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 스토리] 손빈 편-제2회: ‘위위구조’, 복수극의 서막
(사진설명: 손빈이 귀곡자에게서 병법을 배우던 곳)
제2회 ‘위위구조’, 복수극의 서막
제위왕은 손빈과 병법을 논하면서 그에 감탄하고 그와 의기투합함을 느꼈다. 이 때 순어곤이 조(趙)나라 사신을 데리고 들어왔다. 조나라 사신은 조왕의 국서를 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위나라 대장군 방연이 갑자기 십 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한단(邯鄲)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조나라가 위태로우니 대왕께서 필히 출병하셔서 조나라를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때 순어곤이 말을 받았다.
“지난 번에 제가 한단에 가서 십 만의 군사를 빌려옴으로써 초(楚)나라 군대를 퇴각시켰습니다. 이번에 한단이 위태로우니 대왕께서 꼭 구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순어곤이 말을 이었다.
“위나라의 이번 출병은 중산(中山)을 다시 찾기 위한 것입니다. 한단 공격은 중산을 잃은 원수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조나라 군주는 제나라 군대가 한단의 위험을 제거하면 중산을 대왕께 선물하시겠다고 합니다.”
중산의 넓은 땅을 준다는 말에 위왕은 출병의 보수가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빈에게 말했다.
“과인은 선생을 대장군으로 임명해서 한단을 구하려고 하는데 사양하지 말아 주시오.”
손빈이 대답했다.
“형을 받은 제가, 이 불구의 몸이 어찌 장수가 되겠습니까? 전기장군을 장수로 임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전기를 대장군으로 하고 선생을 군사(軍師)로 하지요. 선생은 휘장을 두른 수레에 앉아서 모략을 내고 계획을 정하시오.”
“좋습니다. 저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셔서 대왕께 감사드립니다.”
전기가 군사를 거느리고 직접 한단으로 가려 하는데 손빈이 말렸다.
“우리가 한단에 이르면 아마도 한단은 벌써 격파되었을 것이네. 조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단으로 가기보다 위나라의 도읍인 대량(大梁)을 공격하러 간다는 소문을 퍼뜨린 후 중도에 군사를 매복하고 기다리는 것이 더 좋을 듯하네. 대량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방연은 반드시 군사를 거느리고 귀국할 터이니 그 때 우리가 중도에서 공격하면 쉽게 방연의 군사를 이길 수 있네.”
손빈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전기는 손빈의 계략에 따라 위위구조(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해 조나라를 구하는 작전을 펴기로 했다.
조나라는 구원병이 오지 않자 성을 지킬 힘이 없어 한단을 바치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방연이 사람을 보내 위왕에게 막 첩보를 전하려 하는데 제나라가 전기를 파견해 대량을 공격하려 한다는 급보가 먼저 도착했다. 그 소식에 방연은 크게 놀랐다.
“대량을 잃으면 안읍(安邑)이 위태롭다. 우리는 반드시 한단을 포기하고 우리의 근본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방연은 곧 군사를 거느리고 귀로에 올랐다.
방연이 군사를 이끌고 계릉(桂陵)에 이르자 제나라 군사와 조우했다. 제나라 군사가 팔문진(八門陣)을 친 것을 본 방연은 마음이 섬뜩해났다.
“손빈은 우물에 투신해서 죽지 않았는가? 설마 그가 제나라에 간 것인가? 제나라는 그의 고국(故國)인데. 만약 손빈이 아니라면 누가 이런 진을 친다는 말인가?”
하지만 방연은 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 부하들에게 분부했다.
“이 진형은 변화하며 그 중 공격하기 가장 어려운 진형은 긴 뱀과 같은 장사진(長蛇陣)이다. 머리를 공격하면 꼬리가 구원하러 오고 꼬리를 공격하면 또 머리가 구원하러 오며 가운데 부분을 공격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구원하러 온다. 내가 먼저 가운데를 공격할 터이니 너희들은 세 갈래로 나뉘어 진형이 장사진으로 변하거든 함께 공격해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볼 수 없게 하라. 그러면 이 진형을 파할 수 있다.”
