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h4-lxUC2dH0?si=zaX50wdpbZVUoKk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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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겨울에 태어난 사랑스런 당신은~ 눈처럼 맑은 나만의 당신~"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여리디 여린 소녀의 떨리는 노래소리에 소년은 눈을 감은 채 마냥 어린아이가 되어 까만 밤하늘을 날아 그녀가 잠자리에서 불러주는 침대 머리맡으로 날아가고 있다.
" 하지만 봄~ 여름과 가을 겨울~ 언제나 맑고 깨끗해~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해피 버쓰데이 투유~ 해피 버쓰데이 투유~ "
*보이지 않는 사랑* (최성원)
엄니의 살가운 눈빛 속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사랑이 안방 유리창으로 투영하는 날. 늦둥이 막내를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시던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이 입춘을 코앞에 둔 꽃샘추위를 밀어내며 살포시 내 어깨에 내려앉는다. 베란다 창가에 기댄 느티나무 가지에도, 강둑 산책로 벚나무 가지에도 아버지의 따스한 사랑이 내려앉는다.
" 너 나던(너를 낳았던)날도 날씨가 좋았는데. 너를 밤에 낳았는데, 아마 그때가 한 9시는 됐는지...
형들과 누나들이 성당에 갔다 올 무렵이었으니까. 형들은 남자 동생을 보았다고 좋아서 그랬단다."
아침상을 앞에 놓고 엄니가 말을 꺼내셨다.
가난한 농부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나는 맨 위로 형이 둘이고 그 아래 줄줄이 누나가 셋이나 되는 대가족이었다. 엄닌 농사일 짬짬이 가용할 푼돈을 마련하려고 읍내 오일장이나 이웃마을을 돌며 행상을 하거나 매일 이른아침 마을 약수터에 하숙집을 찾아다니며 산야채를 팔아야 했다. 그러니 엄니를 대신해 늘 큰누나가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초등학교 3학년 늦가을 누나가 읍내로 시집가는 날까지 나를 키우다시피 했다.
그래서인지 큰누나는 나를 동생이 아닌 자식 같다고 한다. 어젯밤에도 큰누나가 양말 두 켤레, 찹쌀과 강낭콩, 버섯 등을 준비해 막내 생일 챙겨주라며 내가 잠든 사이 엄니에게 살며시 건네주고 갔다고 했다. 늘 속 깊은 마음 씀에 찡하게 마음이 가는 누나다. 그런 누나들 틈에 오글거리며 자라서인지 어린 시절 여자아이처럼 수줍음이 많았던 나는 누나들이 부르는 노래를 곧잘 따라 부르곤 했는데, 이미자, 조미미, 나훈아, 남진 등의 노래 한 소절쯤은 익히 노랫말을 기억하며 따라 부르기도 했다.
지난밤 엄니 곁에 누워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지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이미 엄니는 설거지를 깨끗이 해놓고 잠이 드셨다. 저녁 설거지는 꼭 내가 하기로 약속했는데도 엄닌 생일을 맞는 내게 설거지를 시키는 마음이 못내 안쓰러웠나 보다. 유년기부터 사춘기를 지나기까지 엄닌 매년 내 생일이 돌아오면 꼭 수수팥떡 인절미를 해주셨다. 태어나서 줄곧 10년을 생일에 붉은 수수팥떡 인절미를 해 먹이면 잡귀를 물리쳐 무병장수한다는 웃어른들의 말씀을 잊지 않고 따르는 어미의 사랑법이었다.
추운 겨울날 머리엔 얇은 수건을 두르고 시린 손을 화롯불에 쪼여가며 안마당 부엌 앞에서 온종일 절구질을 했다. 수수를 찧어 껍질을 벗긴 뒤 키질하여 얻은 수수쌀을 다시 절구에 빻아 막내의 생일상에 올릴 떡가루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차가운 땅바닥에 쪼그려 앉아 고운 체로 반복하여 가루를 내는 과정은 자식을 둔 어미가 아니면 쉽게 용기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엄닌 막내의 무탈함을 바라는 마음 하나로 고된 과정을 한 해도 빠짐 없이 매년 음력 섣달 하순이 돌아오면 잊지 않고 살뜰히 챙기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추운 날씨에 허리를 구부리고 온종일 절구질 하는 엄니의 가없는 사랑에 눈물이 핑 돈다.
