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노래 / 테너 김호중 & 바리톤 이응광
https://youtu.be/X38 w9 cFAeNM
김호중은 이응광과 인연을 맺게 된 일화를 밝혔다.
그는 "시간이 지나서 너무 울면 안 되는데 제가 고등학교 시절
형은 스위스 바젤 오페라의 성악가로 있었다"라고 말했다.
롤모델이었던 이응광과의 첫 만남도 회상했다.
김호중은 "제가 스무 살 때 제가 독일을 갈 일이 있었는데
일면식이 없던 이응광한테 인터넷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오라고 하더라"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서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갔다.
그날 비가 왔는데 우산을 들고 서 계시더라"며
"다음날 일어나니 한식으로 밥을 차려주셨다.
처음 본 학생에게 아침을 준비해 주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응광은 당시의 심경을 밝혔다.
이응광은 "처음 당황했다.
그런데 김호중에게 절실함이 느껴졌다.
성악에 대한 큰 꿈을 가지고 있었고 소리,
음악에 대한 갈증이 엄청나더라"라고 전했다.
또한 김호중은 이응광과 듀엣 무대를 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누가 나와도 울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미스터리 듀엣'이 날 울린다.
같이 부르는 건 12년 만에 처음"이라고 털어놨다.
김호중은 "제가 고등학교 시절 형은 스위스 바젤 오페라 극장의 가수로 활동하며
한국을 빛내고 있었다"며 "제가 독일에 갈 일이 있어서 형한테 지금으로 말하면 DM을 보냈다
김호중 씨는 "바젤에서 함께 노래한 이후 약 12년 만에 같이 노래한다"라며 감동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이응광 씨는 김호중 씨에게 "김호중은 언제나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고 노력했던 친구다.
앞으로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란다"라고 응원했다.
글 출처 : 김호중 네이버 블로그에서
"김호중의 소중한 인생 역사 한 페이지도"
김호중 애기 때 모습
【오늘의 사건]
1998년 2월 23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이라크와 유엔무기사찰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바그다드)
코피 아난(왼쪽) 유엔 사무총장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가 악수하고 있다.
이라크와 유엔이 무기사찰을 둘러싼 이라크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종 합의안에 조인했다.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부총리는 1998년 2월 23일
이라크 외무부에서 조인식을 갖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를 추인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히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아난 총장은 조인식후 기자회견에서 "이 합의문에는 유엔 무기사찰단원들이
이라크의 무기은닉 의심장소들을 시한 없이 사찰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라고 밝혔으나
아난 사무총장은 뉴욕에 복귀,안보리 보고를 마칠 때까지 구체적 내용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아난 총장과 아지즈 부총리가 유엔 사찰문제를 둘러싸고
공식문서에 서명한 것은 이라크로서는 새로운 수확이라 할만했다.
지금까지 사찰은 이라크가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는가의 문제였으나
이라크는 이번에 사찰문제에 관한 유엔총장과의 합의서를 확보함으로써
미국 측의 일방적인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게 됐다.
[오늘의 인물]
1970년 2월 23일
김재원 국립박물관장 25년 만에 퇴임
김재원 초대 국립박물관 관장.
김재원(1909~1990)은 해방 후 초대 국립박물관장으로 25년간 재직하면서
국립박물관의 기틀을 잡은 한국 박물관의 초석이자 기둥이었다.
김재원은 함경남도 함주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3살 때 작고하고
모친마저 8살 때 재가하여 조모 밑에서 성장했다.
함흥 고보를 졸업하고 1929년 6월 독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의경(이미륵)의 도움을 받아 뮌헨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1934년 교육학 및 고고학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벨기에
켄트국립대에서 6년간 조수로 일하며 동양미술을 연구했다.
1940년 귀국한 후에는 해방 때까지 보성전문에서 독일어 강사로 재직했다.
해방 이틀 후인 1945년 8월 17일 김재원은 왠지 염려스러워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찾아갔다.
