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천주교회의 박해
한국천주교회가 겪은 박해는 그 기간을 백여 년으로 잡는다. 이 기간에 순교한 신자들을 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리 교회가 설립되고 그 이듬해인 1785년부터 박해가 시작되었다. 김범우 토마스는 집에서 종교 모임을 가졌다 하여 잡혀가 고문을 당하고 유배되었다. 그는 형벌과 고문의 여독으로 유배지에서 숨을 거두어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그 후 대규모 박해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였다. 이외에 규모가 작은 박해는 1791년 신해, 1795년 을묘, 1815년 을해, 1827년 정해, 1860년 경신, 1901년 제주교난 등이다.
천주교회가 박해당한 것은 그 당시 국교 성격을 띤 유교 사회의 윤리와 천주교 신앙이 근본적으로 대립되었기 때문이다. 유교 사상으로 형성된 정치·사회·가족제도에 천주교의 보편·평등사상이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 동시에 천주교는 당쟁의 이용물이 되기 일쑤여서 박해 양상과 시기는 예측할 수 없었다.
박해 때 쓰인 형구
순교자들은 포청이나 형조에서 잔혹한 형구로 형벌을 받았다. 그 형구나 형벌을 간략하게 보겠는데, 여기 소개하는 것 외에도 법으로 금하는, 죄수를 발로 차거나 목을 짓누르는 것과 같은 온갖 행위가 있었을 것이다.
치도곤治盜棍: 죄인의 볼기를 치는 곤장형의 하나다. 곤장 중에 가장 큰 것은 길이 173센티미터, 너비 16센티미터, 두께가 3 센티미터나 된다.
주리 또는 주뢰周牢: 죄인을 신문할 때 두 발목을 묶은 다음 다리 사이에 막대기 두 개를 끼워 엇비슷하게 비트는 형벌이다. 가 위주리·줄주리·팔주리 세 종류가 있다.
육모매질: 여섯 모가진 방망이로 매질하는 것이며, 육모방망이는 역졸이나 포졸들이 가지고 다녔다.
학춤鶴舞: 죄인의 옷을 벗긴 뒤 양팔을 뒤로 젖혀 엇갈리게 묶어 허공에 매달아 놓고 사방에서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잔학한 형벌이다.
압슬壓膝: 죄인을 자백시키기 위한 고문으로 죄인을 기둥에 묶어 사금파리를 깔아놓은 곳에 무릎을 꿇게 하고 그 위에 널빤지나 무거운 돌을 얹어 자백을 강요했다.
이 밖에 사모창·톱질·용창이라는 더 참혹한 형벌이 있었다.
순교자들에게 형벌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감옥 생활이었다. 나무판자로 엮어 만든 감옥은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무덥고 악취로 가득 찼다. 끼니는 아침저녁으로 좁쌀밥 한 덩어리였고 물도 주지 않았다.
1877년 서울의 감옥을 돌아본 리델 주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형벌과 굶주림에 지친 그들을 보고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다 해골이 걸어 다니는 것으로 보였다. 굶주림만 아니라 형벌을 받아 터진 상처가 곪아 썩어가는 그들의 몰골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흉측했다."
다블뤼 신부는 기해년의 옥중 생활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우들은 좁은 감옥 속에 빽빽이 처넣어져 있었으므로 발을 뻗고 누울 수도 없을 정도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은 이 지긋지긋한 옥중의 고통에 비하면 고문은 문제도 안 된다고 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고름으로 바닥에 깔았던 멍석은 썩어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심한 병이 돌기 시작하여 이삼일 만에 죽은 신자도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배고픔과 목마름이다. 고문을 당하면서도 용감히 신앙을 내보였던 이들도 기갈을 참지 못해 항복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하루에 좁쌀밥 한덩이를 두 번만 주니 참다못해 썩은 멍석자락을 뜯어 씹기도 하고 옥 안에 들끓는 이를 잡아 먹기도 했다."
순교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신앙 때문에 굶어 죽은 교우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생각할수록 참으로 놀라운 신앙이며 위대한 신앙 선조들이 아닐 수 없다.
순교자시여!
가난과 굶주림으로 허기진 배를 기도로 채우며, 달빛을 대낮 같이 여기면서 신앙의 만남을 위해 새벽이슬로 짚신을 적신 순교자시여!
칠흑 같은 어둠을 묵주구슬로 밝히면서 진복팔단(참행복)을 생활로 나타내 보이며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는 포졸을 피해 주님 말씀 전하느라 골짜기를 큰길처럼 걸은 순교자시여!
교회 서적을 족보처럼 귀중히 여기고 십자가와 상본을 정성스럽게 품고 다니며, 배운 교리를 이웃에게 가르치고 기도문을 열심히 외면서 신앙의 참모습을 보여준 순교자시여!
고향을 등지고 낯선 고을에서 밤새 기도하고 울먹이면서 자신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먼저 이웃의 아픔을 위로하며 함께 나눈 순교자시여!
포졸에게 끌려가면서도 예수·마리아를 부르며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언제나 순교의 은혜를 빌면서 겸손되이 용덕을 키워 나간 위대한 순교자시여!
무서운 형벌에 못 이겨 배교하고는 잘못을 뉘우치며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배교 소식에 슬퍼하고 참회 소식에 기뻐한 우리 조상 순교자시여!
할머니가 시퍼런 칼날을 받아 순교하셨고 나이 어린 소년·소녀들이 용감하게 치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로 감사기도를 드린 순교자시여!
피비린내 가득한 감옥, 기갈과 고통으로 넘쳐난 감옥 안에서도 하느님께 기도하고 서로 위로하며, 배고픔에 온몸이 조여드는 고통을 참아가면서 노약자나 젖먹이가 딸린 어머니들에게 주먹밥을 양보하며 눈물겨운 사랑을 보여준, 배교를 강요하는 포교에게 오히려 차분하게 교리를 설명한 순교자시여!
끝내는 수레에 실려 사형장으로 가면서도,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영원한 고향을 그리워한 순교자시여!
휘두르는 칼에 목이 떨어지고, 굶주림에 지쳐 일어서지도 못한 채 잔혹한 형벌로 숨을 거두고, 몽둥이에 살이 찢기고 뼈가 으스러진 채 쓰러지거나, 포교에게 짓밟힌 채 목에 밧줄이 감겨 죽거나 온 세상이 빙빙 도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열병으로 고이 눈 감았던 우리의 조상 순교자시여!
저희가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까?
어떤 기도를 바쳐야 합니까?
이 9월에 무슨 생각을 해야 합니까?
순교자시여!
우리나라와 마을, 가정을 굽어살피시어 나약한 저희에게 순교정신을 가르쳐 주소서.
거룩한 순교자시여! 저희와 늘 함께하면서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103위 순교성인과 함께하는 30일 묵상/ 박도식 엮음/ 바오로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