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9. 마흔한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3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김정수 권사(549)
성경말씀 로마서 3:21~31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믿음은 다시 태어남 Being born again입니다.
찬송 124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광고 10月 대표 기도(수요예배 포함)- 박이순, 박명숙, 박영수 집사
가족 방문- 백춘자 권사
겨울 시즌- 출근 시간 조정 8:50 라운딩(업무인계인수)
아침 식사 08:10 점심 11시 40분 저녁 16:40)
평화의 동산 집회 강사 (10월 27일 오후 7시)- 피종진 목사께서 요청
제1기 GMB TV 방송 실무 교육 예정(평화의 동산, 27일, 오전 10시~오후 5시)-100명
MOU 체결 – 기독교방송 GMB TV, 미사랑 의료 복지회(12일 예정)
찬송 826 심령이 가난한 자는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30년 전 작은 화분에 심어진 새끼손가락만 한 은행나무를
울타리 귀퉁이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늘만큼 자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가을 이만 때가 되면 은행이 주렁주렁 맺힙니다.
그러면 주워서 전자레인지에 구워 먹으면 맛이 최고입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턴가 은행 열매 냄새에 은행나무를 베어 버릴까 궁리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 열매조차도 관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박영수 집사님께서 은행 열매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워서 씻어 둡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저녁 산책을 할 때면 은행 열매를 모닥불에 구워 줍니다.
얼마나 구수하던지 은행나무에게 미안할 지경입니다.
가을이 무르익었습니다.
여유를 가지시고 들국화 코스모스, 단풍 구경 가시기 바랍니다.
21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7절,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29절,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30절,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절,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어제가 벌써 토요일입니다.
서울 오가면서 일주일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너무나 피곤했던지 일주일 내내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어제 토요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책가방을 짊어지고 도서관으로 갔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서니 책 냄새가 물씬 풍겨왔습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돋보기안경을 쓰고서 젊은이들 사이에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쉼을 얻었습니다.
머리가 상쾌해졌습니다.
21절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요즘 목사님은 의학 서적에 관심이 많습니다.
양자 물리학, 파동 의학, 신경해부학 등을 읽고 있습니다.
생명의 원리가 매우 놀랍습니다.
목사님이 안수 기도할 때마다 기적을 체험하곤 하는데
모두가 양자 파동 의학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폐암 말기인 나동렬 집사님도 정상적입니다.
박복례 성도님도, 조용림 권사님도, 석 권사님도 최연희 권사님도 평안합니다.
우리 이순희 성도님도 고관절 골절 후 4년 차 지내고 계십니다.
치료의 근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입니다.
종양 내과 의사의 간증입니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기가 있었습니다.
새벽이 되어 간호사 선생님께서 혈압 등을 체킹 하려고 병실에 들어서니
엄마가 어린아이를 꼭 껴안고서 미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엄마 품 안에 안기어 있는 아기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있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밤새 이미 죽은 아이를 가슴에 꼭 껴안고서 날을 지센 것입니다.
우리들의 엄마도 우리를 이렇게 사랑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절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절,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절,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엄마의 사랑이 바다처럼 깊고도 넓습니다.
그리고 파도처럼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아빠보다 먼저 성숙해진다고 합니다.
23절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절,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절,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다산 정약용의 마지막 공부가 마음공부였습니다.
우리의 옹졸 옹졸한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목사님처럼 소인배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 주간만을 돌이켜 봐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머리가 일주일 내내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그래서 역경과 곤궁은 옹졸한 우리를 단련하는 도가니요 망치입니다.(채근담)
맹자는 하늘이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고 할 때에
먼저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고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게 하고
매사 어긋나게 하고
마음을 격동시켜 인내를 배우게 한다고 했습니다.
왜 그러겠습니까?
마음을 넓고 크게 쓰도록 학습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하겠습니까?
예수님처럼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도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2절입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절,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절,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절,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켰도다
7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너무나 벅차고 눈물이 흘러서 복음송 986장 부르겠습니다.
1.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근심 버리고 두 손 들고 눈물로써 주만 따라가오리다
2. 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권세 버리고 오직 주만 바라보며 주만 따라가오리다
3.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며 무어라 하실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 영광 버리고 십자가를 내가 지고 주만 따라가오리다
27절입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과 믿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믿음은 삶 자체입니다.
바울의 믿음의 시작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부터입니다.
사도행전 26장 14절입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우리네 인생도 이렇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그 알량한 정의감 때문에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나의 옹졸했던 생각만으로 친구를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개구리가 죽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인터넷에 보면 연예인, 정치인들을 비방하는 말 때문에 자살하지 않습니까?
그놈의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등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세계 1등입니다.
이놈의 세 치 혀가 사람을 멍들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흉보는 일이 일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아예 만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험담이 세 사람을 죽인다고 하잖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살인자입니다.
그래서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만든 것입니다.
율법이 있어야 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놈의 율법 가지고는 우리의 흉악한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목사님이 청년 시절에 구역 예배를 인도하면서
권사님께 기도를 부탁드리면 항상 기도 말씀이 이렇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찬송을 부르면서도
혼자 있을 때에도
죄를 짓는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왜 그렇습니까?
혼자 있을 때에도
예배를 드리면서도
엉뚱한 생각 때문에 친구를, 가족을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깨달았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행 26:14)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서
아~ 내가 잘 못 살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목사님을 만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목사님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남편을 만난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돈 많은 친구를 만난 것이 어찌 믿음이겠습니까?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깨달음입니다.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은
다시 태어나는 Being born again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율법 아래에서 죄의 사슬에 묶여
답답하고 우울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공황장애에 숨이 턱턱 막혔던 것입니다.
목사님도 그랬습니다,
항상 우울했습니다.
항상 고독했습니다.
때론 자신도 모르게 공황장애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입니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래서 우리가 바울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율법이 아닙니다.
믿음은 율법으로부터 해방입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죄로부터 해방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1249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