우려한 대로 박물관은 엉망이었고 한국인 직원이라곤 수위와 촉탁으로 있는 최영희뿐이었다.
김재원이 9월 초 미 군정청 문교 담당관을 찾아가 자신의 이력을 밝힌 뒤
박물관 업무를 맡겠다고 하자 담당관은 즉석에서 승낙했다.
9월 17일 국립박물관장으로 정식 임명된 김재원은 1941년부터 사실상
조선총독부 박물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리미스 교이치(1907~2011) 박물관 주임을 붙들고
유물들의 소재와 사무를 파악한 뒤 12월 3일 국립박물관을 공식 개관했다.
김재원은 관장 취임 후 미군들이 경복궁 안의 민속유물을 기념품이라며 몰래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막기 위해 경복궁 경안당 관사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그는 미 군정청이 경복궁에 야전 건물을 짓는다며 경복궁 안에 있던
국립박물관 앞뜰을 파헤칠 때도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리고
이슈화해 미 군정청의 반발을 사고 조사를 받았다.
1946년 4월에는 경기도의 개성부립박물관을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으로 흡수하고,
1946년 5월에는 귀국하려는 아리미스 교이치를 설득해 경주 호우총과 은령총을 조사·발굴했다.
이는 한국인이 주도한 첫 고고학 발굴이었다. 1946년 5월 3일 시작된
호우총과 은령총 발굴은 5월 14일 뜻밖의 유물이 출토되어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수복(9,28)을 앞두고 유물들을 북한으로 가져가려 하자 김재원은 직원들과 함께
“유물을 포장하는 궤짝이 덜 되었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며 지연작전을 펼쳐 유물들을 온전하게 보존했다.
1950년 12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었을 때도 2만여 점의 유물을 미군 트럭에 실어 부산으로 피란시켰다.
개성박물관의 유물들도 그때 함께 부산으로 옮긴 덕에 오늘날
우리는 그 많은 고려청자 유물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국립박물관은 1953년 8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으나 경복궁 내로 들어가지 못하고
1954년 1월 국립민족박물관이 있는 남산으로 이전·개관했다.
김재원은 우리 문화의 수준을 해외에 알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국 최초의 문화재 해외 전시를 기획했다.
1957년 12월부터 1959년 6월까지 미국의 8개 도시 박물관에서
금동반가사유상, 금관, 고려청자 등 유물 195점을 선보였고
, 1961년 3월부터 1962년 6월까지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5개국에서 국보전시회를 열었다.
김재원은 승진도 좌천도 없이 24년 5개월 19일을 보낸
후 1970년 2월 23일 정년퇴임했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45건
ㆍ2012년 · 한국계 첫 백악관 차관보, 강영우 박사 별세
ㆍ2011년 · '한국 유도계 대부' 강천수 씨 별세
ㆍ2010년 · ‘비실이’ 희극인 배삼룡 타계
ㆍ2010년 · 외국인 수형자 전용 천안교도소 개청
ㆍ2007년 · 국사 교과서에 한반도 청동기시대 '기원전 20세기부터' 명시
ㆍ2007년 · 엄기영 앵커 프리랜서로
ㆍ2006년 · 집권 20년 우간다 요웨리 무세베니, 또 당선
ㆍ2006년 · 유공자 가족 10% 가산점 위헌 결정
ㆍ2006년 · 진선유·안현수 한국 첫 올림픽 3관왕
ㆍ2006년 · 한국,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올림픽 4연패
