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때 만들어진 밀면… 맛은 냉면과 비슷, 값은 저렴 피란민들 '짝퉁냉면'이라 불러
1990년대부터 냉면 인기 추월, 현재 냉면집보다 4배 더 많아… 부산 역사의 아이콘으로 우뚝
부산 '밀면'
"부드럽고, 배고픈 사람 금세 배부르고, 가격도 저렴하고…." "맵고 새콤하고…부산 사람의 성향을 닮은…."
6·25전쟁 통에 생긴 '짝퉁 냉면'인 '밀면'이 사상 처음 박물관 기획 전시 아이템으로 선정됐다. 시장통 좌판에서 서민의 허기를 채워 주던 '싸구려 음식'이 지역민의 고단하면서도 보람찬 삶을 상징하는 역사 아이콘이 된 것이다.
부산 서구 부민동3가 임시수도기념관 전시관 안 기획전시실에선 오는 12월 15일까지 '부산 밀면 이야기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김상수 전시관 학예연구사는 "지난 60여년간 우리가 겪은 거대한 격변을 밀면이라는 작고 소소한 일상을 통해 살펴보자는 것"이라며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시대의 기억과 경험이 모두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짝퉁 냉면'인 밀면의 역사는 역전(逆轉)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의 '나에게 밀면은?' 코너를 보면 탄생 당시 냉면은 한 그릇에 20~40원이었지만 밀면은 10~20원이었다고 한다. 요즘도 밀면은 3500~5000원으로 냉면(7000~1만원)보다 싸다. 부산시 식품의약품안전과에 따르면 예전엔 냉면집으로 상호를 걸고 냉면·밀면을 파는 집들이 60~70%였고 나머지가 밀면 집이었다. '싸구려 음식'이라는 편견 탓에 식당들이 밀면 간판 내걸기를 꺼리기도 했고 정식·짜장면 등을 팔면서 밀면을 끼워넣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추세가 바뀌어 밀면이 부산 음식으로서 대표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2000년대엔 부산을 벗어나 외지로 활발하게 진출했고, 2009년엔 부산시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도 지정됐다. 레토르트 식품으로 만들어져 대형 마트 매장에도 진출했다. 밀면을 주메뉴로 하는 집도 많아졌다. 현재 부산의 밀면 집은 340여곳이며 냉면집은 80여곳이다. 밀면이 냉면을 밀어낸 셈이다.
이번 전시회는 '밀면'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하루를 알려주는 '부산 밀면, 24시', 우암동 내호냉면을 통해 본 '피란과 밀면', 괴정동 해주냉면(1962년 개업) 등 오래된 밀면 집 4곳의 사연을 담은 '밀면, 기억들', 1960~70년대 혼분식장려운동 때를 동영상으로 살펴보는 '분식의 날', 2~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밀면 집 4곳의 사람들을 소개하는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 등으로 이어진다.
1955년 남구 우암동 '이북 피란민촌'에 문을 연 '내호냉면'의 3대 사장인 유상모(64)씨는 "1·4후퇴 때 고향 흥남에서 넘어온 할머니가 개업해 냉면과 밀면을 팔았다"며 "당시에도 부산 사람들 사이에 냉면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촬영한 부산 중구 신창동 고려정냉면 가게 앞 모습(위). 이곳에선 냉면과 밀면을 함께 팔았지만, 가게 간판은‘냉면’만 내걸었다. 지금은 밀면이 상황을 역전시켰다. 최근 부산진구 가야밀면 앞에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아래). /향토사학자 김한근씨·임시수도기념관 제공
이현주 임시수도기념관장은 "밀면이라는 실을 통해 꿰어내는 기억과 경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폐허·가난·근대화 등 숨 가쁘게 달려온 서민들의 60여년을 좀 더 실감 나게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회에선 밀면 면발을 뽑는 기계, 장부와 차림표, 주전자와 쟁반, 손 반죽 대야 등 초기 밀면 집에서 사용하던 유물도 볼 수 있다. 원형으로 꾸며진 전시장 중심에는 지금은 복개된 중구 보수동 보수천 빨래터, 동구 초량시장 윗길의 판자촌, 부산항 전경 등 1950년대 부산 모습 사진 30여장을 보여주는 홀로그램 영상이 설치돼 있다.
이날 전시회를 둘러본 박민우(20)씨는 "밀면에 담긴 이야기와 기억들이 이렇게 다양하고 깊은지 놀랐다"고 말했다.
☞밀면
부산 ‘밀면’은 1950년대 초반 6·25전쟁 통에 탄생했다. 전분·메밀로 만드는 냉면은 전쟁 중 서민에겐 사치품이었다. 당시 미군 원조 등으로 흔했던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면발을 만들었기에 ‘밀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맛은 냉면과 비슷하면서 값은 싼 일종의 ‘짝퉁 냉면’이었다. 이북 피란민들이 처음 만들어 판 것으로 전해진다.
첫댓글 밀면이 밀가루로 만든 냉면! 육이오당시 북녘 피난민들이 처음으로 만든 짝퉁냉면! 그 내력을 처음 알았습니다.
밀면이라는 것도 있었군요.
맛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