엄니가 절구질을 끝내면 누나들과 안방에 모여 앉아 떡가루를 반죽하여 경단을 빚기 시작한다. 이때 아버지는 절구질하며 흐른 낱알을 쪼아먹는 어미 닭들을 바라보며 가마솥이 걸린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지피곤 늦둥이 막내 생일에만 맛볼 수 있는 수수팥떡 인절미를 흐뭇한 눈빛으로 기다리셨다.
가마솥에서 경단이 익어가면 엄닌 미리 만들어 둔 팥고물에 경단을 굴려서 막내인 내게 먼저 맛보라며 손에 들려주시곤 했다. 쫄깃한 식감에 팥고물이 묻은 수수팥떡 인절미는 쌀이 귀한 강원도 산골에서는 찹쌀 인절미보다 훨씬 맛난 아동기 생일 음식으로 사랑받았다. 그 뒤 사춘기를 거치며 도시로 나온 뒤에는 엄닌 수수팥떡 인절미 대신 오곡(찹쌀, 강낭콩, 수수쌀, 차좁쌀, 밤 등을 넣은) 찰밥으로 생일상을 차리셨다. 물에 불린 찹쌀과 수수쌀을 시루에 안치고 센 장작불로 한 차례 찐 다음 옅은 소금물을 살짝 뿌려서 주걱으로 뒤적이며 간을 맞춘다. 그 뒤 삶아 놓은 강낭콩 밤 등을 섞어 다시 한 번 약불로 쪄 찜을 들이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쫄깃한 오곡 찰밥이 시루 안에서 식구들을 반긴다. 뒤이어 엄닌 오곡 찰밥에 잘 어울리는 갖가지 나물(고사리, 고비, 도라지, 취나물, 시래기, 콩나물, 호박 고자리, 무나물) 반찬과 더덕구이, 나박김치 등으로 늦둥이 막내의 생일상을 푸짐하게 차려 식구들 앞에 내놓으셨다. 이날만큼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나물과 찰밥이 예전의 엄니 손맛은 아니었지만, 오늘 아침에도 막내에게 오곡 찰밥을 해 주시는 엄니의 은혜로운 사랑에 가슴은 한없이 따스해진다. 40대 노산으로 얻은 늦둥이 막내가 무탈하게 크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으로 해 주시던 생일상은 내가 해외 근무 할 때를 제외하곤 엄닌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셨다. 엄니가 차려주시는 생일상을 받을 때마다 아직 미완(혼)의 못난 모습으로 남아 감사함보단 죄스러운 마음이어서 오늘도 일터로 나오며 현관에 서서 뼈마디만 앙상하게 남은 엄니의 두 손을 굳게 잡고 흔들며...
" 엄마~, 내년에도 찰밥 해 줄꺼지? "
" 글쎄 모르겠다. 에미가 또 밥을 해줄 수 있으려는지... "
이젠 당신의 나이가 평균 수명을 훌쩍 넘긴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러마'라고 선뜻 대답을 못 하시는 어머니. 속마음은 엄니가 크게 아프지 말고 오늘만큼의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네는 말임에도 엄니는 어미라는 본능적인 의무감 때문인지 진정으로 받아들이신다.
일터에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전화벨이 울린다.
집에서 엄니가 한 전화였다.
" 왜~ 엄마~, 뭔 일 있어? "
" 집에 와서 점심 먹으라고~ "
" 알았어~ 엄마~, 쫌 이따가 갈께~ "
점심은 주로 단골 음식점에 주문하여 해결하는데 오늘은 생일이라고 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모두 어미의 사랑이다. 오늘만큼은 점심상도 어미의 손으로 차려주고 싶으신 게다. 하던 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집에 도착하니 이미 엄니는 나물 반찬들을 밥상 위에 가지런히 차려 놓고 텔레비전을 보며 기다리셨다. 떡과 오곡 찰밥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엄니가 매년 생일에 해 주는 오곡 찰밥을 맛보는 설렘이 그 어느 기다림보다 행복하다.
한편, 그 옛날 엄니가 해 주셨던 수수팥떡 인절미 대신 내 생일이면 떡보인 늦둥이 막내의 입맛을 생각해 맛난 떡을 해 오던 재 너머 작은누나가 올핸 전화조차 없다. 그것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달콤한 팥소를 넣고 뽀얀 분을 바른 '모찌'라는 찰떡과 껍질을 벗긴 팥고물과 콩고물을 입힌 쫄깃한 찰시루떡과 인절미까지... 아마 둘째 조카가 어린애를 맡겨 손을 내기 어려웠지 싶지만 그래도 허전한 마음은 왠지 감출 수 없다.