방연이 금방 군사를 정렬시키자 제나라 군사들 속에서 전차 한 대가 앞으로 나왔다. 바람에 펄럭이는 군기에는 ‘전(田)’자가 씌어져 있고 갑옷으로 무장하고 손에 큰 칼을 들고 위풍 당당하게 호화로운 전차에 서 있는 전기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신(天神)을 방불케 했다. 긴 창을 들고 전기의 오른쪽에 선 위왕의 아들 전영(田嬰) 역시 하늘의 장수가 내린 듯했다.
방연이 외쳤다.
“제나라와 위나라는 원래부터 좋은 사이이다. 위나라와 조나라 간의 일이 제나라와 무슨 관계이냐? 왜 조나라를 구하러 왔느냐? 이유도 없이 위나라와 원수를 지는 것은 귀국으로 말하면 실책이다!”
전기가 방연의 말에 대꾸했다.
“조나라가 중산을 우리 대왕께 주겠다고 해서 우리 대왕이 나를 파견해 조나라를 구하게 하셨다. 위나라도 제나라에 땅을 떼어주겠다면 당장 군사를 물리겠다.”
방연이 노했다.
“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감히 이런 광언을 지껄이느냐!”
“네가 능력이 있으면 이 진형을 알아보겠느냐?”
“이 진형은 팔문진이다. 귀곡자 선생께서 몸소 나에게 전수하셨는데 너는 어디서 얻어듣고 와서 감히 나에게 묻는 거냐?”
“이 진형을 안다면 왜 감히 격파하지 못하는 거냐?”
“누가 감히 격파하지 못한다고 했느냐? 이제 내가 몸소 첫 교전에 나갈 것이다. 내가 이 진형을 격파하면 그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
그러면서 방연은 군사를 거느리고 첫 교전에 나섰다.
방연이 5천의 군사를 거느리고 팔문진에 들어서자 사면팔방에서 군기의 색깔이 변해 무슨 진형으로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고 창이 빼곡하게 줄지어 출로를 찾을 수 없었다. 방연은 좌충우돌하면서 제 자리에서 맴돌수 밖에 없었다. 자신을 둘러싼 군기마다에 모두 ‘군사 손(軍師孫)’이라는 글자가 씌어져 있는 것을 본 방연은 대경실색해 온 몸이 얼어붙었다.
“큰 일 났다. 손빈이 과연 제나라로 갔고 이 군중에 있구나. 내가 손빈의 계략에 빠졌구나!”
이 위급한 관두에 방영(龐英)과 방총(龐葱), 방모(龐茅)가 세 갈래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께 진형속으로 들어왔으나 역시 출로를 찾지 못했다. 방연의 5천 정예병은 전부 진형에 갇혀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하고 방연 혼자만 겨우 방영에 의해 구출되었다.
방연이 군영에 돌아와 점호해보니 2만 명의 병력을 손해보았고 방모도 전영에 의해 사살되었다. 방연은 너무 슬펐다. 방연은 장사진만 알고 방원변진(方圓變陳)를 모르니 패전은 정해진 결과였다. 손빈의 진법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신비한 것을 아는 방연은 손빈이 원수를 갚으러 왔음을 알고 더욱 간담이 서늘해졌다. 손빈이 절대 자기를 봐주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방연은 손빈과 계속 싸울 생각을 버리고 남은 군사를 거느리고 어둠을 타서 위나라로 돌아갔다.
위위구조(圍魏救趙)의 명성이 하늘을 찌르고 계릉의 완승으로 인해 제위왕은 크게 기뻐 그로부터 제나라의 병권을 전기와 손빈에게 맡겼다.
방연은 계릉전투에서 크게 패했으나 한단을 공격한 공이 있어서 병권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위혜왕이 방연을 봐준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