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이 든 잔을 선택한 박찬호, 그의 운명은? 쉬운 길을 두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선택하다 written by 기호태 / Newmets.net

메츠 오마 미나야(Omar Minaya) 단장은 가끔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는 재주가 있다. 페드로가 어느 팀을 갈지 사람들이 궁금해할 때 덜컥 메츠 유니폼을 입히고, 팬들이 피아자가 떠난 포수 자리를 걱정하며 벤지 몰리나냐 라몬 에르난데스냐 왈가왈부할 때 ‘순식간엷 폴 로두카를 트레이드로 영입하는 식이다. 반대로 지토나 소리아노처럼 많은 이들이 메츠로 갈 것이라고 예상한 선수들의 경우는, 무성한 루머만을 남기고 실제로는 거의 협상을 진행조차 하지 않았다. 이건 미나야의 협상 스타일인 ‘속전속결’과도 연관이 있는 부분이다. 그는 일단 데려오기로 마음을 먹으면 돈 한두푼이나 기간 1년 가지고 질질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데려오기로 작정한 선수는 하루아침에 계약이 성사되는 반면, 데려올 맘이 없는 선수는 로또월드의 기사거리만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그가 정말로 데려오고 싶은 선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박찬호도 ‘어느날 갑자기’ 메츠행이 결정되었다. 그것도 미국 기자들이 모두 곤히 잠든 시간인 2007년 2월 9일 오전에 말이다. 뉴욕 타임즈와 매튜의 메츠블로그가 놓친 뉴스를 한국의 포털 사이트들은 일제히 첫 페이지에 뉴스특보로 게재한다. 이런날 TV로 대국민연설을 하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메츠 로테이션의 구성
모두의 예상을 깨고, 왜 미나야는 박찬호를 로테이션에 추가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현재 메츠 로테이션의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을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메츠 로테이션은 현재 1~2년 내로 은퇴할 선수들(글래빈, 엘 듀케, 페드로)과 작년 시즌 선발 가능성을 보여준 젊은 선수들(존 메인, 올리버 페레즈, 알라이 솔라르, 마이크 펠프리), 그리고 만일을 대비해 영입한 보험용 투수들(호르헤 소사, 데이브 윌리엄스, 애런 실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제이슨 바르가스나 필립 험버 등이 추가로 잠재적인 선발 후보로 등록되어 있는 상황이다.
미나야는 단기적으로는 팀을 월드시리즈 컨텐더로 만들기를 원하고, 장기적으로는 팜에 있는 젊은 투수들이 성장해서 오랜 기간 로테이션을 책임져 주기를 원한다. 이 계획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젊은 선수가 로테이션에 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이 메이저에서 무너질 가능성을 대비해서 가급적 로테이션 뎁스(depth)를 두껍게 가져갈 필요도 있다. 글래빈과의 1년, 엘 듀케와의 2년 계약은 이런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다. 글래빈이 은퇴 또는 팀을 떠나면서 생기는 빈 자리를 자연스럽게 유망주에게 인계하고, 부상이 잦은 엘 듀케가 DL에 오르거나 정상적인 투구를 하지 못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유망주에게 기회가 돌아간다. 또한 기대를 거는 젊은 투수 중 누군가가 부진할 경우에는, 실리나 소사처럼 보험으로 데려온 투수를 가지고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위태로운 계획처럼 보인다. 하지만 메츠는 이미 작년 시즌에도, 시즌 개막 당시 선발 투수였던 5명이 시즌이 끝나자 2명만 살아남는 경험을 한 바 있다. 그리고 로테이션이 고정되지 않은 가운데서도 양리그 통합 최다승 팀이 되게 한 원동력은, 선발이 아닌 불펜과 타선의 힘이었다. 그래서 플레이오프에서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천만에, 메츠가 NLCS에서 진 것은 첫째는 비 때문이고, 둘째는 불펜의 부진과 클리프 플로이드가 빠진 타선의 얇은 두께 때문이다. 아마도 미나야는 자신의 팀이 특급 선발이 없어서 NLCS에서 졌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릴리와 메쉬가 거액의 금액을 받으며 다른 팀으로 가는 동안, 오히려 불펜의 두께 강화와 경기 후반 투입할 대타 및 대수비 요원의 충원, 그리고 보험용 선발 투수의 영입에만 주력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풍부하고 강력한 불펜과 빠르기와 파워를 겸비한 타선, 그리고 12명의 선발 투수가 우글대는 로테이션을 보유한 팀이다. 작년 시즌 강력한 선발진을 보유한 많은 팀들이 단지 불펜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하위권으로 쳐졌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메츠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나야는 페드로가 복귀할 때까지 버텨줄 투수를, 그리고 펠프리가 성장할 때까지 그 자리를 메워줄 투수를 원한다. 