ㆍ2006년 ·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레바논 깜짝 방문 반시리아 지도자들만 만나
ㆍ2006년 · 국내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 경신
ㆍ2001년 · 하춘화,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 데뷔 40주년 기념 공연
ㆍ1998년 · 교수, 변호사, 종교인 등 각계인사 123명, `재벌개혁을 촉구하는 123인 선언` 발표
ㆍ1998년 ·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 이라크와 유엔무기사찰에 관한 합의문에 서명(바그다드)
ㆍ1997년 · 복제양 돌리 탄생 공식발표
ㆍ1997년 · 서봉수 9단, 제5회 진로배세계바둑대회 9연승 ‘신화’ 달성
ㆍ1996년 · 이화여대부속초등학교 주 5일제 수업 시범운영
ㆍ1991년 · 국문학자 정한모 사망
ㆍ1990년 · 호세 나폴레옹 두아르테, 엘살바도르 대통령 사망
ㆍ1981년 · 스페인 민병대 의사당 점령 군정수립 요구
ㆍ1981년 · 미국, 신형X선 레이저무기 발사실험 성공
ㆍ1980년 · 서울대병원 의공학과팀 인공췌장 개발에 성공
ㆍ1976년 · `한국미술 5천 년 전` 일본 교토서 개막
ㆍ1973년 · 월남파병 백마부대 본진 개선
ㆍ1971년 · 대학교련을 필수로 한 교육법 시행령 개정안 의결
ㆍ1970년 · 김재원 국립박물관장 25년 만에 퇴임
ㆍ1960년 · 한국-말레이시아, 국교수립
ㆍ1957년 · 필리핀 외상, SEATO 한국가입 제의
ㆍ1955년 · 프랑스 시인 끌로델 사망
ㆍ1954년 · 판문점 휴전회의 종결 선언
ㆍ1945년 · 미 해병대, 일본 유황도의 스리바치산 함락
ㆍ1934년 · `위풍당당한 진영`을 작곡한 영국의 엘가 사망
ㆍ1909년 · 출판법 공포(원고사전검열제)
ㆍ1907년 · 소설가 이효석 출생
ㆍ1905년 · 국제로터리클럽 창설
ㆍ1904년 · 한일의정서 강제 조인
ㆍ1899년 · 독일 작가 캐스트너 출생
ㆍ1883년 ·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 출생
ㆍ1870년 · 친일 반민족 행위자 배정자 출생
ㆍ1848년 · 미국의 제6대 대통령(1825~29) 존 퀸시 애덤스 사망
ㆍ1821년 · 영국 시인 존 키츠 사망
ㆍ1744년 · 유대계 국제 금융자본의 상징인 로스차일드 가(家)의 실질적 비조(鼻祖) 아셸 로트실트 출생
ㆍ1685년 · 독일 작곡가 헨델 출생
ㆍ1468년 · 독일의 활자인쇄 발명가 구텐베르크 사망
[출처 : 조선닷컴]
첫댓글
도지현 시인 님
저야 말로 정신이 없어요
오늘 게시물 올린 걸로 착각
지금 보니 오늘 게시물이 건너 뛸 번 했어요
급 올려 놓습니다
오늘 김호중 노래 감동이라
몇번을 듣고 또 듣고 했어요
아침에요 ㅎ
김호중의 노래를 들으며
오늘 같이 감동으로 감상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소름 돋을 정도로 잘 부르는지
이응경님과 듀엣이 되어 부르는 것을 한참으로 듣고, 또 듣고 했답니다
정말 환상의 조합입니다
오늘은 다른 것 다 두고 김호중 이야기만 해야 하겠습니다
너무 잘 부릅니다
이 노래를 감상하고 예향도 김호중의 진정한 팬이 되었답니다
곡과 사연들 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좋은 자료들도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물어 밤이 되었네요
남은 시간도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藝香도지현
김호중 어린 시절
20살에 독일에 갔을 때
이응광이란 성악인을 찾아가서 인연이 된 오늘의 만남이
참으로 눈물 겹도록 감동을 주는 영상 속에
정말 몇번을 보고 또 보면서
눈 시울이 젖셔집디다
그당시 이응광은 자리가 잡혀서 음악을 하는 입장...
어려울 때 잠시 마음에 위로를 준 그 인연이요
진정한 성공의 대열에서 만남이 더 감동
그 지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