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를 끝까지 책임져 주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목자되신 주님은 우리를 돌보아주시며, 우리를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목자되신 주님을 믿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끝까지 따라감으로, 부족함이 없는 평안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목자되신 주님,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겠습니다. 오직 주님의 음성만을 듣겠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따르겠습니다.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 주옵소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의 삶을 돌보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