그리고 새로 더해진 박찬호는 애런 실리가 그렇듯이 팀의 목표에 잘 부합되는 선택으로 보인다. 우선 박찬호는 ‘건강할 때는’ 굉장히 좋은 투구를 할 수 있는 투수다. 또한 그는 다양한 구질을 보유하고 있으며, 12년간 메이저에서 활약한 만큼 경험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그는 애런 실리보다도 더 몸값이 저렴하다! 2006 시즌을 시작할 때 메츠에 보험용 투수가 ‘기껏해야’ 호세 리마와 제레미 곤잘레스 정도였음을 감안한다면, 실리와 박찬호, 그리고 호르헤 소사 등이 준비된 2007년은 오히려 선발진 사정은 더 나아졌다고 해도 과장된 평가는 아닐 것이다. 단지 메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2006년에 비해 더 높아졌을 뿐이다.

박찬호 앞에 놓인 함정
몇 가지 사실을 지적하고 넘어가자. ‘메츠 3선발’을 헤드라인으로 정한 모 스포츠신문의 환호와는 달리, 박찬호의 메츠행은 본인에게 엄청나게 많은 난관과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결정이다. 우선 나는 ‘최소한의’ 계약 금액이 겨우 60만 달러에 그친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 애런 실리는 메츠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다. 팀은 실리가 못하면 마이너로 다시 내려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몸값이 싸다는 것은, 팀 입장에선 그가 부진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방출’할 수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작년의 호세 리마를 기억하라). 메츠는 작년에도 이미 리마와 곤잘레스를 몇 경기 등판시켜 보고는 잘 가란 인사도 없이 방출시켜 버렸다(그 자리를 덥썩 차지한 것이 바로 존 메인과 올리버 페레즈다). 올해 메츠에는 박찬호 외에도 로테이션 합류를 기다리는 투수가 무려 10명이나 있다. 몇 경기 부진할 때 메츠 오피스는 과연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을 가질만 하다.
또한 페드로가 8월 복귀한다는 것도 박찬호를 옥죄는 요인이다. 페드로가 복귀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40인 로스터에 누군가가 자리를 비워야 함을 의미한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이 복귀 시기는 트레이드 데드라인과 거의 일치하며, 이는 미나야가 팀의 전력 보강을 위해 뭔가 일을 꾸밀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박찬호가 반드시 트레이드 대상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펠프리 등 유망주를 한꺼번에 산타나와 바꾸는 일도 이 바닥에서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카즈미르 사건을 겪어본 팀으로서는, 그런 수명이 길어지는 거래보다는 베테랑 선발 투수를 다른 필요한 선수와 바꾸는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적은 금액’에 ‘메이저’ 계약한 넘쳐나는 선발 투수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박찬호에게 그다지 유리한 상황은 아닌게 분명하다. 이건 펠프리나 험버가 준비가 끝나서 메이저에 올라오게 될 때도 마찬가지다. 차라리 마이너 계약이라면 마음이 편할 것을, 언제든 방출 가능한 액수의 계약이라는 것은 두고두고 박찬호의 입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이다.

메츠에서의 성공을 위한 조건들
그렇다면 아빠-친구-아들 박찬호가 메츠에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다 아는 얘기부터 하자면, 박찬호는 시즌 내내 건강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간 그는 인저리프론처럼 여겨져 왔으며, 때문에 건강하다는 것을 시즌 전부터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 심지어 모기에 물려도 랜돌프 앞에서는 필사적으로 웃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아프다는 오해를 살 수가 있다!). 그리고 박찬호는 스프링캠프에서부터 페이스를 끌어올려서 작년 WBC 때와 대등한 투구를 펼쳐야 한다. 윌리 랜돌프는 ‘믿음의 야구’를 펼치는 감독이다. 그는 이시이나 빅터 잠브라노처럼 견디기 힘든 투구를 하는 선수들에게도 여러 차례 참을성을 나타낸 바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랜돌프의 눈에 든다면, 시즌 개막과 함께 로테이션에 포함되어 안정적인 한 해를 보낼 수 있다. 한번 믿음을 얻는다면, 아마도 그가 5경기 연속 한만두를 맞지 않는 이상 랜돌프는 계속해서 선발로 기용할 것이다.