엄니랑 도란거리며 오곡 찰밥으로 맛난 점심상을 비운 뒤 뒷정리를 도와드리곤 막 일터로 향하려는데, 엄니가 따라 나오시더니...
" 옛다, 이거 가지고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으렴 " 하시며 꼬깃꼬깃 접힌 낡은 만 원권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신다.
" 엄마, 이거 뭐야? 집에서 만난 점심 먹었는데, 뭘 또 사 먹으래? "
" 이 돈은 아~주 오래 전에 너한테 주려고 깊이 묻어 두었던 거야.
아버지 살아계실 때 아버지가 너를(에게) 주라고 한 돈이다."
얼떨결에 엄니가 주신 돈을 받아 들곤 아무 말도 잇지 못하고 돈을 바라보며 서 있다가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갔다. 참았던 눈물이 푹 쏟아졌다. 분명 엄니나 자식들이 당신께 쓰시라고 드렸을 푼돈일 텐데, 안 쓰시곤... 막내로 자라서인지 애틋한 마음으로 생전의 아버지와 마주 앉아 조잘거리며 약주 한 잔을 옳게 따라드리지 못했는데,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지폐를 바라보다가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주머니에 찔러넣곤 문간방 뒤 베란다에 나와 배웅하는 엄니에게 손을 흔들며 차에 올라 일터로 향했다.
호숫가 강변을 따라 일터로 가는 내내 눈가엔 아버지의 환영(幻影)이 아른거렸다. 마치 달밤에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달맞이꽃 같은 아버지의 사랑에 좀처럼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일터에 도착하자마자 지폐를 다시 꺼냈다. 꼬깃꼬깃 접고 접어 낡을 대로 낡아 손때 묻은 지폐 한 장. 산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식구들 고생시키는 못난 아비라는 마음 때문인지 자식들에게 좀처럼 마음 표현을 못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의 낡은 지갑 안에서 '막내에 대한 가없는 사랑'이 엄니에게 대신 전해지기까지 아버지는 얼마나 많은 나날 떨리는 손으로 지폐를 꺼냈다가 넣어두기를 반복하셨을까? 아~! 아버지!
나도 모르게 또다시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멍하니 초점 잃은 눈으로 지폐를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정월대보름에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위해 기쁘게 쓰기로 했다. 매월 보름밤이면 엄니를 모시고 집 앞 호숫가에 나가 이태 전 하늘로 떠나신 아버지께 인사를 올린다.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고 못다 한 회한에 그리움을 달래는 추모 인사이자, 3년 동안 이어갈 못난 막내의 아버지께 올리는 속죄의 시간이다. 엄니를 모시고 달밤에 추모하러 갈 때마다 생전에 아버지가 약주로 즐겨 드셨던 술을 따라 올리며 엄니와 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다. 아주 가끔은 날씨 때문에 집 베란다에서 대신할 때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서도 홀로 밤에 나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안부를 묻곤 집안 식구들 소식을 들려드린다. 그렇게 아버지와 생전에 못다 한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이 내겐 작은 위안이며 속죄하는 길이다.
늦둥이 막내를 얻었다고 좋아하셨다는 아버지. 그래서였는지 어린 시절 아버지는 산에 약재나 소 밧줄로 쓸 피나무 껍질을 벗기러 가거나 땔감을 구하러 가실 때도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초등학교를 마치도록 이발소에도 꼭 동행하셨다. 22살에 해외 근무를 떠나서 첫 달 급여를 국내로 송금하니 큰누나가 찾아 아버지께 '막내가 보낸 돈이어요. 아버지, 한번 만져보셔요' 하고 드리니 " 어린것이 그 먼 데 가서...." 하며 월급봉투를 손에 쥐고 부르르 떨며 말을 잇지 못하셨다던 아버지.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읍내 새 아파트에서 지내실 때도 엄니가 노인정에 가서 기죽지 말라며 가끔 몇천 원씩 드리곤 하셨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쌈짓돈을 쓰지 않고 안주머니 깊숙이 넣어 간직하셨다가