아쉽게도 메츠의 투수 코치인 릭 피터슨은 이미 겪어본 한국인 투수들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 서재응과는 투구폼 변경을 놓고 마찰이 있었고, 구대성 역시 투수판을 밟는 방식을 놓고 대립하다가 시즌 말미 10경기가 넘게 출전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혼’을 내준 적이 있다. 그는 투수가 부상없이 투구하도록 돕는 면에서 전문가이며, 원 포인트 레슨 분야에 자부심을 가진 엘리트 투수 코치다. 때문에 선수에 대해 잔소리가 많고 자기 스타일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박찬호는 이런 예민한 상사의 요구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고, 인터뷰 등에서 투수코치에 대해 언급하다가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혹 시즌 개막 때 로테이션에 들지 못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로테이션에서 한 명 정도는 이탈하게 될 것이다. 그게 엘 듀케의 오십견이건 올리버 페레즈의 정신병 재발이건 간에 말이다. 그리고 이런 로테이션의 아롱사태 발생 때 랜돌프가 가장 먼저 꺼내들 카드는 아마도 호르헤 소사, 그리고 그 다음 차례는 박찬호가 될 것이다. 마이너 계약인 실리는 가장 나중에 꺼내드는 카드라고 봐야 한다. 이미 서재응이 2005 시즌에 보여줬듯이, 이렇게 시즌 중간에 찾아온 기회에서 잘 던지면 랜돌프는 믿음과 마음을 아낌없이 박찬호에게 건네줄 것이다.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개막 로테이션에 들지 못해도 박찬호에게 시즌 중에 반드시 기회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남자답거나 무모하거나
사실 나는 박찬호가 왜 메츠를 선택했는지 -그것도 60만불의 허름한 액수에, 선발 자리도 보장받기 힘든 팀에-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이 기대했듯이 워싱턴으로 갔을 경우 시즌 초부터 선발진에 입성하는 쉽고 편한 길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메츠행은 박찬호 개인에게 너무도 위험 부담이 크고, 실패했을 경우 앞으로의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굳이 ‘적은 돈’과 ‘불안한 입지’ 그리고 ‘극성스런 언론과 참을성 없는 팬들’이 고루 갖춰진 뉴욕행을 선택했다. 물론 뉴욕에서 뛰는 것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잘 되면)전국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잘 되면)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으며, (잘 되면)우승 반지를 끼고 화려하게 재기를 알릴 수 있다. 어디까지나 잘 될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첨금이 큰 만큼 여기에는 커다란 리스크가 뒤따른다. 박찬호는 이를 알면서도 메츠를 택했다.
옛날 이야기 속 왕자 앞에는 독이 든 잔과 포도주가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포도주가 담긴 잔은 마시면 몸에 아무런 해가 없지만 대신 효과도 없다. 반면 독이 든 잔은 마시면 죽을 수도 있지만, 그 죽음의 위기를 이겨낼 경우 거대한 힘을 얻을 수 있다. 박찬호는 뜻밖에도 독이 든 잔을 손에 잡는 쪽을 택했다. 그는 쓰러질 것인가 아니면 이 전쟁에서 버티고 승리를 거둘 것인가?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결정은 남자답고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남자답다는 것은 만용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박찬호의 커리어를 전부 건 이 도박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나를 포함한 모든 야구팬과 엑스포츠 간부들이 두 손을 맞잡고 지켜보고 있다. 그의 남자다움이 성공을 거두기를 빈다. 중국인들이 잘 하는 말 중에 ‘흥미로운 이 시대를 잘 살아봐’라는 말이 있다. 나는 바꿔 말하겠다. 박찬호 선수, 뉴욕에 온 것을 환영한다. 흥미로운 이 시즌을 잘 지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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